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69
〈 69화 〉 카페베네(1)
* * *
참을성이 아주 는 것 같구나.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그냥, 요즘 네 행보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맥하트 건도 그렇고, 세자르 조교수 건도 그렇고··· 성깔이 많이 죽은 것 같아 다행이구나.
오늘 아침에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본다.
그래, 성질대로 해서 좋을 것 하나 없단다. 뒤처리가 오히려 더 귀찮은 법이지. 최대한 참거라. 참다 참다 욕을 하는 거 가지곤 내가 뭐라 안 하마.
스승님이 신신당부하셨던 것.
그러니, 사람을 상대로 한 폭력만큼은 참아다오.
요즘 성질이 많이 죽지 않았느냐. 내가 부디 널 믿게 해다오, 라니엘.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턱을 매만졌다.
“음···.”
확실히, 성질이 많이 죽은 것 같긴 하다.
요즘 들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참을성이 많이 늘었다. 5년 전에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그것을 체감한 건 얼마 전 카일과 우연히 만났을 때였다.
그때, 나는 바로 주먹을 날리지 않았다.
그것만 해도 놀라운 성장이었다. 그곳에 있었던 게 5년 전 성깔의 나였다면?
‘일단 강타부터 박고 시작했지.’
망설임도 없이 주문부터 던졌을 것이다.
그럴만한 명분이 내겐 있었으니까. 카일로 인해 내다 버린 시간의 총합을 생각하자면, 주먹 한 대로 끝낸 내 인내심이 놀라울 지경이다.
‘그것도 그 개새끼가 성깔을 긁어서 날린 거고.’
아니었음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었지.
‘정말 많이 늘었다니까.’
사람은 고난과 역경을 견디며 성장한다던가.
과연, 그 말대로였다. 지난 5년은 내게 있어 가히 시련이라 부를만한 것들이었으니까.
많이 참았다.
정말 많이 참았다. 진심으로 짜증을 냈다간, 일주일 내리 사라와 레미아의 지랄 질을 봤어야 했으니까.
‘생각해보면, 파티에 있을 때도··· 팬 적은 없는 것 같아.’
파티에 속해있던 5년 동안, 옷을 눈앞에서 찢어버리는 경우는 있어도··· 사라와 레미아한테 손을 댄 적은 없었다.
화가 나도 참았다.
개소리를 지껄이면 쌍욕으로 맞받아쳤다. 떠올려보면, 입담이 걸쭉해졌던 5년이라 생각한다.
씨팔, 신은 니미랄. 신이 밥 먹여주냐?
너 별하고 거래는 해봤냐? 니들이 섬기는 신이라는 게, 별이라는 게 말야, 생각보다 존나게 까칠해요.
신앙심 같은 거로 거래를 할 수 있으면 난 당장이라도 광신도가 될 자신이 있다니까?
매일 신(?) 타령을 하며 칭얼거리는 성녀에겐 팩트를 내던지며 응수했고.
엘프들은 숲속에서 살잖아. 넌 근데 왜 이리 세속적이야? 그거 꼭 필요해? 나뭇잎으로 옷 만드는 엘프는 다 뒤졌냐?
엘프는 이슬만 처먹고 산다며 씹년아, 그렇게 맛대가리가 없으면 니가 요리하던가. 야, 마수 들고 요리하는데 고급 식당에 비교하는 게 말이냐?
···필요에 따라선 종족적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내 안에서 엘프의 이미지를 씹창낸데에는 레미아가 아주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종족적 모욕은 좀 그랬나.’
뭐, 아무튼 간.
요점은 적어도 폭력은 휘두르진 않았단 것이다.
딱 한 번.
그 한 번의 경우를 제외하면 말야.
“···그건 때릴 만 했어.”
“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스티에게, 나는 쓰게 웃었다.
“그냥 혼잣말이야. 아, 카페 거의 다 와 가네.”
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카페에서 좀 떨어진 곳에 놓인 벤치가 보였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이었다.
“저기가 좋겠네.”
나는 그 벤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서 먼저 앉아 있을래? 커피 사 들고 갈게. 혹시 마시고 싶은거 따로 있나?”
“아뇨, 교수님이랑 같은 것도 괜찮아요.”
“그래, 금방 갔다 올게.”
레스티를 벤치로 보내두고, 나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며 생각을 정리했다. 아까 어디까지 생각했더라.
그래, 딱 한 번의 예외.
나는 그 예외를 떠올렸다.
2.
기억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 뭐라 했냐 지금?
아마도, 전선이 붕괴되어 밀려 들어오는 마왕군을 인근의 마을에서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우리에게 협조적이었다.
제가 뭐 이상한 소리를 했나요?
성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곳은 델로힘 성교회가 자리 잡은 마을이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신에 대한 신앙심만큼은 뛰어났다.
‘그러니, 사라에게 그런 반응을 보인거겠지.’
델로힘의 신자들에게 성녀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어떤 방면으로는 용사보다도 더.
틀린말은 아니잖아요?
당시, 마을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다시피 한 사라는 목책을 세우고 있던 내게 다가왔었다.
···저들은 우리를 위해 희생할 사람들이잖아요. 델로힘 교단에서 그렇게 배웠는걸요? 신도들은 성녀를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고.
그리곤 그녀는 말했다.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하고 있냐는 듯한 말투로, 목책을 가리키며 태연히 말했었다.
그러니까, 사라.
내가 제발 잘 못 들었기를 바라는데, 네 말은 지금···.
이 마을을.
마왕군이 짓밟게 내버려 두고, 폭발 회로로 전부 날려버리자고? 마을 채로?
마을의 주민을 통째로 미끼로 삼자고.
마을에 함정을 심어 마왕군을 일망타진하자고.
성녀였던 사라는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게 더 좋지 않아요? 효율적이잖아요.
아주 당연한 걸 말하듯이.
이 분들, 델로힘 교단의 신자분들이시잖아요. 델로힘의 복음 제1장에는 신을 위해 그 목숨을 바칠 때, 천국에 보내준다고 적혀있어요.
신을 운운하며 말했다.
용사가 곧 신의 사도고, 제가 곧 신의 대리인이죠? 그럼 저희의 편의를 위해···.
입 닥쳐, 사라.
그때.
넌 안 되겠다, 이 씨발년아.
나는 처음으로 사라를 팼다.
주먹을 뺨에 꽂았다. 성녀의 상징이라는 분홍빛 머리칼을 붙잡은 채 마을을 질질 끌고 다녔다.
그리곤, 마을 바깥에 내던졌다.
야, 사라.
카일도 말리지 않았다.
카일이나 나나, 방금 사라가 말했던 방법으로 마을을 잃은 피난민이었으니까.
이게 마지막 경고일 거 같은데, 나나 카일 앞에서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했다간···.
땅에 박아두었던 말뚝을 마나로 뽑아 그 머리에 겨누었었다.
내 고향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 너를 상대로 시험해야 할 거 같거든?
제발 그럴 일이 없길 바란다.
아마 그때 이후로 사라와 레미아에게 손댄 적은 없었다. 카일이 협조한 것도 그때 한 번뿐이었고.
‘···생각해보면 카일, 그 새끼는 자존심도 없나.’
그딴 망발을 지껄인 년하고 부대끼고 있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아마 하늘에 계신 카일 부모님은 울고 계시지 않을까.
‘···그래서 카일한테는 부모욕을 못하겠단 말야.’
걔 부모님을 다 알고 있다.
밥도 많이 얻어먹었다.
그런데, 내가 걔 부모 욕을 어떻게 하냐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카페의 문고리에 손을 걸었다.
‘커피나 마시면서 환기나 해야지.’
괜히 옛 생각을 하니 기분이 더럽다.
고개를 가로저어, 과거를 털어내곤 밝은 미래만을 본다. 새까만 커피. 지성인의 음료.
‘오늘은 레스티도 있으니까, 꿀빵도 사갈까?’
빵에 꿀을 잔뜩 끼얹은 디저트.
좀만 먹어도 배불러서, 자주 먹진 않지만··· 그래도 오늘은 점심도 걸렀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카페의 문을 연다.
문을 열자마자 그윽한 커피의 향이 풍겨온다. 그 향기만으로도 치유를 받는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엷은 미소를 흘리며 카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커피 맛이 참 좋네요, 점주?”
“그렇게 말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성녀님.”
멈칫.
“전장터에도 점주 같은 바리스타가 있음 참 좋을텐데~ 그게 너무 아쉽단 말이에요? 저랑 같이 갈 생각 없어요?”
“아하하··· 성녀님과 함께 가면 영광이겠지만, 힘들 것 같네요. 제가 몸이 좀 약해서.”
“그거 정말 아쉽네요.”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것은 익숙하되 낯선 목소리다. 평소처럼 앙칼진 목소리가 아니라, 억지로 발음을 굴리며 귀여운 척을 하는듯한···.
‘그래, 꼭 카일 그 개자식한테 속삭일 때나 쓰는 목소리.’
나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린다.
점주의 앞에 앉아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어?라니아 교수님 오셨어요?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때마침, 점주가 내 이름을 부른다.
나를 바라본다. 덩달아 카페에 앉아있는 유일한 손님도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분홍빛 머리칼이 찰랑댄다.
창년의 여왕, 서큐버스퀸과 같은 분홍빛 머리칼이.
그 개 같은 년이 눈을 깜빡인다.
잡초 같은 연녹색의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이런 씨발.’
델로힘 교단의 성녀, 사라.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들떴던 기분이 시궁창으로 처박혔다.
벌레를 씹은 듯 표정이 자연스레 일그러졌다.
‘강타 마렵네···.’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3.
성녀, 사라는 왕도에 온 것이 무척이나 기껍다.
귀찮은 일 때문에 오긴 했지만··· 정작 도착하고 보니 귀찮은 일은 전부 끝났다고 한다.
‘그것도, 그 라니엘이 말이에요.’
성깔 더러운 남자지만, 그 실력만큼은 확실하다. 그 뒤처리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레미아는 오랜만에 숲에서, 생기를 회복한다고 숲으로 들어갔으니··· 오늘은 여유롭겠네요.’
때아닌 휴가다.
기분이 나쁠 수가 없다.
“흥, 흐응.”
사라는 콧노래를 부르며, 사제복에 손을 넣는다. 그 손에 잡힌 것은 거울이다. 사라는 손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다.
곱게 빗어 내린 머리칼은 벚꽃잎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연녹색의 눈동자는 막 돋아난 새싹처럼 파릇파릇하다.
언제 보아도 완벽한 외모다.
전장에 나설 일도 없으니, 그 외모는 빛이 나는 것 같다. 괜스레 미소를 지어 보이며, 사라는 거울을 사제복에 도로 집어넣었다.
흑색 마탑에서 산 사제복이다.
공간확장 및 공간보호 마법이 걸려있어, 거울을 던져넣어도 깨질 일이 없다.
‘참 잘 샀다니까요.’
이 좋은 걸 산다고 뭐라 했던 그 남자가 없으니, 하루하루가 즐겁다.
“커피 나왔습니다.”
“어머,고마워요.”
사라는 점주에게 미소지으며 커피의 향을 맡았다. 그 향이 무척이나 좋다.
요 며칠 무던히도 들린 카페다.
점주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지라, 사라는 요 며칠간 카페에 살다시피 지내고 있었다.
“커피 맛이 참 좋네요, 점주?”
“그렇게 말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성녀님.”
성녀님, 하는 목소리에 사라는 미소를 짓는다.
그 목소리에는 선망이 묻어나온다. 그 목소리가 사라는 기껍다.
‘전장에선 듣지 못하는 목소리니까.’
전장에선 저런 선망이 묻어나오지 않는다.
곧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혹은 결계를 보강하기 위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는 다급하다.
사라는 그런것보다, 저런 목소리가 좋았다.
“점주 같은 바리스타가 전장에도 있음 좋을 텐데.”
“아하하··· 성녀님과 함께라면 영광이겠지만···.”
그런 실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문득 점주가 문 쪽을 바라본다. 그리곤 살갑게 인사를 한다.
“어? 라니아 교수님 오셨어요?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사라는 그 인사가 향한 곳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한 여자가 서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머리칼의 색이다.
‘···잿빛 머리칼?’
사라의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잿빛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
묘하게 기억 속의 어떤 남자와 겹치는 특징이다. 사라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소녀를 바라봤다. 무뚝뚝해 보이는 소녀의 첫인상은 좋지 않다.
그래도, 자신은 성녀다.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되는 법.
사라는 인위적인 미소를 흘리며, 소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택한다.
“반가워요. 라니아··· 교수님이라고 하셨나요?”
그 말에 소녀의 표정이 썩어들어간다.
마치 벌레를 씹은듯한 표정이다.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소녀는 눈을 질끈 감고, 잠시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런 미친, 성녀··.”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그렇다.
그 목소리에 사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통 자신을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선망 어린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간혹가다 있다. 감동에 겨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그래, 바로 눈앞의 소녀처럼.
벌레 씹는듯한 표정은 좀 이상하긴 하지만··· 감격에 겨운 표정이라 해석 못 할 것도 없다.
사라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첫인상 때문에 실례할 뻔했군요.’
내 팬한테 무슨 짓을 할 뻔 한거람.
사라는 방긋 웃으며 다소곳이 앉은 채 소녀를 바라봤다. 그리곤 미소를 지었다.
“제 팬이셨군요?”
소녀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