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52
아이아스가 필록테테스 파벌에서 활약하며 무훈을 쌓아갈수록, 자연히 그는 메넬라오스에게 그 전공을 과시하며 구애하리라.
그렇게 필록테테스 파벌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가 쌓이고 쌓이면··· 적절할 때 개입해 그 전공까지 한꺼번에 먹어버린다.
디오메데스는 메넬라오스의 계획에 몸서리가 쳐졌다.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그보다는 디오메데스 님, 이리 와서 지도나 함께 보시죠.”
그들에게는 더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이 쌓여 있었으니, 메넬라오스는 화제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메넬라오스는 손가락으로 테네도스 섬과 트로이아의 영향권 사이의 좁은 바다를 가리킨다.
“어차피 횡단해야 할 거리도 적습니다. 머지 않아 저희가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상륙하려 한다면 최적의 조건이죠.”
“적들의 해군이 걸림돌이 되지 않겠나?”
“어느 정도의 손실은 감안해야 합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각개격파가 걱정되더라도 조금씩 소규모로 갈라져서 가야겠죠.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해전만은 피해야 합니다.
“그럼 일단은 아킬레우스 측에서 콜로나이 쪽에 상륙하고자 하니 우리는 거기서 자릴 좀 비켜서···”
“그래, 콜로나이의 군주 키크노스가 그렇게 강력하다더군. 일단 그쪽의 점령은 저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나눠서 상륙한 뒤 어디서 집결할지를 정하지.”
그렇게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싸움에 대한 중요한 대화를 나누었다. 앞으로의 전투에 관해 대비하고, 아군의 다른 파벌을 어떻게 견제할지에 관해서.
그렇게 계획을 짜는 메넬라오스의 귓가에, 조용한 속삭임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잘하고 있다, 아우야.’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고, 뒤흔들고, 끝까지 집어삼켜라.’
예, 형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초토화 (1)
안탄드로스에서 개선식을 진행한 뒤, 우리는 머잖아 트로이아로 향했다. 아무래도 왕자 셋이서 승리 이후에 안탄드로스에만 박혀있기는 그림이 좋지 않으니.
그리고 트로이아인들의 환호를 받으며 궁전에 들어서자 프리아모스는 우리에게 자세한 정보들을 캐물었다.
몇 번이고, 질문과 답변이 이어진 뒤에야 프리아모스는 비로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의 목표는 결국 해협이었던 게지. 예상대로.”
“맞습니다, 아버지.”
“거기다 해협을 건너 프리기아와 아마존을 타격하고, 다르다노스로 건너와 후방을 불안정하게 하면서 트로이아 내부의 분열을 획책하려 했다고···.”
프리아모스는 우리가 정리해온 이도메네우스의 이야기를 되짚고서 생각에 빠진 듯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안키세스가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며 말한다.
“큰일을 해줬구나. 너와 네 함대가.”
“앞으로는 트리에레스들이 두서너 척씩 함께 다니며 트로이아의 해안선을 돌아다닐 겁니다. 물론 이걸로 적들의 상륙을 막거나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거슬리게는 할 수 있겠죠.”
“아주 훌륭한 일이지.”
안키세스는 그리 말한 다음 프리아모스에게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기회로군요, 주군.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입니다.”
“그렇지. 자네의 말이 옳으네, 사촌이여.”
“어떤 점에서 말씀이십니까?”
“적들이 우리의 동맹들을 위협하여 트로이아의 지도력을 무너뜨리려 한 것이니 말이다.”
이번에는 프리아모스가 내 말에 답해주었다.
“특히, 적들은 해협을 노렸지.
레소스가 비록 아직도 트라키아의 여러 부족들을 상대하고, 저 북방의 위협과 싸우느라 눈 돌릴 틈이 없겠지만 적어도 아카이아의 움직임을 곱게 보지만은 않을 게다. 게다가···.”
그 다음에 이어질 말은 나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존이 움직여 주겠군요.”
“···그래. 그들이 남았지. 아직도 재건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지만, 적들이 언제든 자신들을 노릴 수 있음을 확인하면 참전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재건에 우리의 도움이 크게 필요하기도 한 상황이니.”
“그러면 사절로는 헥토르 형님이 갑니까?”
“헥토르라? 절대로 안 되지.”
안키세스가 내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절대로, 절대로 안 될 말이다.”
“···그럼 제가 갑니까? 그래도 제가 펜테실레이아 님과는 면식이 있잖습니까?”
“너도 안 된다.”
“어째섭니까? 아카이아인들의 상륙이 임박해서 장수 한 사람, 한 사람이 급한 건 알지만 아마존의 협력도 중요한 것 아닙니까?”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거냐? 아, 너는 아마존인들을 겪어본 지가··· 흠··· 꽤 되었지. 횟수로 따지자면 몇 번 안 되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튼 헥토르든, 너든, 내 아들 녀석이든 전부 안 된다.”
“너희 셋 다 결혼한 몸이니까.”
나는 순간 안키세스가 뭐라 이야기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가···
“어, 어어, 아아아···.”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아니, 나도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러는지.
“특히 너는 안 된다. 너 같이 나르키소스 꽃처럼 잘생긴 아이를 지난번에 저 족속들이 가만 놔둔 것만 해도 신들의 도우심이 있었던 건데, 이번에 다시 가면 정말 생각지도 않은 아이가 생길지도···”
“더 이야기하실 필요 없습니다.”
“정말이냐? 나는 이야기하다 보니 너무 흥미롭구나. 너는 네 아름다움에 대해 참 자각을 못 한단 말이지. 그 점이 또 아프로디테 님과 내가 꼽은 너의 매력 중 하나이기도 하고 말이다. 자기가 아름다운 줄 깜빡하는 아름다운 아이가 세상에 얼마나 흔치 않은 자산인 줄 아느냐?”
“···.”
아무튼 내가 뭐라 답하지도 못하고 얼굴을 식히고만 있자 안키세스는 세상 즐거운 듯이 싱긋싱긋거린다.
구원을 바라며 프리아모스 쪽을 바라보자 그쪽도 근엄한 미소 아래 흥미로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젠장, 사촌끼리 이리 짝짜쿵이 잘 맞으니 다르다노스가 반란 걱정이 없지.
“···그럼 누구를 사절로 보내실 생각입니까?”
“일단 당장 짝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 적당히 급이 되면서, 펜테실레이아와 나쁘지 않게 면식이 있는 사람.
원래는 그래서 공주 중 한 사람을 보낼까도 생각해봤는데 공주 중 펜테실레이아와 면식이 있는 아이가 없더구나.”
“그러면 누가 남습니까?”
내가 아는 왕족이나 귀족 중에서는 슬슬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사람이 누가 있지?
그렇게 묻자 안키세스는 망설임 없이 답한다.
“꼭 왕실 인사여야 할 필요는 없지. 저들은 전사를 숭앙하니, 이름 높은 전사라면 될 게다.”
“이름 높은··· 전사 말씀이십니까?”
“그래. 예를 들면···”
***
“···푸흡, 트로이아인들이 무슨 생각으로 자네를 사절로 뽑았는지 알 것 같군.”
펜테실레이아는 눈앞의 남성을 보며 손뼉을 치고 웃는다.
“그래. 네놈도 적당히 생겨먹었지. 적당히 훌륭한 전사고. 적당히 전장에서 여러 번 겨뤄본 바가 있으니 나와 면식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터. 게다가 나와 대단한 은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적당한 인사구나.”
그 말대로였다. 남자는 수많은 전장에서 그녀를 보았다. 보통 뭔가를 불태우거나, 재물을 약탈하거나, 전차 위에서 창으로 사람을 꿰뚫거나 하는 모습으로 마주쳤지만. 당연히 남자는 그녀의 적이었고.
그러니 이렇게 ‘공식적으로’ 접촉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여왕을 어찌 대할지 몰라 고민하는 가운데 펜테실레이아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자기 장남이나 차남을 내주지 않은 라오메돈의 아들 프리아모스의 넉넉하지 못한 인심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구나.”
“주군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왕자님들은 당신을 향한 공물이 아닙니다.”
“아니, 너무하구나? 쓴다고 닳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맙소사, 야만인들이란.”
“하, 방금 네놈이 뱉은 방자한 발언은 내 친히 용서해줄 테니 감사히 여기거라.
포다르케이아의 테오.”
테오는 순간 여왕의 발언과 자신의 발언 중 어느 쪽이 더 무례한가 심각하게 고민해보다가, 자신이 도움을 청하러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 내 아무리 찾아봐도 트로이아에 포다르케이아라는 지명은 없던데. 너와 창칼을 맞댄 것도 몇 번은 되고, 네놈도 이제 불사조 근위대자···”
“근위대장입니다.”
“그래, 근위대장으로서 드높은 지위에 올랐는데 나는 네놈의 출신지나 가문도 모르는구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테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에 양손에 쥐여진 무언가를 내다보았다.
“···그 전에, 저는 트로이아에서 아마존 족의 여왕께 보낸 사절이 아닙니까?”
“물론 그러하다.”
“그런데, 제가 왜 창을 쥐고 여왕님과 대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직도 모르겠다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너희 족속과 우리 족속이 다퉈온 역사도 하루이틀이 아니거늘.”
일반적인 사람은 양손으로 움직이기도 힘들 만큼 기다란 창대를, 펜테실레이아는 한 손으로 장난감처럼 휘두르며 자세를 잡는다.
“그냥. 내가 원하니까.”
“···.”
“그래, 그래, 알았다. 네가 나를 이기거나 만족시키면 군말 없이 너희 트로이아로 원군을 보내겠다. 내 직접 그 원군을 이끌 것이다.”
-쿵!
펜테실레이아는 창대로 바닥을 내리찍으며 말을 이어간다.
“허나 네가 패배하거나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너희 나라는 우리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런 중대한 일이 대련 한 번으로 결정되다니요.”
“중대한 일이기에 대련으로 결정되는 게지. 내가 단순히 고결한 혈통 때문에 모든 아마존의 여왕인 줄 아느냐? 내가 가장 강하고 위엄 있기에 부족장들은 내게 절대적 충성을 맹세한다.
우리는 왕조차 그리 정한다. 헌데 타국에 원병을 보내는 일에 대해서는 그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냐?”
그 말에 테오가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휘이이이이이익!!!!!!
거대한 풍압이 그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뒤를 돌아보니 굵은 목제 기둥 하나가 깔끔하게 투창에 관통당해 있었다.
“이런 미친···”
“앞을 돌아봐라!!”
-쾅!!!!!!
펜테실레이아의 급습. 목덜미를 깨물기 위해 달려오는 창날을 겨우 창대로 쳐낸다.
곧장 강렬한 충격이 테오의 양팔에 가해진다. 그가 능숙하게 온몸으로 충격을 분산시킨 다음 방어자세에서 신속하게 공세로 전환하자···
-후우우우우웅!!!!
육중한 도끼날이 허공을 가르며 묵직한 파공음을 낸다. 펜테실레이아의 머리카락 몇 올이 잘려나가 허공에 흩날린다.
“···역시.”
펜테실레이아는 자신의 나폴거리는 머리칼을 바라보면서 휘파람을 분다.
“그때, 그렇게 약해빠졌었던 건 그 어여쁜 왕자 녀석을 지켜주느라 그랬던 거였군. 게다가 그 무기에 익숙하지도 않았었고.”
펜테실레이아의 시야에 반짝반짝하게 잘 닦인 할버드의 넓고 무거운 날이 들어온다.
회색빛으로 빛나는 강철의 날이 얼굴을 향해 직격한다.
“여유 부리실 시간은 없을 겁니다!!”
-카카카카카칵!!!!
두 날붙이와 창대가 또 다시 충돌하며 굉음을 낸다. 테오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면서도, 펜테실레이아는 그 무게감에 약간 휘청이며 뒤쪽으로 걸음을 뺀다.
펜테실레이아와 몇 번이고 다시 충돌하면서 테오는 무언가를 깨달아간다.
처음 이 기괴한 무기를 받아들었을 때는, 그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창날에 무거운 도끼가 달려 던지거나 하기에는 불리해졌다. 게다가 앞쪽에는 도끼날이, 뒤쪽에는 끌개가, 끝에는 창촉이 달려 있으니 뭘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기의 활용법이 복잡하다는 건, 익숙해지기만 하면 그만큼 다양한 활용으로 적에게 예측불허의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창대 끝에 무게가 쏠리게 되었다는 건, 그만큼 적에게 강한 충격력으로 공세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상대방을 향해 창끝으로 찔러 쇄도할 수도 있고, 도끼날로 이런저런 곳에 무게를 실어 찍어버릴 수도 있다. 끌개로는 적의 관절이나 갑옷 부분을 걸어 잡아당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콱!
“이, 비겁하게···!”
“헥토르 님과 싸울 때 족장들의 도움을 받은 건 비겁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펜테실레이아의 흉갑에 끌개를 걸어버린 것처럼.
일순간 펜테실레이아의 몸에서 균형감이 깨지고 여기저기 빈틈이 드러난다.
개중 테오는 펜테실레이아의 왼어깨를 노리기로 마음 먹으며 도끼날을 아래로 휘두른다. 이제 펜테실레이아의 입에서 ‘항복’이라는 소리만 나오면···
“이쯤 했으면 충분하겠군.”
“예?”
그리 생각했다.
-깡!!!!
펜테실레이아가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어깨를 뒤로 피한 뒤 할버드의 창대를 잡아채기 전까지는.
“아, 아니, 제기랄···!!”
-쾅!!!!!!
펜테실레이아가 창대의 한 쪽을 손에 쥔 채 테오의 손 쪽을 발로 차버리자, 테오는 순식간에 할버드를 놓쳐 버린다.
테오가 맨손으로 방어할 틈도 없이 테오의 품 깊숙이 침투한 펜테실레이아는 주먹으로 테오의 흉갑을 쾅, 하고 두드린다.
가슴팍을 울리는 충격에 그가 정신을 못 차리는 가운데 펜테실레이아가 그의 발을 걸어 뒤쪽으로 넘어뜨린다.
-쿵.
무기도 놓쳤고.
심지어 날 죽이쇼, 라고 말하듯 넘어졌고.
게다가 상대는 목 쪽으로 창날을 겨누고 있으니.
“졌습니다.”
뭐라 말을 더 붙일 것도 없이 테오의 패배였다.
그렇다. 사실 헥토르 왕자를 상대로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펜테실레이아를 그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펜테실레이아가 적당히 봐주면서 그의 실력을 가늠하고 있었으니 이 정도라도 버틴 거지.
“···역시, 실전이었다면 상대도 안 되고 무너졌겠군요.”
“그래도 네놈 역시 훌륭했다. 다른 장수와 싸우고 있을 때 널 적으로 마주치면 아주 까다로워지겠어.”
“아닙니다. 역시 아레스의 따님이시자 모든 아마존 부족의 통치자이십니다. 강력하시기가 이를 데가 없습니다.”
“이를 데가 없기는. 결국 결투에서는 네 주군의 장남에게 패했고, 전투에서는 차남에게 패하기 직전까지 갔다.”
펜테실레이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테오의 목에서 창날을 치웠다.
“물론 내 허리띠를 되찾는다면 어찌될지 모르겠다만. 나는 그런 변명 따위로 패배를 덮어버리고 싶지 않군. 전사로서 불명예스러운 짓이니.”
“그 허리띠를 훔쳐간 아카이아인 왕이 지금 이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또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아마존 족을 향해 오던 적들의 함대를 막았습니다. 여왕께서는 저희에게 빚을 지셨습니다. 지원을···”
“그만.”
펜테실레이아는 조용히 테오를 향해 가까이 걸어가며 말한다.
“트로이아를 향한 지원은 당연한 것이다. 결정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 물론 대단한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을 거다. 트로이아의 생존이 곧 우리의 생존이 아니겠나?
오히려 우리가 정착에 바쁘지만 않았어도 이보다 더 빠르게 참전했을 텐데.”
“그렇다면 혹시···”
“다만, 자네가 내게 패배했지. 아직 나를 만족시키지도 못했고.”
펜테실레이아는 웃으며 말한다. 테오가 문득 뭔가 불길한 상상을 하는 가운데 그녀가 손짓하자 막사에 있던 전사들이 무언가를 끌고 온다.
침대다.
테오는 자신을 환송하며 계속 낄낄거리던 안키세스 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잘 가게. 자네의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지 알지? 그리고··· 뭐··· 하하하, 푸흡. 자네가 헥토르와 파리스의 대신일세.’
제기랄.
뭘 대신하는지는 어쩐지 얘기도 안 해주더라.
“자, 잠시만요. 이런 말씀은 없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패배의 대가가 뭐가 될지 얘기한 적 있던가? 이런 게 아닐 거라고 얘기한 적도 없었을 텐데.”
펜테실레이아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테오를 번쩍 들어올린 뒤 침대로 던진다.
“헥토르, 아니면 파리스. 둘 중 하나를 바랐지만 둘 모두 얻지 못했지. 네놈 정도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여흥거리 정도로는.”
“저, 저···”
“말하라.”
“감히 말씀드리건대, 부디 한 번만 더 싸워보면 안 되겠습니까? 다음 싸움에서는 여왕께서 만족하실 만한 수준을 보여드리겠습니···”
테오는 더 말하지 못했다.
펜테실레이아가 그의 입을 막았다.
입으로.
대략 머리가 멍해진 테오가 눈을 크게 뜬 채 정신을 놓고 있자, 아마존인들의 여왕은 웃으며 답한다.
“그럼, 여기서 싸움처럼 임하게.”
그렇게 두 번째 대련이 시작되었다.
초토화 (2)
트로이아의 궁전에서 유독 높은 망루 같은 곳으로, 나는 올라간다.
“왕자님, 직접 오실 필요 없습니다. 물론 지금쯤이면 산가리오스 강 너머에서 여기까지 서신이 닿을 때이지만 그래도 하루에서 사나흘까지는 오차가 생깁니다.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도 아네.”
“그렇다면 더더욱 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도 이곳으로 직접 올라와서 기다리셨다가 허탕만 치지 않으셨습니까?”
“괜찮네. 그냥··· 천하게 살 때부터 몸 쓰는 게 익숙해지니 이렇게 내가 직접 바로 뛰는 게 나아서.”
“···.”
“···.”
“그냥, 신경쓰지 말아주게.”
신분 얘기가 나오니 순간 조용해진 환관과 시종들이 물러난다. 됐다. 뭔가 쓸쓸하고 처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해주면 약발이 좋다니까.
그렇게 할 일 없이 혼자 장기나 두며 기다린 지 두어 시간 정도.
-푸드덕.
반가운 소리가 들려와 나는 빠르게 창문을 연다. 그러자 저 멀리 하늘에서 익숙한 비둘기가 날아온다.
아주, 아주··· 익숙한 녀석이다.
그래. 오랜만에 이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고 왠갖 생지랄을 떨었지.
나는 곧장 비둘기 다리에 묶인 서신을 펼쳐보았다. 아, 옛날 생각난다. 마치 초등학생 때 자주 들르던 문방구에 어른이 되어 돌아와 먼지 쌓인 캡슐 뽑기 기계를 돌려보는 기분이네.
물론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전혀 내 추억과 상관 없었지만.
-‘아마존 참전 확정. 병력 총원 3,000명, 전차 30대.’
“오··· 형, 수완이 괜찮네?”
테오 형이 해냈다.
아마존이 참전한다. 그것도 3,000명이나 되는 전사들을 이끌고. 무려 5 오디세우스에 달하는···
“파리스?
“아,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