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50
포세이돈의 중얼거림에 질린 지혜와 전쟁의 여신은,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트로이아인들이 예기치 못하게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프리아모스의 차남이 아카이아인들의 함선을 쳐부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창공을 지배하는 제우스는 딸의 말에 미동도 않은 채, 저 전장의 잔해만을 유심히 내다볼 뿐이었다.
배들이 쪼개져 생긴 파편들이 바닷물의 소금기에 부식되고, 어쩌다 파도에 밀려난 시체들이 인근의 해안으로 떠밀려오는 모습을.
그의 눈은 여느 때보다도 침착했다. 마치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서늘한 날의 하늘처럼.
아테나는 그런 그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올렸다.
[아버지의 계획에 큰 차질은 없으리라 보십니까?] [···그래.]제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계획이다. 우리는 여느 때보다도 강대한 적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으니.]아테나는 자신의 빛나는 지성으로 아버지의 의중을 살피려 하였으나 결국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강대한 적이 하투샤와 그 신들을 이르는 것인지, 아니면 운명의 여신들이 절규하듯 내뱉은 또 다른 무언가를···
[나의 친족들이여.]아테나의 상념은 제우스의 부름에 끊긴다.
포세이돈과 아테나는 다시 제우스 쪽을 바라보고, 다른 구름 위에서 트로이아 곳곳을 내다보던 다른 신들 역시 고개를 쳐든다.
22개의 눈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을 확인하자, 제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저들에게는 저들의 할 일이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할 일이 있지 않겠나?]
제우스의 말에 나머지 11명의 신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름을 딛고서 도약한다.
마치 평탄한 언덕을 걸어올라가듯, 새털구름이 마치 잘 닦인 도로라도 되는 듯 그들은 자유롭게 허공 사이로 움직인다.
그들은 구름 사이를 스쳐 걸어간다. 변화무쌍한 에게 해가 그들의 발 아래서 소용돌이치지만 그들에게는 물방울 하나 튀거나 묻지 않는다.
신들은 그렇게 바다 건너 테살리아에 닿는다. 그곳의 드높고 험한 산세를 뛰어넘은 뒤, 온갖 구름과 바위에 가려져 인간들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올림포스의 진정한 꼭대기를 향해 나아간다.
신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신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궁전으로 되돌아간다. 이곳은 세상의 배꼽이고, 모든 숭앙과 패권이 향하는 곳이다.
그곳에서도 12개의 권좌가 있는 곳으로 주신들을 불러모은 제우스는 이내 왕의 망토를 펄럭이며 자신의 친족들을 돌아보았다.
세상을 나누어 다스리는 가장 위대한 신들, 무수한 신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숭앙을 받는 이들.
[···우리들은 위대하나.]그러나, 무수한 신들 가운데 극히 일부인 이들.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적들에 대항하기 어려울 것이오. 나의 친족들이여.]그는 나머지 11명의 동료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어쩌면 이제껏 있었던 어느 싸움보다도 거대한 싸움이 다시 펼쳐질지 모르니.
[이제 나는 올림포스 바깥의 신들을 불러 모으려 하오.]신들의 피부에서 점차 잔털이 솟아오른다. 공기 중에 타는 내와 함께 푸른 번갯불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제 나의 의지는 확고하고, 왕으로서 그대들에게 고하니··· 결정하시오. 그대들의 결정이 우리를 숭앙하는 이들의 흥망을 가를 것이오.]신들의 왕이 그리 선언하자, 일순간 하늘의 궁전에는 침묵이 감돈다. 모두가 이번 일로 어떤 이익을 얻고,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바다의 신은, 동의를 표한다.] [나 역시 동의하는 바요.] [아버지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이 위대한 집안의 번영을 위해서라도.]머지않아 신들은 결의한다.
올림포스의 의지가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가니, 날개 달린 신발과 두 마리 뱀이 매달린 지팡이를 든 어느 신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는 가장 먼저 트로이아의 벌판으로 향한다. 머지 않아 거대한 전장의 먼지구름이 닥칠지도 모르는 곳에.
발 빠른 헤르메스는 조용히 대지에 내려앉고는 이 들판을 가로지르는 거대하고도 도도한 강물의 흐름을 지켜본다.
그리고.
[일어나시오. 때가 되었소.]그는 금화 하나를 튕겨 강물 속으로 던져넣으며 말했다. 그러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물거품 속에서 한 노인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 말해둔 뒤 헤르메스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싸움? 아, 안 그래도 아루나가 이 근방의 땅에서 난리를 쳤지. 설마···.] [준비하시오.]헤르메스는 발뒷꿈치를 서로 맞부딪힌 뒤 작은 날개를 퍼덕여 다시 날아올랐다.
말을 전할 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가 그와 함께 전령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지만, 그녀는 지금쯤 아카이아에 땅에 있을 여러 신들과 저승의 신들을 움직이기에 바쁠 테니.
그는 이번엔 이다 산의 어느 자락으로 향했다.
[아들아!!]헤르메스의 외침에 수풀 사이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반인반수의 존재가 나타난다. 공기 중에 서린 이슬의 향내가 짙어지고 어쩐지 습기와 열기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버지, 오셨습니까?] [내 아들, 판. 너는 소식을 들었느냐?] [올림포스가 시끄럽다는 이야기만 전해들었을 따름이지요. 어쩐 일이십니까?] [제우스께서 모든 신들의 힘을 모으신다. 네 도움 역시 필요할 듯하구나.] [아··· ‘큰 싸움’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투샤와 싸우고도 다시 위험에 대처하려면 올림포스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구나.] [···.]판은 주위의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더니 조용히 피리를 불어댄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새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숲이 소란스러워진다.
[···세상의 권좌가 어찌 되느니, 에게 해의 주인이 누가 되느니 하는 데는 관심 없습니다.] [···.] [그렇지만, 제가 예뻐하는 인간들이 많이 죽겠지요?] [우리가 패배한다면 그렇겠지.] [그러면, 싸워야지요.]판이 손가락을 튕기자 숲속에서 흥분한 사티로스들이 뛰쳐나온다. 판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그들이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숲을 일깨운다.
[이제 다른 신들을 보러 가셔야죠.] [그럴 거다. 다만 ‘그’가 이 근방에 있다는 사실을 들어서 말이지.] [···아, 그 아이 말이군요. 안 그래도 요사이에는 이 땅에 자주 들르더군요. 자신의 어린 사도가 어떻느니 말하면서 말입니다.] [말이라도 전해주거라. 아버지께서 부르신다고.] [···알겠습니다.]헤르메스는 다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아직도 말을 전할 이들이 많았다. 어느 곳을 거닐고 있을지 모를 모르페우스, 그리고 자신의 신전에 당도한 이들에게 축복을 건네고 있을 아스클레피오스, 또···
아, 제일 중요한 이를 놓칠 뻔했군.
헤르메스는 공중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얼마 전에 그 거대한 해전이 일어났던 바다를 향해 날아간다. 그 근방의 해안을 훑자 역시나 수많은 시신과 난파선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헤르메스는 그곳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주위를 돌아보자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움직이는 거라고는 몸을 뒤척이는 파도뿐이다.
···아니다. 한 가지가 더 있다.
매장되지 못한 시신들을 아련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한 남자.
[알크메네의 아들이여.]이곳에서 자신의 유산을 지닌 이들이 어떻게 싸웠을지, 누구보다도 관심 있게 지켜보았을 한 남자.
[그대가 또 다시 싸울 순간이 왔다. 기가스 족과의 싸움 이후로 또 다시 올림포스가 그대를 부른다.] [···.]그는 헤르메스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에 묻은 모래들을 털어낸다.
[흔히들 큰 싸움에서는 큰 영웅들이 나온다고 하지.]그 묵직한 목소리로 내뱉는 말에는 한 음절, 한 음절마다 힘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번 싸움에서는 어떤 영웅들이 나올지 상상이나 되오?]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 나오더라도 그대만 할까. 혼자 힘으로 올림포스를 구원할 존재가 하나 더 나올 거라 생각하기는 쉽지가 않군.] [···모르겠소. 사람들이 나를 더러 영웅들의 모범이고 인도자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그가 뒤돌아 헤르메스를 바라본다.
[어쩌면 모르지. 영웅들의 이름이 모두 사토에 묻히게 되고, 나의 이름 역시 그저 하나의 상징으로만 남게 될지도.] [왜 그런 이야기를 하지?] [그냥.]영웅 중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의 눈이 빛난다. 마치 1,000개의 횃불이 타오르는 듯하다.
[내가 미처 죽이지 못한 괴물을 죽이고, 수백 척의 배를 무너뜨린 괴물이 나왔소. 그런데 그 힘은 나에 비하면 보잘것없고, 그 위엄 역시 나에 비해 훨씬 떨어져 보이는군.]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도··· 나는 확신이 들지 않소. 지금 이 싸움에서 아주 강력한 이들이 나타나 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영광을 외치지만···]알크메네의 아들, 영웅들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말했다.
[···모든 걸 바꿔놓는 건, 결국 그놈이 될 것 같거든.]해상전, 그 이후
해안에 몰려들어 전투를 훔쳐본 구경꾼들.
전투 이후로 안탄드로스에서 펼쳐진 화려한 개선식의 관중들.
그리고 그 구경꾼들과 관중들에게서 소식을 전해들은 이들.
그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승리.
그것도 신화에 가까울 대승리가 있었다.
어떤 이야기에서든 아군의 배는 대체로 트리에레스 20여 척 정도였다는 데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정도 숫자를 못 셀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적들의 배가 100척이었는지, 200척이었는지, 심지어 1,000척이었는지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달랐다.
어쨌건 개중 어떤 쪽을 택하든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20척이, 그 몇 배나 되는 적들을 물리쳤다.
이제껏 없던 일이었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며 농담거리로 삼아 본 적조차 없었다.
누구도 그런 극적인 승리와 패배를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처음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무슨 과장이 붙은 거냐며 웃었다. 그리고 그들은 크레타의 왕과 그 신하들이 양손이 묶여 안탄드로스의 대로를 걸어갈 때, 더는 웃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도 그 위대한 승리의 증거로서 안탄드로스의 궁전에 유폐되어 있을 터였다.
그리고.
개선식이 굳이 트로이아에서 펼쳐지지 않은 것만 보아도 이 승리가 누구의 공인지는 확실했다.
“···왕자 파리스가 혼자서 수백 명의 적들을 베었다고 하던데.”
“아이깁토스에서 눈빛만으로 적들의 배를 불살랐듯 이번 해전에서도 물속에서 불이 치솟게 했다지.”
“헥토르와 아이네이아스가 전투에 함께했지만 별 다른 공로는 없었다 하더군. 프리아모스의 차남이 너무 활약하는 바람에 말일세.”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승리였던 만큼 그에 걸맞게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따라붙었다.
놀랍게도 개중 마지막 이야기는 당사자들의 입으로 확인된 진실이었으니, 파리스의 지지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기세가 높아져만 갔다.
“파리스! 파리스! 파리스! 파리스!”
“앞으로 올 제국의 중심은 누구인가!! 앞으로 올 새로운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아, 아아··· 보십시오! 수십 척의 배를 건조하고 수백 척의 배를 깨부순 인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찌 우리와 같이 평범한 인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
원래 ‘밀교’란 게 꼭 비밀스러운 신앙만은 아니라지만, 이제 헤파이스토스-파리스 밀교는 안탄드로스 곳곳에서 온갖 직종과 신분을 대상으로 포교를 시작했다.
“헥토르 님께서··· 왕위에 오르실 때 트로이아가 여전히 이 근방의 맹주로 남겠나?”
“···그렇겠지?”
“헤라클레스가 트로이아를 불태웠어도 이 도시는 왕국의 중심이길 멈추지 않았네.”
“그게 아니라면 다르다노스에서 트로이아, 이제는 안탄드로스이려나?”
“예끼, 재수 없는 소리.”
당연히 파리스의 승리를 몇 번이고 지켜본 트로이아에서도 슬슬 기묘한 여론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다르다노스의 영광은 끝장일세.”
“이제 양치기가 모두의 머리 위에 군림하게 되겠군.”
“우리는 새 왕조의 탄생을 방해한 머저리들로 남겠지.”
“아니면 아카이아의 발 아래 모두 사이 좋게 짓밟히는 길도 있는데.”
“···.”
“···.”
“···.”
다르다노스는,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그리고 그 모든 소란의 중심에는 단 한 사람이 있었다.
***
“파, 파리스 님?”
“···후우우, 역시 안탄드로스에서 개선식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파리스 님께서 잘못하신 건 없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개선식을 안탄드로스가 아니면 어디서 할 수 있었을까? 네 판단은 옳았어. 가장 많은 재산을 쏟아붓고,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게 안탄드로스인데 트로이아에서 개선식을 열 수야 없지.”
나도 알았다.
아이네이아스와 헥토르의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란 걸 잘 알았다.
트리에레스로 구성된 저 대함대를 유지하는 데 가장 많은 재산과 노력을 헌납한 게 안탄드로스의 시민들이다.
숱한 식민 도시에, 4만 명의 시민과 20만 명의 비시민 인구를 거느리던 아테네가 200척의 트리에레스로 구성된 함대를 유지했었지. 개중 25척 정도를 매해 새로 교체했고.
우리가 유지하는 29척의 함대는 그보다 양과 질 모두 떨어지지만, 아테네 제국보다 훨씬 작은 안탄드로스와 그 동맹시들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서 노 젓는 사람만 5,000명이 넘긴다.
그 배들을 건조하기 위해 재산을 기부한 사람들, 나를 향한 신앙심으로 노력한 수많은 조선공들, 목수들, 대장장이들을 생각하면 저 함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흘렀는지는 가늠도 어렵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해전에서의 승리는 안탄드로스를 향해 바쳐져야 했다.
그렇지만 이번 대승리로 트로이아의 시민들은 흥분하면서도 어쩐지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다르다노스는? 아예 그런 기색조차 없다. 이제 찍 소리도 못할 신세가 될 걸 아니.
내 행보는 이제 고향을 지키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담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제국’.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가능성이, 내 주위에서 소용돌이친다. 에게 해 주위의 모든 세력들이 나를 주시한다. 혹시 이를 단초로 트로이아 세력 내에서 분열이 본격화되지는···
“파리스?”
“아··· 형님.”
헥토르는 내 양어깨를 가볍게 쥐고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왠지 두발자전거를 탈 때 뒤에서 누가 잡아주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잘했어.”
“···.”
“넌 잘했고, 그래서 이겼어. 네가 사람들을, 우리 가족을 지켰어.”
헥토르는 내 어깨를 놓은 뒤 창밖으로 시끌벅적한 안탄드로스의 전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자.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으니까.”
“···네.”
헥토르의 단단한 미소를 보며 나는 가슴속에서 안정감이 뿌리내리는 것을 느낀다.
아, 이 사람이 살아 있는 한 트로이아에 분열은 없겠구나.
“저도 힘낼 테니까···.”
···얘도 그렇고.
안탄드로스에 모인 세 왕자는 그렇게 승리를 축하했다.
***
“맙소사···.”
아카이아인들 역시 패배를 믿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저 재수 없이 풍랑을 맞아놓고 변명하는 거라 여겼다.
실제로 죽은 수의 반의 반, 아니 그 반만 하더라도 그들은 수긍했겠지만··· 단 한 차례의 회전에서 5,000명을 잃었다는 말을 쉽게 믿을 이들은 없었다.
“몇이나 되는 장수들이 죽었소?”
“일단은 크레타 쪽 장수들은 죄다 죽거나 사로잡혔다 보면 될 게요. 나머지 아테네와 다른 국가들도 피해가 크다더군.”
물론, 그런 부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증거가 너무 많았으니까.
이도메네우스가 패배했다.
100여 척의 배들, 5,000여 명의 병사들을 수몰시키면서 그의 계획이 틀렸음은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해전? 아카이아에서 가장 숙련된 선원들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던 크레타가 어떻게 되었나?
“해전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상륙합니다.”
안 그래도 이도메네우스와 별개로 진행되고 있던 전쟁 준비는 그렇게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메넬라오스가 굳이 선언할 필요도 없이 이 자리에 모인 다른 모든 왕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상륙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하겠소?”
“일단 대함대를 꾸려 일시에 움직이는 건 자살행위지. 적들의 군선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인 듯하니.”
“어차피 우리가 거점을 차린 테네도스와 트로이아의 해안은 매우 가깝소. 각개격파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일단은 따로 떨어져 기동한 뒤 ”
“얼마간의 손실은 일단 다들 감안하도록 하시오. 아, 그리고.”
회의 도중 오디세우스는 모두의 말을 끊으며 슥 한쪽을 향해 돌아본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모인 애매한 위치의 인간들, 아직도 메넬라오스와 아킬레우스 중 편을 정하지 못한 이들, 대부분 이도메네우스에게 붙었던 이들.
그들을 바라보며 오디세우스는 웃어보였다.
“혹시라도 배에다 그 ‘까마귀’를 붙였다면 다들 떼어버려야 할 것이오. 때아닌 강풍을 맞아서 아까운 군함을 수장시키지 않으려면.”
“···.”
“···.”
경고다.
너희가 제대로 편을 정하지 않고 경거망동한 결과에 대해 자각하고, 이제 어느 쪽에 설지 결정하라는.
그리고 더 장난질 치다가는 정말로 재미 없을 거라는.
게다가 오디세우스의 말에 메넬라오스나, 네스토르 등 다른 무게감 있는 왕들이 한 마디 반박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다. 그 사실이 더욱 그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회의가 끝난 뒤 그들은 저들끼리 모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모두 이도메네우스의 어리석은 계획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