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super-class hunter with 10 times the experience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인류의 손에 쥐어진(1)
시스템이 문명계에 깃들며 기존의 법칙은 뒤바뀌었다.
총과 칼이 통하지 않는 마수 앞에서,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던 인간은 과거 선사시대의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피식자가 되어야만했다.
– 초, 총이 안 통합니다!
– 투입 된 대대가 전멸! 다른 대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최초의 게이트 브레이크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총도, 칼도, 폭탄도 통하지 않는 적 앞에서 인류는 두려움에 떨었다.
각성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이 세계는 마수의 아래 놓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무기를 들고 맞설 생각을 하지 않다면 정말 그리 됐을지도 모른다.
– 저희는 각성자입니다. 저희가 처치해보겠습니다.
군대로도 막을 수 없던 마수들을 각성자들은 막을 수 있었다.
그들은 헌터로 불리며 이 세계의 주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자연스레 기존의 법칙은 대체 되었다.
아이템과 능력이 마수를 처치할 수 있는 유일한 법칙이 되었다. 게이트를 공략하고 마수를 사냥하는 것은 헌터의 일.
그것이 진리라고 믿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철컥. 치이익—!
은빛의 날개 SS급 헌터 유한성이 황동색의 장비에 몸을 맡겼다. 각종 관절이 자연스럽게 호응하며 갑옷처럼 달라붙었다.
“이것만 장착하면 진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러게······. 굉장한 장비야.”
“우리 은빛의 날개 특별팀에서 공수해 온 거라고 생각하니, 더 느낌이 좋은데요.”
초기술마도계의 거장 유클레스.
그는 헌터들의 능력과 스킬들을 아이템으로 구현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한 것이 전투 슈트 U-1300.
기존 레벨의 개념을 대체한 아이템이었다.
SS급 헌터도 이 장비를 걸치면 SSS급에 달하는 힘을 낼 수 있게 될 정도였으니.
파아앗!
공간이 점멸하며, 그들의 앞으로 전장이 나타났다.
커텐처럼 일렁이는 거대한 보랏빛 장막 아래.
SSS급 마수들이 미친듯이 돌진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에 의해 광폭화된 마수들.
그어어어—!
저 멀리 드래곤과 그리폰 같은 최상위 마수도 드문드문 보인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 게이트에서 보스로나 마주하던 것들이다.
꿀꺽.
유한성이 침을 삼켰다.
‘여기가······. 진짜 전장.’
시스템이 도래한 이후 인류 최대의 전쟁.
그 광경은 숱한 전투를 거쳐 왔다고 생각한 자신조차 긴장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오고 싶었다.’
이 전장에서 활약하고 싶었다. 목숨을 걸고 마족을 막아내고 싶었다. SSS급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싸우고 싶었다.
그게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레벨을 높여 온 이유일지도 모르니까.
그런 복잡한 감정이 이 자리에 있는 SS급 헌터들 사이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지원이다! 백묵님이 말했던 지원부대가 너희였냐?”
“어서와, 너흰 이제 죽었다. 여기 개 빡세거든?”
“이제 곧 쉬는 시간 끝입니다! 다들 각오해라!”
피곤에 찌들어 있던 SSS급 각국의 헌터들이 새로운 지원부대를 환영했다.
통역 마법 덕에 의사소통은 원활하다.
SS급 헌터들이라고 해서 아무나 골라 온 게 아니었다. 백묵의 주도하에 유명 길드에 속해 있던 재능있는 헌터들을 1000명 가량 선정했다.
“이지한 헌터······. 정말 돌아왔나보네요.”
유한성의 시선이 뒤쪽에 있는 이지한 헌터를 향했다.
그의 동료가 그의 뒤통수를 쳤다.
“야, 집중해. 이제 시작이야. 까닥하면 그냥 죽는거야.”
“그쵸, 우리가 죽으면······. 안되겠죠.”
단지 레벨과 능력치가 부족하단 이유로 전장에 오지 못하고 있었을 뿐.
이들 모두 누구보다 전투에 참여하고 싶은 열망은 컸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유한성만큼은 그런 마음이었다.
철컥, 철컥, 치이익—!
2차 방어선 서쪽, 300명의 SS급 헌터들이 일제히 도열했다. 그들의 전투 장비가 증기를 내뿜었다.
– 다들 훈련 받았던대로만 하면 될겁니다.
그들 모두가 착용한 황동색의 인이어를 통해 백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래곤의 브레스와 마수들의 마탄이 끊임없이 공간 장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 5, 4, 3, 2, 1······.
파앗!
카운트 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공간 장벽이 사라졌다.
그르르—! 그어어어!
이어서 댐이 무너지듯 마수들이 홍수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가시죠.”
“그래, 이 빌어먹을 마족 새끼들한테 인류의 새로운 힘을 보여주자고.”
“가자!”
기이잉!
전투 장비의 음각 사이로 푸른 선이 차올랐다. 그와 동시에 장비의 끝에서 무수한 마공학 탄환이 발사되었다.
투두두두두—!
헌터들의 마력이 마공학 에너지로 전환되어 마수들을 찢어발겼다. 말그대로 탄환에 닿는 마수들은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져 타올랐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광폭화한 마수들이 힘도 못 쓰고 쓰러지고 있었다. 보스급에 해당하는 최상위 마수들도 그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효과가 있다!”
“멈추지마!”
“지, 진짜로 장난 아니네.”
SSS급 헌터들도 전투 도중에 옆을 돌아 볼 정도였다. 단순히 장비가 좋을 뿐이 아니었다.
촤아악! 치이익!
멀리서 날아온 마수의 독액이 SS급 헌터들을 덮쳤다. 본래대로라면 뼈가 녹아내려야 할 강한 마력 독액이지만.
『 마공학 방어막이 작동합니다. 』
우우웅—!
육각형의 마력 형상이 조밀하게 배치된 방어막이 떠올라 독액을 방어했다. 마탄이나, 마수의 칼날도 방어막에 막혔다.
“좋았어!”
“다들 진형을 유지하면서 전진해!”
“이쪽으로 지원 부탁해!”
이어서 땅을 박차고 뛰어나간 SS급 헌터의 장비에서 마공학 부스터가 치솟았다.
콰아아앙—!
그대로 쏘아지든 날아간 헌터가 보스급인 다크 골렘을 핵과 함께 꿰뚫었다.
굉장한 위력이었다.
힘, 마력, 민첩성 모든 부분을 커버하는 전투 슈트에 힘 입어 SS급 헌터들은 전장을 누비며 마수들을 학살했다.
기존의 SSS급 헌터들 못지 않은 파괴력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죽이는 마수가 늘어날수록.
『 전투 슈트 U-1300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
『 해당 장비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 해당 장비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막대한 경험치를 얻은 장비의 레벨은 계속해서 상승했다.
당연했다.
모든 장비는 김건의 손을 거쳤기에 성장형 아이템이었다. 동시에 남은 경험치는 SS급 헌터들의 레벨을 올리는데 일조했다.
헌터와 장비의 레벨업이 동시에 일어나니, 그 성장세는 무시할 수 없을만큼 빨랐다.
콰과과과과—!
“우리가 이기고 있다!”
“밀어 붙여!”
장비의 힘을 등에 업은 헌터들은 파죽지세로 치고 나갔다.
인류가 마수들을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까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 이제야 볼만하네.’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지한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초기술마도계에서 기술을 가져오길 백 번 잘했다.
장비를 착용한 SS급 헌터들이 투입되면서 전력은 2배가 되었다.
‘생명의 마족이 투입한 최상위 마수들도 상대가 안되는군.’
아무리 최상위 마수라지만, 막 부화를 마친 상태.
그것을 생명의 마족이 억지로 키운 것이다.
수많은 게이트를 공략해 오며 실력을 쌓아 온 헌터들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헌터란, 마수를 사냥하기 위해 온갖 기술을 갈고 닦은 존재.
마수들은 사냥 당하는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마냥 안심하긴 이르다.’
본래부터 힘을 길러 온 네임드 마수들은 확실한 위협이 된다.
따라서 이지한은 핵심이 되는 헌터들을 그 사이사이에 배치해 놨다.
드래곤과 같은 강력한 마수가 머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
콰아아아아—!
좌측에서 거대한 몸을 일으킨 흑마룡이 브레스를 내뿜었다.
물론 오르티마였다.
홍염의 불길이 상대편 마수를 순식간에 녹여냈다. 그걸로도 모자라 다른 마수들을 녹이며 길을 만들어냈다.
바실리스크 한 마리가 발악하며 몸을 일으켰지만, 어림도 없다. 흑마룡이 놈의 목을 단번에 물어 뜯었다.
‘오르티마는 잘하고 있고.’
중앙에서는 신태양의 푸른 검이 번쩍였다.
쿠우우웅!
동시에 거인족 사이클롭스가 번쩍이는 빛과 함께 반으로 나뉘어 쓰러졌다. 최상위 마수라고 해도 일행들의 실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신태양도 훌륭해.’
우측의 윤서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공간의 권능이 이 전장의 흐름을 조율하고 있다. 권능을 얻은 그녀의 힘은 이제 미래의 여제 못지 않다.
헌터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여러 변화가 추가되었다.
인원을 교대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부상자도 무리하지 않고 전초기지로 복귀해 힘을 가다듬었다.
2차 방어선 전초기지.
“야, 그런 허접한 장비로 다니니까. 다쳐서 돌아오는 거 아냐! 멍청한 인간.”
“누, 누구십니까?”
“알 필요 없으니까, 이거나 받아.”
“에, 에픽 아이템······?”
시공의 마족 트레이아는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재보를 헌터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이지한 일행이 이곳에 도착한 것과 동시였다.
가지고 있던 아이템을 풀라는 이지한의 명령 때문이었다.
고블린의 재보에서 나왔던 아이템과 더불어 시공의 마족이 가지고 있던 재보 전체를 나눠주자 SSS급 헌터들의 전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그 대다수가 에픽급 아이템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템을 얼추 나누고 난 뒤 트레이아가 이지한 쪽으로 공간이동을 해 넘어왔다.
“대적자님! 몽땅 뿌리고 왔어요. 아직도 잔뜩 남았는데, 이것도 다 나눠줘요?”
“당연한 걸 왜 묻는지 모르겠군.”
“아하하······.”
이제는 포기한 듯한 얼굴로 돌아가는 트레이아.
마수들의 시체가 대지에 즐비해졌을 무렵.
“슬슬, 부패의 마족. 네가 나설 차례다.”
“예, 알겠습니다. 설마 시공의 마족까지 노예로 삼았을 줄이야······. 역시라고 해야 하나.”
이지한의 옆에 서 있던 부패의 마족이 마기를 사용해 중앙으로 날아갔다.
상당 수의 마수들이 목숨을 잃은 지금이 적기다.
『 부패의 마족이 ‘절대 강령 Lv.10’을 발휘합니다. 』
쿠구구구······.
그의 마기가 쓰러진 마수들을 일으켰다. 죽음에서 되돌아온 마수들이 살아 있는 마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음의 물결이 살아 있는 마(魔)의 하수인들을 집어 삼켜나갔다.
인류 측의 병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부패의 마족이 생성할 수 있는 언데드에 제한이 있는 게 아쉽지만······.’
마계왕이 이지한에게 건 억지력 제한 때문이었다.
부패의 마족은 이지한의 강령술로 부활한 존재.
따라서 억지력 제한에 걸린다.
이지한이 움직여야 할 때는 언데드 군단을 잠시 없애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부패의 마족이 부리는 언데드 군단은 지상전에선 따라올 자가 없었다.
경험치 50만배는 강령술로 소환한 대상에게도 적용된다. 부패의 마족이 소환한 언데드들도 거기에 대상이다.
압도적인 강함이었다.
‘투입될 SS급 헌터들은 아직 더 남아 있다. S급 헌터들까지 전장에 가세한다면 인류의 전력은 차원이 달라지겠지.’
전황은 인류에게 유리해 보였다.
이제 슬슬 사도 측에서 움직임을 보일 차례였다.
* * *
전장을 바라보는 생명의 마족은 기가 차단 표정이었다.
【 대적자······. 초기술마도계의 기술을 가져 온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단시간에······. 】
“저, 광폭화도 무의미한 수준인데요. 헌터들의 병력이 계속해서 늘고 있어요.”
무한의 마족도 얼굴을 찡그렸다.
마수들이 보내는 족족 토벌 당하고 있었다. 최상위 마수들과 네임드 마수들도 차례차례 쓰러져갔다.
“힘으로 밀어 붙인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거 우리가 힘에서 밀리잖아요.”
【 성가셔, 하나도 성가시지 않은 게 없군. 】
특히 문제가 되는 건 공간의 권능이었다.
최상위 마수들이 나아가는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생명의 마족이 수천 마리를 동시에 내보내면 뭐하겠는가.
최상위 마수들이 공간으로 만들어진 미로에서 해매는 동안, 앞쪽의 마수들이 차례대로 죽어나가는 형국이었다.
완급 조절이 상대의 손에 달려 있었다.
공간을 내어준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이래서야 그냥 인간들의 사냥터를 만들어 준 꼴이었다.
심지어 그 기세가 심상치 않다.
【 흐음······. 】
생명의 마족은 무한의 마족을 지긋이 바라봤다.
“뭐, 뭐에요. 왜요. 난 최선을 다했어요. 최상위 마수들을 광폭화하는데 마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요? 겨우 신화급 출력으론 이게 한계에요.”
무한의 마족이 어이 없다는 듯 말했다.
【 아니, 탓하려는 게 아닐세. 어차피 시간은 우리의 편이니. 】
『 현재 문명계의 억지력 상한 : 신화급 ( 46% ) 』
인류가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 만큼 억지력 제한도 빠르게 해제 되어 간다. 둥지에 존재하는 인간의 클론들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대로라면 억지력 상한이 초월급에 도달하기도 전에, 성채까지 뚫릴 것 같단 것.
생명의 마족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무한의 마족, 자네가 나서줘야겠어. 어차피 자네의 목숨은 무한이지 않은가. 】
“지, 지금 나보고 저기 가서 자살하라는 거에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 겸사겸사 공간의 권능을 깨부숴주면 좋다네. 】
무한의 마족이 망설이는 듯하자, 생명의 마족이 그를 부추겼다.
【 어려울 거 없네. 지금까지 인류가 대적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시간을 끌 차례니. 】
창밖을 슬쩍 내다본 무한의 마족이 입술을 씹었다.
딱히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만약, 이대로 있다가 인류가 충분히 성장하고 성채가 돌파당하면 완전한 패배였다.
“마계왕께서도 이 전투를 보고 계실테니까······. 영 손해는 아니겠죠. 근데, 그쪽은 그 동안 뭐 할 건데요?”
【 아, 그거야 걱정말게. 한가하게 놀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
성채의 벽면을 타고 나타난 촉수가 생명의 마족의 손에 휘감겼다.
【 인간들에게 마족의 무서움을 알려 줄 시기가 왔다네. 】
촉수를 잡아당기자, 벽면에 고치처럼 붙어 있던 마족 하나가 숨을 내뱉으며 떨어졌다.
콰득!
생명의 마족은 떨어진 마족의 흉부를 가르고 심장을 꺼냈다.
그 즉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마(魔)를 따르는 자의 권역에 진입하셨습니다. 』
『 시야 제약 : 권역 내의 모든 생물의 시야가 100m로 축소됩니다. 』
마족이라는 종족에게만 깃드는 축복.
제약이라는 무기를 사용할 차례였다.
【 그대에게 유리한 제약을 골라 발할 터이니, 걱정말게나. 】
“아하······.”
무한의 마족은 흡족스러운 듯한 미소로 손을 비볐다. 그의 마법이라면 보지 않고도 충분히 주변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시간을 끌기만해도 승리, 대적자와 인간 놈들을 쳐부숴도 승리. 잘 알겠네요.”
곧장 창틀 밖으로 뛰어내린 무한의 마족이 마기를 발하며 적진으로 향했다.
생명의 마족은 또다른 마족의 심장을 꺼냈다.
‘마족은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맥동하는 심장을 손에 쥔 그의 눈에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이 세계의 섭리를 바꾸는 제약.
그것은 오로지 마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 * *
2차 방어선 전초기지.
“밀어내! 드래곤의 약점을 노려!”
“부상자를 뒤로 빼내고, 여긴 우리한테 맡겨!”
제약을 알리는 메시지가 모든 헌터들의 시야 위로 떠올랐다.
『 마(魔)를 따르는 자의 권역에 진입하셨습니다. 』
『 시야 제약 : 권역 내의 모든 생물의 시야가 100m로 축소됩니다. 』
그것 뿐이었더라면 헌터들이 당황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마족이 제약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으므로.
그러나 제약은 하나가 아니었다.
『 참격 제한 : 권역 내에서 베어내는 공격을 행하는 존재는 발화합니다. 』
『 저속 : 권역 내의 모든 생물은 빨라질 수 없습니다. 』
『 정정당당 : 권역 내에서 약점을 공격하는 존재의 데미지가 감소합니다. 』
『 청음 불가 : 권역 내에서 말하는 사람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
···
..
.
『 마력 불감 : 권역 내의 모든 생물은 마력을 감지할 수 없습니다. 』
“뭐, 뭐야······? 잠깐······.”
“크으윽, 이래선 싸울 수가······.”
“조심해!”
속속들이 떠오르는 제약이 헌터들을 가로막았다.
하나였을 때는 성가셨을 뿐인 제약이지만,
다섯 개가 되자 전투가 불가능해졌다.
열 개가 넘어가자 도망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물론 그러한 제약은 마수에게도 적용되었다.
쿠우웅!
검을 든 오우거의 거체가 헌터들을 향해 쓰러졌다. 제대로 피하려고 해도 제약에 발이 묶여 마음 같지가 않았다.
“으아아악! 위, 위험해!”
“뭐라고?!”
전투가 뒤죽박죽이 되어 유리하던 전황이 엉망이 된다.
헌터들의 스킬 마공학 탄환과 마수들의 공격이 어지러이 뒤섞였다.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었다.
전초기지의 뒤편.
그 상황을 조용히 바라보던 이지한이 입을 열었다.
“불사의 마족.”
“여기에 있다.”
상대가 마족인 이상 제약을 사용해 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해결 할 수 있겠나?”
“물론이지.”
이어서 옆쪽의 공간이 일렁이더니 트레이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3m는 넘어갈 법한 크기의 상자에 올라가 있었다.
복잡한 문양이 잔뜩 새겨진 선홍빛의 상자였다.
부덕의 상자.
간혹 마족들이 자신의 것이 아닌 제약을 발휘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물이었다. 보통은 마족의 심장이 담겨 있는 적당한 크기지만, 불사의 마족이 가지고 있던 것은 무식하게 컸다.
“가, 가져왔어요. 설마 이거 하나로 진짜 해결이 된다고요······?”
“당연한 걸 묻는군.”
코웃음을 친 불사의 마족은 상자의 구멍에 자신의 팔을 집어 넣었다. 그의 마기가 상자의 내부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6개월 전.
불사의 마족은 이지한에게 복종의 맹약을 맺었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마계왕을 향한 반란.
태초의 마족이었던 그는 지금의 마계왕이 거짓이라는 말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꺼냈었다.
– 금제에 대해서 알고 있나?
금제란 제약의 중복.
불사의 마족은 그러한 제약에 대해 계속해서 연구해왔다.
마계왕을 쓰러뜨리기 위한 덫을 만들기 위해서.
최후의 반란을 위한 무기가 바로 그 금제라는 덫이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 힘을 발휘할 차례였다.
“사도 생명의 마족은 착각하고 있다. 제약이 오롯이 마족의 것이라고. 그 착각을 깨부숴줄 때가 되었지.”
상자와 일체화가 된 불사의 마족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내부에 든 것은 마족의 심장들을 농축한 마(魔)의 원천이자, 제약을 발하기 위한 도구.
오랜 시간에 반란을 준비하며 모아 온 각종 제약이 이곳에 담겨 있었다.
『 태초의 마족 ‘유그리아스 아르카나’가 제약을 발휘합니다. 』
『 마(魔)를 최초로 따르는 자의 권역에 진입하셨습니다. 』
『 발화 금지 : 권역 내의 모든 존재는 발화하지 않습니다. 』
『 해당 제약이 ‘참격 제한’과 충돌합니다. 』
하나의 제약이 지워졌다.
이어서 떠오르는 메시지는 상대의 제약을 무효화고 있었다.
『 고속 : 권역 내의 모든 존재는 빨라질 수 있습니다. 』
『 해당 제약이 ‘저속’과 충돌합니다. 』
···
..
.
『 마나지체 : 권역 내의 모든 존재가 마나의 흐름을 느낍니다. 』
『 해당 제약이 ‘마력 불감’과 충돌합니다. 』
본래 존재하던 제약이 전부 상쇄되었다.
전장을 메우고 있던 불길한 흐름이 이제는 없다.
“이 기적은 금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거다. 제약은 이제 인류의 무기가 될 테니.”
그리 말하는 불사의 마족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