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349
그렇게 10여 명의 영웅들이 마치 이전에 계획하기라도 한 듯 저 절대적인 재앙을 향하여 합격을 쏘아낸다.
그리고.
하투샤의 대왕은 한숨을 짓는다.
[···너희는 강하구나.]어느새 짧은 찰나만에, 그의 손에는 새로운 칼이 쥐여져 있었다.
흔히들 착각하지만, 청동(靑銅)은 그 이름과 다르게 푸른빛을 띠지 않는다. 대부분의 현대인이야 ‘청동기’라고 이름 붙은 물건을 볼 데가 대부분 역사 교과서뿐이니 잘못 생각하고는 한다.
청동이 청동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녹슬었을 때 푸르스름한 빛을 띠기 때문이다. 한국사 교과서 초장에 나오는 청동거울은 수천 년의 세월을 거쳐 녹에 둘러싸이면서 그런 빛을 띠는 것이다.
대왕의 칼날은 아직 그런 세월을 거치지 않았다.
먼 훗날 전설 속에서만 기억될 이 상고시대의 산물들은 여전히 찬란한 빛을 발하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청동 칼날은 태양광을 튕겨내며 붉게 불타는 주황빛이었다.
직접 달려드는 대신 멀리서 화살을 쏘아냈을 뿐인 나는, 그 빛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는지 자세히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곡선이었다는 것쯤은 알겠다.
찬란한 섬광과 함께 공기를 찢어발기는 굉음이 튀어나온다.
그 곡선이 헥토르의 칼을 부수고, 파트로클로스의 창대를 꺾으며, 오디세우스의 어깨를 베어낸다.
펜테실레이아의 한쪽 눈을 찌르면서, 이도메네우스의 손가락을 잘라내고, 레소스의 투구를 찢어발긴다.
그 다음에는 텔레포스의 흉갑이 갈라지자마자, 헬레노스와 데이포보스의 허벅지와 왼쪽 팔뚝이 깊이 베인다. 멤논 역시 발등이 그대로 찍혔다.
그리고.
-콰카카카카카키지지지지지직!!!
끔찍한 마찰음, 파열음, 금속음이 동시에 폭발한다. 마치 성대가 청동과 강철로 된 거대한 갓난아기가 울부짖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돌풍이 대왕의 주위로 몰아닥쳤고, 나는 그 탓에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단 한 번의 동작, 끊어지지 않는 단 하나의 곡선, 그 우아한 검로가 완성되자 피와 살로 된 폭풍이 일었다.
모래바람이 가라앉았을 때, 영웅들 중 멀쩡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수십 개의 공격이 꺾이고 막혔으며, 동시에 수십 번의 반격이 가해졌다.
[허억··· 크흡···.]그래도, 대왕이 숨을 몰아쉬기는 했다. 그는 온몸에 잘게 난 상처들을 쓰다듬으며 눈을 빛냈다. 그의 입가에서 한 줄기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피는 붉은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투명한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마치 불멸하는 신들의 혈액인 영액(靈液) 이코르와도 같이.
그가 무언가 입을 열려 하던 그 순간, 마지막으로 그의 목덜미를 무언가 스치고 지나간다.
-콰지지지지지지직!!!!
지금껏 다른 어떤 공격보다도 강렬한 타격, 대왕은 갑자기 쏘아진 무언가를 발로 차서 떨어뜨리면서도 급히 자신을 방어한다.
그러자 그의 목에서도 영액이 흘러나왔다.
대왕의 발길질에 튕겨나오면서도 그 무언가는 두 발로 겨우 균형을 잡고 서서 그를 노려본다.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였다.
그의 몸은 휘청였지만, 상처 하나 없었다. 그제야 하투샤의 대왕은 그에게 어떤 신비적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감탄하며 움직였다.
제국의 지배자가 한 걸음을 내딛으며, 무언가를 발로 찬다.
그 작은 살덩이는 이도메네우스의 새끼손가락이었다. 정신을 잃은 이도메네우스는 어느새 돌풍에 날려가 저 멀리에서 쓰러져 있었다.
[과연··· 너희는 필멸자 중에서 가장 용맹한 이들이다.]그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파트로클로스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칼을 움켜쥐며 일어섰고, 펜테실레이아 역시 문자 그대로 피눈물을 흘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헥토르 역시 어딘가 부러진 듯 보였지만 숨을 몰아쉬며 전투 태세를 유지했다. 텔레포스는 늙었지만 여전히 강인한 팔다리로 몸을 지탱했다. 테오가 단검을 집어 들었고, 아킬레우스가 대왕의 정면에서 버티고 섰다.
그러나 모두 만신창이였다.
[가장 강대한 육신을 지녔으며, 가장 질긴 투쟁심을 품었다···. 너희 서방 족속들이 섬기는 신들께서 너희를 아끼시는 이유를 알겠구나.]하투샤의 대왕 역시 숨을 고른다. 온몸에 난 상처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고통과 이물감이 느껴지는지 살짝살짝 얼굴을 찡그린다.
하지만 나는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상처 중 치명상은 없었다.
대왕은 우리 모두를 한 번씩 돌아본다. 내게도 시선이 머물렀다가 떠나간다.
그의 시선은 검은 망토를 걸친 채 숨을 몰아쉬는 누군가에게 향한다.
[트로이아 왕의 장자(長子). 너희 족속의 제일 간다는 영웅.]그리고 대왕은 기운을 짜내는 듯한 자세를 보이더니.
[너희들의 지휘관.]그 신형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헥토르는 망설임없이 움직인다. 내가 보기에는 허공에 칼날을 흩뿌리는 것 같았는데.
-쾅!!!!
그것은 대왕이 휘두른 창대를 정확히 막아냈다. 그러나 헥토르가 다시 방어 자세를 취하려 하자 대왕은 다시 반대 손에 쥔 칼을 움직여 그의 칼을···
-사각.
자른다.
강철로 된 날을, 청동으로 된 날이 잘랐다.
그 기적에 헥토르가 무방비해진다. 기진맥진해진 듯한 헥토르가 다시 방어를 위해 잘려나간 칼날이나마 들어올리지만 부족하다.
대왕의 칼날은 무리 없이 그의 심장을 노렸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비명을 질렀다.
안 된다.
이 순간을 위해서 내가 이렇게 싸워온 게 아니다.
트로이아의 스카이아 성문 앞에서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살해당하고 능욕당하지 않도록 애써왔다. 그것이 고작 또 다른 창칼 앞에 그의 목숨이 날아가도록 만들려 한 것이 아니다.
나의 노력은 운명의 멍에를 벗기 위한 것이었다. 그 모든 죽음을 무효로 돌리고 내 주위의 삶들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
“형님!!!!!!”
나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내가 투창을 던졌지만 대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왕의 칼날은 헥토르의 심장에···
-콰직.
···꽂히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나도, 헥토르도, 심지어 대왕마저도 어안이 벙벙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선 대왕의 칼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대왕의 몸은 무언가에 의해 뒤로 날아간 채였다. 그는 발을 땅에 접지하며 어마어마한 마찰음을 일으키며 정지했지만, 헥토르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헥토르와 대왕의 사이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프리기아에서 약속한 거.]다른 영웅들과 같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다른 영웅들과 같이 피를 흘렸다.
그러나 그 피 역시 대왕의 것처럼 투명했다.
[지켰다.]대왕이 온몸이 얼어붙어 있는 동안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와 헥토르를 돌아보았다.
그는 문자 그대로 ‘피투성이의’ 아레스였다.
나는 그의 등장에 환호하려 했지만, 그의 꼴을 자세히 보고 난 뒤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전쟁의 지배자는 물론 강했지만, 그는 상처투성이였다.
그 이유는 뻔했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주위를, 하늘과 땅을 모두 돌아보았다.
하늘의 한켠에서는 번개가 번개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끔찍하리만치 강렬한 광휘가 하늘을 이리저리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하나가 추락한다. 그 추락하는 섬광을 다른 수많은 섬광이 뒤쫓는다.
추락하는 섬광의 이름은, 내가 알기로 ‘제우스’였다.
동쪽에서는 아카이아인들이 미쳐서 날뛴다. 갑자기 두려움에 질려 무기를 내려놓고 벌거벗은 채 땅속으로 파고들려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머리 위로 거닐며, 어떤 여신이 저주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어느 족속이 숭앙하는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태양의 열기가 화살처럼 쏘아져 미시아인들을 죽인다. 트로이아인들은 갑자기 불어온 열풍에 휘말려 대오를 무너뜨린다.
이 난전 속에서도 기이하리만치 유대인들, 페니키아인들, 하티인들, 우무루인들··· 아무튼 우리 편이 아닌 족속들은 많이들 무사했다.
물론 한편에서 페니키아인과 루위인, 하티인들이 서로의 팔다리를 씹어먹고 있는 것을 보아 완전히 무사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래도 대세는 분명했다.
신들이 힘에서 밀린다.
무엇보다도 머릿수에서 밀리니까.
원래대로라면 신들의 상호 견제 속에서 인간들이 서로 겨루었어야 했다.
그러나 신들이 이례적으로 직접 그 권능을 보이니, 그것도 한쪽 진영의 신들이 무수히 많은 머릿수로 다른 한쪽을 압도하니 점차 신들의 싸움이 인간들의 싸움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다.
[서방의 군신(軍神)이시여, 저는 당신의 이름을 압니다. 남자를 죽이는 위대한 에니알리오스시여.]에니알리오스(Ἐνυάλιος). 판본에 따라 아레스의 아들인 또 다른 신의 이름, 또는 아레스 본인의 별명. ‘일리아스’에서는 후자로 쓰인다.
하투샤의 대왕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아레스가 얼굴을 찌푸린다.
[너 미쳐버렸구나···.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였어. 제 아버지와 형을 죽이고 잡아먹다니.] [···간절함은 무엇이든 해내도록 만드는 법입니다. 제가 원한 일은 아니었습니다.]대왕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러나 여전히 공손하게 아레스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한다.
혹여나 힘과 행운이 닿아 올림포스 산을 정복한다면 그곳은 거룩한 성지로서 존숭받을 것입니다.]
나는 대왕이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알았다.
[저희의 만신전은 나쁘게 말하자면··· 난잡합니다. 신들께서는 각자의 신도를 다스리시고 신들의 왕께서도 각자 건드리지 않으십니다.이것이 필멸자들에게는 혼란을 주나 장수하는 신들께는 안심을 드리리라 생각합니다. 하투샤에 새로이 생긴 12위의 신전은 여러 신도들의 존경을 자아낼 것입니다. 허나 어떤 다른 신들도 올림포스에 군림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저희 제국을 축복하여만 주시면 됩니다. 당신의 왕은 여전히 크로···노···스? 아무튼 그분의 아들 제우스 님이실 겁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흔한 일이다. 정복자가 정복지의 신상을 옮겨와 전과 같이 숭배한다.
많은 경우 그런 피정복지의 신들은 다른 토착신들과 동일시되거나 신화 체계 속에서 하위 신이 되고는 하지만 하투샤에서는 그런 일이 잘 없었다.
그들은 그저 수많은 신들의 왕과 수많은 신들의 여왕을 함께 섬길 뿐이었다.
[너무 많은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절멸 외에도 다른 길이 있을지 모릅니다.]대왕의 말은 제안이자, 협박이었다.
나는 아레스의 머리 위에서 달려들어오려는 무수한 신형을 보았다.
아레스는 그들에게 등을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헥토르를 어렵사리 구했다.
그리고 그를 추격하던 적들은 대왕의 행동을 보고 잠시 유예를 주고 있을 뿐이었다. 대왕의 말이 끝나면 아레스를 향하여 수많은 족속의 군신들이 달려들어 그를 찢어놓을 터였다.
다시 대왕은 우리들을 짓밟고 말이다.
대왕은 그것 말고 다른 길을 제안했다.
전쟁의 중단.
우리는 지금 논의되는 이야기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현인신과 불사신이 직접 나누는 대화다. 그리고 그 내용도 누가 입을 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침묵이 이어진다. 그것도 꽤나 길게.
아레스는 뭔가 신경쓰이기라도 하는 듯 하늘의 한켠을 계속 힐끔거리며 살피다가 헛웃음을 짓는다.
[···하.] [무엇 때문에 웃으십니까? 위대한 에니알리오스시여.] [나의 피붙이를 도륙내려 하고서 그런 말을 꺼내느냐, 건방진 필멸자야.]아레스의 안면근육이 뒤틀린다. 펜테실레이아를 보는 그의 눈에는 분노가 서려있다.
[이 저주받을 것이, 감히 뚫린 입이라고···.]그 말에 아레스의 머리 위에서 기다리던 다른 신들이 공격 태세를 취한다. 그러나 대왕은 아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아레스 역시 여전히 힐끔거림을 계속하다가 말을 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 상황이 어처구니 없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려는 ‘그놈’의 허영심이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군.말이야 헤파이스토스가 새로 마련해준 무장이 몸에 익을 때까지 수련하는 것 때문이라 하겠지만 결과를 보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구나.]
이상한 말이다.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이다. 거기에 대하여 대왕이 뭐라 입을 열려 하니 갑자기 하늘에 굉음이 일어난다.
대왕이 그쪽을 올려보다 보자, 아레스를 노리던 군신들이 갑자기 급하게 자리를 뜨려 하고 있다.
-콰콰콰콰콰쾅!!!!!!
그리고 아레스가 흘끔거리던 쪽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그것들을 모조리 덮친다.
순식간에 그 신형들이 저 멀리 날아가더니 전장의 어딘가로 추락한다. 일부는 스카만드로스 강에 잠긴 다음 분노한 스카만드로스에 의해 몸이 붙잡혀 버둥거린다.
[이, 이 무슨···!!]하투샤 진영의 수많은 신들이 갑자기 지상에서의 개입을 멈추고 그 ‘무언가’를 향하여 돌진한다.
그러나 그것은 빛나는 칼날을 휘두르며 수십, 수백의 신들을 모조리 맞상대하고 있다.
그것이 공중에서 칼을 휘두르자 테슈브의 폭풍이 반으로 쪼개지며 바알의 번개가 흩어진다. 그것의 포효에 아르마의 달빛이 무너지며 캄루세파의 저주를 깨뜨린다.
그것은 외친다.
[아레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이리 오시오!!!!!! 알크메네의 아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니!!!!!!]그제야 나는 저 어지러운 광휘 속에서 누군가를 볼 수 있었다.
헥토르가 두른 사자가죽을 둘렀고, 아이네이아스가 꽉 쥔 창대를 손에 쥐었으며, 필록테테스가 쏘아대는 활과 화살을 소유하던 자.
알크메네의 위대한 아들.
올림포스의 구원자.
헤라클레스.
[급한 상황이니 나는 가보겠다, 이 교만한 것아.]그리 말하며 아레스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의 딸을 포함한 영웅들을.
[이제는 좀 공정하게 싸울 수 있을 거다.]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아레스의 신형이 하늘로 쏘아진 뒤 화살을 당기며 나는 깨달았다.
내 마음에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투지가 일어난다.
다른 이들을 보니 그들의 눈에도 거룩한 불꽃이 타올랐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위대한 전사가 무엇을 관장하는 신인지 생각하였다.
힘, 용기, 투지···
그리고 영웅(ἥρως).
구원 (1)
-콰지지직!!!!
헤라클레스는 어떤 창칼로도 그 가죽을 뚫을 수 없던 네메아의 사자를 목졸라 죽인 완력으로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어느 족속의 마술의 신이 부숴지듯 날아간다.
-콰드드득!!!!
잠시 땅에 내려온 알크메네의 아들은 아홉 머리를 가진 독뱀 히드라에게 바위 산을 던져버렸을 때의 투척 실력으로 새대가리를 한 괴물의 머리를 뜯어다 던져버렸다.
거기에 무슨 대장장이 신이 맞아 나가떨어진 건 덤이다.
-쉬이이이이익!!!!!!
청동 부리와 발톱을 가진 스팀팔로스의 괴조(怪鳥)들을 쏘아 죽였던 그 궁술로 수많은 신들의 팔다리에 화살이 돋아나게 한 다음.
사정없이 두들겨패도 끊임없이 버티던 전쟁의 신을 황금 뿔을 가진 사슴을 생포했을 때처럼 끈질기게 괴롭혀 기절시켰다.
저 하늘에서 옛날의 전설이 다시 재현되고 있었다.
올림포스가 기가스족의 침공으로 함락 직전까지 갔을 때, 헤라클레스는 그들을 죽이고 위대한 신들을 구해내며 올림포스의 통치를 수호해냈다.
그와 같이, 지금 그는 수많은 신들의 협공을 받으며 쓰러져가던 제우스를 일으켜세우고 헤라 여신에게 다시금 그녀의 전차를 되돌려주어 싸우게 한다.
전장의 흐름이 바뀐다.
단 하나의 존재가 불사신과 필멸자들의 싸움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올림포스가 열세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적게 쳐도 서너 배, 많이 치면 십수 배쯤 많아 보이는 신들에 대해 승기를 잡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본 나는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더는 아카이아인들, 트로이아인들, 미시아인들과 아마존인들에게 급작스러운 신들의 공격이나 저주가 이어지지 않는다.
극도의 혼란과 공포에 미쳐 있던 병사들도, 차즘 제정신을 차리고 적들을 향해 다시 창칼을 향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전투가 상식적인 선으로 ‘정상화’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문제는 있다.
[···놀랍구나. 너희의 기세가 달라진 것이 보이니.]대왕의 힘은 여전히 우리를 압도한다는 것.
헤라클레스의 힘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어느 정도 수평을 가져왔을 뿐이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사력을 다해 적대적인 신들의 개입을 틀어막기에 필멸자들은 어느 정도 싸워보기라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다.
“다들, 무기를 들으시오!!”
우리가 대왕을 막아내고 있기에, 병사들은 힘껏 싸울 수 있다.
무엇보다도, 투드할리야의 아들 수필룰리우마는 제국의 수장이다.
트로이아의 왕자 헥토르와 안탄드로스의 왕 파리스,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 미시아의 왕 텔레포스, 에티오피아의 왕 멤논,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 이들도 모두 트로이아와 그 동맹의 수뇌다.
불사하는 신들이 아무리 애써봤자, 이 필멸자들의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승리는 없다.
헥토르의 외침에 우리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도메네우스나 다른 무력화된 영웅들을 제외하고서도, 여전히 우리의 머릿수는 10명을 넘겼다.
만신창이가 되어 절뚝이고 흔들릴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영웅이다.
헤라클레스가 저 하늘에서 우리를 축복하나니.
[여전히 목숨을 구할 생각은 없더냐? 지금 이 상황은 너희가 승기를 잡은 것이 아니다. 이제야 우리의 압도적인 우위가 조금 조정되었을 뿐.]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왕의 말은 정확하게 현실을 꿰뚫고 있었으니.
그래도 우리는 무기를 들었다.
우리는 패배할 수 없었으니까.
-후우우욱!!!!
다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대왕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머릿수도 줄었고, 모두들 다친 상태였다. 이전처럼 정교하게 짜인 합동 공격은 불가능했다.
-쿠콰콰콰쾅!!!!!!
그럼에도 강렬했다.
아이네이아스는 근접 거리로 다가가 대왕에게 투창을 무한히 난사했다. 대왕은 어쩔 수 없이 동선이 제약당한 채 아이네이아스의 공격을 쳐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헥토르는 그의 왼쪽 어깨를 향하여 공격을 가한다. 대왕은 바닥에 떨어진 투창을 던져 그를 견제하면서 좌측에서 날아오는 오디세우스의 습격을 차단한다.
-쿵!!!!
오디세우스의 다리를 걷어찬 다음, 그는 무릎으로 균형이 무너진 오디세우스의 가슴을 무릎으로 찍었다. 오디세우스는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서면서도 넘어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