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63
“무슨 예언 말이오?”
“아무것도 아니오.”
나는 몸을 벌떡 일으킨 뒤 방을 나섰다. 뒤에서 필록테테스가 뭐라 외치는 것 같은데, 전혀 들리지 않았다.
엔노모스.
마치 ‘누군가’에게 점지라도 받은 듯 우리를 찾아온 사내.
미시아의 거의 모든 장수들이 탈출에 성공했을 때 홀로 사로잡힌 사내.
예언자.
새점쟁이.
그가 아킬레우스를 홀로 만났다.
전쟁에 대해 신들이 침묵하여,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지 못하는 아킬레우스를.
그가, 아킬레우스에게 무엇을 말해주었을까?
아킬레우스가, 무엇을 전해들었기에 갑자기 틀어박혔을까?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준족의 아킬레우스가.
무엇을 두려워했기에.
···답은 뻔하다.
운명이다.
내 몸이 순간 앞으로 기우뚱하니, 시종이 급히 나를 부축한다. 나는 그를 뿌리치고서 곧장 등대로 향했다.
“파, 파리스 님?”
“지금 당장 트로이아로 신호를 보내도록 하게. 내가 찾아간다고. 급히 만날 일이 있다고.”
모든 예언자가 침묵한 게 아니다.
“무, 무슨 일이 있다고 전할까요?”
신들이 이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 예언자가 신의 의지에 따라 아킬레우스에게 ‘무언가’를 전했다.
아마도, 이 세계의 필멸자 중에서는 나 말고 아무도 모를 그의 운명에 대해서.
그렇다면··· 이 상황에 대해 파악해보려면···
내가 아는 가장 제대로 된 예언자를 찾아가 봐야지.
“카산드라.
카산드라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게.”
카산드라 (2)
“파리스! 헤라클레스의 후계자 파리스!!”
“위대한 승리자여! 바다에서 아카이아인들을 죽이고, 들에서 그들의 목숨을 하데스께 보내는 자여!!”
“듣기로는 필록테테스를 꺾고 헤라클레스의 활을 취했다던데. 트로이아까지 들고 오지는 않은 건가?”
“그게 보통 물건도 아니고 왜 여기까지 들고 오겠습니까? 싸우러 온 것도 아닌데.”
“···.”
역시 입 다물고 손이나 흔드는 게 낫겠다. 내가 웃으며 마차 위에서 손을 흔들자 시민들이 눈에 띄게 기뻐하며 환호한다. 이유는 뻔하다.
내가 승전보를 가져왔으니까.
당장 안탄드로스와 그 동맹시를 방어할 때, 나는 안탄드로스의 병력과 텔레포스의 군세만으로 적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 이유가 뭐였나?
바로 코앞에, 저 테네도스 섬에 아카이아인들이 웅크리고 있는 한 트로이아의 영역 어디도 안전하지 않으니까.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트로이아가 곧장 위협당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프리기아인들과 아마존인들 역시 각자 맡은 영역을 감시하며 적들을 경계하고 있다. 헥토르도 다른 왕자들과 함께 트로이아 근방에 주둔하며 상시 전투를 준비한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긴장 속에서 청야 전술로 인한 대규모 인구 이동이 불안을 한층 더했다. 트로이아인들은 아마 지금도 피가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으리라.
어쩌면 바로 내일, 아카이아인들이 저 성벽 아래 몰려올 수 있을 테니.
그리고 내가 여기 왔다.
모두가 긴장하고 있는 지금, 두 번째 승리를 거머쥐고서.
“···그러니, 형님이 이렇게 트로이아에 찾아오신 게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헬레노스는 향로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목재가 타오르는 향내가 정신을 또렷하게 한다.
“승전을 거두고 의기양양해진 둘째 왕자가 다음 왕위를 노리고서, 시민들의 호감을 얻고자 곧장 왕도로 올라왔다든가.”
“그러기에는 시민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왔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제의하신 화려한 개선식이나 다른 모든 행사도 거절했고.”
“그래도 위험했습니다.”
“위험을 감수할 만했다.”
“그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도 그랬죠. 헤시오네 님이나, 심지어 카산드라 본인도 의아해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형님을 이리 먼저 맞이하게 되었지요.”
“카산드라가 내게 물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아시다시피 제 쌍둥이는 영혼이 불안한지라.”
헬레노스는 심호흡을 하며 향목이 타오르는 내음을 가슴 깊이 빨아들인다. 어쩐지 꿈을 꾸는 듯 차분하면서도 몽롱한 눈빛이 나를 훑는다. 그의 몸은 지난번처럼 제의라도 지냈는지 올리브유 범벅이었다.
“전투를 막 끝낸 직후에 안탄드로스를 비우고서, 홀로 트로이아로 향해야 할 만한 가치가 제 쌍둥이에게 있습니까?”
“어차피 내 일신의 무력은 그리 대단치 않지. 텔레포스 왕과 에우리필로스 왕자가 우리 동맹시들을 지킬 테고 군주로서의 업무는 이노와 다른 신하들이 알아서 해줄 거야.”
“그건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닙니다.”
“···.”
“혹시.”
헬레노스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눈을 맞춘다. 나와 닮은 고수머리에, 어쩐지 황금빛으로 빛나는 듯한 눈동자가 나른하게 나를 응시한다.
“신들께 다가가고자 하십니까? 해서, 예언에 능하고 아폴론 님의 사랑을 받는 저희 쌍둥이를 보러 오신 겁니까?”
“···그래.”
“무엇 때문입니까? 어차피 형님께서 무얼 하시든 신들께서는 함구하실 터입니다.”
헬레노스는 수건을 가져다 목과 가슴께에 아직 반들반들하게 묻어있는 올리브유를 닦아내며 말한다.
“이미 전쟁의 초기부터 신들께서는 필멸자들에게 침묵 외에 다른 것을 들려주지 않으시리라 결정하셨습니다. 더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실 수는 없습니다.”
“아니야.”
“뭐가 말입니까?”
“신들께서 침묵을 깨셨어. 신들께서 한 인간에게 예언을 내리셨다. 미시아의 엔노모스에게.”
“···.”
“너도 예언자라니 신들에 대해 뭔가 알겠지? 그리고 카산드라는 네가 모르는 것도 알지 모르고. 그래서 왔어.”
내 말에 헬레노스는 한참동안 몸이 굳은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에 빠졌나 싶어 내가 손뼉이라도 쳐볼까 하던 차에 헬레노스는 몸을 일으키고는 내게 턱짓했다.
“그럼, 가죠.”
“뭔가 말해줄 수 있겠나?”
“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신들께서 침묵하시니, 저 또한 침묵할 뿐입니다. 순명(順命)은 저의 미덕입니다.”
헬레노스는 신전의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선다. 햇빛이 우리 둘을 향해 내리쬔다.
“하지만, 제 쌍둥이는 뭔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
우리는 곧장 카산드라의 집으로 향했다.
“오라버니, 와주셨네요!”
“코로이보스는?”
“프리기아인들을 이끌고 근처 도시에 나가 있어요. 아무튼 그 사람은 지휘관이니까요.”
카산드라가 내 양 손목을 쥐고 환하게 웃었다.
“음료나 과일이라도 가져올까요?”
“둘 다 괜찮아. 일단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해야 할 이야기요?”
“‘네 명이 짧고 길지 않을진대, 마땅히 너는 눈물과 고통 없이 함선들 옆에 앉아 있어야 할 것이다.’”
“···‘하거늘 지금 너는 명도 짧은 데다 누구보다도 불행하구나. 이런 비참한 운명을 맛보게 하려고 내가 궁전에서 널 낳았단 말이냐.’”
일리오스 1권 415행에서 418행.
눈물로 탄원하는 아킬레우스에게 답하는 어머니 테티스의 말.
역시나, 이것으로 사정 설명은 끝났다.
카산드라의 눈동자가 커지고, 그녀의 손이 떨린다.
“아킬레우스가 자기 운명을 알았군요.”
평범한 인간으로서 오래 살거나, 트로이아의 전장에서 명예를 얻고 단명하거나.
“그래. 신들께서 가르쳐 주셨어.”
우리의 대화에서 호기심보다도 거부감을 느끼는 듯, 헬레노스는 몸을 뒤로 젖혔다. 그리고 말했다.
“형님, 신들께서도 필멸자들의 전쟁을 주시하고 계십니다. 분명 무언가 의도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걸 알아보려고 하는 거야.”
“저는 그래서 그걸 감히 알려 하면 안 된다 하려 했지만··· 형님은 형님이시니까요.”
“내가 어떻길래?”
“제 쌍둥이와 같지요. 운명에서 튕겨나와 계신 분입니다.”
“···.”
여전히 알쏭달쏭한 말이었지만, 나는 헬레노스의 말에 표정이 굳었다.
‘튕겨나와 있다.’
헬레노스는 지난번에도 그렇게 카산드라를 묘사했고, 이번에는 나를 가리킬 때도 그리 말한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카산드라가 말한다.
“그래서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장수하는 신들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알아보시려고요?”
“여기에 대해서 상의할 수 있는 게 너밖에 없으니까.”
뭐가 되었든 간에, 지금 아킬레우스의 운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일리아스의 구절구절을 외우고 있는 나와 카산드라뿐이다.
“혹시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어? 신들의 의지가 이 전쟁에 개입하고 있어. 그 방향성에 대해 알아야 해.”
카산드라는 내 말에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고개를 젓는다.
“미안해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씁, 결국 이렇게 되나.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럼 알겠···”
“하지만 뭔가 이상한 건 보여요.”
···가 다시 자리에 앉는다.
“어떤 게 보이는데?”
“어···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뭔가 많은 사람들이 죽고, 폭풍이 치고··· 설명이 불충분한가요?”
“···응.”
“어쩔 수 없습니다, 형님.”
내가 카산드라의 애매한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헬레노스가 끼어든다.
“형님께서는 신들의 본모습을 보셨지요.”
“그래.”
“그걸 말로 묘사해보십시오.”
나는 잠시 헤파이스토스와 아레스의 싸움을 중재하러 갔던 그때를 떠올렸다가··· 눈을 질끈 감는다.
···수만개수억개의망치와거대한철강산업단지와소련의핵물리학자들과하늘을덮는미사일과바그다드를불태우는제국의장수들과도쿄를불바다로만드는미국의항공기와···
···아.
“···이해했어.”
“방금, 눈을 감고 계신 지 꽤나 지났습니다.”
헬레노스의 손길을 따라 주위를 돌아보니 꽃병이 드리운 그림자의 방향이 조금 바뀌어 있다.
맙소사.
“괜찮습니다. 이러니 예언하는 이들이 보통 광인처럼 보이지요. 그 압도감과 함께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진이 빠져 물을 들이키는 사이에도 헬레노스는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렇기에, 제 쌍둥이 같은 이가 드문 겁니다.”
헬레노스가 씁쓸하다는 듯 웃으며 카산드라를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돌린다. 표정을 굳힌 채.
“그게 무슨 뜻이지?”
“형님은 그런 위대한 존재들께서 삶을 함께하자 청하신다면, 그를 거부하실 수 있겠습니까?”
헬레노스의 말은 계속 알 듯 말 듯하기만 했다.
나는 카산드라와 헬레노스가 어떻게 예언능력을 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카산드라에게 사랑에 빠진 아폴론이 그녀에게 예언 능력을 주었고, 그녀가 자신을 거부하자 대신 그녀가 내리는 예언을 누구도 믿지 않도록 저주를 주었다.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그러나 쌍둥이 헬레노스가 어떻게 예언 능력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판본의 이야기를 취할 수밖에.
“어렸을 때 둘이서 신전에서 놀다가, 뱀이 다가왔었나?”
내가 말을 꺼내는 순간, 헬레노스의 차분한 얼굴이 깨진다.
신전에서 놀던 두 사람에게 뱀이 다가와 귀를 핥으니 예언 능력을 얻었다.
그런데 이 버전이 맞다고 치면···
“두 사람은 왜 달라진 거지? ‘튕겨나왔다’는 건 또 뭐고.”
···카산드라의 저주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론은 두 이야기 사이 어딘가에 있겠지.
헬레노스가 굳어진 표정으로 양손을 맞잡는다. 카산드라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한참동안이나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다가, 입을 연 건 카산드라였다.
“···헬레노스 말대로예요.”
목소리를 떨면서.
“제가, 싫다고 했어요.”
“뭐가 싫다고 했던 거야?”
“아폴론 님은, 저희한테 밝은 눈과 귀를 준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함께하자고 했어요.”
“함께하자는 게 어떤 의미였어?”
“그분을 섬기면서,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신관이나 무녀로서.”
“···.”
“저는 싫다고 했어요. 그 뒤로···.”
“저주를 받은 건가?”
나는 납득했고.
카산드라는 고개를 저었다.
“저주가··· 아녜요.”
“저주가 아닙니다.”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저주가 아니라니? 그럼 뭐지?”
“오라버니, 혹시 제가 본 걸 다른 사람한테 말한 적 있나요?”
“뭐?”
“제가 본 광경이요. 다른 삶과 세상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른 사람에게 얘기한 적이 있나요?”
다른 삶과 세상이라니?
···뭐에 대해서?
기원후 21세기에 대해서?
대한민국에 대해서?
“뭐라도, 한번 말해보려 시도한 적이 있나요?”
“아니.”
“왜요?”
“왜냐니··· 그야···.”
그냥.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었다.
사람들이 안 믿을 것 같아서? 미쳤다고 할까봐? 하지만··· 그냥 얘기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한번도 제대로 생각 못 해봤지?
“한번 해보세요. 저 말고, 헬레노스한테요. 아무거나요.”
“아무거나?”
“네.”
카산드라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헬레노스 쪽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헬레노스가 고개를 으쓱이니 나는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크흠, 그··· 내가 트로이 전쟁에 대해 알게 된 건 00년대 초의 학습만화 열풍 덕분이었어. 그리스 신화 만화가 대히트를 쳤거든. 그게 불핀치의 저작을 기반으로 한 만화였는데··· 04년쯤에 큰일이 생겼지.]
“···.”
헬레노스의 얼굴이 굳는다.
아니, 비틀린다.
아니, 뒤틀어진다.
아니, 존재 자체가 뒤틀어진다.
아니, 온 세상이 뒤틀어진다.
그렇게 나로부터 멀어진다.
나는 다시 입을 열어보았다.
[그래04년도쯤이었을거야19권을기다리던나는곧장아빠를졸라동네서점으로달려갔는데문제는그때쯤작가인홍X영선생과출판사의분쟁으로작가가교체당해서그림체에대격변이···]“형님, 그만하십시오.”
[···그때나랑똑같은목적으로서점에왔던애들이엄청울었어그게그냥눈물이아니라피눈물이었다고홍X영선생은그뒤로다른출판사를통해신작을내놓으셨지만7권을끝으로나오지않아E북이나중고서적으로만구할수있게되었···]“형님!!!!”
아.
“기이한 얘기로 절,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화병에는 금이 가 있었고, 탁자도 기울어 있었다. 머리를 만져보니 어느새 산발이 되어 있었고, 헬레노스의 얼굴에서도 핏기가 가셔 있었다.
나는 카산드라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어쩐지 슬퍼보이는 얼굴로 내게 웃어보였다.
“···알겠죠?”
“···응.”
‘튕겨나왔다’라는 말의 뜻을 정확하게 몸으로 깨달았다.
이걸··· 평생 겪었다고?
이 끔찍한 기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