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avior of a Perish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9
19화 동대문 인력 시장 (4)
내가 그 말을 하길 기다렸던 모양인지 윤서진의 눈이 반짝거렸다.
“정말요?”
“네.”
“제가 먼저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누가 말하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마석 노가다는 기본 2인 1조였다. 어차피 윤서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 해도 같이 들어갔을 거다.
처음 만난 사람보다, 차라리 잠깐이라도 말 나눠 본 놈이 훨씬 나았다. 박 사장이 부르기 전까지 나는 윤서진과 짧게 대화를 나눴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겠다. 우리는 말을 놓았다.
“와, 형. 양궁 했어?”
“응. 국대까지는 못 갔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 쉽나?”
한국 양궁이 깡패라는 건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오죽하면 올림픽 금메달 따기보다 국대 들어가기가 더 치열하고 어렵다는 소리가 나오겠나.
사람들은 유독 1등만 기억하고, 떨어진 사람들을 실패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됐다.
떨어지고, 실패했다고 해도 경쟁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두가 박수를 받아야 마땅했다.
내가 활을 쏘면 국대 선발전은커녕, 동네 양궁 시합도 쉽지 않을 거다.
“지금은 양궁 안 해?”
“돈이 생각보다 많이 깨져서 때려치웠어.”
윤서진이 말하길, 화살 한 발 한 발이 다 돈이라고 했다.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다며 알아보고 있던 그때 각성을 했고, 이참에 전직하자고 뛰어든 모양이었다.
교육은 이수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인력 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예상대로 그는 원딜이었다. 각성자가 된 것도 양궁 선수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활은 계속 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뭐, 실제로 활을 쓰는 원딜이 없는 건 아니긴 한데.
‘포지션 자체가 너무 레어한데. 괜찮으려나?’
살짝 걱정이 되긴 했으나 아무렴 나보다 형인데 알아서 잘하겠거니 싶었다. 나도 윤서진에게 간단하게 내 추가 프로필을 말해 줬다.
“그럼 스무 살 되자마자 바로 활동한 거야?”
“그렇게 됐어. 동대문은 졸업했는데, 오늘은 볼일이 있어서 왔고.”
“흐흐, 그럼 난 고인물에게 버스 타는 거네?”
“버스는 무슨, 마석은 알아서 캐. 안 도와줄 거니까.”
“그래도 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동대문은 최소한 돈 가지고 장난은 안 친다고 하더라고?”
다른 지역들도 몇 년 사이에 복지가 많이 좋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호구를 등쳐 먹는 꾼들이 존재했다.
그에 비해 동대문은 박대식이 떡하니 지키고 있으니까.
“박 사장이랑 들어가는 걸 보고 딱 저거다 싶었다 이 말이야.”
“그런 거치곤 처음에 너무 머뭇거리던데? 그냥 자리 있냐고 물어보면 될걸.”
내 농담에 윤서진이 얼굴을 살짝 붉어졌다. 머리 위에 앉아 있던 스승님이 말을 얹었다.
[샌님이군. 활 쏘는 게 좋아서 원딜 활잡이가 됐다고? 버리라 그래.]‘왜 그래요? 파릇파릇하니 좋잖아요.’
나보다 형이긴 하지만, 각성자로서는 내가 선배다. 윤서진의 레벨은 6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파릇은 무슨, 내가 보기엔 너도 뉴비다.]‘저같이 썩은 뉴비 본 적 있으세요?’
내가 반복 회귀 당시에 한번 스치면 죽는 니알라토텝과 그 하위 몬스터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쳤는지 모른다. 덕분에 어지간한 몬스터는 무섭지도 않았다.
[없다. 앞으로도 영원이 없을 거다.]‘킬킬, 없어야죠. 제가 죽으면 언제 또 이런 날이 올지 모르는데.’
나는 속으로 스승님과 장난을 치며 웃었다. 내가 혼자 갑자기 웃어 대자 윤서진이 나를 살짝 이상하게 생각했다.
음, 스승님과 떠들 때는 앞으로 표정 관리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떠들 사람이 있어서 그런가, 시간이 빠르게 갔다. 작업반장이 나를 불렀고, 나는 윤서진과 함께 갔다.
“옆에는 또 누구여?”
“오늘 같이 일하기로 한 형님입니다. 껴 주세요.”
“그려.”
잠시 고민하던 박대식이 마지못해 허락해 줬다. 한 장짜리 일용직 계약서에 사인을 한 후 우리는 김포로 넘어갔다.
김포 인근에는 하급 이면 게이트 존이 형성되어 있었다.
한국에는 총 다섯 개의 하급 게이트 존이 있고, 그중 김포 게이트 존은 세 번째로 컸다.
게이트가 나타나는 위치는 동일해서, 그 앞에는 번호가 새겨진 특수 비석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D-7, 여기 같은데. 와, 금방 나오겠네.”
버스 기사로 선정된 선발대가 먼저 들어가서 몬스터를 정리하고 나오면 나머지 사람들이 들어가서 마석을 캐는 구조였다. 문제는 순서였는데, 캐는 사람 입장에서는 선발대가 몬스터를 빨리 정리하고 나온 던전을 배정받을수록 유리했다.
그야, 노가다꾼도 사람인데 일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앞자리는 치열하다. 보통 뉴비에게는 잘 안 주는데, 박대식이 신경을 써 준 게 눈에 보였다.
“너 뭐 해?”
“라면 먹게. 아, 하나 먹을래? 오천 원.”
바닥에 주저앉아 가방에서 캠핑용 미니 가스버너와 냄비를 꺼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내가 컵라면을 흔들었다.
“누가 컵라면을 오천 원이나 주고 먹어, 바가지잖아!”
“싫음 말구요.”
나는 내 컵라면에만 끓은 물을 부었다. 주변을 둘러본 윤서진은 오래가지 않아 내가 오천 원을 부른 이유를 알았다.
지나가는 잡상인이 컵라면 하나를 만오천 원, 오렌지 주스를 칠천 원에 팔고 있는 걸 보고 난 후였다.
“형, 김포 쪽은 처음이라고 했지?”
“아. 응. 나는 평촌에서 주로 일했어서.”
“여기 봐, 주변에 뭐가 있나, 아무것도 없으니까 바가지 씌우는 거지. 아, 먹고 싶었으면 출발 전에 사 오든가.”
평촌이야 소규모 작업장이고, 여기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하급이라고는 해도 게이트가 이렇게 많이 생기는데 뭐가 들어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라면이 끓자 냄새를 못 이긴 윤서진이 쪼그리고 오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려 오천 원을 내밀었다.
“천 원 올랐는데.”
“축제도 너보다는 바가지가 덜할 거다. 얼마 남겨 먹는 거냐?”
“형, 무슨 소리야. 축제에서 사 먹으면 육천 원이 아니라 이만 원이야.”
K 축제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단군 할아버지가 부동산 사기를 당해서 정착한 이 땅은 강한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이란 말이다.
나는 윤서진에게 라면을 휙 던졌다. 윤서진이 돈을 주려 하기에 괜찮다고 손을 휘휘 저었다.
“농담이야, 농담. 그냥 먹어.”
“고맙다.”
“물 끓여 주는 데 만 원……”
“이 새끼가?”
“아아, 장난이라고!”
내가 다 끓은 물을 윤서진의 컵라면에 부었다. 우리는 노숙하는 사람처럼 바닥에 앉아 라면을 먹었다. 그사이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여기서 먹는 라면 맛이 또 각별하지. 사람이라는 게 참 웃기다. 막상 현장에 있었을 때는 죽을 만큼 힘들고, 세상 있는 욕 없는 욕 다 했는데 돌아서 보면 추억이다.
당시 느꼈던 감정들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경험으로 미화되어 있었다. 어쩌면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장점은 망각이 아닐까.
라면과 함께 사 온 햇반까지 싹싹 긁어 아침으로 먹었다. 나와 윤서진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초면이었기에 떠들 수 있는 공통 화제가 많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침묵이 싫진 않았다.
덕분에 스승님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한 번 더 점검을 할 수 있어서였다. 멋들어진 던전은 아니지만 스승님을 만나고 처음 들어가는 던전이지 않는가?
게다가 양자의 탑이니, 이면세계니 나름대로 무거운 임무도 가지고 있었다.
반복 회귀에 갇히기 전의 나였다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반복되는 회귀는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요! ……는 개소리고, 그냥 발버둥 치는 것뿐이다.
오연수의 말이 맞다. 나도, 스승님도, 그리고 김도진의 제자도 다 각자 각자의 자리에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거였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뿐이다.
[알겠냐? 요화를 죽이기 전까지 절대로 각성하면 안 된다. 함부로 몬스터 죽이고 다니지 마라.]‘네에, 알겠다니까요. 한 번밖에 없는 히든 피스라면서요?’
20레벨, 3성이 되면 이능 개화를 통해 각성 탤런트를 얻을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첫 각성인데, 각성 직전에 뭘 하느냐 혹은 어떤 몬스터를 죽이고 레벨업을 하냐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엘든 클랜 같은 애들이 이능 개화 전에 있는 뉴비들을 모아다가 키우는 거다.
김도진이 양자의 탑에서 알려 준 히든 피스는 업경(業鏡)이었다.
겨울의 숲이라는 히든 던전에서 보스인 얼음 마녀 요화가 출현한다.
겨울의 숲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이 업경이었다.
그것 말고도 필요한 조건이 있는데, 겨울의 숲은 20레벨 이상은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내 레벨은 간당간당하니까, 김도진이 잘못해서 레벨업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는 이유였다.
‘근데 2성 이하만 출입이 가능한 던전이면서 레벨대가 40인 건 좀 불공평한 거 같은데.’
[그러니까 레이드 던전이지.]겨울의 숲의 최대 인원은 20명이었다. 1N 후반대 사람들 열댓 명을 모아서 대규모 공대를 만들어야 공략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내가 양자의 탑에 있는 등반자들에 대해서 아는 건 별로 없는데, 각성자의 생리에 대해서는 잘 안다.
‘절대 불가능!’
그 레벨대에 레이드라고 한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3~5명 이내가 한계다. 레이드라는 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임기응변이 생명이다.
파티를 모은다고 해도 경험도 부족할뿐더러, 부족한 부분을 메꿀 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도 없다. 그런 재능을 가진 10레벨대에 머무르고 있을 리도 없고 말이다.
말이 초보자용 레이드지, 사실상 깨지 말라고 해 놓은 히든 피스나 마찬가지였다.
‘스승님 원래 이렇게 사람을 막 굴리세요?’
거, 부정이라도 해 주지 사람 무안하게.
그래도 1인 솔플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40레벨인 건 얼음 마녀 요화뿐이고, 나머지 녀석들은 얘길 들어 보니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나에겐 시간이 많다. 계획대로라면 일주일 이내에 겨울의 숲에 들어갈 수 있고, 두 달 반 동안 혼자 천천히 던전 하나를 클리어하면 된다.
‘근데 진짜 아무도 안 들어오는 거 맞죠?’
[그래.]‘불안한데.’
[1층에 있는 요화는 진짜가 아니라 사념의 잔재다. 요화에 대해 알려면 최소 5층은 되어야 해.]5층에 들어가는 등반자라면 당연히 겨울의 숲엔 진입이 불가능하다. 겨울의 숲에 대해 아는 등반자도 별로 없을뿐더러, 사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더 드물다는 게 스승님의 설명이었다.
심지어 스승님이 알려 준 방법은 요화의 정수를 확정으로 드롭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요화를 죽이면서 이능 개화를 하면 정수가 확정이라니 대체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은 겁니까?’
[자잘한 건 됐으니까 살아 돌아오기나 해라. 해 볼 만하다는 거지, 쉽지 않을 거다.]‘궁금해서 그런데요. 스승님은 제가 살아 돌아올 확률을 얼마 정도로 보고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