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28
〈 228화 〉 성배의 시련(2)
* * *
드넓게 펼쳐진 초원.
칼트는 검을 고쳐 잡으며 여전히 선수를 양보하는 쿤텔을 바라보았다.
긍지높은 검사.
최강의 검의 초인이라 불렸던, 쿤텔.
그에게 세 번의 도전을 했고, 세 번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패배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칼트가 깨달은 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스릉.
네번째 도전에 이른 지금, 칼트가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시각이 너무나도 좁아져 있었단 사실이다.
‘생각을 잘못했다.’
너무나도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칼트는 눈앞의 검사에게 닿기 위해선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이해해야 함을 깨달았다. 앞선 세 번의 도전은 그것을 위한 초석이리라.
초인의 영역은 멀다.
멀고도 험한 길이다.
그곳에 닿기 위해선 자신의 삶을 걸어야 한다.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보여야 한다. 비록 성배를 통한 인위적인 시련이 주어졌다 한들, 제 전부를 내걸어야 함은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
학습하고, 체득했으며 수련해온 모든 것.
그것은 단순히 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후우···.”
칼트가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떠올리는 것은 자신이 타고난 재능이다. 자신에겐 검에 대한 재능도 그럭저럭 있었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전투 감각에 대한 재능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일류에 닿을 재능은 아니다.
일류의 재능을 가진 자가 제 삶을 다 바쳐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것이 바로 초인의 경지다. 그럼에도 칼트는 바랐다. 스스로가 초인이 되기를.
그렇기에 매 순간 목숨을 걸었고.
닿지 못할 경지를 꿈꿨다.
기적에 가까운 일을 몇 번이고 성공 시키며, 지금 이 자리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며 칼트는 깨닫는다.
‘나의 재능. 나의 특기.’
버려가며 목적을 이루는 것.
그보다 더 근본적인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류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재능을 칼트는 떠올린다.
무언가를 보고.
읽고, 분석하고, 파악하여서.
결과적으로예측하여 추적하는 것.
“트래커(Tracker).”
추적자로서의 재능.
여태까지 전투와는 연관 짓지 못한 재능이나, 세 번의 도전과 실패가 칼트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칼트는 자신의 재능을 떠올리며 감았던 눈을 뜬다.
“······.”
침묵 속에서 눈동자가 뜨인다.
동공이 한점으로 수축하고 시야는 한층 또렷해진다. 선명해진 시야에 담는 것은 검의 초인 쿤텔이다.
세 번의 도전에서 감을 잡은 것.
그것을 칼트는 실전으로 옮긴다.
눈앞에 선 초인의 모든 정보를 칼트는 읽어낸다. 작은 움직임, 검을 쥘 때의 버릇, 시선의 움직임과 호흡, 아주 작은 몸짓까지 전부.
본 것과, 보아왔던 정보가 합쳐진다.
합쳐진 정보를 머릿속에 아로새긴 채 칼트가 앞을 향해 걷는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걸음을 내디딜수록 칼트의 호흡이 차분해진다.
처음과는 다르다.
다르기에, 다음도 다르다.
가볍게 땅을 박찬 칼트가 검을 휘두른다. 이번에도 쿤텔은 끝까지 칼트의 움직임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키잉.
은백색의 칼날이 그리는 궤적이 칼트가 휘두른 검을 휘감는다. 궤적이 서로 얽혔을 때, 밀리는 것은 당연하게도 칼트다. 육체 능력뿐만이 아닌 기술의 영역에서도 밀린다.
휘감긴 칼날이 바닥으로 향한다.
첫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 도전에도 지금과 같았다. 첫 번째의 경우 이어진 공격에 목을 베였고, 두 번째에선 몸을 비틀어 한쪽 팔을 버렸다. 세 번째의 경우 바닥을 구르며 간신히 회피했다.
그리고 네 번째에 이른 지금.
칼트는 눈을 부릅뜬 채 검을 쥔 손에 힘을 준다. 아래로 향하던 궤적이 하늘로 솟구친다. ‘검을 흘려낸다’ 라는 결과는 그대로 두되, 그 결과가 향하는 곳만을 비틀어 낸다.
초인의 영역에 근접하여 얻어낸 반쪽자리 초감각.
불완전한 초감각과, 추적자로서의 재능이 결합하여 완성된 감각은 초인들의 초감각과는 다르다. 이질적인 감각에서 발생한 예측은, 쿤텔의 예측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티잉!
두개의 칼이 허공을 가른다.
그리하여 칼트는 처음으로 쿤텔의 검을 받아치는 데 성공한다. 팔은 떨려오고, 호흡은 거치나 칼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가겠습니다.”
한층 넓어진 시야.
수많고, 수많은 검로가 시야에 들어오는 가운데··· 칼트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디뎠다.
“쿤텔 님.”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초인의 경지에 다가선다.
2.
검의 초인 쿤텔은 강하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기술의 영역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었으며, 어지간한 용사를 능가하는 무력을 지녔던 인물이다. 혹자는 그가 있었기에 불이 꺼진 시대를 넘을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초인에 오르고서도 단련을 멈추지 않은 사내.
한 자루의 검에 일생을 바친 검사.
그가 이루어낸 위업을 모르는 검사는 없다.
‘그만한 인물이다.’
자신은 그 위업에 도전하는 것이다.
칼트는 파르르 떨리는 검을 고쳐잡으며 물러섰다. 그가 한 걸음 물러서기 무섭게, 쿤텔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며 검을 휘두른다.
카가가가각!
칼끝을 비스듬히 세워 쿤텔의 검을 흘려낸다. 그러나, 그조차 완벽하진 않다. 고개를 휙 젖힌 순간 날카로운 검기가 칼트의 머리칼을 베고 지나갔다.
한순간만 늦었어도 목이 떨어졌다.
그런 순간의 연속이었다.
‘힘겹다. 팔이 떨린다.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다. 눈동자가 터질 것만 같다.’
일격 일격이 무겁다.
쿤텔이 한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칼트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쥐어짜내 일격을 마주해야만 했다.
예측할 수 있다고 한들.
검이 그리는 궤도를 볼 수 있다 한들, 상대가 약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상대는 최강의 검사이며, 머나먼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큭!”
캉, 카앙 하고.
칼이 연달아 맞부딪친다.
제대로 호흡을 하는 것조차 어렵다. 칼트는 뒤로 물러서고 쿤텔은 앞으로 걸음을 내디딘다. 발자국과 발자국이 어지러이 얽힌다.
‘본다.’
칼트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보고 예측하고, 먼저 움직여라.’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가 떠오르고, 정리되어 다음 수를 예측한다. 한발 먼저 움직이는 것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방법이다.
카가각.
찌르듯이 들어온 쿤텔의 검을, 검의 옆면으로 비스듬히 받아치며 칼트가 앞으로 전진한다. 쿤텔은 내질렀던 검을 옆으로 휘두르는 것으로 응수한다.
그 동작을 읽었다.
읽었기에 칼트는 곧장 검을 휘두른다. 캉, 카캉! 불똥을 튀며 칼트의 검이 위를 향한다. 쿤텔의 검 또한 칼트의 검에 얽혀 하늘을 향한다.
스겅!
쿤텔의 칼이 허공을 가른다.
탁.
칼트는 한 걸음 더 내디딘다.
계속해서 거리를 좁히고자 한다. 그러나 좀처럼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상대는 검의 초인 쿤텔이며, 그는 자신의 동작이 읽힌다 하여 망설임이 없다.
‘아.’
칼트는 보았다.
하늘로 향했던 쿤텔의 칼끝에 맺힌 검기를.
‘온다.’
막지도, 흘려보내지도 못할 일격이 온다.
그것이 그릴 궤도가 칼트의 눈에는 전부 보인다. 그것이 만들어낼 미래 또한.
‘피해야···.’
하늘을 향했던 칼끝이 땅을 향해 떨어진다.
마치, 단두대처럼.
칼트는 옆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검이 휩쓰는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만에 집중해, 꼴사납게 풀밭 위를 굴렀다.
스겅.
소름끼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칼트는 바닥을 구르듯이 일어나며, 방금까지 자신이 있던 위치를 바라본다. 초원에 일(一)자가 길게 그어져 있다.
“윽!”
경악할 틈도 없다.
일어서자마자 휘둘러진 쿤텔의 검을, 칼트는 검을 세워 간신히 받아낸다.
뿌득.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검을 쥔 손가락이 부러진다. 그럼에도, 충격은 상쇄되지 않는다. 칼트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기껏 좁혔던 거리가 다시 멀어진다.
칼트는 이를 악문다. 닿을 방법이 좀처럼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다. 강하다. 너무나도 강하다.
‘다시, 온다.’
멀어진 거리.
그 거리를 한순간에 좁힐 수단을 상대는 가지고 있다.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쿤텔이 보인 행위는 칼트의 예상과는 다르다.
스릉.
쿤텔이 검을 고쳐 잡는다. 곧장 추격하는 게 아닌, 자세를 잡은 채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한다.
끽, 끼긱.
쿤텔의 검을 중심으로 무언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칼트는 그것이 일으킬 현상을 예측한다. 저 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일어날 현상은 상대하는 입장에서 보기엔 끔찍하기 짝이 없다.
‘절삭(??).’
쿤텔의 기술에 대해 칼트는 알고 있다.
검귀, 드라카의 기술이 검기로 그물을 만들어 공간을 장악하는데 초점을 뒀다면··· 쿤텔의 검은 ‘벤다’라는 행위에 집중했다.
벨 수 없는 것을 벤다.
쿤텔은 죽음의 칼을 베기 위해 초인이 된 검사다. 그렇기에, 그는 언제나 벨 수 없는 것을 베기 위해 기술을 단련해 왔다.
그렇게 지어진 기술의 이름은 절삭(??).
벤다는 행위에만 집중한 만큼, 그 위력은 말 할 것도 없다. 벤다라는 개념의 극한을 추구했기에, 도달한 검기의 형태는 하나의 칼날과도 같다.
그것이 온다.
쿤텔의 팔이 움직인다.
——스겅.
그가 쥔 검이 휘둘러진다. 칼끝에 응축된 검기가 해방된다. 해방된 검기는 요란하지 않다. 가로로 휘두른 칼끝에서 터져 나온 검기는 하나의 선(?)으로 보일 뿐이다.
틱, 티디딕.
선에 닿은 모든 것이 끊어진다.
괜히 절삭이란 이름이 붙은 게 아니다. 모든 것을 베어내는 선을 앞에 두고, 칼트는 입가를 틀어올린다.
‘드디어.’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기에.
‘드디어, 기술을 써 주시는구나.’
자신을 제대로 상대해준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는 한편, 칼트는 익숙함을 느낀다. 닿는 모든 것을 베어 가르는 검기를 마주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기에.
「묻겠다. 그대는 검사인가?」
떠올리는 것은 죽음의 칼을 마주했던 기억.
그 괴물이 토해내던 서슬 퍼런 검기를 칼트는 기억해낸다. 그것을 마주했을 당시, 자신이 보였던 움직임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버릴 것은 버린다.’
하지만.
‘시간을 끄는 게 아닌, 닿기 위해서.’
그때와는 다르다.
상황은 같으나 노리는 것이 다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칼트는 계산을 거듭한다.
피슉.
부릅 뜬 눈동자에 실핏줄이 터진다. 붉게 물든 시야로 칼트는 자신이 향해야 할 곳을 보았다.
‘찾았다.’
답이 보였다.
답이 향하는 곳을 향해 칼트가 움직인다. 육체가 한순간 가속한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육신은 가속에 가속을 거듭한다.
탁.
가볍게 걸음을 내디뎠다.
스릉.
칼끝은 낮게 내렸다. 쿤텔을 상대하는 지금, 우습게도 칼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쿤텔의 검술이다. 그는 최후의 순간 보았던 쿤텔의 검을 떠올린다.
다가오는 죽음 앞에 저항했던 인간.
막을 수 없는 검을, 기어코 흘려보내던 그 모습.
‘흉내 낸다.’
한번은 흉내내 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그것을··· 초인에 근접한 육체로 다시 한번 도전한다. 칼트의 검이 칼끝을 낮게 끌며 움직였다.
부드럽게.
쳐내는 게 아닌 흘려보내도록.
비스듬히 세운 칼을 다가오는 검기를 향해 휘둘렀다. 검기에 닿는 순간 티딕, 소리를 내며 검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칼트의 눈에는 검이 부러지는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확신을 가진다.
흔들리지 않는 칼끝은 기술을 완성시킨다.
검을 파고들던 검기가, 검 면을 따라 흐르기 시작한다. 가로로 휘둘러진 검기의 궤도가 바뀐다.
카각, 카가가가각!
비스듬히 기울어진 검기가 칼트의 왼쪽 어깨를 가르고 지나간다. 핏물과 함께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 최소한의 피해로 기술을 흘리는 데 성공했다.
허나, 기뻐할 틈은 없다.
다가오는 검기는 하나가 아니다. 계속해서 검기가 다가온다. 밀려드는 검기를 향해 칼트는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하나를 흘려보낼 때마다 상처가 늘어간다.
허벅지가 베이고, 발목이 꺾이며 어깻죽지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검을 쥔 손가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꺾인다. 그런데도 칼트는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
틱, 티디딕.
칼끝이 갈라진다.
투확.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왈칵 쏟아진다.
그러나, 칼트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제 살을 깎아내며 그는 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마다 육체의 일부를 내주며 그는 쿤텔의 앞에 도착한다.
그리고, 온 힘을 쥐어짜내 검을 휘두른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검을 쥔 채 칼트가 검을 휘둘렀다.
서걱.
당연하게도 닿을 리가 없다.
쿤텔이 가볍게 휘두른 칼이 칼트의 오른팔을 베고 지나간다. 검을 쥘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 오른팔이 베인 순간 검은 칼트의 손을 떠났다.
바닥에 떨어지는 오른팔.
허공을 부유하는 검.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다.
칼트가 눈을 부릅뜬 채 너덜너덜한 왼손을 휘두른다. 휘두른 왼손이 그리는 경로에 허공을 부유하는 칼자루가 있다.
콱!
휘두른 손아귀가 칼자루를 붙잡는 순간 검격은 완성된다. 이미 손가락이 다 꺾여 검을 쥐지 못하리라 여긴 왼손이지만, 오히려 오른손보다 빠르다.
‘오른손은 노림수.’
오른팔은 처음부터 버릴 작정이었다.
칼트는 그렇게 마지막 일격이 될 검을 선보인다. 그것은, 검의 초인인 쿤텔의 시선으로 보아도 완벽한 일격이다.
서걱.
고요한 절삭음이 울려 퍼진다.
칼트의 검이 처음으로 쿤텔에게 닿았다.
3.
서걱.
검이 베고 지나간 것은 쿤텔의 어깻죽지다.
쿤텔의 오른 어깨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칼트는 온몸에 힘이 풀려 털썩, 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에게 이어지는 검격은 없었다.
“······.”
쿤텔은 가만히 칼트를 내려다본다.
칼트는 쿤텔을 올려다보았다.
“닿았습니다.”
칼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닿았, 습니다. 분명히.”
쿤텔은 말없이 미소 짓는다.
줄곧 무표정했던 쿤텔의 얼굴에 분명한 변화가 나타난다. 마치, 시련의 성공을 알리듯이.
파삭.
그리고 그 몸이 바스러지기 시작한다.
시련은 끝났고, 벽을 형상화한 쿤텔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무너지는 쿤텔의 형상을 바라보며··· 칼트는 언젠가 그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모든 초인은,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지.」
목표.
「이루어야만 하는 것. 지켜야만 하는 것. 누군가에게 약속한 것. 그런 것들이, 망가진 초인들에게 있어선 삶의 목표가 되는 거야.」
삶의 목표.
「그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초인은 제 삶을 날카롭게 갈아낸다. 자신의 삶을 예리하게 갈고 닦는 거지.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검의 초인, 쿤텔은 가니칼트에게 닿기 위해서.
검귀, 드라카는 딸아이의 복수를 위해서.
광인, 켈르할름은 제자와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언젠가 네가 초인이 된다면, 네게도 삶의 목표가 생겼다는 것이겠지. 그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그 말을 떠올리면서.
“···저는.”
칼트가 입을 열었다.
“제 목표는 말입니다.”
자신이 나아갈 방향.
제 삶을 날카롭게 갈고 닦아야 할 이유.
“당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칼트는 바스러지는 쿤텔을 향해 말했다.
“당신의 모습으로, 당신의 긍지를 더럽히는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된 당신을··· 죽이는 게 제 목표입니다.”
스스로 인간임에 긍지를 가졌으며, 결코 인도(人?)를 벗어난 적이 없던 당신께선 영락하고 말았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말았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된 존재.
재앙의 사역마로서 부려지는 당신의 존재는, 당신에 대한 모욕이 되어버렸다. 칼트는 밤의 도시에서 마주했던 쿤텔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내가 이뤄야 할 목표.’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
“맹세하겠습니다.”
이윽고 쿤텔이 완전히 바스러진다.
칼트의 몸이 빛에 휘감기고, 넓게 펼쳐졌던 초원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칼트는 천천히 무릎을 펴고 일어서 자신의 검을 갈무리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뜨면.
“왔냐.”
그곳에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칼트.”
칼트는 자신을 부르는 이를 바라봤다. 잿빛 머리칼의 그녀가 자신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성공한 모양이네.”
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