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316)
316화 Battle (2)
박연과 안평이 충돌을 하게 된 것은 음악에 관한 가치관의 차이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겠지만, 그 충돌 과정을 만든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들이 충돌하게끔 된 이유는 우습게도 일이 너무 잘 풀려서였다.
* * *
정간보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 박연과 안평은 좀 더 완벽한 악보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 움직였다.
나이 많고 실력 좋은 악공들까지 끌어들여 연주 부호까지 만들어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까지 강행군이 이어졌다.
조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음악인이라 일컬어지는 박연과 머리 좋고 음악에 열의를 가진 안평이 침식(寢食)을 잊어 가며 일한 결과, 매우 효과적인 악보가 만들어졌다.
만족할 만한 수준의 악보가 만들어지자 다음 과정의 대부분은 하급 관리들과 악공들의 몫이었다.
구전(口傳, 말로 전하여 내려옴)된 음악들을 다시 채록하여 기존의 악보와 비교 검토하고, 그동안 학습을 통해 익힌 기보법과 연주 부호를 이용해 정간보를 기록했다.
그렇게 악보를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악보를 가지고 다시 연주하면서 오차를 확인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박연과 안평이 제일 많이 관여하는 부분은 그 검수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검수 과정은 순조로웠다.
그렇게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면서 생긴 시간적 여유가 박연과 안평이 재차 충돌하게 만든 것이었다.
* * *
“아악의 재정리도 어느 정도 끝이 보이고, 향악과 당악의 정리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두 대군 대감께서 애를 쓰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제가 한 것이 무에 있습니까? 다, 제조께서 벌이신 일에 끼어든 것뿐이지요.”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해 대며 이어지던 훈훈한 분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양부악(兩部樂) 가운데 좌방(左坊, 아악)은 거의 끝나 가고, 우방(右坊, 향악, 당악)도 궤도에 올랐으니 앞으로 진행할 것이 무엇이옵니까?”
안평의 물음에 박연을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악기들을 정비해야겠지요. 혹여,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으십니까?”
박연의 물음에 안평이 바로 대답했다.
“백성들이 즐기는 소리와 음악을 정리함이 어떻습니까?”
안평의 말에 박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불가합니다.”
“어째서입니까?”
“격이 없습니다. 파격(破格)이 아니라 아예 무격(無格)이니 정리할 가치도 없는 것들입니다.”
박연의 말을 들은 안평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짧게는 전조(前朝, 고려), 길게는 옛 삼한(三韓) 시대부터 내려온 것들입니다. 채록하고 정리할 가치는 충분합니다!”
“전조의 속요들 대부분이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를 다루는데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그 열(悅)이 음란한 행사만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임에 대한 정절을 노래한 것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그 열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감정 아닙니까!”
“악(樂)은 예(禮)를 보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대군 대감께서 정리하자는 것들은 오히려 예를 더럽히는 것들입니다!”
“악은 예의 보조역으로 끝날 것들이 아닙니다. 악은 악 자체로도 귀합니다!”
“그렇게 귀하니 제대로 선별해야지요!”
“그 선별의 기준이 뭡니까! 솔직히 말해 사대부들도 소리를 즐기지 않습니까!”
“그것은 단순한 여흥일 뿐입니다!”
“핑계를 위한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이 맹렬하게 충돌하게 된 것이었다.
* * *
두 사람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감정 충돌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이 대군이랍시고!’
‘음률을 좀 아는 덕에 아바마마의 총애를 받는 주제에 으스대는 꼴이란!’
이렇게 틀어질 대로 틀어진 두 사람은 틈만 나면 으르렁거렸다.
이 부분은 박연이 조금 더 심했는데, 새파랗게 어린 안평이 대군이라는 지위 덕에 끼어든 것에 대한 불만과 함께 안평 때문에 부업을 하지 못한 불만 때문이었다.
* * *
향이 개입하기 전의 역사에서, 박연은 세 번을 파직당해 낙향했었다.
하나는 말년에 아들인 박계우가 단종 복위 사건에 연관이 되면서였다. 보통이라면 연좌제로 엮어 죽었을 것이었지만, 81세라는 나이와 그동안 음률에 관한 공적 덕분에 파직으로 끝난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세종28년(1446년)에 절일사(節日使)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벌어진 사건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사신 일행이라는 부험(符驗)을 북경의 회동관에 놓고 출발해 국경에 도착해서야 부랴부랴 회수한 사건을 숨긴 것이 발각된 것이었다.
이 결과로, 박연은 1년간 벼슬에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세종30년(1448년)의 파직은 불명예스러운 것이었다.
악학 제조로 있으면서 궁의 악공들을 사사로이 부려 돈을 벌어 축재한 것이 발각된 것이었다.
분노한 세종은 그를 파직시켰으나 대신할 이가 없었기에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다시 악학 제조로 불러야 했다.
* * *
때문에, 박연은 안평이 눈엣가시였다.
악공들의 사적 이용이 걸려 쫓겨난 것은 한참 후-약 17년-의 일이었지만, 안평이 끼어들기 전에도 이미 재미를 보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평이 끼어들면서 부업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임금의 적삼남(嫡三男)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부업을 할 간 큰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음악에 대한 가치관 차이에 더불어 경제적인 문제가 겹쳐지면서 안평에 대한 인식이 더욱 안 좋아진 것이었다.
이는 안평도 마찬가지였다.
아악 정리 작업에 동참하면서, 바로 코앞에 악공들이 잔뜩 있는 상황을 맞이한 안평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약간의 틈이 생기면 안평은 바로 세종에게 달려가 악공을 자신에 집에 데리고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다.
“흐음…. 사당패를 쫓아 전국을 떠도느니 이게 낫겠군.”
안평의 덕질을 잘 알던 세종은 안평의 청을 받아들였고, 안평은 악공들을 자신의 집에 불러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안평의 집에서 악공들이 주로 연주하는 것은 속요가 대부분이었다.
왕실 연회에서 연주하는 음악은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게 만들 수 있었다.
-임금이 있는 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듣다니, 왕권 찬탈의 뜻이 있는 거다!
억지가 가득하고, 세종과 향의 성격이라면 코웃음을 치며 넘어갈 주장이었지만, 정치판에서는 능히 문제를 일으킬 주장이었다. 정치적인 야심이 있는 자라면 얼마든지 판을 벌릴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외부인이 보는 시각이었고, 궁중 음악은 안평의 취향이 절대 아니었다.
이렇게 악공들을 불러 연주를 들으면 안평은 악공들에게 포상을 했다. 엄청난 금액은 아니었지만, 며칠 정도는 가장으로서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정도의 포상이었다.
이런 일이 잦아지면서 악공들과 안평은 친근한 사이가 되었고, 그렇게 친해진 악공들을 통해 안평은 박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뭐 이런 후안무치한 작자가….”
악공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안평은 박연을 곱게 볼 수 없었다.
때문에 양쪽의 사이가 더욱 안 좋아지게 된 것이었다.
* * *
조직의 No.1과 No.2가 사이가 안 좋으면 죽어 나가는 것은 아랫사람들이었다.
이는 박연과 안평 밑에서 일하는 관리들과 악공들도 마찬가지였다.
틈만 나면 으르렁거리는 둘 사이에 끼어 고생하던 이들은 자기들만 있으면 불평과 하소연을 해 댔다.
“이러다 우리가 먼저 죽겠소!”
“그러게나 말이야. 아주 하루하루가 외줄 타기니….”
“그나마 공무 쪽은 제대로 처리해 주는 것이 다행이지만….”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상소를 올릴 수도 없잖소? 지금 당장 제조 나리와 대군 대감을 대신할 사람이 없지 않아요! 잘못하면 우리가 덤터기를 쓴다고!”
“그게 문제지….”
아무리 이리 살피고 저리 살펴도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관리 하나가 제안했다.
“세자께 말씀을 드려 볼까?”
“세자께?”
“주상 전하께 상소라도 올렸다 잘못되면 큰일 나지만, 세자께 하소연하면 괜찮지 않을까?”
“흐음….”
주변의 관리들은 모두 혹하는 표정을 지었다.
임금이 아닌 세자, 거기에 상소도 아닌 하소연.
이리저리 셈을 해 보던 관리들은 한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럴싸한데?”
* * *
“이거야 원….”
며칠 뒤, 몰래 찾아온 전악서와 악학 소속 관리들의 하소연을 들은 난감한 얼굴이 되어 중얼거렸다.
“여러분들의 말은 잘 들었습니다. 참 고생이 많군요. 본인이 한번 생각을 해 볼 테니 근무처로 돌아가세요.”
“알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저하만 믿겠사옵니다.”
터덜터덜 돌아가는 관리들의 모습을 보던 향은 여전히 난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난제네….”
관리들의 하소연을 들은 향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1세기 중,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에 따르면 고려가요를 비롯해 수많은 속요가 조선 초기에 집중적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속요들이 사라지게 된 요인은 조선을 개국한 사대부들이 풍속에 해를 끼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안평이 속요에 덕통 당한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아니지, 아바마마도 우방을 천시하지 않으시니…. 문제는 그런 아바마마라도 속요는 허들이 높다는 것이야. 의외로 보수적인 양반이시라….”
관노에게도 출산 휴가와 육아 휴가를 법으로 보장할 정도로 진보적인 세종이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이는 세종이 가진 일종의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비록 선왕의 적자기는 하나 적장자는 아닌 이가 왕이 됐다.
-그렇게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학식이 뛰어나고 총명했던 것도 있었지만, 품행이 방정했기 때문이다.
바로 두 번째 항목 때문에 양녕이 밀려나고 세종이 세자가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세종은 누구보다 유교적 도덕주의에 충실해야 했다.
어렴풋이 이 상황을 알아챈 향이었기에 세종에 관해서는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었다.
결국, 향은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 이런 문제를 풀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알코올이지!”
* * *
며칠 뒤, 향은 안평과 박연을 데리고 기방을 찾았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이곳에 온 것은 감사함을 표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들의 수고가 있어 음률의 정리가 순조롭게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향의 치사에 박연과 안평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과찬이시옵니다.”
향은 잔을 들며 주연의 시작을 알렸다.
“자! 오늘은 즐겁게 대취(大醉)해 봅시다!”
술잔이 돌고 돌면서 분위기는 점점 부드러워졌다. 기생들의 가무가 주연(酒筵)의 흥취를 돋우는 가운데 박연과 안평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하하하!”
“저하! 드시지요.”
“안평, 너도 들자꾸나! 제조! 제조도 한잔 드시오!”
계속해서 안평과 박연에게 술을 권하며 향은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적당히 야들야들해졌네. 그럼 슬슬….’
“그런데 말이오. 제조.”
“예, 저하.”
“궁에 있다 보니 이런저런 소문이 많이 들리오, 그런데 안평과 제조가 불협(不協)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어쩐 일이오?”
향의 말에 박연과 안평의 얼굴에서 술기운이 확 사라졌다. 그 모습에 향은 슬슬 어르기 시작했다.
“아! 뭐라 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오. 단지, 아바마마께서 많은 기대를 하시고 계신 일을 하는데 안 좋은 소리가 들리니 걱정이 돼서 물어본 것이오.”
“그게 약간 음에 대해 의견이 달라서….”
“의견이 다르다?”
향이 넌지시 질문을 던지자, 안평이 바로 말을 받았다.
“속요의 기록 문제 때문이옵니다.”
“대군 대감!”
박연이 놀라 외쳤지만, 안평도 물러서지 않았다.
“제조! 딱 좋은 자리 아니요! 이 자리에서 결판을 내 봅시다!”
‘안평 VS 박연’의 세 번째 판이 벌어지려 하고 있을 때, 향 일행이 있는 방과 작은 복도 하나를 두고 자리한 방에 새로운 손님이 들고 있었다.
“세자가 갑자기 기방행이라니 무슨 일인지 한번 들어 볼까?”
방에 들어선 이는 세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