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백주하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빨랐다.
백주하 매니저님
네가 말한 것 준비해뒀어
지금 주차장에 차 댔으니까 이쪽으로 올래?
일을 맡긴 지 일주일 만에 알아 오다니.
묘한 기분이었다.
‘정말 있었구나, 이 세계에… 내가.’
만약 아무리 찾아도 ‘백녹하’에 대해 나오는 게 없었다면, 백주하의 대답은 달랐을 거다.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다고 말했겠지.
그런데 이렇게 불렀다는 건.
뭔가가 나왔다는 것이다.
내 신상 명세가 이토록 알기 쉬운 것이었다니.
허무하면서도 우스웠다.
진작 알아볼걸.
백주하라는 패를 진즉, 뒤집어 볼걸.
왜 백녹하 시절의 인연을 두려워했을까.
“왔니?”
“더우실 것 같아서, 음료수 사 왔어요.”
나는 백주하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백주하는 고맙다며 커피를 받아 들고.
대신 내게 서류 뭉치를 주었다.
첫 번째 장, 맨 위에 있는 중학교 학생증 사진이 눈에 띄었다.
이게….
여기에 있네.
이 세계의 백녹하는….
내 세계의 백녹하와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짧게 자른 머리, 활짝 웃은 미소.
내 기억의 나보다도 앳되지만 내가 나를 못 알아볼 리가.
“알아보는 눈이구나.”
“…아는 사람이니까요.”
잘 아는 사람이지.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서류 뭉치를 읽어 내렸다.
자, 이 세계의 백녹하.
너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어라, 언니!”
연주홍이 잠옷 차림으로 나와, 나를 맞이했다.
숙소 안은 바깥과 달리 시원했고.
멤버들은 모두 부엌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어 나를 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되게 빨리 왔네용? 매니저 언니랑 얘기 다 끝났어요?!”
“아, 응.”
“회사에서 저희 콘서트장 규모 몇 명으로 생각하신대요?!”
“어?”
나는 멍하니 있다가, 연주홍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맞다.
멤버들은 내가 콘서트 관련 이야기를 나누러 간 건 줄 알고 있지.
“아…. 5,000명 정도의 규모, 이틀 일정으로 생각하고 계신대.”
“그럼 총 만 명임까? 오우. 너무 많은데. 그렇게 많이들 와 주실까요?”
“아직 데뷔 1년 차밖에 안 됐는데. 무섭긴 하다.”
다들 서로를 보며, 히히 웃었다.
5,000명 규모면 신인으로서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님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콘서트 표는 비싸다.
요즘 시세로 보면, 최소 12만 원대부터 시작한다.
무대 구성에 따라 그것보다 훨씬 올라가는 경우도 빈번하다.
하지만 나는 홍 사장에게 미리 말해 두었다.
오늘은 아니고, 예전에.
‘비싸게 받을 생각하지 마세요. 소탐대실입니다.’
‘이건 대탐소실일 것 같은데.’
‘컬러즈 그렇게 돈 없는 거 아니잖아요. 왜 그러세요.’
‘업계 평균보다 만 원은 비싸야지.’
‘안 됩니다. 업계 평균만 딱 받으세요. 돈에 미쳤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까.’
홍 사장… 사람이 경영에 찌들더니 변했어.
돈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더 많이 벌수록 더 난리인 사람들이 있다니까.
아무튼.
나는 하하, 웃었다.
“청청. 무슨 일 있어요?”
김금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어? 왜?”
“아니. 갑자기 막 실실 웃고 그러니까.”
“아냐. 그냥… 그냥 웃어 봤어.”
내 말에, 멤버들이 다시 서로를 본다.
“아무래도 뭔 일이 있었나 본데.”
“뭔데 그래요?”
“별거 아니야. 그냥… 콘서트 할 생각하니까 너무 좋아서. 좀 힘들겠다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래요. 다들 걱정 마요.”
나는 적당히 휘휘, 손을 저었다.
“저 좀 쉴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미안하지만 정말로 숨이 쉬어지질 않아서.
도망쳐야만 했다.
…보컬 실력이 특히 우수해 데뷔 유력한 연습생이었으나.
201x년, 교통사고로 사망
남은 가족 1명 (모친)
현재 모친은 해외로 이주한 것으로 확인
딸의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로 한국을 떠난 것으로 추정
생존해 있었다면 현재 21살
그 외 별다른 특이 사항 없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걸 보고도.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도.
멀쩡할 사람이 있긴 할까.
일단 그게 나는 아니었다.
꿈을 꿨다.
있잖아
너는 모르는 이야기가 있어
아니. 지금 꿈을 꾸고 있었다.
컨셉 필름 2부.
‘모든 세계를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와.
‘아.’
추운 방.
고개를 돌려도, 서백영은 없다.
그저 장롱만 보일 뿐.
이곳은 12월.
눈이 내리고 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무선 이어폰을 낀다.
있잖아
네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난 사실
아주아주 먼 세계에서 왔어
당연하다는 듯, 내가 작곡한 [모든 세계를 뛰어넘어>가 흘러나온다.
이건 내 파트였다.
그곳은 네가 없고
아주아주 차가운 눈이 내려
연주홍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셔츠를 정리하면서, 사원증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어느 날
햇살이 눈보라에 부딪혀 반짝이고
류보라의 파트다.
가사를 머릿속에 되새기며 검푸른 코트를 걸친 뒤, 밖으로 나선다.
눈보라가 몰아친다.
코트를 단단히 여민 채, 발걸음을 뗀다.
눈을 떠 보니, 지하철 플랫폼이다.
지하철이 들어서고 있다는 안내 방송이 들려오고.
지하철 차창에, 사람들이 엿보인다.
그러다.
신기루처럼 만들어진 Prism
무지개의 파편 너머에 있는
너
귓가에 서백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지하철 창 너머로 서백영과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너를 봤어
나는 너를 찾아
여기로 왔어
내 목소리가 들려온다.
언제 들어도 기분이 이상한 일이다.
내가 듣는 내 목소리와, 세상 사람들이 듣는 내 목소리가 이렇게나 다르다니.
이내 지하철이 멈춰 서고.
나는 발을 내딛었다.
수백 개의 세계를 뛰어넘어
수천 개의 슬픔을 뛰어넘어
오로지 너와 맞닿기 위해
난 모든 세계를 뛰어넘어
너에게로
너에게로
그러나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뒤로 잡아당긴다.
[어디로 가?]낯익은 목소리.
뒤를 돌아보는 순간.
하지만 이젠 돌아가야 해
누군가가 내 팔목을 붙잡고 서 있는데.
도저히 상대방을 알아볼 수가 없다.
있잖아
너는 모르는 이야기가 있어
2절이 시작된다.
있잖아
사실 전부 알고 있었어
내 뒤로 지하철이 빠르게 떠나가고.
세찬 바람만이 남아, 코트를 휘두른다.
멍하니, 알아볼 수 없는 상대방의 얼굴만 보는데.
무언가를 깨달았다.
모르는 얼굴이라 알아볼 수 없었던 게 아니다.
여름에 내리는 눈처럼
금방이라도 녹을 것처럼
널
이상하다.
이거… 누구 파트였더라.
왜 네 명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것 같지.
[가지 마.]괜찮아
가야 하는 걸.
아냐 사실 괜찮지 않아
[그러면… 갔다가, 다시 돌아올 거야?]약속할 수 없는 약속을 하라고 하는구나, 넌.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문득 상대방의 옷차림이 보인다.
새하얀 코트.
너답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색을 합치면 검은색이 되지만.
모든 빛을 합치면 흰색이 된다고 했던가.
다시 한 번
수백 개의 세계를 뛰어넘어
수천 개의 기쁨을 뛰어넘어
[가도 괜찮아.]내 미소에, 너도 희미하게 웃는다.
뭘 안다고 웃어,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오로지 너와 맞닿기 위해
난 모든 세계를 뛰어넘어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서.
나도 같이 웃어 버린다.
[하지만 돌아와 줘.]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돌아올게.
돌아올 거야.
너에게로
너에게로
모든 세계를 뛰어넘어서라도.
“깼어?”
눈을 떠 보니.
서백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이마 위로 미약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언니?”
“식은땀을 흘리는 것 같길래. 부채질만 좀 해 주려 했는데.”
서백영이 하하, 웃는다.
그 실없는 웃음에 나도 긴장이 탁, 풀렸다.
“요즘 매일 악몽을 꾸네.”
“아.”
전부터 계속 얘기가 나왔던 것이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고, 멤버들의 목격담으로만 도는 얘기지만.
악몽이라.
요새 더 자주 꾸고 있었나 보다.
“원래도 악몽을 자주 꾸는 편인 것 같긴 했어.”
“그래요?”
“나랑 같은 방을 쓰는 내내, 너 되게 낑낑대며 잤어. 알아?”
전혀 몰랐는데요.
뭔 강아지도 아니고 낑낑대며 자.
부끄러움에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되게 시끄러우셨겠네요….”
“아니… 약간 ASMR이라고 생각하려 했지.”
“….”
“농담이고. 그냥 네가 걱정됐어.”
“전 기억도 안 나요.”
정말이다.
오늘 꾼 꿈 외에 다른 꿈들은 기억도 안 난다.
류보라가 가끔 내가 악몽을 꾸는 것 같다고 말하긴 했지만….
별로 귀담아듣진 않았는데.
“너 되게 잠꼬대도 심한 거 알아?”
“…알고 싶지 않아요….”
“잠꼬대로 노래 부르는 애는 너밖에 없을걸.”
“제가 노래까지 부른다고요?”
“응.”
미친 거 아니냐.
“에반데…. 뭔 노래를 불러요?”
“우린 처음 듣는 노래들.”
“우리?”
“응. 애들한테도 다 들리지.”
“진짜 에반데.”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근데 노래 되게 좋더라.”
“…그래요?”
“그리고 희한한 게, 네가 한번 부르면. 꼭 다음 앨범에 들어가.”
미친.
설마….
“이번에 우리 타이틀도… 네가 잠꼬대로 먼저 부른 거 알아? 뭔 계시라도 받나, 했어. 나는.”
“……….”
백녹하 시절 꿈을 꾸나.
곱게 좀 꾸지….
“청아.”
“네.”
“고민 있어?”
“아뇨.”
“너무 즉시 거짓말을 하는데.”
“거짓말 아닌데요.”
더 이상 남 걱정시키는 건 딱 질색이다.
“제가 원래 태생이 심약해요. 언니도 알잖아요. 메뉴컬 나오기 전의 제가 어땠는지.”
“…알지만….”
“심약해서 악몽을 좀 꾸는 것뿐이니까, 괜찮아요. 걱정 마요.”
나는 계속해서 부채질을 하는 서백영의 팔목을 잡았다.
이렇게 얇은 팔목으로 대체 뭘 할 건데….
“병원 가서 약이라도 처방 받아 볼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민폐를 끼친 건데, 조심해야죠.”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서백영은 내 손을 밀어내고,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얘 손 왜 이렇게 매워.
“너 그럴까 봐 우리가 그간 아무 말도 안 한 거야. 그게 왜 민폐야? 너 내가 악몽 때문에 소리 지르면 민폐라고 눈치 줄 거야?”
“….”
그건 아니긴 하지.
“넌 너무 네 자신에게만 가혹해.”
그런가.
“혼자 앓지 말고, 우리한테 말 좀 하고 살아.”
서백영은 한숨을 쉬었다.
“대체 네가 안고 있는 고민이 뭔데 그러는 거야.”
“언니.”
“어.”
“만약에… 가족들이랑 멤버들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면요.”
“?!”
가족이라는 말에, 서백영의 동공에 지진이 났다.
봐 봐.
너도 그렇지.
“누구 고를래요?”
“꼬… 꼭 골라야 돼?”
“하나만 골라야 해요.”
“어….”
“솔직히 머리론 정답을 알지만, 못 말하겠죠? 못 고를 것 같잖아요.”
서백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근심 어린 눈으로 날 볼 뿐.
“그냥 그런 문제도 있다고요.”
“청이 너… 가족들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저 가족 없는 거 알잖아요.”
나는 피식, 웃었다.
“그냥 비유예요, 비유.”
나는 서백영의 어깨를 토닥였다.
“마저 자요. 내일 스케줄도 있는데 힘 비축해야죠.”
“그건 그렇지만….”
“저도 좀 자고 싶어서 그래요.”
서백영은 한참이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응시하다가, 침대로 돌아갔다.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내일은, 아니, 몇 시간 후면.
컬러즈 단체 예능 스케줄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