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16
〈 316화 〉 후배, 그리고 후예(2)
* * *
아플리아는 풍경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학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나의 샘이 있기 때문이다. 마나의 샘 인근의 식물들은 싱그럽고, 색이 뚜렷해지는 편이다. 넘치는 마나는 식물들에게 있어 극상의 비료와도 같을 테니.
봄에는 각양각색의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녹빛으로 물드는 아플리아의 뒷산.
그 아름다운 풍경은 아플리아의 자랑이자, 아론 학장이 특히나 아끼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을 사랑하는 아론 학장의 취미는 아플리아의 뒷산을 오르는 일이기도 하므로.
그 사실을 라니아는 알고 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와.”
탁, 하고 라니아는 제 이마를 후려쳤다.
‘이거 좆된 거 같은데···.’
하늘 높이 솟아 있어야 할 나무.
싱그러운 색을 자랑해야 할 풀숲.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을 것들이 지금 이 자리에는 없다. 그 사실에 라니엘은 식은땀을 흘린다. 숲의 한구석이 통째로 벌목 당한 가운데, 그 범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라크?”
“예, 라니아 교수님.”
“너 뭐한 거냐?”
“수련을 했습니다.”
“저건?”
라니아가 공터로 변해버린 숲의 한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가지런히 쌓여있는 땔감이 한가득 이다.
“땔감입니다. 북부에선 종종 뒷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몰아치는 눈바람을 이겨낼···.”
순진한 얼굴로 설명을 늘어놓는 라크 앞에, 라니아는 한숨을 길게 내쉴 뿐이다.
“···다음부턴 숲에서 도끼질 하지 마. 한두 그루면 조용히 흔적을 지워버리면 되는데, 이건 좀.”
학장님께 뭐라 둘러대야 하지.
그리 고민하다가, 라니아는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나무야 나중에 다시 자라겠지.
“그래도 뭐···.”
허허벌판이 되어버린 숲.
일격에 쪼개졌을 나무들을 보며 라니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보아하니 진전은 꽤 있었나 보네.”
라니아가 품에서 백금색 잔을 꺼내 들었다.
“도전할 거야?”
그녀가 성배를 흔들어 보였다.
그 물음은 라크에게만 묻는 것이 아니다. 지금 성배는 두 사람에게 동시에 반응하고 있다.
그레이스의 검을 물려받은 라크.
그림자 용의 군주와 계약한 벨노아.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을 이룬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자격을 충족시켰다. 성배는 시련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2.
「그거, 오래가진 못할 거다.」
카르디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나는 성배를 기울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시련으로 향하는 길이 열린 지금, 성배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조금 더 크게, 그리고 길게.
성배에 금이 간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네.’
성배는 인간에게 시련을 제공하는 기적의 성유물이나, 카르디는 그것이 오래가진 못 할거라고 경고했다. 특히 라크와 벨노아에게 사용할 경우에는 더욱더.
그림자 용의 주술사, 벨리알.
최초의 용사,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그들은 성배라는 작은 그릇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존재들이다. 통로를 여는 지금도 성배가 삐걱거리고 있었으니까.
「글레리아가 있을 때야 성배를 수복하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아마 그 두 아이가 시련을 통과하면 성배가 망가질 확률이 높다고 본다.」
카르디는 그리 중얼거리며 나를 흘겨봤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모를리가 없지.
‘미래로 이어질 가능성이, 하나 줄어든다.’
카르디는 그리 말한 것이다.
그것은 내게 건네는 경고이나,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쓸모있는 경고는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이번 세대에서 전부 끝낼 생각이었으니까.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이젠 아니다.
“라크, 벨노아.”
내가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통로로 걸음을 옮기다 말고, 둘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나는 둘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선배님들께 인사 잘 드리고 와.”
나한테도, 너희에게도 선배인 사람들.
“그리고 보여주고 오고.”
머나먼 과거, 이 땅에 인간의 가능성을 보인 이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현재가 있다. 현재가 있기에 미래가 있다. 그들이 비록 영락했다고 한들, 그들이 쌓아올렸던 위업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이 이 땅에 새겨넣은 가능성 또한,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보여주라니, 무엇을···?”
“가능성.”
내가 너희에게 보았던 것.
“정말 이놈이라면 될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 만큼, 화려하게 보여주고 와.”
비록 재현된 환상에 불과하다 한들.
그들이 가능성을 마주하고, 안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설령 무의미할 지더라도.
“그리고, 늬들 스승이 참 잘 가르쳤단 것도.”
내 자랑도 좀 하고 와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벨노아와 라크는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웃음을 흘리며 통로의 너머로 몸을 던졌다.
* * *
눈을 뜬 순간 벨노아를 반기는 것은 드넓게 펼쳐진 사막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에는 메마른 바람이 불어온다.
메마른 바람.
저번에 들렸을 때, 벨노아는 이 바람에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사막에 불어오는 바람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용이 두른 바람이다.’
용이 있는 곳에는 바람이 함께한다.
머나먼 과거, 고대보다 더 오래된 과거에 살았던 인간들은 용을 바람에 빗대어 표현하곤 했다. 용이 머무르는 곳에는 언제나 바람이 몰아친다.
봄날의 바람처럼 따스하지도, 겨울날의 바람처럼 매섭지도 않다. 그 무엇도 아닌 메마른 바람. 그것이 용을 상징하는 바람이다.
지금 불어오는 바람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드넓게 펼쳐진 이 사막에 한 마리의 용()이 살고 있다는 것. 그 용이 누구인지는 물을 것도 없다. 벨노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사박.
모래가 밟히는 소리가 난다.
소리는 가까워진다. 벨노아 또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걷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벨노아가 걸음을 멈췄다. 모래 밟히는 소리도 더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벨노아는 제 앞에 선 주술사를 보았다.
“또 보는군, 소년.”
그림자 용의 주술사, 벨리알.
그리고.
검은 폭풍, 흑룡 벨리알.
이제는 정체를 알게 된 머나먼 선배의 앞에 벨노아는 고개를 숙였다. 모시게 된 신에게 벨리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참이다.
“옛 영웅을 뵙습니다.”
벨노아의 인사에 벨리알은 웃음을 흘렸다.
“그림자 용의 군주께 들었나?”
벨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계기는 맞이했나 보군. 계약도 맺었고. 군주께서도 너를 제법 아끼는듯싶고.”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좋군. 아주 잘 된 일이야.”
으하하!
그가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벨노아의 어깨를 투박한 손으로 두들겼다.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충격을 벨노아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성장했군, 소년.”
툭, 하고 마지막은 가볍다.
벨노아의 어깨에서 손을 뗀 벨리알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가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온전한 시련을 치를 수 있을 정도까지.”
팔짱을 낀 채 투욱, 하고 그가 제 팔뚝을 검지로 건드렸다. 그것만으로 공양은 마쳤다. 피어오르는 그림자가 벨리알의 팔뚝을 휘감았다.
“각오는 됐나?”
벨노아는 답하지 않는다.
제 팔을 허공에 휙, 휘두를 뿐이다. 그림자가 벨노아의 팔을 휘감는다. 꾸물거리는 그림자가 굳어진다. 용의 비늘과 같은 형상으로 변한 그림자가 벨노아의 손가락을 뒤덮는다.
아직은 초입에 불과하나, 그것은 분명한 성장의 증거다. 후배의 성장에 벨리알은 더없이 즐겁게 웃는다.
“가치를 보여라, 소년.”
가치를 보여라.
증명해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자격이 있음을 보여라.
“내게, 증명해 보아라.”
3.
검의 성지 갈라트릭.
한 명의 검사가 만들어낸 협곡이자, 일찍이 수많은 검의 초인들을 배출해 낸 배움의 터. 검의 성지라는 지명에 부족함이 없는 그곳에서, 한 명의 검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라크는 눈앞을 보았다.
그곳에는 한 명의 검사가 서 있다.
땅에 검을 박아넣은 채, 그저 고고하게 그곳에 서 있다. 마지막으로 그를 보았을 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왔나.”
그가 라크를 보았다.
“라크 반 그레이스.”
그는 라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라크는 눈앞의 영웅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제 선조의 스승께, 지금의 북부가 있게끔 만들어준 은인을 향한 존경의 표시다.
“선조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라크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허리춤에서 뽑은 도끼를 가슴팍에 가져다 댄 채, 라크는 말을 이었다.
“당신께서 얼마나 큰 존재인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두가 당신에게 얼마만큼의 빚을 졌는지, 그 전부를 들었습니다.”
고대에 이 땅을 구해낸 영웅.
네 명의 영웅에게, 이 땅의 모든 존재는 빚을 진거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갚을 수 조차 없는 빚이다. 그 모두가 영락해 버리고 말았으므로.
“하지만, 그레이스께선 말씀하셨습니다.”
라크가 천천히 도끼를 가슴팍에서 땠다.
“당신께선, 백 마디의 감사와 칭송보다···.”
가열(Heating).
“이러기를 더 좋아하실 거라고.”
쿠웅, 하고 심장이 거칠게 뛴다.
라크의 안광이 붉게 번뜩였다. 당장에라도 달려들듯 한 그 모습에 가니칼트는 웃음을 터뜨린다.
“과연.”
그가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레이스가 잘 가르친 모양이군.”
그 손아귀가 땅에 박힌 대검의 칼자루를 움켜쥔다. 그것만으로 일대의 공기가 무거워진다. 찍어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엄습한다.
저번에는 이것에서 버티는 게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라크는 압박감에 굴하지 않은 채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쿵, 하고 라크가 발을 내려찍었다.
눈앞의 위대한 검사는 선수는 양보하겠다는 듯 아무런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다. 라크는 첫 일격으로 무엇을 선보여야 할지 떠올려본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가장 자신 있는 것을 보이면 될 뿐이니.
갈라트릭류, 개(?).
라크가 팔을 등 뒤로 확 젖혔다.
그 손에 들린 도끼가 구우웅, 하고 가볍게 떨린다. 진동하는 도끼의 상이 흔들렸다 합쳐지기를 반복한다. 그것이 완전하게 합쳐지는 순간, 라크가 이를 악물고 도끼를 휘둘렀다.
제 1 식, 초견살.
···본래 갈라트릭 류의 제 1 검, 초견살은 눈으로 좇는 것조차 불가능한 속도로 휘둘러지는 쾌검이다. 인지하기조차 어려운 속도로 휘둘러진 검은 상대가 인지하는 순간 그 목을 날려버린다.
그렇기에 붙어진 이름이 초견살(???)이나··· 그것은 그레이스에게 어울리는 기술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첫 일격에 죽여버리기만 하면 초견살 아니겠냐? 덤으로 눈으로 좇기 힘들면 초견살의 조건도 만족하는 거고.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성지에서 들었던 말이 라크의 귀에 맴돌았다.
과연, 그것은 옳은 해석이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만 같으면 그만 아닌가.
쩌어어억!
라크가 도끼가 그리는 궤적을 따라 공기가 찢어진다. 찢어지는 공기는 형태가 없다. 검기와는 다른 무언가가, 일대를 찢어발긴다.
그 궤적이 가니칼트를 삼키려는 순간이다.
카앙!
가니칼트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라크의 일격을 튕겨냈다. 통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토록 이나 무력하게 막힐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완성도 높은 기술이라 생각한 까닭이다.
라크의 생각은 틀리지 않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라크가 펼친 기술은 완성도가 높다. 기술을 제대로 이해했으며 도끼를 휘두르는 자세 또한 흠결은 없다. 약간의 오차가 존재하나 그것은 가히 완벽에 가깝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초인들조차 훌륭하다고 칭찬할만한 일격. 분명 그리할 테지만···.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의 눈에는 아니다.
한자루의 검으로 그 누구도 닿지 못했던 경지를 이룬 검사는, 검(?)에 한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까다롭다 그런 가니칼트의 눈에 라크가 펼친 기술은 완벽에 가깝긴커녕 낙제점이나 간신히 면할 수준이다.
“검은 그렇게 휘두르는 게 아니다.”
그가 검을 들어 올렸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과 결이 같은 기술을 펼쳐낸 머나먼 미래의 후예에게, 가니칼트는 기술의 원본(??)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잘 봐둬라.”
이것이 진정한 초견살이니.
···라크가 쥔 것이 검이 아닌 도끼임을 지적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