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chief of Jurassic Defense RAW novel - Chapter (54)
54. 적진을 향해서
브릿지 마을의 성벽 위.
체체는 가만히 동쪽 전장의 전황을 살폈다.
“제사장님, 유격대가 돌아오는군요.”
전사 한 명이 체체에게 보고를 올렸다.
“족장님께서 이끄시는 공격대는 무사히 데스랜드로 진입한 듯합니다.”
“유격대에 부상자는 없나?”
“네, 따로 부상당한 인력은 없습니다.”
“혹시 모르니, 서둘러 전사들을 정비시켜라. 그리고… 성문의 복구는 어떻게 되고 있지?”
“성문의 경우 파손이 심각하여, 당장의 복구는 어려울 듯합니다.”
“리리 님께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을 거다. 당장 성문을 막을 수 있는 목책이라도 설치하도록.”
그때 성벽 위로 한 사람이 걸어올라왔다.
“제사장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체체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촌장, 로메인이었다.
지난번 공룡들의 대규모 방어전 당시 한쪽 팔이 잘린.
체체가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돌아가라, 촌장. 이곳에 더 이상 네가 할 일은 없으니까. 혹시 신성력에 의한 치료가 필요한 거라면, 그쪽에 잠깐 앉아있던지….”
그러나 로메인은 그녀의 차가운 반응을 보고도, 그저 작게 미소할 뿐이었다.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제사장님.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가 걱정을 했다고…….”
그리고 로메인은 곧장 석재 탄환을 나르는 전사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고생들이 많구나! 지금부터는 내가 좀 거들어주지.”
“앗, 촌장님? 그, 팔이… 도와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후후, 지금도 너희 정도는 이 한 주먹으로 때려눕힐 수 있는데. 어디 한 번 붙어볼 사람?”
그렇게 그녀는 전사들 사이에 섞여서, 시키지도 않은 온갖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던 체체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촌장!! 괜히 걸리적거리지 말고 썩 돌아가라!”
하지만 로메인은 그런 손녀의 호통에 아랑곳 않은 채, 팔뚝으로 이마를 훔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족장님께서 마을을 떠나기 전에 저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제사장님께서 혼자 계시면 어려울 수도 있으니 힘을 보태주라고 말이지요.”
“촌장, 이 깃발이 보이나? 이건 족장님께서 내게 주신 족장 대리 권한의 상징이다.”
“…….”
“현재 족장님께서 부재중이신 상황에, 이 마을의 운영과 전선의 모든 지휘권은 모두 내게 있어. 그리고 넌 내 명을 거역하고 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항명하여 내 권위를 떨어뜨리고 싶은 게 네 의도인가?”
아직 덜 여문 목이 찢어질 듯 크게 소리친 체체.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는 말이었다.
“더 이상 보호자 행세는 집어치워. 아프면 아픈 사람답게, 방구석에나 들어가서 누워 있으란 말이야!”
그때.
성벽 위에서 벌어진 소란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계단을 통해 누군가 황급히 달려왔다.
급하게 오느라 흐트러진 옷자락을 정돈한 뒤, 그는 체체를 향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흘흘, 제사장님. 이 노망난 할망구는 제가 데려갈 테니, 보던 일 마저 보시지요.”
“…….”
“이 사람아. 그러니까 왜 제사장님 성을 또 돋구고 그려. 어서 돌아가세나.”
그런데 힘없이 돌아가는 두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체체는 급히 한 마디를 덧붙였다.
“주술사.”
“분부해주십시오, 제사장님.”
체체는 품속에서 도라지 한 뿌리를 집어 초리조에게 던져주었다.
그것은 아크한이 혹시 모를 상황에 쓰라고 그녀에게 맡기고 간, 귀중한 물건이었다.
“촌장에게 달여 먹이도록. 아직 그렘린의 침공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니 서둘러 복귀하고.”
“흘흘… 잘 알겠습니다.”
거기까지 하고 나서, 체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전장을 돌아봤다.
전사 한 명이 다시 체체에게 보고를 올렸다.
“제사장님. 적들이 다시 모여들고 있습니다.”
기계 병기의 공격 사거리 바깥에서, 농성하고 있는 그렘린의 수가 다시금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대략 700마리쯤 되던 놈들의 수가 어느새 절반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그에 반해, 이쪽은 주력들이 전부 족장이 이끄는 공격대로 차출되어 나간 상황.
게다가 여전히 복구가 덜 된 성문과, 풍족하지 않은 탄환의 숫자까지.
상황은 썩 좋지만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체체의 눈은 이전보다 더욱 총명하게 빛났다.
“마을을 이끌어갈 사람은 이제 나밖에 없어.”
족장은 마을을 떠나기 전 체체에게 신신당부했다.
자신이 없을 때, 마을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건 그녀밖에 없다고.
돌아올 때까지 마을을 잘 부탁한다고.
그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체체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을 중얼거렸다.
“지금까지도 잘해왔잖아. 이번에도 분명 잘 해낼 수 있어.”
***
13기의 렙터바이크로 구성된 ‘플레어’ 유격대는 쫓아오는 그렘린들을 등진 채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렘린들이 눈을 까뒤집고 이들을 추격하긴 했지만, 붙잡힐 리가 없었다.
“겁먹지 마라! 경량화된 바이크다. 우리가 더 빠르다!”
쫓아오는 그렘린의 수효는 대충 봐도 세 자리는 넘어 보이는 숫자였다.
한두 마리씩 죽여 봐야 티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숫자.
그러나 유격대는 쫓아오는 놈들을 한 마리 한 마리 착실하게 죽여 나갔다.
애초 그들의 역할은 저 그렘린들을 모두 제거하는 게 아니라, ’시선끌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슬슬 화살이 떨어진다!”
“벨로시랩터가 슬슬 지쳐가고 있다! 이 이상은 한계야!”
“좋아, 귀환! 귀환하라!”
유격대는 그렇게 외치며 마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들을 쫓던 그렘린들은 어느 순간부터 추격을 포기하고 우뚝 멈춰섰다.
놈들이 다시금 멈춰선 위치는, 성벽 위 메카닉 유닛들이 공격할 수 있는 최대 사거리의 경계선.
그렘린들은 그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마치 선명하게 보인다는 듯,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
나는 멀찍이서 유격대의 활약을 지켜보며, 나직이 혀를 내둘렀다.
“저것도 참 소름이 돋는 장면이야.”
상대 유닛의 거리를 알고, 그에 맞춰 정확히 대응하는 것.
이게 PVP 상황이었다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이었다.
플레이어가 메카닉 유닛의 최대 사거리를 아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나 현실에서 목격하는 그 모습은, 결코 당연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주군, 여기부터 데몬즈리프트입니다.”
루리의 말에 나는 곧장 앞을 돌아보았다.
검은 산맥 사이로 길쭉하게 이어져 있는, 데스랜드로 통하는 협곡이 보였다.
산란장 공격대는 협곡을 빠르게 달려나갔다.
황량하기만 하던 땅의 색이 점차 거뭇거뭇하게 변했다.
어느새 주변이 완연한 죽음의 땅으로 바뀌어 있을 무렵.
나는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지.”
수신호와 함께 내린 내 명령에 공격대의 움직임이 서서히 멈춰섰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은, 유격대의 어그로 덕분에 수월하게 이동해올 수 있었다. 허나 이제부터는 아니다.”
검은 협곡의 맞은편에서 우글거리는 그렘린들이 마주 달려오고 있었다.
조니가 적의 수를 빠르게 카운트한 뒤 보고했다.
“족장님, 대략 100여 마리 정도 되어 보입니다!”
[아군 : 17 적 : 125]저 그렘린들을 이대로 놔두면 우리 마을의 앞마당까지 이동해, 대기중인 본대와 합류하게 될 터.
그러니 여기서는…
“따로 다니는 병력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먹어야지.”
어느새 손에 글레이브를 뽑아든 루리.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조치하실 생각이십니까?”
“여기서는… ‘그 방법’을 사용한다.”
“그 방법이라 하시면…?”
내가 군말 없이 손을 뻗어 랩터의 고삐를 잡자, 루리는 이해한 듯 나와 자리를 바꾸었다.
이미 한 번 해본 일이라 어렵지 않은, ‘무빙샷’의 포지션이었다.
물론, 과거 지구라트를 파괴하러 갔을 때와 지금의 전투력을 비교해보면, 놈들과 정면대결을 한다 해도 무리가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은 사려야 한다.’
스피드도 중요하지만, 목표물까지 도달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체력을 온존해야 했다.
굳이 일일이 소모전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여기서 놓치는 적은 우리 마을을 향할 것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한 마리도 빼놓지 말고 다 죽여라!”
동시에 손바닥을 들어 한 번 더 수신호를 보냈다.
“선회!”
그와 함께 U턴을 시작한 루리의 랩터, 블루.
뒤를 따르던 랩터바이크들도 줄줄이 급선회를 이어갔다.
급격한 코너링을 시작한 랩터들이 거칠게 울었다.
《크아앙!》
한쪽으로 쏠리는 관성을 버텨내며, 사수석에 탑승한 영웅들은 각자의 원거리 공격을 날려보냈다.
가장 먼저 조니의 저격 화살이 날아들었다.
“내 화살은 빗나가는 법이 없지!”
투투퉁! 푸슈욱!
일렬로 달려오던 그렘린들이 조니의 저격 화살에 관통당하며 스러졌다.
전설급 장비, [윈드 리퍼]의 효과로 세 발씩 날아간 ‘저격 화살’의 위용은 말할 것도 없었다.
《께에에엑!》
휩쓸린 그렘린들이 낙엽처럼 나가떨어지며,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놈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집중해야 해…!”
뒤이어 해머 파티의 사냥꾼, 보먼의 ‘갈래 사격’이 십수 마리의 그렘린에게 동시에 박혀 들어갔다.
푹푹푹…!
그러나 나머지 그렘린들은 이제야 이쪽의 공격을 인지한 듯, ‘대쉬’를 사용하며 일행의 뒤를 바짝 뒤쫓아왔다.
“흩날려라!”
찰싹!
하지만 올가의 ‘밧줄 채찍’이 날아들며 접근한 그렘린들을 넓게 휩쓸며 밀쳐버렸다.
인게임에서의 넉백과 똑같은 효과!
그리고 그 사이.
4성급 마법사, 에른이 막 캐스팅을 끝마쳤다.
“지옥의 파수견들이여, 넘어 보아라! 이것은 바로 ‘링 오브 플레임’. 크하하!”
평소에는 중2병이던 놈이, 마법을 쓸 때는 아예 정신줄을 놓는 듯했다.
아무튼, 넉백으로 넘어져 있던 그렘린들을 향해, 맹렬히 타오르는 화염의 고리가 쏘아져 나갔다.
화르르륵!
그렘린들은 마치 서커스를 하듯 거대한 고리를 뛰어넘으려 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른은 그저 한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속삭였다.
“익스플로전.”
쿠콰콰쾅…!!
과정이야 어쨌든, 과연 명불허전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마법사 클래스의 위력!
그렇게 파티는 점점 무빙샷의 풍경에 익숙해졌다.
기본적으로 이동속도의 우위를 가진 랩터바이크로 그렘린들과 거리를 벌리고.
조니와 보먼이 ‘저격’과 ‘갈래 화살’로 딜을 하는 와중에.
어쩌다 가까이 온 놈들은 올가의 ‘밧줄 채찍’으로 밀쳐내며.
그 사이에 에른이 캐스팅한 ‘화염의 공명’이 놈들을 광역으로 불태운다.
그야말로 카이팅의 진수.
나만 때리고 상대는 맞기만 해야 하는, 이기적인 딜교의 현장!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우리에게 다 깎여나가 숫자가 줄어든 그렘린들은 슬슬 다시 데스랜드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럼 이젠 놈들을 우리가 쫓아갈 차례.
“이대로 놈들을 추노하면서 데몬즈리프트를 통과한다! 전력으로 달려라!”
그렇게 이어진 추격전은 말 그대로 학살이었다.
《크와앙!》
선두에서 달리던 벨로시랩터, 블루가 우렁차게 포효하며 마지막 한 놈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흡!”
루리의 글레이브가 놈의 목을 갈랐다.
퍼석!
이어진 조니의 외침.
“족장님, 데스랜드의 저편이 보입니다!”
양쪽으로 높게 이어져 있던 산맥이 점차 낮아져갔다.
마침내 검은 협곡, 데몬즈 리프트가 끝나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넓게 펼쳐진 시커먼 세상.
온통 먹빛뿐인 죽음의 땅과, 그 위에 넓게 펼쳐진 시커멓게 죽은 풀들.
땅 위로는 거뭇거뭇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안개는 땅에만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하늘 일부를 덮었고, 그때문인지 볕이 거의 들지 않는 이곳은 더욱 우중충하게 보였다.
“…….”
어딘가 끔찍한 장소였다.
본능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어서 이 장소에서 벗어나 도망가라고.
“여기가 바로, 데스랜드의 최외곽에 위치한 구역인 ‘농업지구’다.”
데스랜드에 진입한 플레이어가 첫 번째로 마주하는 구역, 농업지구.
온통 시커먼 풍경이라는 것만 빼면, 이곳은 농사를 짓는 한적한 시골과 같은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때.
옆에 서있던 에른이, 웬일인지 아무 말 없이 폐허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중2병에 걸린 이놈이라면 오히려 ‘진짜’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흥분할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자세히 보니 녀석은 낯익은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
“음?”
저건 분명, 쥬크 OST의 Track 2, 〈PANSY〉.
엘프족 전용 BGM로, 반복되는 중독 구간 때문에 유저들 사이에서 수능 금지곡으로 거론되는 음악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걸 왜 저녀석이 흥얼거리고 있지?
“어이, 에른. 뭐하냐?”
그런데 어쩐지, 녀석의 표정에는 뭔가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서려 있었다.
갑자기, 이 풍경을 보고?
“뭘 그렇게 빤히 보냐? 뭐라도 발견했냐?”
“아, 족장님… 그저, 어렸을 적 살던 집이 떠올랐을 뿐, 별 것 아닙니다. 크큭.”
“‘크큭’만 뺐다면 좀 더 진심처럼 들렸을 거다. 그나저나… 어렸을 적 살던 집?”
“서른 살이 될 즈음까지는 가족과 지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습니다. 아주 어렴풋하게 말이죠.”
엘프에게 서른 살이면… 세 살때 쯤인가.
새파랗게 어린놈이 서른 살, 이러고있으니 뭔가 낯설었지만… 나는 금세 적응했다.
뭔가 녀석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그랬으니 그 광산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었을 테고.
“아무튼, 드디어 도착했구나. 데몬족의 본진에.”
나는 시야를 꽉 채우는 흑색 풍경 속에서, 미션 오브젝트 마커가 위치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갈 곳은 바로 저 방향이다.”
검은 풀과 안개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곳.
그러나 저곳으로 쭉 나아가면, 그렘린 산란장이 있을 것이다.
미션 오브젝트 마커가 그곳을 가리키고 있으니.
“싸게싸게 움직이도록!”
***
그렇게 오브젝트 표시를 향해 한참 이동한 뒤.
“족장님, 저게 바로 그…?”
“음, 마치 연못처럼 생겼군요.”
“물이 고여있는 것 같은데. 마실 수는 있는 물인가?”
시커먼 돌, 흑요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네모난 모양의 한 저수조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체불명의 녹색 액체가 그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바로 저곳이, 그 어처구니없는 그렘린들 물량을 뽑아낼 수 있었던 비밀이다.”
나는 랩터에서 내려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이 검은 땅을 가로질러, 마침내 파괴해야 할 목표물을 찾아냈다는 것에 대한 기쁨.
동시에, 저 정체 모를 건물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이 둘이 혼합된 절묘한 감정이 공격대원들 사이에 맴돌았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내 본능이 자꾸 위험 신호를 보내는 이유는.
나는 특정 지점에서 우뚝 멈춰선 채, 이 위화감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았다.
“주군, 왜 그러십니까?”
“잠시 있어 봐라. 뭔가…”
그때였다.
“족장님! 지금이 기회가 아닙니까? 머뭇거리다가 또다시 그렘린 튀어나오겠소!”
“아무래도 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후딱 가서 처리해버리죠. 야 보먼, 후딱 연장 챙겨라!”
“아… 네, 형님…!”
그 뒤쪽으로, 양손에 불꽃을 띄워올린 에른도 뒤따라갔다.
“드디어, 세상을 불태울 시간인가?”
해머 파티는 애초에 충성도가 그렇게까지 높지 않은 놈들이었다.
그런데 에른, 저놈은 왜 또 동조하고 있는 거지?
나는 서둘러 빽핑을 찍었다.
핑! 핑! 핑!
전방의 땅에 노란색 느낌표와 비슷한 빛무리가 연속으로 떠올랐다.
““…?!””
나는 이쪽을 쳐다보는 이들에게, 조곤조곤 말했다.
“산란장의 주변에 적들이 숨어있다.”
나도 방금 알아챘다.
텅텅 빈 검은 땅 위에,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렘린 산란장.
그 주변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둘러봐도 뭐가 있을 만한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뜻일까?
민속놀이 십수 년차 게이머, 나 쥬벅.
전장의 검은 안개가 드러날 때의 픽셀만 봐도, 그 아래 은신 유닛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남자.
그런 나의 본능이 먼저 경고했다.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고.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저기만 유독… 텍스쳐가 다르다. 그래픽이 아닌데도 묘하게 위화감이 있어.’
나는 핑이 찍혀있는 땅 아래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었다.
“저 아래, 매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