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390
“Fire(쏴라)!!”
“Volksverräter(민족의 반역자)!!!!”
“Occidite(죽여라)!!”
그들 모두가 싸우다 말기를 반복하며 독일제 군용 차량 한 대를 쫓고 있었다.
“···하아아아, 이게 뭔.”
내 눈에 익숙한 차량이었다.
머저리 같은 프랑스인 하나가 한 손으로는 핸들을 쥔 채 다른 손으로는 권총을 쏴제끼고 있었고, 나머지 독일인 하나는 아예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대전차 로켓 하나를 급히 발사해 카르타고군과 독일군을 통째로 갈아버린다.
그들은 내 앞에서 급히 멈춰서더니 손짓한다. 내가 뒷좌석에 올라타자마자 내가 있던 자리에 굉음과 함께 큼직한 구덩이가 생겼다.
“아니···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나는 급히 눈을 돌려 두 사람을 노려본다. 그러자 개구리가 다시 크라우트를 노려보고, 우물쭈물거리던 크라우트 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네가 말한 대로 페가수스 같은 거 탄 사람이 망원경으로 보이길래··· 당장 이쪽 좀 보라고 조명탄을 쐈지.”
“그런데?”
“···그게 미군, 카르타고군, 이슬람 제국군 연합이 프랑스군 치려고 잠복 중인 곳이었다. 우리가 독일군 척후인 줄 알고 죽이려고 오더라고.”
“하아, 젠장. 그렇다고 저렇게 적군들까지 뒤에 두고 미친듯이 쫓아와? 오해는 못 푸나?”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했는데?”
“미군들이 달려오길래, 아까 로마군한테 노획한 판처파우스트를 쐈는데 그게 미군 화약고에 우연히 맞아서···”
“···.”
“···.”
“시발(Putain), 크라우트 새끼들은 다 좆 같은 머저리야.”
“동의한다.”
“저 새끼도 베르베르 토인들이랑 동급···”
“다른 자유 프랑스군도 다 너 같은 개새끼인가?”
“···.”
잡담을 나눌 여유는 더 없었다.
-슈우우우우우웅!!!!
-콰콰콰콰콰쾅!!!!
“God bless America land that I love(신이시여, 내 사랑하는 미국을 축복하소서)!!!!”
“Bald flattern Hitler-Fahnen über allen Straßen(곧 히틀러의 깃발이 온 길가에 휘날리리니)!!!!”
···‘God Bless America’를 열창하는 무슬림들과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를 목놓아 부르는 동로마인들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기에.
그 사이에 섞인 미군과 독일군 교관들이 흡족하게 자신들이 훈련시킨 새 동맹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새 ‘공적’으로 찍힌 우리를 잡으려 잠시 휴전을 맺은 듯했다.
-탕!!!!
“커허, 커커억···!!”
당연히, 여기서 발목이 잡힐 수는 없다. 저 멀리를 보니 페가수스는 여전히 비행선과 전투기 사이를 유유히 날아다니며 저 동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안 된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지금 ‘저 시간대’의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자른 뒤 에티오피아를 향해 가는 듯했다. 그곳에서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고 아내로 맞게 되리라,
-텅!!!!!!
“저, 전차가 멈췄다!!!!”
“저 빌어먹을 다신론자 새끼! 죽여버려!!”
내가 로켓으로 가까이 오던 미군 전차병을 쏘자 카르타고-무슬림-미합중국 연합군이 더욱 분기탱천해 내달려온다.
-타타타타타타타!!!!
다시 독일군 몇 명을 쏘자 이번에는 로마인들이 독수리 깃발을 꽂은 티거 전차와 함께 진격해오고.
“야! 로켓이나 유탄 더 없어?”
“어, 없어!! 다 떨어졌어!! 이제 소총 탄환도 다 떨어져가는데···”
“개구리!! 왜 자동차 속도가 느려져!!”
“니가 기름 넣어줄 거 아니면 닥치고 있어!!!!”
···핫하, 개판이다.
이 한숨 나오는 상황에서, 쓸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망···치.”
내가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속삭이자 오른손에 익숙한 무게감이 감겨온다.
유도 기능 있고, 탄환 제약 없고, 대인이든 대물이든 확실하게 상대를 살상할 수 있는 무기.
내가 차 뒷좌석에서 몸을 일으키자 겁에 질린 나치 친구가 내 몸을 끌어당기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놈의 발악 따위 무시하며 있는 힘껏 망치를 집어던졌다.
그 결과.
-쿠콰콰콰콰쾅!!!!
-콰드득···!! 콰지직!!!!
전차랑 트럭 몇 대가 화려하게 관통 및 폭발했고, 그 불길에 휩싸인 로마군 기병 몇몇이 통째로 구워졌다.
우리를 쫓아오던 수많은 아랍인, 라틴인, 베르베르인, 미국인, 독일인, 카르타고인, 프랑스인들은 경악과 함께 그 자리에 멈춰섰고.
“제, 젠장, 양키들부터 쏴죽여!!”
“제리(Jerry, 독일군에 대한 멸칭)들이 공격한다! 막아!!”
“이교도들에게 죽음을!!”
“마르스께 영광!!!!”
그제야 자기들이 서로 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듯 서로를 향해 죽도록 총탄을 쏘아댔다. 그 덕에 우리는 저 아수라장을 유유히 빠져나올 수 있었고.
“이제, 됐나?”
“···.”
“···.”
“저쪽에 차 세워.”
내가 말을 잃은 개구리 놈에게 가볍게 명령하자 녀석은 그대로 따랐다. 파쇼와 제국주의자 두 사람은 곧장 꽤나 높은 언덕에 멈춰선 다음 숨을 골랐다.
나는 다시 손가락을 튕겨 망치를 불러온 다음, 팔을 세게 돌렸다.
하늘을 조준하며.
표적은 작지만··· 맞출 필요는 없다.
“다나에의 아들이시여!!!!!!”
나는 외칠 수 있는 한 목청껏 외치며 망치를 집어던졌다. 뜨겁게 달아오른 망치가 혜성처럼 불꽃으로 된 긴 꼬리를 남기며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페가수스가 나아가던 궤적을 향하여.
-화아아아아악!!!!
갑자기 진로를 방해받은 페가수스는 잠시 휘청거리더니 방향을 틀어 망치가 날아온 이쪽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슈우우우우우!!
그리고 마치 곤두박질치듯 빠르게 바닥을 향해 내려앉는다. 나는 침을 삼키며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리려 했다.
-스륵.
···청동 칼날에 내 머리칼이 조금 잘려나가기 전까지.
“넌, 누구냐.”
나는 목덜미를 스치는 칼날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의 남자는, 발이 땅바닥에 닿아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있었기에.
그의 방패는 아테나가 손수 빌려준 이름 높은 아이기스였으며, 그가 허리에 끼고 있는 투구는 착용자를 투명하게 만드는 하데스의 투구였다.
반대쪽에는 날카롭게 벼려진 헤르메스의 낫이 달려 있었으며, 허리띠에는 그가 헤라로부터 받은 마법의 주머니가 있었는데···
그곳에 메두사의 잘린 머리가 들어있었다.
아카이아의 그 누구도 이와 같이 신들의 축복과 지원 속에서 여정을 떠나지는 못했다.
신들에게 사랑받은 그는 미케네와 티린스의 왕으로, 그의 증손이자 이복형제인 헤라클레스의 후예들이 장차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니.
“다나에의 고귀한 아들이시여··· 메두사의 살해자시여··· 당신께 청할 바가 있나이다.”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절하며 몸을 일으킨다. 그는 언제든 나를 베어버릴 수 있다는 듯 여유로이, 그러나 빈틈 없이 나를 노렸다.
“페르세우스시여, 저는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라 합니다.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셨으니.”
내가 손을 뻗자, 저 하늘에서 낙하하던 망치의 불이 꺼지고 내 손을 향해 날아든다. 그 모습에 페르세우스는 천천히 칼날을 내게서 거두었다.
“당신께서 아틀라스를 벌하시도록 인도하고자 왔습니다.”
그리 말하며 나는 하늘을 살짝 올려다보았다.
···페르세우스자리가 지면에 스칠 듯했다.
“시간을 다투는 일입니다.”
모순 (3)
하늘의 지배자 제우스와 아르고스의 공주 다나에의 아들 페르세우스.
아르고스의 왕손이자 메두사의 살해자.
에티오피아를 위협하던 바다 괴물과 반역자를 죽이고 공주 안드로메다를 구출한 자.
헤라클레스의 선조.
카드모스 등과 함께 그리스 신화의 서막을 장식하는 영웅.
아카이아의 뭇 영웅들 중에서도 몇 안 되게 여러 위업들을 이루고도 영광과 행복 속에서 삶을 마감한 인물.
“아버지께서 그대를,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그러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나보다 족히 100년 이상은 더 앞선 시대를 살았던 영웅이다. 그의 핏줄로부터 위대한 왕조가 탄생했다.
나는 그에게 경의를 표한 다음, 손가락을 들었다. 페르세우스가 볼 수 있도록 하늘을 가리켜보이며 입을 열었다.
“위대한 분이시여, 지금 보이십니까?”
페르세우스는 머리 위에 떠오른 별들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것으로 대강의 상황 설명은 순식간에 끝났다.
“저, 저건···”
“당신께서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천구(天球)가 내려앉고 있습니다. 감히 제우스께 반역했던 방자한 아틀라스가 그의 소임을 방기하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고도 페르세우스의 얼굴 표정은 바뀌지 않는다.
그는 잠시 페가수스의 목덜미를 쓸어내려 그 날개를 진정시킨 뒤 서서히 땅바닥에 발을 내디뎠다.
나는 잠시 뒤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파쇼와 제국주의자 듀오는 완전히 얼어붙은 채 초점이 반쯤 풀린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도 미래 기술이라 말해주면 믿으려나?
유도 기능이 달린 불타는 망치는 그렇다 쳐도, 날개 달린 말에다, 하늘을 나는 신발까지?
나는 그런 하찮은 생각이나 하면서 쓴웃음을 속으로 삼켰다. 그래도 이런 잡생각 덕분에 마음의 긴장이 덜어진다.
“아틀라스라. 만일 네가 이아페토스의 세 번째 아들, 이 아프리카 땅에 유폐된 티탄을 말하는 것이라면.”
페르세우스의 눈이 마치 잘 벼려진 칼날처럼 빛난다. 단단하고, 서늘하게.
후손인 헤라클레스의 눈빛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그는 이 자리에서 압도감을 뽐냈다.
“그는 나를 손님으로서 환대하길 거부했다. 이 땅에 살아가며 유폐된 그를 섬기는 백성들 역시 아틀라스의 명령에 따라 내게 대문을 걸어잠갔다.”
페르세우스의 눈길에 분노가 깃든다.
“그가 말하길 신탁을 받았다 하더군. 내 후손이 자신의 딸들이 지키는 황금 사과를 훔쳐가리라고 말일세.”
“우스운 일입니다. 먼 훗날의 운명을 두려워하며 주인이 길손을 내침은 중죄입니다.”
입발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실제로도 퍽 우스운 일이라 느꼈다.
결국 헤라클레스의 부탁에 아틀라스는 제 손으로 황금 사과를 가져다주니까. 그가 헤라클레스의 조상인 페르세우스를 두려워하고 쫓아냈다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무튼, 난 이미 그에게 모욕받고 나왔을 뿐이다. 내가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이 땅에서 왕처럼 행세하는 그자가 무슨 수작을 벌였는지 이곳을 벗어날 수도 없고 괴물들과 기이한 야만인들이 득시글거리는구나.
철로 만든 새에, 천으로 이루어져 하늘을 나는 거대한 고래라니. 지상을 달리던 그 쇳덩이들은 또 뭐란 말인가?”
페르세우스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가 낫을 뽑자 뒤에서 흠칫, 몸을 떨며 총에 손을 가져다대던 두 사람도 그의 시선 한 번에 다시 팔이 굳었다.
“허나 그렇다고 헤르메스께서 내게 내리신 이 낫으로 그를 베기라도 하란 말이더냐? 유폐되었다 한들 아어페토스의 아들은 강대한 신이고 나는 필멸자일 뿐인데?”
“아닙니다. 당신께는 그보다 더 강력하고 치명적인 무기가 있지 않습니까?”
내 말에 페르세우스의 얼굴이 굳는다.
신이 내린 무기보다도 더 위험한 무기, 무엇이든지 그와 눈을 마주친 이를 돌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저주받은 신물.
메두사의 머리.
“불가하다. 필멸자가 쓰기에는 너무 위험한 무기다. 함부로 썼다가는 누구를 해하게 될지 모른다.”
“저를 믿으십시오. 아니, 저를 보내신 제우스 님의 의지를 믿으십시오. 그분으로 인하여 당신은 이 세상에 나오지 않으셨습니까?”
“···.”
내 말에 페르세우스는 고심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같이 가지. 일단 그 기이한 복식과 다른 흉흉한 기물들은 전부 내려놓고. 아틀라스가 의심할지 모르니.”
“감사합니다.”
“허면, 저들도 같이 가나?”
나는 페르세우스의 손짓에 따라 뒤돌았다.
그곳에는 여전히 2차대전기의 프랑스인과 독일인이 서 있었다. 이름이··· 한스 슈미트에 자크 마르탱. 정말 평범한 이름이다. 수천만 명이 죽은 전쟁 속에서 하나둘쯤 사라져도 모를 만큼.
···나는 그들에게 웃어보였다.
“개구리, 파쇼, 수고했다. 너희가 세계를 구하겠네.”
“너, 너··· 내가 이런 말 하면 정신병자 같아 보일 수 있겠지만··· 너··· 설마 네 이름···.”
나는 두 사람의 눈을 보고서, 더 이상 어떤 거짓말도 의미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미래인 운운해봤자 우스운 변명이 될 뿐이리라.
그래서 나는 그저 개구리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말았다.
“가. 안전한 곳으로 가서 숨어 있어.”
그리고 다음 문장을 꺼내려다,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자 나는 괜히 웃었다. 그리고 목에 걸린 말을 억지로 뱉었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나 있을 테니까.”
과연, 무엇이 끝날까?
‘파리스 이전’의 존재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가끔씩 보이던 나와 동시대의 페니키아인들이나 베르베르인들, 그리고 헤라클레스와 페르세우스는.
하지만 그 뒤의 존재들은?
내 뒤로 이어질 역사에서 나치당과 히틀러가, 프랑스 제3공화국이, 자유 프랑스군과 비시 프랑스가 성립할 수 있을까?
미국 독립 혁명이, 뮌헨 폭동이, 2차 세계대전과 낫질 작전과 온갖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나기나 할까?
이 ‘모든 게 끝나 있을’ 때, 저들은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할까?
내가 그 생각에 잠시 굳어버린 동안, 한스가 내게 다가와 무언가 쥐어주었다. 허름한 꾸러미를 열어보자 그 안에는 생감자와 소시지와 술이 찰랑거리는 힙플라스크가 들어 있었다.
“···감자, 소시지, 맥주. 전부 독일적인 것들이지. 전부, 여정 동안 유용할 것들이라고.”
그도 뭔가를 자각했는지 쓰게 웃으며 말한다.
“돌아갈게. 만약···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면 네 말대로 곧 망할 전쟁보다는 다른 걸 신경쓰도록 하고, 유대인도 덜 미워하고 할 테니까.”
“···위대한 조국은 식민지 없이도 위대하겠지.”
페르세우스가 나를 향해 손짓한다. 나는 그를 따라 페가수스의 허리에 오른다. 등자도, 안장도 없다.
커다란 날개가 몇 번 퍼덕이자 우리는 순식간에 저 드높은 창공으로 이륙한다. 뒤돌아보자 어느새 독일제 군용 차량도, 어느 자유 프랑스군 병사와 독일 국방군 병사도 점이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지상의 모든 게 작다란 점으로 줄어들었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내가 없앤 것들.
사라진 역사들.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페르세우스가 조심스레 묻는다. 나는 그 말에 조용히 답했다.
“서쪽입니다.”
어느덧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눈에 띌 정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모순이 마무리될 차례였다.
***
-쿠쿠쿠쿠쿠쿵!!!!
헤라클레스는 이제 두 다리로 서 있기를 포기했다. 한쪽 무릎을 떨어뜨리듯 꿇고 서자, 그나마 무게가 분산되고 다시 균형이 잡히는 듯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등허리에 짊어진 무게는 오히려 점점 더해지는 듯했다. 아마 그 역시 지쳐가는 것이리라.
이마와 머리에서 흘러내린 핏방울과 땀방울이 눈앞을 가린다. 허나 그 쓰라림 따위는 지금 전신에 느껴지는 압박감에 비하면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헤라클레스가 몇 번 두 눈을 깜빡거리자 다시 시야는 회복되었고.
어느새 그 앞에 위대한 티탄이 서 있었다.
[아! 제우스의 아들이여, 맹세한 바대로 사과를 가져왔네.]“···고맙군그래. 조금 늦은 것 같지만 말일세.”
헤라클레스는 한숨 쉬듯, 토악질을 뱉듯 말을 꺼냈다. 그러나 눈앞의 위대한 신 아틀라스는 씩 웃으며 여유로이 대꾸한다.
[그래. 조금 늦었지. 실로 억겁의 세월을 거쳐 얻은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으니 이해해 주게.]헤라클레스는 그가 귀중한 황금 사과를 던졌다 받았다 하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짓는 것을 지켜본다. 그의 눈가에 악동 같은 미소가 어린다.
[이 사과를 이제 미케네의 왕에게 가져다주면 그대의 과업이 또 하나 완수되는가?]“···그래. 그러니 이제 그를 내게 건네주고 그대의 소임을 다시···”
[내가 싫다고 한다면?]“···.”
[너무 두렵게 노려보지 말게나, 가증스러운 제우스의 아들이여. 누구나 예속보다도 자유를 사랑하고 그는 나 역시 마찬가지니. 또한.]아틀라스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운다.
[찰나 같은 필멸자의 자유보다는, 영원불멸하는 신의 자유가 더 귀중하겠지.내가 그대의 과업을 대신 완수하여 주겠네. 그러니 만족하게나.]
“···허!”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의 말에 헛웃음을 뱉는다. 아틀라스가 그를 보고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자 헤라클레스가 고소(苦笑)와 함께 말했다.
“그래···. 이것이 내 손으로 친족을 살해한 죄의 대가라면 그리하겠네. 이리 될 줄 알았지. 하, 하하하···.”
헤라클레스의 두 눈이, 광기와 고통으로 빛난다.
“그렇다면 그대가 내 대신 과업을··· 이루어주게. 그 심약한 미케네의 왕 앞에 그대가 나아간다면 그 작자의 표정이 볼 만하겠군.”
헤라클레스의 말에 아틀라스 역시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그대와 나의 뜻이 합치한다니 기쁘군. 다른 부탁은 없나?]“···있지. 잠시 이 빌어먹을 하늘을 안정되게 들어올릴 방도를 알려주게. 필멸자인 나는 천구를 떨어뜨리지 않을 힘과 요령이 없으니.”
그 말에 아틀라스는 황금 사과를 내려놓고 헤라클레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헤라클레스가 떠받치고 있는 천구를 향해 걸어간다.
[한번, 내 시범을 보이지. 이 끔찍한 고문을 견디는 데도 필요한 지혜란 것이 있으니.]그렇게 그의 손이 천구의 끝에 닿을 때쯤.
[으어어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