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59
은백색의 섬선이 쏟아졌다.”
“마음에 안 드네.””
레미아가 표정을 구겼다.”
명궁, 에프타. 그녀에 대해선 레미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엘프들 중엔 어린 편에 속한 레미아이기에, 그녀가 태어났을 때 에프타는 이미 죽은 이였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흔적은 위그드라실에 가득했다.”
엘프에게 길러진 인간.”
영웅이 되고, 용사가 된 인간.”
에프타는 엘프들에게 사랑받은 용사였으며, 엘프들의 보물인 달빛 화살마저 선물 받았던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신궁만이 다룰 수 있었던 기술을 모방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레미아는 저 너머에 있는 에프타를 노려보았다. 엘프들이 칭송하던 아름다운 눈동자도, 기품있는 동작도 지금의 명궁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가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화살을 바라보며 레미아는 혀를 찼다.”
‘저게, 신궁의 기술을 모방한 거라고?’”
웃기지 말라지.”
퉁.”
레미아가 한계까지 당겼던 활시위를 놓았다.”
달빛을 머금은 화살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솟구치는 화살의 궤적은 에프타의 것보다 선명하며, 그 속도는 에프타의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레미아의 화살이 하늘에 먼저 도달했다.”
달빛 화살이 하늘에 닿은 구름 사이로 은백색의 섬광이 번뜩였다. 한 번의 번뜩임, 직후 쏟아지는 것은 수백, 수천 발에 가까운 은백색의 섬선이다. 쏟아지는 섬선이 에프타가 쏘아 올린 유성우를 꺾었다.”
월광(月光).”
에프타에게 주어진 이명은 명궁이나, 레미아가 지닌 이명은 신궁(神弓)이다. 엘프의 역사가 시작된 아래, 천재라 불리며 어린 나이에 활을 잡고 달빛 화살을 물려받은 레미아다.”
그 이명이 거짓은 아니라는 양, 레미아의 화살은 전장을 뒤덮었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바바박!”
영웅들을 향해 달빛이 쏟아졌다.”
누군가는 검을 휘둘러 달빛을 베어내고, 창대로 꺾어내는가 하면, 방패를 내려찍어 일대를 수호하기도 하지만··· 피해 하나 없이 달빛을 견뎌내기란 어려운 법이다.”
“지금이야.””
월광(月光)은 잠깐이나마 영웅들의 발을 묶어두었고, 이것은 기회였다. 레미아가 활시위에 새로운 화살을 메기며 말했다. ”
“너도 빨리 정리하고 합류해야 하잖아. 빠르게 가자.””
그리 말하며 레미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이런 전장에 그 누구보다 적합한 인재가 있었다. 레미아의 시선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따악, 하고.”
마녀(魔女)가 손가락을 튕겼다.”
* * *”
마녀가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훑어본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영웅들의 군세를 꿰뚫며 앞으로 나아가는 벨노아다. 그 뒤를 따라 토벌대가 따라붙었다. 그들은 끝자락의 탑만을 바라보며 전장을 질주하고 있었다.”
···광인을 상대하기 위해선 자신 또한 저곳에 합류해야 함을 알고는 있지만, 레스티는 그 일을 잠시 뒤로 미뤘다.”
흐름은 이미 기울어졌으니까.”
지금 자신마저 저곳으로 합류하는 순간, 이미 기울어진 전장은 완전히 엎어지리라. 카리옷과 레미아만으로는 광인의 군세들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저들이 뚫린다면···.’”
광인과 저 군세들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그래선 승산이 없다. 끝자락의 탑 안에서 요동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그런 도박수를 던질 수는 없다. 레스티가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떠올리는 것은, 배교자다.”
그날 상대했던 배교자, 글레투스.”
악몽과 같은 군세를 부리며 홀로 능히 군단을 이루는 재앙. 그녀는 레스티와 같은 서머너(Summoner) 클래스였으며, 클래스의 극한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배교자 토벌전을 떠올리며 레스티가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딱, 하고.”
그녀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문이 열렸다. 이계와 연결된 거대한 문이 열리며 쏟아져 나오는 것은 그녀가 지닌 사역마들이다. 막대한 수의 사역마가 황야에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레스티는 자문했다.”
서머너(Summoner)란 무엇인가.”
혹자는 말한다. 수십의 사역마를 부리며, 홀로서 군단을 이루는 이라고. 또 누군가는 말했다. 일신의 고강함은 보잘것없어, 사역마들에 의존할 뿐인 삼류 마법사라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배교자, 글레투스.」”
「서머너 하면 그 미친년을 빼놓을 수는 없지. 서머너가 약해? 일신의 고강함이 별것 없어? 그거 다 개 헛소리다. 걔네가 안 만나봐서 그래.」”
어느 마법사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상 나와 카일을 제외한 그 어떤 영웅도 배교자의 군세를 뚫은 전적은 없어. 우리조차 결국에는 실패했고. 그러니까 말야.」”
전장에서 서머너는.”
「서머너는 전장을 지배한다.」”
「번거롭고, 짜증나며, 악몽과도 같은 존재지. 그래, 재앙과도 같은 존재란 뜻이야.」”
재앙과도 같은 존재라고.”
전장을 지배하고, 제멋대로 주무르는 이라고. 제 선배의 말을 떠올리며 레스티는 웃었다. 위대하신 라니엘께서 그리 말씀하고, 그렇게 자신을 가르쳤다면···.”
자신은 능히 재앙이 되어야 하리라.”
짜악, 하고 레스티가 박수를 쳤다.”
그 순간 저 하늘 위에 열려있는 이계의 문이 번뜩였다. 문에 새겨놓은 주문들이 차례로 해방됐다.”
가속(Accel).”
재생(Regen).”
거대화(Gigantic).”
증강(Durable).”
근력 비대(Muscular).”
경량화(Lightweight).”
강화주문이 쏟아져 나오는 사역마들의 육체에 깃들었다. 뿌득, 뿌드득 소리를 내며 사역마들의 덩치가 거대해지고 그들의 눈동자가 붉게 번들거렸다. 그리고, 주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문 중첩(Spell-Nesting).”
주문이 겹쳐졌다. 같은 주문이 수십 번이고 사역마들의 육체를 후려쳤다. 허용된 한계량을 넘어선 주문에 무너지는 육체를 재생이 붙들어 두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게 비대해진 사역마들의 육체가 무너지려는 순간.”
따악, 하고.”
잿빛 마녀가 마지막 주문을 발현했다.”
“극복(Overcome).””
그녀가 만들어낸 오직 그녀만의 주문.”
무감각, 무고통, 감정과 본능의 통제. 한계를 넘어선 감각과 육체 능력의 극대화. 생명체에 걸려있는 한계를 강제로 열어젖히는 주문. ”
———————!”
사역마들이 포효했다.”
새빨갛게 물든 눈동자에 비추는 것은 광기다. 광기에 물든 사역마의 군세가 포효했다. 수백, 수천에 이르는 사역마가 광인의 군세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역마로 이루어진 파도와, 영웅들이 맞부딪친다.”
배교자를 흉내 내듯이, 마녀(魔女)는 손가락을 휘둘렀다. 그녀의 등 뒤로 최고위 주문이 담긴 회로가 차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제 사역마들에 인간들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즐기던 배교자와 달리 레스티의 목적은 하나뿐이었다.”
효율. 그리고, 빠르게 합류할 것.”
그러니 마법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완성된 최고위 주문을 담은 회로가 새하얗게 타올랐다.”
수백, 수천에 이르는 사역마가 하나의 흐름이 되어 황야를 휩쓸었다.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질주하는 사역마들은 마치 파도와 같다. 세찬 파도의 앞에, 이름 높은 영웅들은 휩쓸리기 시작했다.”
베고 베어내도 마녀의 군세는 줄어들지 않는다. 팔을 잘라내고 목을 떨어트려도, 마녀의 짐승들은 기어코 영웅들의 몸을 물어뜯고 할퀴었다.”
처음엔 적은 상처였지만 짐승 하나를 베어낼 때마다 상처는 벌어졌고, 늘어만 간다. 그렇게 불세출의 영웅들이 하나둘 짐승들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보던 카리옷은 허, 하고 숨을 뱉었다.”
···마녀(魔女)라고 했던가?”
카리옷은 고개를 돌려 레스티를 보았다.”
손짓 한 번으로 수천의 군세를 부리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섬뜩하기 짝이 없다. 과연, 마왕군들이 그녀를 마녀라 부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고 만다.”
‘···하물며.’”
카리옷이 쓰게 웃었다.”
배교자 토벌전에서 저 소녀의 활약상을 지켜보았던 카리옷은 알고 있다. 레스티 엘레노아는, 서머너라는 클래스에 국한된 마법사가 아니라는 것을.”
라니엘 반 트리아스가 위자드 클래스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배틀 메이지라는 클래스를 창설했다면.”
레스티 엘레노아는 서머너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위자드 클래스를 갈고 닦았다. 서머너가 부리는 군세가 아닌, 서머너 개인이 무력하다는 약점은··· 적어도 저 소녀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딱, 하고 레스티가 손가락을 튕겼다.”
완성된 회로가 싯푸르게 점멸했다.”
최상위 주문, 이그니스(Ignis).”
청백색의 번개로 이루어진 창이 콰릉, 소리를 내며 전장의 한복판을 향해 쏘아졌다. 쏘아진 창이 전장의 중심에 박힌 순간, 창에 응축된 번개가 모조리 해방됐다. 시퍼런 섬광과 함께 천둥이 전장을 후려쳤다.”
···손짓 한 번으로 수천의 군세를 부리고, 전장을 초토화하는 최상위 주문마저 단독으로 구사할 수 있는 일류 마법사.”
한 명의 마법사에 의해 전장이 통째로 뒤집혔다. 역사에 이름을 실은 영웅들은··· 재앙을 마주한 인간들이 으레 그렇듯, 그럴싸한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마녀의 짐승들에게 물어뜯겨 명을 달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