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729)
729화 장영실의 유산 (6)
철로용 궤도 공장을 살피고 나온 향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래도 점점 불안해진단 말이야. 그때 태상황께서 하셨던 말씀이 그냥 복선이 아닌 것 같아.’
향이 신지로 떠나기 직전, 세종은 향에게 신지에 관해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다.
-장영실의 마지막이자, 황제의 시작이 될 것이 있소. 물론, 예산 문제로 골치가 좀 아프겠지만 말이오.
“이게 처음에는 그저 기물 몇 개로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단 말이야.….”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한 기운에 향은 점점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태상황께서 어떻게 사람을 굴리는지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니, 너무 잘 알고 있지.”
세종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는 만큼 아랫사람도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이였다.
그것도 무조건 일을 떠넘기고 ‘해!’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사자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정확히 파악한 다음 최적의 자리에 꽂아놓고 일을 시키는 이였다.
아니면, 치명적인 약점을 잡아 쥐고
흔듦과 동시에 적당한 당근-주로 권력-을 주면서 일을 시켰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진평, 안평과 김점이었다면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황희와 조말생이었다.
그리고 향은 전자와 후자가 합쳐진 상황이었다.
물론, 향이 자초한 부분이 제일 컸지만.
향이 연구소와 51구역을 만든 것은 ‘부국강병’을 명분으로 자신의 덕질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 부분에서 확실한 결과물을 내놓았기에 세종은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세종은 연구소와 51구역을 통해 향이 덕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상황이었다.
그리고, 세종은 이것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예산을 무기로 세종은 필요할 때마다 향을 확실하게 굴렸다.
거기에 향은 세자라는 명분도 세종은 확실하게 써먹었다.
이 부분을 잘 알고 있기에 향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폐하, 이 공장에서 무슨 문제라도 찾으셨사옵니까?”
점점 심각해지는 향의 표정에 불안해진 장온은 조심스럽게 향에게 물었다.
장온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단지, 좀 생각할 것이 있어서 말일세. 궤도 공장은 봤으니 다음으로 옮기세.”
“예, 폐하. 그럼 연구동과 개발동으로 모시겠사옵니다. 어차에 오르시지요.”
“그러세…”
***
“여기가 연구동과 개발동이라고? 동(洞)이 아니라 시(市)라고 불러야할 것 같은데?”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어차에서 내려 연구동과 개발동의 규모를 본 향은 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장온에게 물었다. 옆에 자리한 진평도 마찬가지라는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향의 평가에 장온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위험한 재료와 화약, 화기들이 많이 쓰이는 장소인지라 건물들 마다 사이를 띄우다 보니 이렇게 되었사옵니다.”
“서울의 51구역은 여기보다 공간이 좁은데도 그런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네. 물론, 사이를 띄우는 것도 좋지만, 안전에 관해 철저히 주의를 주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은가? 처음부터 이렇게 공간을 많이 잡아 먹으면 나중에 부족함이 있지 않겠나?”
“사람이란 것이 잘 잊어먹는 존재인지라.. 차라리 사이를 띄우는 것이 더욱 낫다고 태상황께서 명하셨사옵니다.
그리고, 건물을 세울 공간이 없으면 주변으로 더욱 넓히면 될 일이라고 태상황께서 말씀하셨사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기승전 태상황이냐!’
속으로 툴툴거리면서 향은 지적을 계속 이어갔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띄어 놓아 안전을 확보한 것도 좋고, 건물들의 덩치를 키워 제작 공간과 실험 공간에 여유를 준 것도 좋군. 그런데 이렇게 넓다 보면 기물들을 옮기는 것이 쉽지가 않을텐데 어떻게 해결했나? 흐음… 이동식 녹로를 많이 만든 것인가?”
“녹로도 많이 만들기도 했지만, 녹로만으로는 한계가 있사옵니다.
해서 전임 소장께서 새로운 기물을
만드셨사옵니다.”
“새로운 기물?”
‘새로운 기술’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향이 눈을 빛냈다. 그런 향의 모습을 본 장온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한쪽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딸랑딸랑! 치이익! 치익!
“때마침 그 기물이 오고 있사옵니다. 바로 저것이옵니다.”
장온의 말에 문제의 기물을 살피던 향은 속으로 외쳤다.
‘지게차라고!’
“전임 소장과 소신들은 저 기물을 지게차라고 불렀사옵니다.”
익숙한 이름에 향은 자기도 모르게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송구하옵니다만, 이곳에서는 지게차가 모든 것에 앞섭니다. 송구하옵니다만 조금만 뒤로 물러서 주시옵소서.”
큼지막한 쇳덩어리 기물을 든 지게차가 다가오자 장온은 항 일행을 뒤로 물렸다. 그렇게 향 일행이 뒤로 물러나자,
지게차는 그 앞을 질러갔다.
“장관이로군.”
지게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본 향은 자기도 모르게 ‘장관’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향의 말대로 장관은 장관이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지게차 전면 좌우에는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입에 호각을 물고 좌우를 살피며 앞서 걸었다.
그리고, 지게차의 운전실 좌우에는 장인들이 매달려 주변을 살폈다. 검은 연기를 내뿜는 굴뚝 옆에는 작은 종이
연신 종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렇게 지게차가 지나가자 장온이 설명을 시작했다.
“녹로가 유용하기는 하옵지만, 그 간주가 길어 제약이 많사옵니다.”
“그것은 그렇지.”
장온의 말에 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 크레인의 붐에 해당하는 간주는 그 길이가 상당했다. 때문에, 사방이 확트인 열린 공간에서는 사용이 편했지만, 건물 내부와 같은 공간에서는 여러 제약이 있었다.
향의 긍정적인 반응에 장온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게차의 경우에는 지게의 가지와 같은 이빨이 밑에 달려서 공간의 제약이 적사옵니다. 덕분에 개발동에서 기물을 올리고 내리며 조립과 분해할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사옵니다. 또한, 기물을 정비할 때도 쉽게 들어 올리거나 내릴 수 있어 참으로 편하옵니다.”
“그렇군. 그런데 지게차에 관한 보고를 받아 본 기억이 없는데?”
향의 지적에 장온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것이 지게를 보신 태상황께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지 확실하게 확인하기 전까지는 보고하지 말라
하셨사옵니다.”
“끄응… 알겠네.”
향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세종이 그리하라 해서 그랬다는데 뭐라 말하겠는가?
‘이거 아무래도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 ‘
향이 그렇게 툴툴거리고 있을 때, 진평이 끼어들었다.
“이런 것을 보면 철마도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전임 소장께서 궁리하셨고, 지금 시제품을 만드는 것이 하나 있기는 하옵니다.”
장온의 대답에 진평은 바로 향을 돌아봤다.
“형, 아니, 폐하!”
“후우~. 그래, 가자, 가. 안내하게.”
“예. 어차에 오르시지요.”
***
향 일행을 태운 어차는 철마 개발동에 도착했다. 어차에서 내린 향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철마 개발동을 보고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폐하! 얼른 들어가시지요!”
“그래, 가자. 가.”
그렇게 안내를 받아 들어간 개발동에서 조립 중이거나 완성된 철마를 본 향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본지에서 만든 것만큼이나 단단해 보이는군.”
“처음 만든 것은 영 몹쓸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모자람이 없다고 자신하옵니다.”
장온의 자신만만한 대답을 들으며 철마를 살피던 향은 철마에 달린 커다란 쐐기꼴 모양의 배장기를 살피고는 장온에게 물었다.
“본지의 것보다 배장기가 훨씬 크군?”
“신지의 사슴이나 들소의 덩치가 상당해서 더욱 큰 배장기를 달게 되었사옵니다.”
“본지의 동북삼림지대에 사는 사슴들의 덩치도 상당하네만?”
“걔들보다 더 크옵니다.”
“흐음….”
장온의 말을 들으며 기억을 더듬던 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그 때 가출했다가 돌아오기 직전 미국 유람에서 봤던 사슴들 덩치가 상당했지.’
21세기에 쳤던 초대형 사고의 기억을 반추하던 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온을 돌아봤다.
“그럴 수 있겠군. 그래서, 이게 쓸만하던가?”
“어지간한 속도에서는 쓸만하옵니다. 하지만, 지금 철로가 깔린 지역에는 사슴들이 수십 수백 마리씩 돌아다니고, 지금 개척 중인 남쪽 지역에는 들소 떼들이 수백 수천 마리씩 돌아다니고 있어 한계가 있사옵니다.
해서, 그렇게 큰 짐승 떼가 돌아다닐 때는 잠시 멈춰서서 짐승 떼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쫓아버린 다음
속도를 최대한 올려 지체된 벌충하는
것이 최선이옵니다.”
“이번에 올 때는 그럴 일이 거의 없었는데?”
향의 지적에 장온이 바로 대답했다.
“아마 때를 맞춰 기병대들이 정리를 했을 것이옵니다.”
“아아..….”
장온의 대답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향은 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지금의 철마로는 속도를 올려도 한계가 있을 것인데?”
향의 지적에 옆에 있던 진평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평의 가장 큰 불만이 철마의 속도였다.
지금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철마의 속도는 말이 달리는 속도와 비슷했다.
느린 것은 아니지만, 북지의 넓은 평야를 생각하면 더욱 빠른 철마가 필요하다!
이것이 철도공사 관계자들의 중론이었고, 51구역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개량을 진행하고 있었다.
향의 지적에 장온은 싱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전임 소장께서 궁리하신 것이옵니다.”
말과 함께 장온은 뒤에 서 있던 장인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장온의 수신호를 본 장인들은 곧 어디론가 달려갔다.
잠시 후, 개발동에 딸린 주차고 가운데 한 곳의 문이 열리고 철마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삐이익!
모습을 드러낸 철마는 요란하게 기적을 울렸다. 철마의 모습을 본 향은 있는 대로 눈을 크게 떴고, 진평은 환희에 가득 차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이것이 철마지!”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철마는 엄청난 덩치를 자랑했다.
“지금 쓰는 철마는 어린아이로 보이게 만드는 덩치로군.”
“예, 덩치가 좀 크옵니다.”
“좀이 아닌데….”
‘좀’이라는 단어에 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살다살다 고속증기기관차를 이 시대에 보다니….’
지금 향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철마는 1930년대 증기기관차의 황혼기에 돌아다니던 괴물 같은 증기기관차들과 비슷한 모양과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거야! 바로 이거!”
거대한 덩치의 철마를 보면서 희희낙락하는 진평과 달리 향은 철마를 꼼꼼하게 살피며 장온에게 질문을
던졌다.
“덩치가 상당한데… 화부를 몇 명이나 두는 것인가?”
“두 명이옵니다. 하오나, 원활한 운행을 위해 넷을 태우는 것으로 되어 있사옵니다. 철마를 다루는 마부 역시 하나가 아니라 셋을 태울 생각이옵니다.”
“마부를 셋이나?”
“한 명은 철마를 다루고, 한 명은 주변을 살피며, 마지막 한 명은 휴식을 취하는 형식이옵니다.”
장온의 말에 향은 바로 문제를 지적했다.
“안전을 생각하자면 넷으로 가세, 주변을 살피는 것도 엄청난 심력을 소모하니 말일세.”
“알겠사옵니다.”
“그렇게 되면 휴식 공간이 문제인데….”
향의 지적에 장온은 철마와 탄수차 중간에 만들어진 작은 공간을 보여줬다.
“이렇게 좌우로 작은 방을 만들어 휴식 공간을 만들어 뒀사옵니다. 그리고 여기가 측간이옵니다.”
“괜찮군.….”
고개를 끄덕이는 향의 얼굴은 점점 심각해졌다.
‘이거 한눈에 봐도 예산을 엄청 잡아 먹었을 것 같은데… 이거 열 받네?’
예전에 세종에게 시간과 예산을 요구했을 때마다 엄청난 타박을 받아야 했던 향이었다.
‘그랬던 분이! 와! 억울하다!’
왠지 모를 억울함에 인상이 구겨지는 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