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16
16화. 의뢰 (1)
“망치 다루는 솜씨가 점점 좋아지는구나. 좋아. 이제 다음에는 청동 다루는 법으로 넘어가보자.”
오랜만에 헤파이스토스가 마련해준 대장간이 아닌, 그 바깥의 낡은 대장간을 치워서 작업에 들어간다.
하루하루 다룰 수 있는 금속의 가짓수가 늘어나고, 점점 대장간에서 이름과 용도를 모르는 도구가 줄어간다.
사실 아직 이 시절의 그리스와 주변 세계는 청동기가 철기보다 훨씬 값싸고 보편화되어 있다.
아직 철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과 제반조건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그 때문에 이 시기 스클레오스의 작업장은 우리가 아는 대장간의 모습과는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보기만 해도 무거운 구리가 시뻘겋게 녹아서는 조금씩 거푸집 속으로 빨려들어가며 짙은 색의 연기를 품어낸다.
폐가 이미 조져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그 연기에서 나오는 잿가루와 온갖 기화된 중금속의 향연 속에서도 내 호흡기관을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이것도 적응이라면 적응일 테다.
“이번 손질은 네가 해보거라.”
“아··· 네, 알겠습니다.”
청동기를 제조한 다음 연마하거나 부서진 부분을 땜질하는 일도 어느새 내가 일부를 맡아서 척척 해낸다.
나름 어엿한 대장장이···라고 하기에는 당연히 초라하고 별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흉내는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는 스클레오스처럼 정식 대장장이도 아니고, 고급스러운 새장에 갇혀사는 진귀한 동물 취급받으며 살 준비따위 되지 않았다.
대신 나는 헤파이스토스가 마련한 비밀 대장간에서 수련하며 가끔 새로운 발명품을 스클레오스를 비롯한 대장장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개중 많은 것들은 예상대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 시기의 기술 수준이나 사회상에 대해서는 딱 7살 양치기 소년이 알 만큼만 아니까.
많은 경우 스클레오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은 생각이지만 지금 당장은···”으로 시작하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래도 많은 아이디어들은 스클레오스와 동료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충분했다.
거기에 더해 대장장이 수련도 점차 탄력을 받아간다.
“이 물건은 어떻게 수리하면 좋을까?”
“어··· 날이 망가졌으니까, 잘 갈아주면 되는 것 아닌···”
“틀렸다. 여기 보면 균열이 있지. 이건 못 고친다. 오늘은 바닥 청소까지 다 해야겠구나.”
여기서 탄력을 받는다는 말은, 본격적으로 갈궈가며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진짜 제자들한테 그렇게 하듯이.
때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신의 사랑을 받는 아이란 생각이 있으니.
“헉··· 흐억···.”
그러나 신께서 하사하신 대장간이라 해서 저절로 바닥이 깨끗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청소를 벌로 주기는 딱이다.
“미치겠네, 이거···.”
몇 번씩이나 이런 일이 반복되며 내게도 오기란 게 생길 수밖에 없었다.
-깡. 깡. 깡. 깡.
아침 일찍부터 나가서 거푸집을 닦고, 선반을 정리하며, 망치질 자세를 교정하고 불을 관리한다.
그렇게 밤 늦게까지 하면 적어도 청소 일은 혼자 도맡지 않아도 되었다.
매일매일 그런 짓을 하면···
“···때려칠까?”
-푸드드드덕.
“···너 또 무슨 생각을 하길래 표정이 그리 음습해?”
“으, 응?”
“스클레오스 님이 기다리실라. 오늘은 빨리 나가야지.”
상처가 나은 비둘기를 날려보내며 테오 형이 내게 말했다. 그 깃털들끼리 부딪히는 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나도 이제 벌써 아홉 살인데, 혼자 다니면 안돼?”
“안돼. 아홉 살이면 스클레오스 님의 재산을 노린 도적떼랑 마주쳐서 혼자 도망칠 자신이 생기냐? 적어도 열다섯이 될 때까진 기다려.”
테오 형의 단호한 대답에 나는 속으로 씁쓸한 기운을 삼켰다.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물론 유치원생이 고작해야 초등학교 2학년으로 진급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선 아니다.
자기 몸의 성장을 자각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맞이하는 성장기란 굉장한 기분이다. 하루가 다르게 키높이가 달라지고, 손아귀 힘과 지구력이 변한다.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의 경계가 매일, 매순간마다 변한다는 쾌감이 장난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엘리베이터 버튼 꼭 자기가 눌러보겠다는 조카들이 귀찮을 뿐이었지만, 지금 나는 그 애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도 남았다.
테오 형이 사사건건 따라붙으며, 내가 도시행을 할 때마다 내 행적을 통제하고 부모님께 보고하는 일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게다가···
-“···믿을 만한 사람이냐?”
스클레오스가 이 질문을 한 지 벌써 2년이었지만.
나는 아직도 여기에 답을 내리지 못했다.
테오 형은 서글서글한 미소로 마을 사람들 대부분과 인사를 나누며 내게서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는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오늘도, 우리는 헤파이스토스가 마련한 작업장으로 향했다.
테오 형이 앞서 가며 2년 동안 걸어다니며 닳아버린 잔디 위를 밟았고, 가끔 길 위로 침범해온 나뭇가지들을 꺾어냈다. 길을 낼 수는 없었다. 워낙에 이 대장간이 떳떳하지 못한 곳이라.
그리고 이 장소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뜻은···
“아저씨?”
“···이 아이는 누구인지 알 수 있겠소?”
“크흠, 데리고 다니는 시종입니다. 눈치가 빨라 이런저런 심부름에 데리고 다니는 아이죠.”
떳떳치 못한 손님이 오기도 한다는 뜻이다.
아저씨는 지금 평소와 다르게 땀에도 젖어 있지 않고 멀끔하게 머리를 빗어넘긴 상태였고, 자수가 들어간 망토를 두른 채 격식을 갖춘 복장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복장, 마치···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하인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간다 한 참이오. 걱정 마시오.”
가벼운 사냥용 복장 같았다.
심각한 분위기를 알아챈 테오 형은 알아서 구석에 빠져 비둘기들에게 빵을 먹였다.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먼 곳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뒤에야 손님은 헛기침을 키며 말을 시작했다.
“일전의 거래들로 귀하의 드높은 명성이 그대의 실력에 어울림이 증명되었소. 꼭 한번 만나봐야만 하겠다 생각하던 차에 ‘티케(Τύχη, 행운 또는 행운의 여신)’가 내게 찾아왔구려.”
번드르르한 말투, 과시적인 억양, 그에 어울리지 않게 무감정한 표정, 깡마른 몸.
“카시우스 님의 높은 이름을 오래 들었지만, 뵙는 건 처음이군요. 영광입니다.”
“장사치를 만나게 되는 게 뭐 다 그렇지 않겠소. 일, 아니면 일이 아닌 척하는 연회가 전부겠지.”
그리 말하고 카시우스라 불린 남자는 어쩐지 음울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지금 같은 경우는 ‘일’이지만.”
아까 떳떳하지 못한 손님이라 했었다.
“원하신다 하셨던 게···”
“별 건 아니오.”
카시우스는 짐짓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으로 된 반지 열 개, 목걸이 세 벌, 그리고 팔찌 다섯 개와 발찌 한 쌍, 귀걸이 한 쌍 정도면 되겠군.”
“전부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전부 독침을 숨겨주시오. 아, 팔찌와 발찌에는 단검을 부탁하오.”
그렇다. 이런 종류의 떳떳치 못함이다.
***
헤카톤의 아들 카시우스.
소문은 들었다.
왕도의 거상(巨商)이자, 유서깊은 자유민 가문의 가주, 왕당파.
쉽게 말하자면 거물이다.
한창 스클레오스의 동료들이 ‘왜 저런 거물이 이런 궁벽한 식민도시까지 흘러왔느냐?’에 대한 토론을 나눴으나, 이내 그런 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은수저처럼 보이는데··· 독을 검출 못하는 수저?”
“악수를 할 때 자연스럽게 상대의 손에 독을 주입하는 반지라.”
“그것 말고도 물을 따를 때 자연스럽게 극독을 흘려넣는 잔도 주문이 들어왔네.”
···사실 연쇄살인범인가? 그래서 왕도에서 쫓겨났나?
카시우스의 이름은 이내 스클레오스의 대장간에서 유명인사 이상의 것이 되었다.
스클레오스의 동료들끼리는 농담 삼아 암살한다는 말을 ‘카시우스’한다라고 대체해버릴 만큼 저 낯선 이방인은 암살용 도구들을 대량 주문했다.
다시 한동안 작업장의 뜨거운 토론 주제는 저 많은 살상용 암기(暗器)를 대체 어디서, 누구한테 써먹느냐 하는 것이 되었으나 그 역시 빠르게 불식되었다.
“이봐, 독극물을 상시 숨길 수 있는 은 목걸이 주문이 들어왔어. 다들 움직여.”
“이번에도 카시우스 님께서 누굴 처리하신대?”
“아니, 그 동생들이 주문했다.”
“···아.”
그렇다. 형제 간의 우애가 투철했던 것이다.
아무렴 약은 많이 쓰면 독이 되고 독은 적당히 조절하면 약이 된다고들 하지 않나?
하기사 형제 간의 애정하는 마음이 깊다면 아낌없이 서로의 몸에 약을 주입하다가 ‘실수로’ 적정량을 넘길 수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왼손이 오른손 하는 일 모르게 하라는 옛말(마태 복음이 나오려면 1,000년은 기다려야 하지만.)이 있듯, 이런 좋은 일은 당사자 모르게 하는 일이 제일인 법이다.
그리고 그런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공방이 제일이라 들었고, 여러번 일을 맡겨 봤지만 역시 그게 맞았소. 아마 내 형제들도 의뢰를 맡겼겠지?”
“···의뢰자의 신분은, 특히 여기서는 밝히지 않습니다.”
“아, 알겠소.”
스클레오스의 말에 카시우스는 다 내다보인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씰룩거렸다.
그렇다. 이 교외의 공방은 원래 이런 곳이다.
뭔가 떳떳하지 못한 일들이 처리되는 곳, 가장 고급의 기술이, 가장 비밀한 일들에 활용되는 곳.
거기에 헤파이스토스 님께서 짠, 하고 나만을 위한 공방을 마련해주신 것도 그런 심모원려가 있었던 것이다.
“어쩌다, 직접 찾아오셨습니까?”
“집안에서 내 편이던 시종이 이렇게밖에 남지 않았소.”
그리 말하며 카시우스는 다섯 손가락을 쫙 펼쳐 보여주었다.
“50명입니까? 어쩌다 그런···”
“5명이오.”
스클레오스와 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분명 카시우스가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그 위용이 어마어마했다고 들었다.
하인 200명을 데리고 들어와, 저택 3개를 매입해 자가 겸 하인들의 거처 겸 상관으로 삼고 막대한 사업을 벌였다 들었는데···
“지금 저택에 남은 총 인원이 50명이 조금 넘소.”
그 많던 암살 무기들이 어디에 쓰였는지 익히 알 수 있을 인구 감소율.
“새로 고용하기에는 내가 이 도시에 연고가 많지 않아서, 믿을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소. 다행히도 그건 내 사랑하는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지.”
카시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 내가 그래서 죽기 직전이다.’라는 상황을 줄줄 늘어놓는다.
“제가 알기로는 형제 분들이···”
“셋이오. 내가 죽으면 곧바로 상회는 그놈들 차지지. 내가 그 꼴을 볼 수야 없소.”
“아드님도 데려왔다 들었습니다만.”
“하··· 아들 말이오? 그렇소.”
카시우스의 여유롭던 얼굴에 일순간 금이 간다. 뭔가 감정적인 요동이 있던 것 같지만 그는 능란하게 표정을 바꾸고 말을 이었다.
“그놈은 지금은 없다 쳐야 하오. 아무튼 간에 중요한 건 내가 ‘사랑하는 동생들’을 어떻게 하데스께 보내드리느냐 하는 일이지.”
카시우스는 ‘사랑하는 동생들’이란 구절에 강세를 두었다. 경멸감을 담아, 마치 침을 뱉듯.
스클레오스는 잠시 고민했다.
“···역시, 이번 의뢰는 받지 않는 게 맞을 듯합니다.”
역시나.
지는 놈 편에 설 이유는 없다.
지금 이렇게 카시우스가 직접 온 것도 결국 도시의 유력자인 스클레오스에 대한 동맹 요청이겠고, 여기서 무기를 만들어주면 그건 동맹 수락이다.
그런데 애써 무기를 만들고 커넥션을 만들어 놨더니 형제들이 카시우스를 ‘슥삭’해버리고 나면 그 관계가 몹시 어색해지지 않겠나? 아무리 저들이 이 도시에선 기반이 없다 하더라도 왕도에서 알아주는 거부들이 이 소도시에 돈 푸는 게 그리 어려울 리가 없다.
“형제분들만큼이나 아드님의 안위가 걱정되시겠습니다.”
게다가 아들이 없으면, 카시우스가 죽었을 때 그냥 게임은 끝난다. 카시우스의 동생들이 형의 재산을 분할하고 이 도시를 뜨면 그만이다.
“아, 형제들이 날 죽여봤자 그것들이 얻는 건 없을 거요. 왕도에 부인이 버티고 있으니.
그리고 맏형을 죽이려고 뭉친 형제들끼리 사이가 좋을 리가 없지. 그대에게 위해를 가할 여유는 없을 테니 걱정 마시오.”
카시우스는 자기가 죽은 뒤의 상황을 가정하면서 살짝 웃어보였다. 찌르면 녹인 금과 쇠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인간이 웃음을 지으니 절로 소름이 끼쳤다.
···나는 저 인간이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건지 짐작도 하기 힘들었다.
“대신 내가 형제들을 죽이고 나면 그대에게 많은 대가를 줄 수 있소. 형제들을 죽이고 난 뒤에, 내가 혹여나 살인죄로 기소된다면 배심원단에게 ‘설득’을 부탁하오. 폴레몬?”
“예, 주인님.”
“궤짝을 가져오게.”
폴레몬이라 불린 늙은 하인이 커다란 궤짝을 번쩍 들어 가져왔다. 뚜껑이 열리니 그 안에서 보석과 황금이 넘실거렸다.
“···이 도시의 1할은 사겠군요.”
“그러면 이제 이 도시의 1할은 그대 것이 되겠군.”
카시우스가 손을 내민다. 스클레오스는 한숨을 꾹 참는 듯한 표정으로 악수에 응한다.
“잘 부탁드리오. 물건은 일주일 뒤까지 부탁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