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11)
아내는 불안해 보였다.
누가 민서를 빼앗아가기라도 할까 봐, 민서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우혁은 아내의 불안을 다독이기 위해 아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우혁이 옆에 없으면 안절부절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아내는 민서가 자기처럼 미아가 되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미 한 달 전에 예약을 해두기도 했고, 장인 장모가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따라나섰다.
우혁이 6개월 뒤부터 미국 촬영을 시작하면 1년 정도 미국 생활을 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생활할 자신이 없었다.
“난 안 가면 안 돼.”
미국 촬영 기간 동안 미국에 가서 생활하자는 우혁의 말에 아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1년 동안 떨어져 살자고?”
“가끔 한국에 들어올 거잖아.”
“한 달에 한 번 들어오기도 어려울 거야. 민서를 한 달에 한 번씩만 보고 살 수 있을까? 너무 힘들 것 같은데! 당신 못 보는 것도 그렇고.”
“당신 촬영 나가면 나 혼자 민서 데리고 어떻게 그 낯선 곳에서 살아.”
“설마 당신 혼자 있게 내버려 두겠어. 장인 장모님과 같이 살 거야. 베이비시터도 있을 거고. 운전수도 있으니까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 나갈 수 있고, 통역사도 한 사람 붙여 줄 테니까 언어 문제는 아무 걱정하지 마.”
아내는 여전히 두려워했다.
막연하기 때문에 더 두려운 것 같았다.
“일단 이번에 가서 보고, 안 될 것 같으면 당신 말대로 해.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 편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하니까.”
우혁은 아내의 의견대로 할 생각이었다.
미국 촬영 기간 동안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 보내고 싶지만 아내가 싫다면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내의 표정으로 보아,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다. 미국에 따라가지 않기로.
이번 여행도 따라나서기 싫지만 한 번은 가야 할 것 같아서 큰마음 먹고 따라나선 길이다.
아내는 낯선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에 오면 몹시 불안해했다.
연애 시절 때도 그랬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갈 때가 있었다.
아내는 우혁에게서 잠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아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에야 이해할 수 있다.
네 살짜리 꼬마가 부모를 잃고 헤맬 때 낯선 사람들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 사실을 몰랐을 때 우혁은 장난을 친 적이 있다.
시외버스 터미널이었을 것이다.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아내를 놀려주기 위해 숨어 있었다.
아내는 우혁을 찾아 주위를 헤맸다.
짜잔!
아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아내는 얼굴을 감싼 채 제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내를 일으켜 세웠을 때 아내는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었다.
지금은 왜 그랬는지 알지만 그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차에서 아내가 말했다.
“눈사람 아저씨처럼 사라지면 안 돼!”
아내의 사연을 알았다면 그런 장난을 치지 않았을 것이다.
우혁은 보디가드처럼 아내 곁을 지켰다.
비행기에 탑승하자 그제야 아내는 안정을 찾았다.
비즈니스석이 안락하기도 했지만 닫힌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아내의 불안감을 잠재운 듯했다.
민서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어서 함께 탄 승객과 스튜어디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11시간 30분 만에 목적지인 LA 공항에 도착하자 입국장에 보디가드 대여섯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에 만났던 찰리와 로버트의 모습도 보였다.
동시 통역사이자 비서인 안나도 마중을 나왔다.
이번에는 우혁이 아니라 아내의 통역 등을 도와주기로 했다.
안나는 민서를 발견하고는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내보다 서너 살 어린 안나는 아내를 언니처럼 여기며 아내 곁을 따라다녔다.
여자들과는 만난 지 5초 안에 친해질 수 있는 아내의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아내는 안나와 금세 친해져서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행동했다.
반면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동원된 보디가드들은 경계했다.
아내는 낯선 남자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다.
네 살 때 자신을 납치했던 백인 남자에 대한 기억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안나 덕분인지 아내가 오히려 인천 공항에서보다 덜 불안해했다.
안나와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처가댁으로 갔다.
차에서도 아내는 안나와 잠시도 쉬지 않고 얘기를 나누었다.
***
“언니! 여기에요. 민서야, 다 왔다. 내리자.”
안나가 아내와 민서에게 알렸다.
처가댁에 도착했다.
우혁은 두 번째이지만 마치 집에 온 것처럼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내와 민서를 데리고 오는 동안 계속해서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혼자 다닐 때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처가댁에 도착하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우혁은 민서를 안고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린 아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 들어가자!”
장모가 아내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아내는 우혁을 돌아보았다.
우혁은 아내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외갓집이다, 민서야!”
우혁은 품에 안고 있던 민서에게 말을 건넸다.
민서는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들어가지 않고 뭐 해.”
우혁이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저택의 위용에 압도된 표정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정원을 가로질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번에 우혁이 처음 방문했을 때처럼 장인과 장모는 아내를 데리고 2층으로 향했다.
“여기가 민서 방이다. 아직은 혼자 쓸 수 없겠지만 조금 더 크면 이 방에서 지낼 수 있을게다.”
장모는 민서의 방문을 열었다.
아내가 먼저 들어가고 그 뒤를 우혁이 따라 들어갔다.
“민서야! 여기가 네 방이야. 마음에 들어?”
장모가 민서에게 물었다.
민서는 공갈 젖꼭지를 빠느라 방에는 관심이 없었다.
갑자기 장모가 눈물을 훔쳤다.
장인이 그런 장모의 어깨를 감싸 주었다.
장인도 장모와 같은 마음인 듯했다.
우혁은 장인과 장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자기 방도 가져 본 적 없이 보육원에서 자랐을 딸에 대한 안쓰러움이 밀려왔을 터이다.
딸에게 해주지 못한 것은 손녀에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내도 장인 장모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장모의 손을 잡아 주고 장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내의 눈에 눈물로 그렁그렁하다.
민서의 방에서 나와 이번에는 장인 장모가 꾸민 아내의 방을 구경했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내가 꿈꾸던 방이에요.”
아내가 좋아했다.
“민서 아빠! 어때?”
“근사해.”
화려한 욕실, 최고급 화장대와 화장품들, 커튼을 열면 보이는 정원, 고풍스러운 가구들···.
“그런데 침대가 없네?”
아내가 침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여긴 침실이 아니라 네가 쉬는 방이야. 차도 마시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쉬는 곳이란다.”
아내는 감격했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침대가 필요하면 들여 놓으마.”
장인이 아내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여긴 침대가 없는 게 좋겠어요.”
“침실은 이쪽이다.”
장모가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침실은 침대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거실과 침실이 분리되어 있는 스위트룸이었다.
그 넓이가 30평은 족히 될 것 같았다.
어린 민서와 함께 지날 수 있도록 요람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1층으로 내려가자 한국인 베이비시터, 외출 시 언제들 부를 수 있는 한국인 운전기사, 보디가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가장 좋아한 사람 안나.
안나는 아내의 전담 통역사이자 비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아내가 남자 보디가드는 부담스러워 한다는 걸 눈치 챈 장인은 여성 보디가드 두 명을 구해 주었다.
아내는 짐을 풀고 나서 한국에 남아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 적적하시지요?”
“민서가 없으니까 집이 텅 빈 것 같구나. 늬 시아버지 병나게 생겼다. 민서 보고 싶다고 칭얼거리신다. 밥맛이 없다고 식사도 잘 안 하시네.”
“며칠 있다가 갈게요, 어머니!”
“내가 괜한 말을 지껄인 모양이다. 천천히 와도 돼. 엄마 옆에서 푹 쉬었다 와. 여기 걱정은 조금도 할 거 없다. 민서랑 어멈 빈자리가 이렇게 허전한데 너 없이 사둔어른, 사부인께서 얼마나 적적하셨겠니.”
어머니와 통화를 끝낸 아내는 눈가를 훔쳤다.
적적해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이곳이 아내의 마음에 쏙 드는 눈치였다.
“어때? 여기라면 1년 정도 와서 지낼 수 있겠지?”
우혁이 아내에게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만 한국에 두고?”
“원래 두 분만 따로 사셨어. 그리고 1년 뒤에 돌아갈 텐데 뭘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 가끔은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도 한 1년 떨어져 있자니까.”
“그건 안 되지.”
“가끔은 떨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나하고 떨어져 지내고 싶어?”
서운했다.
“사실은 나도 떨어져 지낼 자신이 없어. 1년 동안 어떻게 떨어져 있어. 낯선 미국에 와서 사는 게 무서워서 그런 거지. 그런데 와서 보니까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너무 좋은 상황이라 믿어지지가 않아. 엄마 아빠가 이렇게 잘사는 줄 몰랐어.”
“장인 장모님, 여기로 이사 오신 지 얼마 안 돼. 당신 찾기 전에는 옛날 집에서 사셨어. 그 집에서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던 것 같아.”
“···.”
“엄마, 아빠한테 잘해 드려. 두 분은 평생 널 기다리며 적적하게 사셨어.”
아내가 눈시울을 붉혔다.
“해인아, 이것 좀 먹어 봐라!”
장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눈가를 훔치고 대답했다.
“예, 엄마!”
***
다음날 오후.
우혁은 장인이 고용한 한국인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아 올리버 스톤 감독을 만났다.
[위대한 시민>의 남자 주인공 ‘용호 리’ 캐스팅 계약을 맺기 위해서였다.제작사 관계자, 투자자와 장장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일종의 면접이자 오디션이었다.
공격적이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우혁은 차분하고 담담하게 질문에 답했다.
올리버 스톤이 우혁을 주인공으로 적극 추천하긴 했지만 캐스팅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인터뷰를 통해 번복될 수도 있었다.
우혁은 그 사실을 눈치 채고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금세 마음을 추슬렀다.
[위대한 시민>은 꼭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지만 인연이 닿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두 시간의 인터뷰가 끝난 뒤 캐스팅하기로 결정이 났다.
제작사는 우혁이 출연한 [길 밖의 새>와 [마른 풀잎의 노래>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
물론 그것이 캐스팅을 하는 데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캐스팅의 결정타는 타란티노 감독 작품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사실.
출연료는 1000만 달러에 손익분기점을 넘길 경우 러닝 개런티를 받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제작사에서 우혁에게 처음 제시한 금액은 500만 달러.
우혁은 타란티노 감독의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에서 받았던 2000만 달러를 요구했다.
합의를 보는데 다시 2시간이 걸렸다.
결국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합의점을 찾았다.
서로가 별 불만이 없는 계약이었다.
계약을 마친 뒤 처가댁으로 향했다.
처가댁으로 가는 길에 타란티노 감독과 통화를 했다.
– 내일 점심식사 같이 합시다.
전화를 받자마자 타란티노 감독이 물어왔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는 입에 발린 인사도 없습니까?”
– 먼 길 오느라 아주 수고 많으셨겠습니다. 됐어요?
“내일 점심 좋습니다. 잘 계셨죠?”
– 옐로우 동생 배역 할 사람이 없어서 골치 아파요. 못 찾으면 빼 버리던가 해야겠어요. 약속 장소는 이따가 다시 전화를 걸든가 메시지를 보낼게요. 내일 봐요.
타란티노 감독과 통화를 마쳤을 때였다.
끼이이이이익!
우혁이 타고 있던 차가 급정거를 하면서 몸이 앞으로 쏠렸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사람이 뛰어드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운전기사가 거듭 사과했다.
“사람 다친 거 아니에요?”
“쿵 소리가 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부딪치지 않은 것 같기는 한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내려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운전기사가 다급하게 차에서 내렸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우혁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차에서 내린 우혁은 놀라서 움직일 수 없었다.
차에 치일 뻔한 남자는 우혁이 잘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 아내와 함께 미국의 처가에 방문하다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