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2)
“무슨 일로 이 병원에 가시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소피아가 우혁에게 물었다.
우혁이 가려는 곳은 로스앤젤레스아동병원(Children’s Hospital Los Angeles)의 암 및 혈액질환 어린이센터였다.
“토토 인형의 주인에게 토토 인형을 전달하러 가는 길입니다.”
“그렇군요. 토토 인형의 주인이 누군지 궁금하네요. 우편물로 보내도 될 텐데 직접 전달하시는 걸 보면 무척 중요한 사람인가 봐요.”
“제가 직접 만나보고 싶은 친구라서요.”
“아는 사람이 아닌가 보죠?”
“예. 모르는 친구입니다.”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는 친구.
지구라는 공간은 생각보다 넓어서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평생 한 번이라도 눈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배우는 일반 사람들보다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직업이다.
비록 간접적인 만남이긴 하지만.
간접적인 만남이지만 가끔은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인생관이 바뀔 수도 있고, 무미건조한 삶에 활력이나 희망을 얻기도 하니까.
추체험 데이터베이스라는 이능을 얻고 나서 처음으로 했던 드라마 [서울 가로등>을 본 미국 소년이 있었다.
[서울 가로등>은 미국의 교포들이 많이 보았다고 한다.특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옛날 드라마 같은 분위기가 어르신들에게 한국에서 살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그 드라마를 보고서 우혁의 팬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우혁이 출연한 작품 중에서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도 [서울 가로등>이다.
우혁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맡은 드라마이기도 했지만 우혁이 맡은 ‘가로등지기’라는 배역이 아내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가로등지기가 당신 이미지하고 가장 많이 닮았어.”
아내의 말이었다.
아내가 [서울 가로등>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는 이유는 그 드라마에 자신이 만든 인형 ‘재채기’가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재채기는 드라마 방송 당시 가로등지기 못지않게 인기가 좋았다.
드라마가 종영된 지 2년이 넘은 지금도 재채기 인형의 인기는 여전했다.
유명 캐릭터 인형만큼 인기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재채기 인형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재채기 인형이 외국에 사는 한 소년이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서울 가로등>을 시청한 미국 거주하는 한국 교포들이 재채기 인형을 찾았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미국 수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미국에 수출이 되지 않은 인형인데 미국 소년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내는 몹시 신기하고 놀랍게 여겨졌던 모양이다.
토토에게 편지를 보낸 소년, 제이슨 토플러.
‘언더커버 보스’ 제작진이 전달한 편지들 중에서 아내는 제이슨이 보낸 손 편지에 유독 관심을 보였다.
**
안녕! 토토!
내 이름은 메이슨이라고 해.
엄마 아빠는 메이라고 불러.
너도 나를 메이라고 불러도 돼.
내 나이는 여덟 살이야.
내 몸 속엔 외계인이 살고 있어.
이름은 퉤퉤.
녀석의 이름은 재채기가 지어 준 거야.
재채기가 누구냐고?
이렇게 생겼어.
(재채기 그림)
할머니가 내 생일 때 선물해 준 인형이야.
인형이지만 말을 해.
진짜야.
재채기랑 텔레비전으로 토토 널 봤어.
재채기가 너랑 친구가 되고 싶나 봐.
널 만나러 가겠다는 걸 내가 말리고 있어.
내가 재채기를 너한테 데려다주고 싶지만 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백혈병에 걸렸거든.
내 몸속에 들어온 퉤퉤 짓이야.
퉤퉤를 몰아내야 돼.
토토!
너 혹시 마법을 쓸 줄 아니?
재채기가 그러는데 토토 네가 퉤퉤를 쫓아낼 수 있는 주문을 알고 있대.
그게 정말이니?
정말이라면 그 주문을 좀 알려줘.
퉤퉤를 쫓아내지 않으면 내가 죽을지도 몰라.
답장 부탁해.
– 제이슨 토플러가
**
제이슨이 보낸 편지에 그린 재채기는 [서울 가로등>에서 우혁이 복화술 인형으로 사용했던 재채기가 분명했다.
“재채기야!”
제이슨의 편지를 본 아내가 놀라워했다.
아내는 영어가 능통하지 않아 편지 내용을 완벽하게 해독하지 못했고, 제이슨이 그린 재채기 그림을 발견하고 편집에 관심을 보였다.
우혁이 편지 내용을 번역해서 읽어주었다.
“어떻게 이 아이가 재채기 인형을 가지고 있지?”
“그러게.”
“제이슨을 도와주고 싶어.”
“어떻게?”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토토를 데려다줄 수도 없고.”
“주소를 보면 병원인데, 소아 백혈병동이면 개를 출입시켜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토토에게도 힘든 일이고.”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우혁은 그 일을 잊었다.
그런데 아내는 계속해서 그 문제를 고민했던 모양이다.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는 토토 인형을 만들었다.
“제이슨에게 보내 줄 생각이야. 인형은 소독을 깨끗이 해서 반입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제이슨은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니까 토토 인형을 보면 주문을 들을 수 있을 거야.”
그럴 듯했다.
“민서 아빠가 토토 인형을 가지고 가서 복화술로 주문을 말해 주면 제이슨이 확실히 믿을 텐데···.”
아내가 우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곤란한 부탁을 할 때의 눈빛이다.
LA에 갈 때 제이슨이 입원해 있는 로스엔젤리스아동병원은 들려서 토토 인형을 전달해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제이슨을 찾아가서 인형을 전달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LA에 갔을 때 택시만 타면 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전혀 알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인형을 주기 위해 찾아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버인 것 같았다.
“보육원에 있을 때, 내가 동생처럼 여기던 아이가 있었는데 소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어. 그 아이 생각이 나서 그래. 내가 열 살 때 그 아이가 여섯 살이었을 거야. 그 아이는 그렌다이저라는 로봇을 가지고 싶어 했는데, 너무 비싸서 못 사 줬어. 그 아이가 세
상을 떠난 뒤에 그렌다이저를 사 줬으면 그 아이가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지 뭐야. 수술도 잘 끝났다고 했거든.”
아내의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을 바꾸었다.
토토 인형을 제이슨에게 전달하기로.
우혁은 소피아에게 제이슨의 편지와 로스엔젤리스아동병원에 가는 이유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제가 토토 인형을 탐냈군요.”
우혁의 말을 다 들은 소피아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소피아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말씀해 보세요. 들어드릴 수 있다면 들어드려야죠.”
우혁이 소피아에게 대답했다.
토토 인형을 하나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 아닐까 짐작하며.
“제이슨 이야기, 제가 취재하고 싶습니다.”
“제이슨 이야기를요?”
“저희 방송사 피디들은 매월 한 편씩 기획안을 만들어서 제출해야 하거든요. 숙제처럼요.”
한국에도 봄, 가을 개편 때마다 피디들과 작가들이 수없이 많은 기획안을 만들어 제출한다.
소피아가 소속된 디즈니-ABC 방송사도 그것과 비슷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소피아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고, 이전에도 어린이 관련 단편 다큐를 기획해 방송에 내보낸 적도 있다고 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제이슨과 제이슨의 가족이 취재를 허락할지 모르겠군요.”
“설득해 봐야죠. 미스터 강은 취재를 허락하시는 거죠?”
“저는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소피아는 곧바로 구성안을 짜기 시작했다.
“제이슨의 편지를 찍은 사진 파일을 저한테 보내 주실 수 있나요?”
“그러겠습니다.”
우혁은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사진 파일을 소피아에게 전송했다.
방송에 내보내려면 사진 파일 사용도 제이슨 가족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서울 가로등>이라는 드라마 파일도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방송사 전화번호를 알려드릴 테니까 직접 연락을 해보세요. 방송 취지를 잘 설명하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겁니다.”
“LA에는 얼마나 머물 계획이시죠?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요.”
“모레 오후에 출국합니다. 다른 일정이 잡혀 있기는 하지만 인터뷰할 시간은 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로스엔젤리스아동병원에 도착했다.
소피아 덕분에 제이슨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소피아의 적극성이 아니었다면 헛걸음을 할 뻔했다.
전화번호나 이메일도 없이 주소만 들고 왔는데, 주소에 적힌 병실에는 제이슨이라는 환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우혁 혼자 왔다면 그냥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병원 직원은 친절하지 않았다.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뒤에 사람이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그러나 소피아는 집요하게 병원 창구를 오가며 제이슨이 다른 병동의 병실로 옮겼다는 걸 알아냈다.
“제이슨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요.”
소피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무 늦은 건가?
제이슨의 부모는 두 사람 모두 직업이 있었기 때문에 낮에는 직장에 다녀야 했다.
미국의 비싼 의료비를 지불하려면 웬만한 가정은 등골이 휘어질 것이다.
“제이슨의 부모는 로펌 변호사예요.”
“로펌 변호사라면 병원비에 쪼들리는 사람은 아니겠군요.”
“대신 시간에 쪼들리겠죠. 제이슨은 대부분 혼자서 보내나 봐요. 간병인이 있기는 하지만 제이슨의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할 거예요. 스마트폰으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형과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겠죠.”
“제이슨을 만날 수도 없는 건가요?”
“보호자와 담당 의사의 동의 없이 만날 수는 없나 봐요. 담당 의사는 예약을 해야 만날 수 있구요. 담당 의사를 만나려면 며칠 걸릴지도 몰라요. 제이슨의 어머니하고 통화를 해봐야겠어요.”
소피아가 전화를 걸었다.
5분 정도 통화를 하고 나서 우혁에게 와서 통화 내용을 설명했다.
표정이 밝았다.
“취재를 허락했어요. 제이슨이 토토에게 편지를 보낸 것도 알고 있더라구요. 아빠가 편지를 쓸 때 옆에서 도와줬나 봐요. 편지를 방송국에 부쳐 주기도 했고요.”
“그렇군요.”
“지금 병원으로 오겠다고 합니다. 당신 얘기를 했는데 무척 반가워하더라구요. 만나고 싶었다면서요. 아마 ‘언더커버 보스’나 ‘원터풀 투나잇’에서 당신을 봤나 봐요.”
1시간쯤 기다리자 제이슨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제이슨의 할머니와 함께.
그런데 두 사람은 한국 교포였다.
“안녕하세요?”
제이슨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강우혁 씨를 이렇게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저는 마크 윤이라고 합니다. 이분은 제 어머님이시구요. 서울에 사시다가 40년 전에 이민 왔습니다.”
마크 윤은 한국어가 자신 없는지 ‘안녕하세요?’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영어로 했다.
우혁은 제이슨의 할머니에게 한국식으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이고! 가로등지기를 여기서 뵙네요. 반가워요!”
제이슨의 할머니가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을 만난 것처럼 한국말로 반가워했다.
어머니 연배라 그런지 이모를 뵙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영어만 듣다가 한국어를 들으니 느끼한 음식만 먹다가 김치 한 점을 먹은 것처럼 귀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어머님이 [서울 가로등>을 정말 재미있게 보셨거든요.”
드라마 한 편 덕분에 이역만리에 있는 사람과 반갑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카메라맨은 이 장면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소피아는 카메라맨 옆에 서서 제이슨의 가족과 우혁을 지켜보았고.
“제이슨을 만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우혁이 가방에서 토토 인형을 꺼내 보이며 마크에게 물었다.
“오, 세상에! 토토로군요! 제이슨이 토토를 많이 보고 싶어 했거든요.”
마크가 토토 인형을 보고 놀라워했다.
“아이구! 이걸 주려고 한국서 여기까지 오신 거유?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나!”
할머니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 제이슨의 편지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