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29
“아울리스 쪽에 군선이 모인답니다!”
“분명, 수백 척이 모였다고 들었습니다.”
정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멀리 상행을 떠나는 이들은 첩보의 기초였다. 가장 다양한 지역을 나다니고 가장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이들이니까.
고로 트로이아와 안탄드로스가 상업의 중심이 되었다는 말은 첩보의 중심이 되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400척? 아니면··· 500척쯤 될 듯하다더군요.”
“제우스 맙소사.”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두어 번에 걸쳐서 병력을 모아 움직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빙성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건 사실일 걸세.”
“···군주시여,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실일 거라 말했네.”
400척에서 500척이라.
“400척? 장담컨대 그 2배··· 아니, 3배는 될 걸세.”
그 정도로 끝날 리가 없다.
1186척.
그게 일리아스에서 묘사된 아카이아 연합군의 총 함대 수였다. 어쩌면 그 이상으로 불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
“···.”
내가 확신을 가득 담아 말하자, 장로들은 자연스레 입을 다문다. 누구도 내 말을 감히 의심하지 않았다. 업적으로 쌓아올린 정당성이란 게 이럴 때면 참 편리했다.
아무튼.
지금, 트로이아의 영향력이 닿는 모든 곳이 초긴장 상태였다.
상인들의 움직이는 속도를 생각해본다면, ‘배들이 모여들었다’라는 소식이 지금 전달되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파리스? 곧 와.”
“···그래, 곧 오겠지.”
나는 이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곧 아카이아 인들이 온다.
나는 원전에서 아카이아 연합군이 어디로 움직였는지, 저들의 전쟁 목표와 내부적 정치 상황이 일리아스 원전의 내용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하면서 이 긴장감을 겨우 다스렸다.
저들이 온다.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죽이러.
“파, 파리스 님!!”
그리고 마침내,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 그 긴장감은 한계치에 다다랐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벌떡 일어나 외침이 들려온 쪽을 향해 돌아보았다.
지금 이렇게 다급할 만한 소식은 한 가지뿐이었다.
나는 곧장 혼비백산하여 달려온 시종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어, 어디로 왔나? 그 해적놈들이 어디로 침공해왔지?”
“어··· 그게···”
대답은··· 어···
내 생각하고는 꽤나 달랐다고만 해두겠다.
***
“아버지? 저희는 왜 여기로 온 거죠?”
“미안하다. 머리가 복잡해서 잘 안 들렸구나. 다시 말해주련?”
네스토르는 저 멀리 가까워오는 바위투성이 해안선을 지켜보다가 아들의 물음에 고개를 돌렸다.
“그··· 저희는 트로이아를 징치하러 온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들 하더구나.‘
“어째서 이 머나먼 로도스 섬까지 온 건지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만약 트로이아 이외의 다른 도시들까지 공격하면 적을 늘리는 꼴 아닙니까?”
“아··· 그게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지.”
‘그래, 나도 이해가 안 되는구나.’라고 답하고 싶기도 했지만, 대신 네스토르는 웃으며 아들의 머리를 헝클었다.
다 큰 청년을 어린아이 취급 말라며 투덜거리는 아들의 모습이, 여전히 꼬맹이 같았다.
“아들아, 이 전쟁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아느냐?”
“트로이아의 징벌 아닌가요? 사람들은 탕녀와 상간자를 벌하라고 목놓아 외치더군요.”
“그래. 그렇게들 외치지.”
네스토르는 아들의 말에, 잠시 아이깁토스로 향하는 항로에서 마주했던 그 아름다운 소년을 떠올린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미소로 스파르타에 방문한 그를 맞이하던 아이도.
신께서 왜 그 둘을 짝짓지 않으셨나 싶을 정도로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래서 메넬라오스 그 녀석이 대신 짝지었을지도.
문득 생각난 씁쓸한 농담에 그의 입가에 고소(苦笑)가 어린다. 네스토르는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 전쟁은 감히 헤라 신전이 자리한 거룩한 미케네에서 그 왕족의 부인을 꾀어간 아름다운 왕자 파리스를 징치하고, 그런 파렴치한 짓거리를 옹호하고 감추려한 트로이아를 벌하는 전쟁이···
···아니란다.”
네스토르가 반쯤은 씁쓸하고 반쯤은 장난기가 어린 얼굴로 아들을 향해 돌아본다.
곧 그는 아들의 어깨를 끌어당긴 뒤 속삭였다.
“이 전쟁은 그런 숭고한 게 아니란다. 신들께서도 외면하신 전쟁이잖니.
이건 욕심을 위한 전쟁이다.”
그 말 그대로였다.
모든 게 이상한 전쟁이었다.
트로이아를 징벌하러 간다고 선언한 이들이, 트로이아에서 가능한 한 먼 곳으로 떠나려는 듯 굴고 있다.
입으로는 정의를 부르짖던 군주들이 결국 한다는 일을 보라. 온갖 이들에게 단창에 투구 한 벌씩 쥐여주고 악착 같이 노략질을 준비하고 있다.
차라리 이럴 거라면 정당한 무역 행위를 위해 나선다고 선언해야 했다···.
신들조차도 그랬다.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에 침묵하였으되,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는 이상야릇하고 엄중한 암시를 남겼으니.
그가 이 전쟁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저기 로도스 섬의 해안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드디어 해적질이 아니라 진짜 전쟁을 치르게 되었으니···!”
“그래, 안틸로코스. 준비하거라. 거의 도착해 가는구나.”
많은 이들이 죽으리라.
영웅들의 혼백은 하데스에게 향하고, 그 몸은 개들의 먹이가 되고 새들의 먹이가 되리라.
저 위대한 신들께서 계획하신 바가 어떻든 말이다.
***
이곳은 트로이아로부터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에게 해 남쪽, 소아시아 서남부 해안.
아카이아의 대함대가 통째로 길을 잃었거나, 해류와 바람을 잘못 만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들의 목적지는 이곳이었다.
아카이아인들은 구혼자 중 한 사람인 틀레폴레모스가 다스리는 로도스 섬으로 향했다.
틀레폴레모스의 궁전에 이르자마자 곧 중간회의가 시작되었다.
머지않아 근처의 칼림노스 섬 등지의 왕자인 페이디포스와 안티포스가 도착했고, 소아시아와 아주 근접한 곳에 사는 이들답게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
“당장 트로이아로 진격하겠다는 말이오? 미친 짓이오.”
“안탄드로스의 이름 높은 함대는 들어보셨을 거라 믿소. 준비도 없이 그 근방으로 치고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오.”
···물론 의미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은 것은 단 한 가지, 명분 때문이었다.
이 전쟁은 어디까지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전쟁이다. 오랫동안 억눌려온 아카이아 군주들의 약탈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쟁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전쟁의 명분이 되는 트로이아를 빠르게 깨부수고 이 잔치를 끝내버릴 수는 없다. 이 귀중한 ‘경제적 교류’의 기회를 날려버릴 수는 없다.
“언제쯤 해안으로 쳐들어갈 것이오? 나는 가장 가까운 카리아의 해안으로 진격하고자 하는데.”
“카리아? 거기가 부유해봤자 얼마나 부유하다고? 이 항해에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그 2배 몫을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여기 있는 모두를 바다에 빠뜨려버리는 게 낫겠소.”
게다가, 약탈만을 위해 모인 이 수만 명의 대군은 제대로 단합할 수도 없었다.
지휘관만 수십 명.
부족과 씨족 단위로 따지자면 그 분열상은 몇 배로 불어난다. 수백의 이해관계가 무수히 뒤엉켜 서로를 옭아매고 있었다.
“당장! 리키아부터 해서 북쪽으로 싹 쓸어버리면 되지 않소?”
“아니되오! 메넬라오스 님께서 가져오신 정보에는 리키아의 약점이 포함되어 있지 않소! 차라리 미시아를 향해 가는 게 합리적일 터!”
“···다들 조용히 하십시오.”
그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 메넬라오스는 그들의 이해관계를 세심히 조정했다.
“결국 리키아 역시 트로이아의 덕을 봤다고는 하지만 그들 사이의 거리는 상대적으로 멉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부흥한 정도도 덜하죠.
차라리 카리아나 미시아 등지로 쳐들어가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아니, 사실 세심하지는 않았다.
제국의 탄생, 에게 해 패권의 이동, 트로이아의 황금과 안탄드로스의 강철··· 그 많은 요소들 속에서 결국 모든 아카이아인들이 공유하는 관심사는 한 가지뿐이었다.
“미시아와 카리아, 그 둘이 약탈하기 제일 좋을 겁니다.”
해적질.
그게 전부였다. 심지어는 전쟁의 승패조차도 해적질보다 우선하지는 않았다.
모든 인간이 살기 위해 산소와 물과 먹을거리를 필요로 하듯 모든 아카이아인들은 해적질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렇기에 메넬라오스가 전개한 논리도 아주 간단했다.
모든 아카이아인은 해적이다.
모든 해적에게는 약탈할 땅이 필요하다.
모든 아카이아인에게는 약탈할 땅이 필요하다.
깔끔한 삼단논법. 과연 논리학과 수사학이 태동한 그리스의 조상다웠다.
메넬라오스가 이렇듯 정연한 논리 전개를 보여주자 철학은 몰라도 경제학에 능한 아카이아의 왕들은 감동에 벅차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마치 굶주린 늑대떼에게 토실토실한 양떼가 자리한 위치를 가리키듯 메넬라오스는 고개를 들어 지도 위의 몇몇 지점들을 두드렸다.
“할리카르나소스, 밀레토스, 에페소스··· 이 도시들 근방을 털면서 북상합니다. 히오스 섬은··· 불길하군요. 다들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 역시 동의하오. 히오스 섬? 딱히 부유할 것 같지도 않군.”
“아주 가난할 것 같은 이름이오. 그냥 넘기지.”
그렇게 그들의 행선지가, 그들이 나아갈 해로와 육로가 정해졌다.
그들은 곧장 목표를 향해 전진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 뒤로는 불과 잿더미와 텅 빈 곳간만이 남았다.
할리카르나소스 등 카리아의 여러 해안도시를 털러가면서도 제 몫을 얻지 못할까 두려워한 여러 왕들은 성급한 마음에 빠른 북상을 외쳤고···
“미시아!”
아카이아인들은 그렇게 흩어졌다.
흩어진 이들 중 상당수는 곧장 미시아로 향했다.
메넬라오스가 그 미시아로 떠나는 함대를 지휘했고, 다른 수많은 왕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예를 들면···
“이곳은 공기부터 다르군. 안 그렇소? 황금과 열기가 느껴지지 않소?”
지금 그의 옆에 선 디오메데스라든가.
메넬라오스는 그의 희열에 찬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전쟁의 냄새란 전부 탄내와 피비린내, 썩은내뿐이죠. 제 코에는 그것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지요. 정해진 일자까지 우리에게 우호적인 라리사로 집결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디오메데스는 메넬라오스의 대답이 시원찮다는 듯 혀를 쯧, 하고 차며 앞으로 나아간다.
메넬라오스는 디오메데스의 붉은기 도는 장발이 휘날리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았다. 곧 디오메데스가 불만 어린 목소리로 그의 말을 되받아친다.
“좀, 영광의 내음을 찾아 보시오. 나는 그대가 말하는 피비린내와 썩은내 속에서 영광의 냄새를 맡으니.
이 미시아에서의 전쟁이 앞으로 모두의 위치를 결정할 것 아니오?”
그의 말이 옳았다. 아카이아의 왕들은 바보가 아니고, 눈앞의 약탈물을 좇느라 더 중한 것을 잊어버릴 이들이 아니었다.
미시아와 카리아에서의 전초전에서 어떤 성과를 내보이는가에 따라, 예언의 제국이 어찌 성립될지 달라지리라.
이 지리멸렬한 아카이아 연합군의 세력 가운데 누가 주도권을 차지하게 될지.
더 나아가 수십, 수백 개의 세력으로 쪼개진 아카이아에서 누가 ‘위대한 하나의 제국’을 이룰 반석이 될지.
그 운명의 향방을 정하는 것은 지금부터였다.
카리아와 미시아는 다가올 트로이아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전장이 되리라.
곧 배가 해안에 쿵, 소리를 내며 닿았고 저 멀리 적들을 보고 급히 내달려온 병사들이 보인다. 그들을 발견한 디오메데스의 얼굴에 칼로 찢어낸 듯한 미소가 걸린다.
“미시아의 족속들아!!!! 너희, 얌전히 항복을 거부한 이들아!!!!”
반인반신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기이할 정도로 크고 멀리 울려댔다. 아랫배부터 울려오는 거대한 음성에 메넬라오스의 속이 쓰라려왔다. 아마 다른 병사들과 장수들 모두 그럴 터였다.
그러나 디오메데스는 아군들의 그런 사소한 반응 따위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즐겁다는 듯 좌중을 둘러본 뒤 씩 웃어보인다.
그리고는 메넬라오스에게 말한다.
“이 겁쟁이들, 아무래도 내가 최초의 상륙자가 되겠구려.”
말이 끝나고 메넬라오스가 대꾸하기도 전에 그의 몸이, 도약한다.
그렇게 곧장 혈혈단신으로 병사들에게 돌격한 디오메데스는.
-쾅!!!!
피바다를 만들었다.
아카이아인들이 미시아에 상륙했다.
***
물론 트로이아도 움직였다.
“1,000명. 1,000명을 뽑아다 급히 움직이려 한다. 헥토르와 파리스, 그리고 아이네이아스 세 사람이 전쟁을 지휘한다. 나머지 병력은 유사시를 대비해 이곳에 남는다. 헬레노스와 코로이보스가 지휘할 것이다.”
“아버지, 그 정도 숫자로 되겠습니까?”
“아니. 미시아 전체를 구하기에는 보잘것없는 숫자지.”
프리아모스의 말을 거들며, 안키세스가 헥토르의 질문에 대신 답한다.
“그렇지만 몇몇 도시들의 운명을 바꾸고 텔레포스 왕과 왕자 에우리필로스를 구할 수는 있는 숫자란다. 게다가 너희 셋이라니? 웬만한 영웅들은 무참히 베어버릴 수 있을 거다.”
텔레포스 왕의 부인은 아스티오케, 프리아모스 왕의 누이다.
즉 텔레포스 왕은 우리에게는 고모부이고, 에우리필로스는 사촌인 격인데···.
흠.
프리기아 때와 다르게 크게 걱정이 안 된다.
왜냐?
“헤라클레스의 아들 텔레포스를 도와 미시아를 지키거라. 아니면··· 적어도 그들의 목숨이라도 건져오거라.”
그렇다. 정신나간 핏줄이다.
텔레포스라는 인간을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왠지 저 핏줄에 흐르는 피의 절반이 그 미친 해적왕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든든해지고 믿음직스럽지 않은가?
적이라면 뭐 같았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아군이니까. 심지어 우리 문중이다!
“시일이 급하니, 빠르게 다녀오거라. 너희의 역할이 중하다.”
우리는 그렇게 병사들을 데리고 곧장 전함에 올랐다. 1,000명을 태우자니 20척 되는 선단이 꾸려졌다.
20척의 함선들은 철쇄대원들과 불사조 근위대원들, 나와 헥토르와 아이네이아스를 데리고 쾌속으로 남하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뒤로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이미 미시아는 트로이아와 연이 깊었고, 왕은 우리 친족이며, 심지어 리르네소스와 같은 미시아의 여러 도시들은 안탄드로스의 동맹시이기도 했다.
고로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다들 평소부터 안탄드로스와 교역을 이어가며 안면을 튼 사이니까···
“트로이아인들이다!!”
“오지 마시오!! 우리는 그대들의 입성을 거부하오!!!!”
미시아의 도시에서 문전박대당할 줄은 몰랐다.
혹시나 아카이아인들과 내통한 건가 싶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깃발은 부러져 있고, 병사들은 피골이 상접해 있는 게 이미 아카이아인들이 여러 번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흔적들로 가득하다.
그러니까 도시가 망하기 직전인데도 우리의 지원을 거부한다는 말인데.
···뭐지, 저 미친 놈들은?
“파리스 님, 저, 저들이 왜 저러는지 아시겠습니까?”
“···.”
나는 아이네이아스의 질문에 한숨을 쉬며 답했다.
“···대강은.”
프로토스 (1)
아카이아인들은 꿀벌처럼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왔다.
6만 명.
아카이아 전역의 인구가 100만에서 150만으로 추산되는 이 시기에, 6만 명.
개중에서 왕과 족장의 권위 아래 살아가는 인구를 따지자면 더 적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저들은 가용한 인구의 적어도 10분의 1 이상을 동원했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도시와 부족의 모든 역량을 끌어다 바쳤다는 의미.
이 숫자는 아카이아로서는 어마어마하다 할 만한 것이고.
“1만 명이라···? 페르가몬의 인구 수가 저 병사들의 머릿수와 비슷하다? 방금 그리 말하였는가?”
“그러합니다.”
“···.”
아나톨리아의 소국인 미시아에게는 까무러칠 만한 숫자였다.
미시아의 왕 텔레포스는 1만 명이 손에 손을 잡고서 빙글빙글 돈다면 아마 이 페르가몬도 감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잡상에 사로잡혀 있다가 겨우 깨어났다.
지금은 그런 딴생각이라도 해야 했다.
“그 1만 명이 지금 곳곳으로 흩어져 약탈을 벌이고 있으니 피해가 만만치 않습니다. 벌써 무너진 도시가 몇 곳이고, 투항한 뒤 황금과 식량을 내놓은 도시도 여럿 됩니다.”
···안 그러면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텔레포스는 이미 충분히 예상 가능한 문제에 대해서 굳이 보고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왕의 본분이 아님을 잘 알기에 결국 점잖게 장로의 말에 답했다.
“공격당한 곳들에 대해 말해보게.”
“예, 우선 키메가 파괴되었습니다. 또한···”
“아니, 잠깐.”
앞으로 언급될 무수한 도시들과 마을들의 이름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구체적인 지명들은 언급하지 말고 말해보게. 간략하게.”
“알겠습니다. 어··· 해안가 모든 도시들에서 구원 요청이 빗발칩니다.”
“···다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게.”
해안가 모든 도시라니.
참, 분명하면서도 예상대로면서도 끔찍하다.
“그렇다면 내륙 도시들은 상황이 어떠한가? 충분히 버티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적들은 내륙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특히 강을 끼고서 서서히 주요한 요충지들에까지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보아···”
“거기까지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