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2
22화. 올림포스 (1)
백합 자살이란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가장 아름답고 사치스러운 자살 방법이니 뭐니 하면서 우울증 걸린 SNS 계정들에서 한창 떠돌던 것들 중 하나인데, 백합을 밀폐된 방에 가득 채워넣으면 거기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로 서서히 잠들 듯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개소리다.
질식사다.
장례식에나 쓰이는 꽃들의 향취가 온 뇌를 진동시키고,
더는 숨 쉴 수 없다는 괴로움이 고춧가루보다 맵게 코와 입과 폐를 후려칠 것이다.
3분 이내로, 혼절해서 짧게 끝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다.
···
···
지금의 나처럼.
“크허어어억, 허어어어억!”
일전에 헤파이스토스를 마주했을 때와 같이 나는 쓰라린 공기를 마시며 겨우 호흡하는 감각에 집중할 수 있었다.
따끔거리는 압도감에, 온몸이 벌에 쏘인 것처럼 아프다.
눈에는 최루탄을 맞은 것 같고, 코에는 고춧가루 물을 뿌린 것 같다. 내 내장 속에 소이탄을 뿌린 듯 온몸이 타오른다.
아니, 너무도 하찮다. 하찮은 비유들이다.
이 통증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크아아아아아악!!!”
···흐릿하게 무언가가 보여.
화려한 탁자.
그 위에 차려진 만찬.
하늘에 있는 궁전, 기둥들 너머로 푸르른 세상과 구름으로 이뤄진 바다가 내다 보여.
천장으로는 별들이 떠다녀, 인간의 고통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그리고, 사람들?
기나긴 소파와 거기에 헐벗은 채 나른하게 누운 이들, 초조하게 돌아다니며 격론을 벌이는 이들, 그 모든 걸 한 발짝 떨어져서 자뭇 흥미롭다는 듯 방관하는 이들···
그리고, 그리고···
[정신 차리거라.]“헤, 헤파, 헤파이스토스 님.”
내게 다가오는 단 한 명의 신.
어느새 나를 데려온 청년은 날개 달린 신발을 타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나를 끌어안고 조심스럽게 내 머리와 가슴을 쓰다듬었다.
[네게서 서서히 고통이 가실 것이다. 서서히···.”그 말대로였다.
공기 중의 산소 분자 하나하나가 폐를 할퀴던 고통이 점차 누그러진다. 모래로 호흡하듯 하던 가슴의 쓰라림이 점차 사그라든다.
숨을 몰아쉬자 점차 뜨거움이 가신다. 눈물과 콧물 범벅으로 흐릿하던 시야 너머가 점차 또렷해진다.
방금 속삭임처럼 다가오던 풍경이 모두 분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말 그대로 하늘의 궁정이다.
기둥들과 바닥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감히 묘사조차 할 수 없었다. 단지, 멀리서 보면 대리석 같고 가까이서 보면 백금 같이 빛난다는 말밖에는.
마찬가지로 지구상의 여러 물질들에서 그 성질만 따와 주물럭거려 만든 듯한 기묘한 물질들이 사방을 채웠다.
유리가 액체가 되어 흐르는 분수. 가끔씩 튀어오르는 방울은 분수대에서 벗어나자마자 유리 방울이 되어 맑은 종소리를 내며 산산조각났다.
황금으로 된 전신상. 그러나, 그 상들은 때때로 자세를 바꿔가며 자신을 보는 이에게 어떤 구도가 가장 아름다운지 보여주겠다는 듯 스스로의 자태를 과시했다.
세상 곳곳에서 끌어모은 듯한 진귀한 새들은 비누거품 같기도 하고, 은방울 같기도 한 무언가에 갇혀 둥둥 떠다니며 지저귀었고,
들짐승들도 마찬가지로 납과 수은의 중간쯤 되는 물질로 만든 듯한 족쇄를 찬 채 으르렁거렸다.
그러니까, 나는 이곳의 광경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 정당한 거주자인 듯 당당히 자리잡은 이들은··· 모두 나와 헤파이스토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대했더니만.]어떤 남자가 거칠게 잔을 집어던지고서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한 채 내 근처로 걸어온다.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라 하지 않았나? 헤파이스토스, 듣던 말과 다르지 않나. 눈이 퉁퉁 부어서 심해어 같군. 미모를 가졌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평범한 인간이 이곳에 와서 얼마나 고통을 느낄지 생각해봤나?”
[아니.]남자는 내 턱을 붙잡고 상체를 강제로 일으킨다. 그리고 마치 짐승을 고를 때처럼 내 입을 벌려 입안 곳곳을 확인한 뒤 내려놓았다.
턱이 화끈거렸다.
[전쟁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쓰지 않아. 이놈의 눈이 제대로 되어야 심판을 내릴 것 아닌가. 네놈의 고집 때문에 모두의 귀중한 시간이 낭비되었다.]심판?
잘생긴 근육질의 남자는, 어딘지 무심하고 잔인한 미소로 나를 뜯어보았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눈동자 너머의, 피처럼 붉은 폭풍을.
‘전쟁’은 그런 걸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나?
나는 저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남자의 거친 손속에 거부감을 가진 듯, 한 여자가 남자를 나로부터 가볍게 밀쳐내었다.
“당신, 뭐하는 거야? 아이가 아파하잖아?”
그러나, 남자에게 화를 내는 여자의 말에는 증오가 없고, 여자의 말을 받는 남자의 얼굴에도 그 선명한 오만에 어울리지 않게 분노한 빛이 없다.
둘 사이의 뭔가 질척거리는 관계를 상징하듯이, 짧게 눈빛이 교환된다.
또 다시, 권능이 담긴 듯한 음성이 나에게 내리쬔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고통 대신 어떤 포근함과, 안락함이 느껴지는··· 그런···.
붉은 입술.
세상의 태양과 달과 모든 천체들이 빛을 잃고, 마치 저 여자의 붉은 입술만이 반짝이며 세상에 남을 듯한.
나는 이 여자 또한 안다.
[그만.]-콰콰콰콰쾅!!
그 고혹적인 빛으로부터 나를 떨어뜨려낸 것은 한 줄기, 직선.
더 정확히는 어떤 선형의 물체가 그려낸 직선의 궤적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와 여자 사이에 정확히 창이 박혀있었고, 창이 날아온 방향을 보자 투구를 쓴 한 여성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짓 하나에도 흔들림없이,
마치 무한한 위엄을 자랑하는 대리석 석상처럼.
[천박스럽구나. 탁월성을 향한 우리의 경쟁은 그런 얕은 유혹으로 망가져서는 아니된다.] [하! 넌 얼마나 공정하게 나설지 모르겠군.]붉은 입술의 여자가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뒤로 물러서자 투구 쓴 여자가 다가와 바닥에 내리꽂힌 창을 뽑으며 내게 말한다.
[너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로서 자격을 얻었다.]나는 이 이야기 또한 알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롯가에서 조용히 손을 뻗어 불꽃와 대화하듯 하는 온화한 이.
말갈기 같이 화려한 머리털이 끊임없이 너울거리고 파도 치는, 삼지창을 든 전사.
그 날숨과 들숨만으로도 주위에서 나무와 풀들이 따라서 춤추는 여왕.
서로에게 이런저런 속삭임을 던지며 나에게 흥미롭다는 듯한 시선을 던지는 해와 달.
어느새 내 곁에서 벗어나, 가볍게 공중에 떠올라 이 난장판에서 한발짝 떨어져 휴식을 취하는 청년.
그들 모두보다 높은 옥좌에 올라앉은 두 사람.
그들이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바보 같은 일이지···. 이깟 장난에 그토록 오랜 시간을 끌다니.] [필멸자의 앞에서 위엄을 지키거라.] [아버지, 잠시 소년을 살펴보아도 되겠습니까? 제가 데려온 아이이니만큼 제가 확인하고 싶습니다.]아버지라 불린 자, 옥좌에 앉은 자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청년은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공중의 계단을 걸어내려오듯이 천천히 내 곁으로 내려앉았다.
그의 발꿈치 조금 앞에서 흔들리던 날개는 퍼덕거림을 멈추고 고요히 내려앉았다.
그의 지팡이를 휘감은 뱀들은 나를 쏘아보면서 저들끼리 혀를 낼름거리며 뭔가 속닥거린다.
청년은 웃으며 지팡이를 내게 가까이 가져갔고, 내가 어쩔 틈도 없이 뱀은 내 어깨에 뛰어내린 뒤 내 옷자락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아, 읍···.”
[쉿, 신들 앞에서 무례하지 않게. 비위를 거스르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니.]내가 비명을 지르려 하자 청년은 조용히 내 입을 막았다. 뱀들이 내 등과 가슴을 타고 내려오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름다운 소년이구나.”
“네 몸에는 흠이 없구나.”
“실로 판관의 자격에 적합하도다.”
내 골반에서 두 뱀은 갈라져 양 허벅지와 종아리를 타고 내려왔고, 헤르메스가 바닥에 지팡이를 내려놓자 다시 그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머니, 흠이 없답니다!]청년은 장난스레 외치며 나를 살폈다. 적어도 아까의 ‘전쟁’보다는 덜 무례하고 덜 거친 방식이었다. 몸에다 뱀을 풀어놓는 게 갑자기 사람을 잡아채는 것보다 얼마나 더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너를 데려오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지. ···미안하구나.”
그는 내게 인간에 가까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뱀이 휘감기고 날개까지 달린 지팡이를 들고, 마찬가지로 날개 달린 신발을 신은 청년. 이 자 역시 내가 잘 안다. 모른다면 바보라고 할 수 있겠지.
“참, 활쏘기는 아직 실력이 모자라던데.”
···활쏘기?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고 싶었지만 다음 순간 그는 공중으로 박차올라 다시 그가 있던 허공으로 떠났다.
내가 뭐라 항변하기도 전에 옥좌로부터 여성의 음성이 들려온다.
[너는 우리 셋의, 세 여신 사이의 오랜 분쟁을 끝내기 위해 선택되었다.]왼편의 옥좌에 앉은 여성이 말한다.
마치 만물의 여왕이라도 되는 듯, 오만이 아닌 당당함을, 과시욕이 아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카리스마를 베일처럼 두른 위대한 자.
나는··· 나는··· 저 ‘여신’도 알고 있다.
이들을 모두, 모두 알고 있어.
오른편의 옥좌에 앉은 ‘왕’이 말을 이어간다.
[세 여신이 너의 선택을 기다린다.]“서, 서, 선택이라면···”
내가 중얼거리자 왕은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내 오른손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져온다.
나는 알아. 이 모든 걸 알아.
나는 오른손을 들었다.
황금사과.
그 위에 적힌 문구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 인간과 한 요정(Νύμφη)이 혼례를 올렸다. 나의 아내인 헤라가 그 혼인을 승인하고 축복하였다.]나는 왕의, 제우스의 말을 쉽사리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요정이라면 분명 물과 바다의 신 네레우스의 딸 테티스를 말하는 것이리라.
테티스는 그 아들이 아버지보다 위대한 영웅이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기 때문에, 그를 두려워한 신들은 하찮은 인간 펠레우스에게 테티스와 결혼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 결혼식에 초청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남긴 물건이,
바로 이 황금사과.
[혼인이란 거룩한 것임에도, 그로부터 위대한 신들 사이의 불화가 자라나고 많은 이들이 고통받았으니 이는 부당한 것이다. 이 모든 불화와 분쟁과 고통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다가오고 있다.]조소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웃지 못했다.
신들은 그토록 오래도록 분쟁을 일으켜놓고서 결국 아무도 해결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누구도 책임질 일이 없도록 간단한 해결책을 생각해낸 게 아닌가. 옛날에 신화를 읽으면서는 생각지 못했던 깨달음이었다.
한낱 인간이 뭐라고, 어느 신이 더 우월한지를 판가름하겠나?
나는 이제 신들 모두가 손대고 싶어하지 않던 분쟁에 손을 대고, 그 대가로 파멸할 것이다.
황금사과의 주인은 내 손으로 결정되고, 내 움직임에 따라서 어떤 신은 기뻐하고 어떤 신은 격노할 것이다.
그 기쁨과 격노가 전쟁을 부른다.
아주 길고, 참혹한 전쟁이라서 그 전쟁을 다룬 서사시만 있을 정도다.
[선택하라, 프리아모스의 아들, 트로이아의 왕자여.]일리아스(Ίλιάς).
나는 이곳의 모든 이들을, 이 모든 장면장면의 의미를 알았다. 그 이전과 이후의 이야기를 알았고 이것이 얼마나 문화사적으로 중대한 장면인지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난 날 알았다.
난 내 이름을, 지금껏 혀와 입이 족쇄에 채워진 듯 말할 수 없던 내 이름을 알았다.
나는 혹시라도, 또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내가 알 수 없는 불협화음으로 뭉그러질까봐, 조심스레 소리를 내었다.
“파, 파···”
음소 하나, 하나씩···
“리···스···.”
파리스.
프리아모스의 아들.
트로이아의 왕자.
헬레네의 연인.
트로이아를 멸망시키는 자.
[선택을 내려라.]눈이 불처럼 타오르던 자, 아레스가 말한다.
[선택하거라. 그리고 이 성가신 분쟁을 끝내거라.]머리가 파도처럼 일렁이는 이, 포세이돈이 중얼거렸다.
[어느 쪽을 고를까? 이 꼴을 더는 안 보게 될 수 있으려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저 불쌍한 영혼에게는 자기 앞에 닥친 재앙이 더 중요하겠지.]남매가 서로의 귀에 속삭인다. 해와 달,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다.
내가 소설 속의, 이야기 속의 것들로 여겨왔던 이들이 나를 시선으로 짓누른다.
···견딜 수가 없다.
[아버지.]내 곁에 서 있던 헤파이스토스가 일어나 내 앞에 섰다. 그의 장신이 나를 신들의 시선으로부터 가려주었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래서?] [고통에 잠긴 자가 아름다움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마땅히 아이를 위해 쉴 수 있는 틈을 주어야 합니다.]제우스는 차가운 눈빛으로 나와 헤파이스토스를 번갈아 보았다.
[제자로 들였다더니··· 정이 들었나?]조소 어린 목소리.
[좋다.]제우스가 손짓하자 그의 옥좌 뒤에서 나타난 소년이 그에게 술잔을 따른다.
[가니메데, 준비하라.]소년은 무릎을 꿇고 무언가 기도와 주문 사이의 중얼거림 같은 것을 왼다.
신들의 앞에 잔과 음식들이 차려지자 당사자인 세 여신들은 마뜩찮은 표정을 하면서도 잔을 들어올렸다.
[기다리도록 하지.]그 말과 함께 제우스는 발을 바닥에 가볍게 굴렀고.
“여긴···”
“안전한 곳이다. 걱정 말거라.”
다음 순간, 나와 헤파이스토스는 낯선 장소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