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60
〈 60화 〉 썩어버린 것(3)
* * *
“예? 방법이 있다니요?”
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계로 들어간 매개를 찾을 방법이 있다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걸 당연하게 해내는 이 마법사라 한들, 그건 불가능하다고 칼트는 생각했다.
애초에 계통이 다를뿐더러···.
‘이계(??)에 들어선 매개는,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사도 그 위치를 특정하진 못하지 않나?’
그쪽 계통의 권위자조차 하지 못한 일이다. 이계에 있는 매개를 끌어내는 건 할 수 있다. 그러나, 매개가 어디에서 어떻게 튀어나올지는 알 수 없다.
‘분명 그럴 텐데···.’
칼트는 라니엘을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턱을 괸 채 숲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무언갈 찾고 있는듯한 시선이었다.
‘···빈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
무언가 방법이 있는 걸까?
칼트는 잠깐의 여지를 두고 말을 이었다.
“···이계의 매개를 특정하는 게 가능합니까?”
“그건 불가능하지.”
“그럼 어떻게···?”
“칼트, 재밌는 거 하나 알려줄까?”
라니엘은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제단의 매개로 선정된 적이 있다?”
“···예?”
칼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언제 말씀입니까?”
“당연히 네가 떠난 다음의 일이지. 그리고··· 그 재앙을 마주한 다음의 이야기기도 하고.”
라니엘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 눈동자는 여전히 숲을 바라본 채였다.
“그때의 나는 좀 맛이 가 있었거든. 제정신도 아니었고.그만한 걸 만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거지. 그리고, 카일 그 개새끼가 지랄하기도 좀 했고.”
그 개자식이, 다 관두겠다고 난리를 쳤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라니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그 겁쟁이 녀석은, 그걸 틈이라고 생각한 거겠지.”
“···틈, 말씀입니까?”
“어, 틈. 세뇌를 걸고 파고들만 한 틈. 그리고, 실제로 틈이 맞긴 했어. 나도 꿈에 빠졌으니까.”
꿈.
매개로 선정됐다가, 의식의 끝에 간신히 살아 돌아온 마법사들은 입 모아 말한다.
꿈은 달콤했다고.
그 꿈에서 깨어나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칼트는 그 말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럼, 의식 직전에 깨어나신 겁니까?”
“엉? 아니? 그럼 너무 늦잖아.”
“예?”
라니엘이 웃었다.
“꿈에 빠지고 얼마 안 가서 일어났지. 나중에 비교해보니까 대충 열 걸음 정도 걸었더라고.”
“···그게 가능한 겁니까?”
“내가 제단을 처음 본 거면 몰라도, 뭐··· 주문의 구조가 얼추 잡히기도 했고, 사실 간단한 거거든.”
그녀가 손가락을 폈다.
“꿈에서 깨어나기 싫은 이유가 뭐겠어? 그 안에 원하는 게 다 있기 때문이겠지.”
툭툭, 그녀가 자신의 가슴팍을 건드렸다.
“근데, 나는 없더라고.”
“예?”
“그 꿈에는 내가 바라던 게 없었어.”
칼트는 질문했다.
그럼 당신이 바란 게 무엇이었냐고.
“글쎄, 이것저것 많긴 하지만··· 어찌 됐든 간.”
라니엘은 답했다.
“과거에서 얻을 수는 있는 건 아니었지.”
2.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는 건 신비한 경험이었다.
레스티는 조금씩 선명해지는 의식으로 꿈을 보았다. 이것이 꿈이라는 건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원리가 무엇인지 생각하지는 못했다.
‘뭔가, 막혀있어.’
사고가 한정되어있다.
생각의 방향성이 한정된 느낌이다. 마치 정신계열 주문에라도 걸린 것처럼.
‘···무엇에 걸린 것처럼?’
■■계열 주문.
■■계열 ■■.
■■■■ ■■.
‘···잘 모르겠어.’
뭔가 떠오른 것 같긴 하지만, 금방 잊히고 만다. 계속해서 꿈을 꾸게 만든다.
떠올리는 생각은 한정되어 있다.
그 사실을 떠올리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며, 레스티는 눈을 깜빡였다. 눈을 떴을 때와 감았을 때 보이는 장면이 달랐다.
눈을 뜨면, 불길이 보인다.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장작은 계속해서 던져진다. 불길은 극단화된 감정이요, 장작은 편향된 기억이다.
이것밖에 하지 못하나?
너는.
그러니까.
어째서.
그 정도밖에.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차가운 시선이다.
그것이 레스티 자신의 실수이던 아니던 간, 그 시선은 변하지 않는다.
거긴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너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
잿빛 마법사에 비하면, 너는···.
싸늘한 시선이, 험담이 귓가에 맴돈다.
그들이 내려다보는 시선이 레스티의 숨통을 조여온다. 그 누구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
그에 비해, 다른 쪽은 어떠한가.
레스티는 눈을 감았다.
대단하구나! 레스티.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로가 그곳에 있다. 그곳에는 행복한 기억들뿐이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란다.
네게는 재능이 있단다, 레스티.
눈을 뜨면 보이는 기억들은 끔찍하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기억들은 행복하다.
그 대비가 극명하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뻔한 것이다.
레스티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랐다. 두 눈이 감기지 않았다. 레스티는 무의식적으로 한쪽 눈을 떴다.
‘무언가.’
왜 한쪽 눈만을 떴는가.
‘부족해.’
과거 만으론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에 자꾸만 목이 탄다.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레스티는 갈증을 느낀다.
자신은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레스티는 알 수 없었다.
* * *
“꿈에서 얻을 수 있는 없는 것이요? 꿈에서는 무엇이든 되지 않습니까?”
“통상적으로 말하는 꿈이라면 그렇겠지. 그러나, 주문은 좀 다르거든. 정신에 간섭하는 주문은 굉장히 복잡해. 없는 걸 만들 수는 없지.”
툭툭, 라니엘이 자신의 머리를 건드렸다.
“결국에, 대상의 기억에 있는 것들로만 만든다는 거야. 꿈이라기보단 회상 주문에 가깝겠지. 눈을 감고 뜨는 것을 트리거(Trigger)로 삼아 제약 회로를 그렸을 거고.”
“저는 주문을 잘 몰라서···.”
“그냥, 간단히 말하면 이런 거야.”
그녀가 말했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지. 그 과거를 회상하며, 원하는 건 다 과거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지.”
“·····.”
“그런데 말이야.”
잿빛 마법사가 툭, 내뱉었다.
“마법사는 그러면 안 되거든.”
그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로님이, 스승님이 내게 그랬어. 마법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 * *
갈증을 느끼며 레스티는 과거를 보았다.
레스티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꿈은 보다 세밀한 풍경을 그린다. 아주 작은 기억들 마저 끌어올려 레스티의 앞에 전시했다.
장로와의 추억이 흘러간다.
그녀가 기뻐했던 기억은 이미 동이 났다. 주문은 조금 더 과거의 것을 끌어 올린다.
···하면.
이번에는···.
많은 것들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그러나 레스티의 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주문이 그를 눈치챈다.
더 많은 기억을 끌어올린다.
과거의 기억들이 닥치는 대로 떠올랐다.
“레스티.”
그리고, 기억이란 언제나 온전치 않다.
때로는 왜곡된다. 때로는 잊혀진다.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주문은 그런 기억의 오묘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레스티, 고개를 들어라.”
그저 기억만을 끌어 올린다.
그렇게 끌어올린 기억 중에는 레스티가 언젠가 잊어버린 것이 존재했다.
당시의 감정에 휩쓸려 차분히 듣지 못한 기억.
장면으로만 추억하던 기억.
결국, 주문은 그 기억마저 끌어올렸다.
“나를 봐다오.”
레스티는 앞을 보았다.
병실에 누워있는 장로가 보인다.
‘이건···.’
아마도, 장로가 의식을 잃기 직전의 기억일 것이다. 그 마지막의 순간에 장로는 레스티를 방으로 불렀었다. 그리고 무언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지?’
레스티는 그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슬픔에 젖어 들었던 기억은 온전치 않다. 이번에는 차분한 마음으로 레스티는 그 기억을 보았다.
“할 말이 있단다.”
장로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으나, 레스티를 바라보는 눈동자만큼은 빛을 잃지 않았다.
“라니엘이란 친구가 있단다. 지금은 멀리 떠난 모양이지만, 잿빛의 차기 마탑주를 맡았던 친구이지.”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때는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레스티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내가 그 친구에게 해줬던 말이 있어. 그 친구가 차기 마탑주로 힘들어할 때, 전했던 말이지.”
장로가 말을 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말투로, 다른 목소리로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는 말을 입에 담았다.
“레스티, 마법사는 이기적일 필요가 있단다. 남이 뭐라 하든, 네가 원하는 대로 날뛰어 볼 필요가 있단 소리란다.”
당시의 레스티는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알고 있단다. 네가 호기심이 가는 대로 살았다가, 고아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가 찾아온 이유도 그것이었으니까. 네가 소환한 소환수가 아이들을 다치게 했다 했었지?”
그때의 레스티는 장로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을 뿐이다.
“호기심의 대가는 컸겠지. 있는 대로 네 재능을 펼쳤던 대가는 무거웠을 것이야. 정제되지 않은 재능은 때로는 독이 되는 법이니까.”
그때는 그랬으나, 지금은 아니다.
레스티는 눈을 똑바로 뜬 채 장로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란다.”
장로가 손을 뻗었다.
“너는 충분히 네가 가진 것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단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불을 붙이지 못했을 뿐이지, 너는 이미 훌륭한 마법사란다.”
그 손길이 레스티의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말고, 미래만을 보고 달리려무나. 그것이 마법사의 본분이니까.”
장로가 레스티의 눈동자를 마주한다.
“네가 만족할 때까지 해보란 이야기란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장로의 손이 떨어진다.
기억은 그게 마지막이다.
다시 한번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기억을 뒤로하고, 레스티는 눈을 떴다. 더이상 볼 필요가 없었다.
레스티는.
눈을 뜬 채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만족했나?
지난 삼 년간의 기억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웅크리고, 도망쳐 왔던 기억들이다. 레스티는 그것을 똑바로 본 채 중얼거렸다.
“아니.”
레스티는 입을 열어 말했다.
“만족 못 했어.”
* * *
“마법사는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라니엘이 말했다.
“자기가 원할 대로 날뛰어 보고, 만족할 때까지 남이 쌓아온 걸 다 무너트리면서 나만의 방식대로 마학을 쌓아 올려 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말고, 미래를 보고 살라고.”
그리곤 덧붙였다.
“그러니까, 과거에 붙잡혀 있을 시간은 없었던 거지. 거기엔 내가 원하는 게 없었으니까.”
“그건··· 다른 마법사도 그리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다른 마법사들은···.”
“뭐, 일단 어느정돈 정신력을 가지고는 있어야겠지. 그건 기본이고 임마.”
“어우···.”
칼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다시 원점이잖습니까. 말씀하시는 걸 보아하니, 여기 학생이 매개로 선정된 거 아닙니까?”
“그렇지.”
“고작 학생이, 그런 정신력을 가졌기를 기대하진 어렵지 않겠습니까? 아직은 어린아이잖습니까.”
“그래, 겁쟁이 자식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리고, 그게 바로 실수라는 거고.”
라니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칼트, 네가 뭘 잘 모르나 본데.”
“예?”
“마탑에서 삼 년을 버틴 애야. 정신력이 딸릴 리는 없을걸? 거기, 맨정신으로는 못 견뎌.”
“그게 무슨···.”
“마법사란, 특히나 잿빛 마탑의 마법사란 말야.”
자신을 가리키며 그녀는 짓궂게 웃었다.
“성깔 드럽고, 어딘가 꼬여있기 마련이거든.”
* * *
깜빡.
레스티가 눈을 떴다.
감았다 뜬 눈동자는 이전과는 다르다.
그녀의 눈동자에 옅은 빛무리가 흔들렸다. 그 빛은 백금색이다. 찬란히 빛나는 백금색의 빛무리가 레스티의 눈동자에 깃든다.
빛무리가 어둠을 몰아낸다.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새하얗게 물든 세상에 수많은 회로가 떠돌고 있다. 그 회로는 검었다. 레스티가 그린 회로가 아니었다.
‘이 꿈을 이루고 있는 주문. 그리고, 내 몸을 강탈한 주문들.’
한번 보는 순간 회로가 이해된다.
따라 그릴 수는 없지만, 이것이 어떤 식으로 별에게 전해지는지 그 흐름이 보인다.
그녀의 눈은 예전부터 그랬다.
마나의 흐름을 읽었다.
주문의 구조 자체를 한눈에 파악했다.
별과 이어지는 주문을 향해 레스티는 손을 뻗었다. 그리곤 툭, 하고 그 주문의 방향성을 바꾸었다. 주문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정신이 맑아졌다.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툭툭, 투두두둑.
하나씩 주문을 끊어내며 레스티는 생각했다.
‘시험을 망쳤어.’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습게도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에 별다른 생각이 들진 않았다.
망친 게 뭐 어때서?
아쉽긴 하지만, 딱 그뿐인 것이다.
‘아예 못 푼것도 아니고, 어느 정돈 풀었으니까.’
적어도, 그 교수님은 그것을 봐주실 것이다. 답안지를 읽고 평가는 해주겠지. 그 평가가 박해도 좋다.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찌 됐든, 자신을 봐준다는 거니까.
봐주기만 한다면, 다시 기회는 있을테니까.
레스티에겐 그거면 충분했다.
‘남들은 봐주는 것 조차 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런걸 삼 년이나 견뎌왔다.
‘여태껏 그런 시선 속에서 살아왔는데.’
이제야, 자신을 봐주는 사람이 생겼는데.
이제서야 시작점에 서게 됐는데.
어쩌면, 자신을 인정해 줄 사람이 생기게 생겼는데.
‘이걸로 만족하냐고?’
레스티는 마지막으로 붙잡은 주문을 거칠게 뜯어냈다. 투두둑, 소리를 내며 회로가 해체됐다.
“웃기지 마.”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만족 할 리가 없다.
“내놔.”
내 몸이야.
백금색의 마나가 폭발하듯이 퍼져나갔다.
3.
“거 봐.”
나는 내 손등을 가리켰다.
다른 곳에 새겨둔 회로와 연결해둔 회로다. 그것이 지금,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든 된다고 했지?”
“···이게 무슨?”
“뭐긴 뭐야.”
나는 내가 새겨넣었던 회로에, 내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마나가 차오름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우리 차례라는 이야기지.”
그리곤 칼트를 향해 내 손등을 내밀었다.
“추적해, 개 코.”
“그거 굉장히 무례한 표현인 거 아십니까?”
한숨을 쉬면서도 칼트는 내 손등에 코끝을 가져다 댔다. 몇 번 킁킁거린 칼트는 고개를 들었다.
“기억했습니다.”
“이러니까 개 코라는 거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숲속을 가리켰다.
“한순간이지만, 이계에서 튀어나올 거야.”
손가락으로 그 수를 센다.
“일분 남짓. 그사이에 특정 할 수 있겠어?”
“절 뭘로 보시는 겁니까?”
칼트가 자기 코끝을 가리켰다.
“십 초면 충분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