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84
〈 84화 〉 사상 최강의 시녀(2)
* * *
제1 왕녀, 르뤼엘의 일과는 왕실 도서관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아침 시간에 가벼운 독서 시간을 가진 뒤 자신의 별궁으로 이동하곤 했다.
언제나와 다를 바 없는 일상. 그 일상에 녹아들어 왕녀를 지키는 것이 이번 작전의 골자였다.
“나는 먼저 가보겠다. 곧 다시 보도록 하지, 교수.”
르뤼엘은 가벼운 지시만을 내린 뒤 일과를 시작하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창고에는 둘의 인물이 남는다.
“·····.”
작전을 시행해야 할 소녀와, 그런 소녀의 환복을 돕고자 대기 중인 시녀장.
그 둘만이 남은 창고에는 침묵이 감돈다.
“그러니까.”
그 침묵을 깬 것은 소녀였다.
소녀가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시녀장이 든 메이드 복을 가리켰다.
“이걸.”
“예.”
“이걸, 저보고 입으라고요?”
“왕녀님께서 환복을 도우라고 명하셨습니다.”
“오우.”
“어서 갈아입으시지요.”
“아니, 잠깐만. 이거 놔봐요. 잠깐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녀장 샤를리안은 눈을 낮게 깔고, 눈앞의 소녀를 바라봤다. 오크통 위에 앉은 소녀는, 다리를 꼬고 턱을 짚은 채 굉장히 오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거 조금만 위로 들어주실 수 있어요?”
“이렇게 말씀입니까?”
“예, 그렇게. 잠깐만 들고 있어 주세요.”
그 눈이 메이드 복의 끝단에 닿는다.
소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끝단의 길이를 가늠하는 듯 하다.
그 눈빛에 잠시 안도가 비치는가 싶더니, 소녀는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걸, 씹··· 이거얼···.”
그리곤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그 이유를 모르겠으나, 무척 심도 있는 고민을 하는 듯 하다.
“···꼭 입어야 하나요?”
“현재 교수님의 복장은 왕성에 굉장히 이질적입니다. 환복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 로브. 궁중 마법사식 로브는 안됩니까?”
“힘듭니다. 궁중 마법사는 매일 그 수가 관리 및 기록되고 있는지라.”
이걸 갈아입는 게 어려운 일인가?
샤를리안은 소녀가 왜 저렇게까지 이 옷에 거부감을 느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똑똑.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호위 기사인 듯 싶었다. 아직인가, 라고 묻는듯한 노크 소리다.
‘무엇이 마음에 안 드시는 걸까.’
샤를리안은 소녀의 눈치를 살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굉장히 잘 어울리실 겁니다.”
“예?”
“균형이 잘 잡히신 몸매이십니다. 어떤 옷이든 능히 소화해내실 체형이시니, 걱정 마시고···.”
소녀의 표정이 더욱 썩어들어간다.
샤를리안은 뱉던 말을 삼켰다.
‘···이건 아니군요.’
아무래도 이건 아닌듯싶었다.
샤를리안은 지금껏 소녀가 보여준 반응을 토대로, 소녀를 설득할 말을 떠올려 본다.
‘지금까지 보여준 반응을 살피자면···.’
이래 봬도, 시녀들 사이에 암암리에 ‘광견’이라 불리는 제 1 왕녀를 오랫동안 보좌해 온 그녀다.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추며 살아온 한평생이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철저히 효율을 추구하는 분.’
샤를리안은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수행하실 임무에 꼭 필요한 복장입니다.”
소녀의 어깨가 살짝 떨린다.
아무래도, 이게 정답인 양 싶었다. 방향성이 정해졌다면, 남은 것은 그 방향에 맞춰 말을 늘어놓을 뿐이다.
“왕녀님께선 시녀라고 말씀하긴 했지만, 그건 수행하실 업무의 이야기고··· 보다 정확한 위장 신분은 하녀이십니다.”
수행할 업무는 시녀에 가깝다. 그러나, 위장 신분 자체는 하녀다. 그 이유를 샤를리안은 설명했다.
“현재, 별궁에는 새로운 하녀가 대거 보충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선, 그 하녀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게 되실 겁니다.”
“···보충된 이유는.”
“예, 왕녀님을 감시하기 위한 눈이겠지요. 혹은, 책임 소재를 돌리기 위한 미끼일 수도 있겠군요.”
제1 왕자가, 르뤼엘 왕녀의 죽음을 바라고 있다. 이런 시기에 보충된 하녀라면··· 그런 방향으로 추측하는 것이 옳다.
“그러니, 위장 신분을 위해 꼭 필요한 복장입니다.”
“···근데 저걸 입는다고 위장이 됩니까? 제 얼굴은 꽤 잘 알려진 편이라 생각하는데···.”
“그를 위한 준비는 마쳐두었습니다.”
샤를리안은 꽃장식이 달린 카츄사를 꺼내 들었다.
“이 장식에는 여러 역할이 있는데, 한번 써 보시겠습니까?”
“···예, 뭐.”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머리띠를 머리에 써보았다. 그녀의 머리칼과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오.”
“왕녀님을 제외한 인물의 눈에는, 그런 식으로 비춰 보일 겁니다.”
거기까지 말한 뒤, 샤를리안이 메이드 복을 쓱 앞으로 내밀었다. 소녀는 심란한 표정으로 메이드 복과 그녀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젠 시간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 묻는 샤를리안의 질문에, 소녀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게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 중얼거림을 샤를리안은 놓치지 않았다.
“예, 돕겠습니다.”
2.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나를 바라보며 호오, 하고 길게 감탄사를 뱉는 왕녀를 바라봤다.
“음.”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꽤 잘 어울리는군.”
“·····.”
“그런 표정을 짓지 말라.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본녀는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는다. 무척이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만물을 평가하고자 노력하지.”
왕녀가 엷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건데, 어울린다.”
“···빨리 일이나 합시다.”
“꽤 무례한 말투로군. 하지만, 그편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든다. 좋다, 그럼 가도록 하지.”
왕녀가 앞장서 걷는다.
나는 익숙지 않은 걸음걸이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기분이 묘했다. 몹시 묘했다.
“그대, 혹시 방음 결계를 칠 줄 아는가?”
나는 말 없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침묵(Silence).
나와 왕녀의 주변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안에서 시작된 소리는 이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다.
“좋군. 그럼 이동하며 설명을 계속하도록 하지.”
그녀는 걸으며 말을 계속했다.
“앞으로 사흘간, 그대는 본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게 될 거다. 일반적인 업무를 수행시킬 생각은 없으니, 그쪽은 안심해도 좋다.”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 그대가 할 것은 어디까지나 본녀를 덮치는 ‘주문적’ 위험에서부터 지키는 것이다. 물리적 위험까지 그대에게 제지를 바라진 않아.”
그것은 내 호위 기사의 일이니까.
왕녀는 그리 중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본녀를 덮치려는 주문적 위험이 있다면, 구태여 보고할 필요가 없다.”
“예?”
“보고할 필요 없이 곧장 움직여도 좋다는 뜻이다. 나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싫다. 그대가 판단하고, 그대의 뜻대로 움직여라.”
일정한 주기로 한걸음씩 내디디던 그녀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이윽고 멈춰선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아일라가 그대를 추천했다. 나는 아일라를 믿는다. 그 말은 곧 교수, 그대의 자질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아일라의 눈에 비하면 옅은 색이긴 하나, 은은한 금빛을 띠는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대의 판단을 믿겠다. 본녀는 본녀로 하여금 그대의 판단이 흐트러지기를 원치 않는다. 그대가 옳다 여기는 대로 행동하라.”
그리곤 덧붙였다.
“그것이 왕실의 법도에 어긋난 일이어도 좋다. 일단 저지르고 봐라. 뒤처리는 본녀의 몫이다.”
“·····.”
내가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왕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꽤 의외라는 표정이군. 감당이 되겠냐는듯한 표정이기도 하고.”
쿡쿡, 하고 르뤼엘 왕녀가 웃음을 흘렸다.
“귀족들이 나를 무어라 부른지 알고 있나? 교수.”
“모릅니다.”
“모른다면 알려줘야지. 그 치들은 나를 광견이라 부른다. 말이 좋아 광견이지, 사실 미친개, 미친년 따위로 부르겠지.”
그녀가 팔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그대는 그 미친개의 목줄을 쥔 거다.”
들어 올린 팔로 그녀는 자신의 목덜미를 쓸어내린다. 그리곤 마치, 개목걸이라도 찬 듯 목줄을 잡아당기는 시늉을 한다.
“원할 대로 날뛰어라. 그대의 행동을 방해하는 놈이 있다면 본녀가 직접 짖어주마. 무얼, 본녀는 꽤 잘 짖는다.”
르뤼엘 왕녀가 고개를 까딱이며 덧붙였다.
“기뻐해도 좋다. 왕도 제일의 미친년이 그대의 뒤를 봐주겠단 뜻이니.”
그리곤 입가를 틀어 올린다.
비웃음을 닮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머물렀다.
“·····.”
나는 짓궂은 웃음을 흘리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건, 묘한 기시감이 드는 웃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딱 저런 미소를 짓는 인물이 내 가까이에도 한 명 있었으니까.
제 4 왕녀, 아일라.
그녀와 닮은 웃음이었다.
‘···별로 안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웃음을 짓는 걸 보면, 아일라와 자매라는 걸 체감하게 된다. 그 미소가 묘하게 닮았다. 아일라의 그 미소가 누군가에게 배운 거라면, 그건 눈앞의 이 사람이겠거니 싶었다.
‘···눈치 볼 필요 없이 날뛰어도 된다고 했던가.’
나는 장갑을 쭉 끌어당겼다. 그리곤 고개를 두어 번 꺾으며, 르뤼엘 왕녀에게 되물었다.
“허락 안 맡아도 된다고 하셨죠?”
“본녀는 오라비와 같이 찌질한 인물이 아닌지라, 한번 한 말을 번복하진 않는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할 대로 해라.”
“에, 그럼 뭐···.”
허가는 떨어졌다.
굳이 뺄 필요가 없었기에, 나는 주먹을 쥐었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눈에 거슬리는 게 있었다.
‘벌써부터 보이네.’
새어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걸음을 옮긴다.
나는 왕녀가 거하는 별궁으로 통하는 복도의 벽면에 붙어섰다. 그리곤 르뤼엘 왕녀에게 손짓했다.
“일단 머리 좀 숙여보십시오.”
“뭐라?”
“숙여보시라고요.”
오른쪽 손을 들어 세 손가락을 쫙 펼쳤다.
그 중 하나를 접으며 하나, 하고 수를 셌다.
“음?”
왕녀는 눈을 깜빡이더니, 조금 고개를 숙였다.
“둘.”
조금 더 숙이라는 식으로 나는 턱짓을 했다.
왕녀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저 정도면 됐네.’
나는 마지막 수를 세며 왼팔을 들어 올렸다.
“셋.”
복도의 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3.
“일단 머리 좀 숙여보십시오.”
대뜸 고개를 숙이라는 명령조의 말투에, 르뤼엘 왕녀는 눈을 깜빡였다.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고는 말했다만, 왕녀에게 고개를 숙이라니?
‘무슨 의도이지.’
이유를 모르겠다.
르뤼엘 왕녀는 주변을 쓱 둘러봤다.
다행히도, 별궁으로 향하는 통로를 오가는 사람은 없다. 혹시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이건 꽤 문제 될만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든 말든 교수는 손가락을 접으며 수를 셌다.
“하나.”
르뤼엘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숙였다.
“둘.”
그로는 모자라다는 듯, 교수가 턱짓한다. 르뤼엘은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교수가 만족스럽다는 듯 남은 세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셋.”
그리 말하며, 교수가 팔을 들어 올렸다.
르뤼엘은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가느다란 팔이다. 주먹을 꽉 쥐었으나, 그닥 힘이 실린 것 같지도 않다.
후웅.
그러나, 그것이 휘둘러질 적 내는 소리는 심상치 않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주먹이 복도의 벽면을 강타한다.
쿠웅!
진동과 함께 복도가 뒤흔들린다.
르뤼엘은 흔들림에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다.
키익, 키에에엑!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그것을 확인할 틈도 없다.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탁, 하고 교수가 땅을 박찬다.
후웅.
머리 위로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야를 매운 건 흔들리는 메이드 복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치마폭의 흔들림이 퍽 우아하다.
그 우아함과 달리.
콰직, 콰드드득!
울려 퍼지는 소리는 꽤 섬뜩하다.
르뤼엘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아.”
교수가 미소지었다.
마치 꽃이 피듯 환한 웃음을 흘리며, 한쪽 팔을 르뤼엘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내렸다.
“벌레가 좀 있어서.”
뚝,뚜욱.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교수가 늘어트리고 있는 왼팔에 무언가 잡혀있다. 그러나, 르뤼엘은 굳이 그곳으로 시야를 내리지 않았다.
썩, 볼만한 모습은 아닐 것 같았기에.
“···음.”
르뤼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도 나 못지않은 미친년이로군.”
“말씀이 심하시네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