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
2화. 일상
대체역사 소설을 보면 보통 과거로 환생한 주인공들이 가장 먼저 만드는 게 바로 비누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현대인들은 매일 샤워와 양치를 하지 않으면 시들어 버리는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지.
화장실을 쓴 뒤에는 비데와 화장지를 사용할 수 없다면서 징징.
하도 씻지를 못해 머리에 이가 생겼는데 DDT라도 뿌리고 싶다면서 또 징징.
뱃속에 회충이 생길 것 같다면서 또, 또···.
나약하다.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어설프기 짝이 없다.
그리고 나약하고 어설픈 자는 고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얘!! 너 또 뭘 씹어먹고 있는 거야!!!”
“···요앞에서 본 버섯.”
휴대전화가 터질랑말랑하는 두메산골 대안학교에서 3년 동안 홈스테이를 하며 ‘생태 화장실’에 단련된 나는 나약한 도시인들과는 다르다.
이 고대 시대에 떨어진 지도 어언 7년. 몇 가지 견딜 만한 불편함은 있어도 생활에 큰 불만은 없다.
장담컨대, 나는 완벽하게 적응했다.
“옆집 애가 얼마 전에 버섯 잘못 주워먹었다가 거품 물고 쓰러진 거 모르니?”
“또요? 걔는 배 고프다고 입에 광대버섯 물고 있던 걸 내가 하임리히법으로 구해준 게 몇 번인데, 그쯤 되면 그냥 갈 만해서 가는 거라 생각하죠”
“애가 못 하는 말이 없어!”
자연농법에 심취한 귀농인 학부모들이 특강처럼 학교에 찾아와 심심풀이로 풀어주었던 버섯과 약초의 구별법이 아주 귀중한 지식이 되었다.
아무튼 여기가 그리스 땅이든 한국 땅이든 간에 식용버섯 몇 종은 알고 있는지라 그것들을 심심할 때 뜯어먹곤 한다.
물론 나도 겁없이 버섯을 막 캐먹지는 않는다. 그 유명한 베X 그릴스도 버섯은 그냥 버리거나 땔감으로만 쓰니까.
다만···
‘고대 그리스에는 팽이버섯전이 없지.’
어머니가 안 볼 때 저 앞에서 주운 새알로 버섯을 부쳐 먹었다. 내가 아는 한 제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한식이니까.
단 하루를 해외에 나가도 한국 컵라면을 사먹던 내게 일평생 동안의 이세계 환생이라니, 너무 가혹하다.
···그래도 취직 걱정은 없는 지금이 낫나?
양치기는 노예고 양치기 자식도 노예라지만, 적어도 실업자로 죽을 일은 없으니.
“무슨 하임리히··· 또 무슨 이상한 얘기하니? 일단 잔말 말고 다녀오면 그때 나중에 얘기하자.”
“알았어요.”
어머니가 바구니를 내밀면서 이야기를 꺼내니, 나도 더 할 말이 없어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의 할 일은 허브를 따오고···
-메에에.
-메에에에에에에.
“가만히 있어.”
-메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양떼를 처리하는 것.
흔히들 양을 온순한 동물이라 하지만, 온순하든 사납든 간에 양은 뿔이 달려 있고. 들이받치면 아주아주 아프다.
그런 것들을 수백 마리 몰고 다니면서 통제하려면 당연히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한다.
-휘익!
“제피로스, 가자.”
내 말에 양치기견인 제피로스가 두 다리로 껑충껑충 뛰면서 따라나선다. 어리버리하게 흩어져 있던 양떼들도 중간관리자를 보고 군기가 잡혀서는 한 데로 몰려서 뛰어간다.
이렇게 숲에서 먹을 만한 거면 뭐든 뜯어오고, 겸사겸사 양떼들을 초지로 몰고 다니면서 양들 먹을 것도 챙기는 거다.
근방의 조약돌을 주워서 저 언덕배기 너머로 하릴없이 던지며 한가로이 걷는다. 제피로스는 양떼의 방향을 조정하다가도 내가 주운 돌을 보고 신이 나서 뜀박질하며 갔다 온다.
내 일은 양떼와 그 주위를 경계하다가 제피로스가 내가 던진 돌맹이를 주워오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놀아 주는 것 뿐이다.
산책하는 것만 같은 여유로움.
주위를 둘러보니 인적 없는 초지가 울퉁불퉁한 언덕들 위로 한가롭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굽이치는 초록의 지평선 위로 뻗어나간 구름 없이 투명한 하늘.
서울로 상경해서 매일 알레르기 비염에 시달리던 내게는 너무나도 안락한 풍경이다.
인성파탄 중년남성 시인 나부랭이나 접대하면서 온갖 꼰대질을 당할 일도 없고, 성질 더러운 어디 하잘것없는 여의도 지박령들이랑 대작하다가 허벅지를 더듬는 손길을 어금니가 부숴지도록 참으면서 눈물 흘릴 일도 없다.
물론 가끔 곰이나 늑대를 마주쳐서 미친듯이 돌팔매질이랑 활질로 맞서 싸울 때도 몇 번 있었지만, 차라리 이빨이랑 발톱으로 위협하는 짐승들이 커리어로 협박하는 검은머리 짐승들보다 나았다.
하 씨, 또 전생을 생각하니까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데···. 이 몸에서 산 지도 이제 7년이 됐는데 왜 주책맞게.
“저, 저 녀석 또 왜 울어? 야! 너 뭐해!”
“나도 몰라? 내비둬, 저놈이 이상한 짓 하는 게 한두 번인가?”
누가 감히 환생자의 고독하고 쓸쓸한 마음을 비웃나 싶어 봤더니, 이 마을의 다른 아저씨들이다.
저들보다 더 교육받고 계몽된 내가 넓은 아량을 발휘하여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주니, 안타깝게도 “언젠가 저 집 가서 한번 따지고 만다.”라든가, “너네 개 좀 관리 똑바로 해라! 우리 텃밭 망가진 거 아냐!” 같은 험악한 반응이 돌아온다.
“아저씨들! 안녕하세요!”
“야, 너 또 여기까지 왔냐! 너네 구역에서만 애들 풀 뜯겨라! 하아아···.”
“필리포스, 자넨 또 왜 그렇게 흥분하나. 참게, 참아.”
“기억도 안 나? 저놈이 뭐, 쓸데없는 덩어리 만든다고 우리 모아뒀던 기름 훔쳐간 거?”
본인들도 부인들이 등잔 밝힌다고 모아놓은 고깃기름, 뭐 맛난 거 지져먹는다고 꿍쳐두다가 나한테 뒤가 밟히니까 뭐라 그런다.
못난 남편들의 비상금, 아니 비상유(油)를 내가 문명 발전이라는 보다 뜻깊은 용도를 위해 활용했음에도··· 개탄스럽다.
물론 양초 만든다고 용 쓰다가 기름의 3분의 2는 날려먹었지만, 그래도 한동안의 실험으로 이 시대의 조명 기술이 진일보했으니 이 사실을 안다면 저 아저씨들도 기뻐할 게 분명하다.
“어이, 자네들 뭐하나?”
“아. 어르신, 강녕하셨는지요?”
“저 앞집 아들이구만. 아주 예절이란 게 잘 박힌···”
약간 황망한 표정의 아저씨들이 한 구석에서 눈에 띄지만, 그닥 신경 쓰지는 않았다.
날 한 대도 쥐어박지 못하는 저 조심성에서 알 수 있듯··· 내가 쥔 약점도 한두 개가 아니라.
“얘야. 전에 네가 우리 부인에게 선물해줬던 그 물건 기대하고 있다. 그 이름이···”
“‘양초’ 말씀이시죠?”
“그래, 네가 조금 준 걸로 불을 켜 보니 목도 안 맵고 냄새도 독하지를 않아서 좋다더구나. 혹시 언제쯤 더 만들 수 있겠니?”
“그거야···”
나는 아저씨들을 잠시 돌아보았다.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꼈는지 대부분이 능숙하게 고개를 돌리지만 아까부터 눈치없이 성 내던 필리포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본다.
“그 물건이 기름으로 만드는 것인데, 누가 도와주면 딱 다음 양초를 만들 기름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리포스? 부탁할 수 있겠나?”
“아, 저··· 그···”
필리포스는 벗들을 둘러보지만, 그들 역시 눈을 돌린다.
아마 한동안 저들의 ‘꿍쳐둔 기름으로 꿍쳐둔 고기랑 채소 지져먹기’ 모임에서 필리포스가 제외될 게 뻔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필리포스의 얼굴이 배반의 분노로 붉어졌다가, 이내 체념의 감각으로 쪼그라들었다.
“···제가 저놈에게 남는 기름이라도 생기면 갖다 주죠.”
“잘 생각했네. 아주 영특한 아이니까, 잘 대해주고.”
필리포스가 터덜터덜 걸어나가자 어르신은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저놈이 마누라 몰래 양기름 훔쳐둔 건 어떻게 알고?”
“매일 자기들끼리 작당하는데 모를 수가 있어야죠.”
그 말에 낄낄거리던 어르신은 언제 그랬냔 듯 처음의 근엄하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돌아가 허허 웃으며 떠나갔다.
이제야 자신들은 안전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머지 양치기들은 안도하여 풀밭에 주저앉았다.
“아저씨들, 괜찮아요?”
“···괜찮을 리가.”
“제가 그래도 요르고스 아저씨 항아리 깨먹은 거는 부인한테 말씀 안 드렸잖아요? 그걸로 참아주세요.”
“하아··· 이번만이다.”
요르고스가 한숨과 함께 날 외면하자, 다른 이들도 나한테 뭔가 더 따지는 걸 포기했다.
이 인생은 시작이 좋았다.
나이 여섯 살 먹을 때까지는 적당적당히 다른 또래애들이랑 어울리면서 마을의 평범한 어린애인 척을 하다가, ‘어차피 애 앞이니까.’라고 방심해서 털어놓은 비밀 얘기들을 착실히 적립해 이렇게 자원으로 써먹는다.
환생 이후 펼쳐진 윤택한 전원생활의 비결이었다.
“됐고 빵이나 먹을래?”
“저야 감사하죠.”
빵이나 처먹고 입 좀 다물어 달란 뜻이겠지만 마침 출출하던 참이니 망설임없이 아저씨들이 건넨 빵을 크게크게 뜯어 입으로 가져갔다. 마을 인심이 이렇게 좋으니 나올 때 도시락을 챙길 필요도 없다.
이렇게 매일매일 양을 치다가 동업자들을 만나면 간식이나 까면서 노가리도 까고.
그리고 해질 때쯤 다시 돌아와서 잠에 들고.
다시 일어나서 양떼를 몰고 다니고. 그러다 다시 아저씨들이랑 수다를 떨고.
아주 단조로운 삶이다.
이런 생활만 한 몇 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거기에 대한 내 감상은 역시나···
“아이고, 좋다.”
역시 안정이 최고다.
하루종일 양을 몰고 다닌 뒤 근처 풀밭에 누워 쉬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이전의 생애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내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조금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지만, 이럴 때 뒤져볼 스마트폰과 SNS가 없다는 건 활자 중독자로 10여 년을 살아온 나를 불안하게 했다.
게다가 냇물에 몸을 씻어도 비누가 없으니 쿰쿰한 느낌은 지우기 어렵고 기생충 감염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내 몸은 이미 기생충의 움직이는 성, 기생충을 위한 백화점이다. 재수없는 몇몇이 그러듯이 뇌나 심장에서 사은행사라도 벌이면 그냥 죽은 목숨이겠지.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익숙해지려면 익숙해질 수 있다.
더럽고, 찝찝하고, 음식이 맛없고, 옷이 꺼끌꺼끌하고, 잠자리가 불편한 건 참으려면 참을 수 있다.
하물며 나는 노예가 아닌가? 노예 치고는 꽤나 여유롭고 평안한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 않나?
“포기하자. 포기하면 만사가 편하다.”
오전의 눈물 자국을 지우며 나무 그늘 아래 누워 휴식을 청하니 시간이 빨리도 지나간다.
양들이 슬슬 혀를 낼름거리며 배가 부른 표시를 내고 슬슬 별빛들이 선명해진다.
빛 공해도 없고, 공기도 맑아서 달이 크고 별들이 밝았다.
“별들이 많지는 않지만···.”
왠지는 몰라도 전생에 살며 보던 것보다 별이 적다. 한국이 아니라 그리스에서 봐서 밤하늘이 다른가? 위도는 비슷할 텐데···.
아무튼 별이 뜬다는 말은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정말, 이대로 돌아가려고?”
익숙한 목소리.
“···이노?”
“날 두고? 그러면 내가 너무 심심하잖아!!”
살랑살랑 저 위에서 들판을 맨발로 뛰어오는 나만 한 여자애 하나.
내가 혼자 양이나 치러 들판에 나오면 찾아와서 괜히 말을 붙이고 가까이 와서 주저 앉는 애인데, 항상 할 짓도 없는 모양이라 놀아주곤 했다.
“오늘은 안 돼. 돌아가”
“으, 으응? 진짜 난 두고?”
내가 휙, 하고 일어서자 이노가 당황한 듯 따라서 일어난다.
“너도 너네 집으로 돌아가서 쉬어. 다들 걱정하게.”
“나 걱정할 가족 없는데?”
아··· 말 실수했다. 아무 생각없이 패드립을 날렸단 생각에 잠시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여전히 이노가 뭣도 모르고 생긋생긋 웃고 있어서 겨우 안심했다.
불쌍한 아이다. 숲에 버려져서 혼자 살아가는지 항상 똑같은 옷만 입고 맨발로 비척비척 걸어다니는 게 안쓰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난 가족도, 부모님도 없다니까! 난 요정이야!!”
···이런 상태의 정신을 갖고 있다.
그래도 어디서 굶고 다니는 기색은 없고, 다른 사람들이 잘 돌봐 주는지 꾀죄죄한 꼴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잔말 말고 집에 돌아가. 그··· 요정이라도 집은 있을 거 아냐.”
“요정은 숲이랑 산이 집이야! 난 이미 집에 있는 거라고.”
가족도 없고 집도 없는 애가 저렇게 꼬질꼬질한 데 없이 깔끔하게 나다닐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아무튼···
“이노.”
“···왜?”
“너는 비정상이 아니라,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야. 알지?”
“그거야 당연하지? 인간이 아니니까?”
“···아무튼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노에게 나는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던져준 뒤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제피로스가 침을 튀기며 빠르게 달려온다.
“제피로스!”
-왈! 와랄랄!!
이노는 제피로스와 여러 번 만나본 만큼 서로 즐겁게 끌어안았다.
“제피로스가 대신 너랑 놀아줘도 괜찮겠어? 나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응! 그러면 좋아!”
얼굴이 환해진 이노가 제피로스와 이리저리 달려다니며 놀아주었다.
그래, 이 산골짜기에 살아서 친구도 나밖에 없을 텐데 나라도 어울려줘야지.
주머니에서 양의 갈비뼈를 꺼냈다. 살은 깔끔히 발라내어 깨끗했다. 제피로스가 가장 환장하는 장난감 겸 간식이라 항상 쟁여놓고 다닌다.
“이노! 이거 제피로스한테 던져줘!!”
“알았어!”
이노가 내가 건네준 양갈비뼈를 휙, 던지자 신이 난 제피로스가 혀를 내물고는 마구 뛰어다녔다. 그렇게 한동안 이노가 제피로스와 놀아주는 걸 구경하다 제피로스를 불렀다.
“아직 놀아주고 있었는데···.”
“나 집에 돌아가야지. 너도 집으로 돌아가고··· 오늘 고생 많았어.”
양떼를 몰고 지팡이를 휘휘 저으며 언덕을 내려가자 다시 허름한 오두막이 보였다.
우리 집이었다.
꺼끌꺼끌한 지푸라기 침대에 몸을 기댄 채 창밖을 보았다.
여전히 별들은, 밤하늘을 성기게 채워놓고 있었다.
***
한편, 양치기 소년이 떠난 자리를 아쉬운 듯 바라보던 이노는 한숨을 쉬었다.
“쟤는 재밌긴 한데 약간 머리가 이상해···. 만날 엉뚱한 얘기만 하고.”
이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산으로부터 산들바람이 슬며시 불어온다. 이내 그 바람 속에서 무언가 밀도가 다른, 보다 농밀한 공기가 만져진다.
그 공기는 이노의 손목을 천천히 감싸쥐고는 언덕이 가팔라지는 곳으로, 숲이 이어지고 인적이 드물어지는 쪽으로 이끌었다.
[돌아가자.] [이곳엔 사람이 너무 많아.] [왜 맨날 저 바보 같은 남자애랑만 어울리려고 해?]“응, 알았어. 곧 따라갈게.”
이노는 정신이 이상한 듯한 양치기 소년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불쌍한 아이, 지루한 양치기 생활 끝에 미쳐버렸구나. 그래도 얼굴은 곱상하게 생겨서···.
갑자기 떠오른 잡생각을 지우며 이노는 손가락을 튕겼다.
이노의 몸에서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돋아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