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794)
794화 사대부들, 신지에 가다. (6)
“흐음….”
향은 억지로 진중한 표정을 유지하며 이징옥을 바라봤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가지고 있지? 당장 내놔!’라는 표정인 이징옥을 본 향은 알 수 없는 오기가 솟아올랐다.
‘그냥은 못 넘겨주지!’
이는 그동안 향과 군인, 그리고 다른 관리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들과 다른 상황이 부른 오기였다.
-향이 무엇을 만들어 사용하자고 우긴다.
-실제 사용자들인 군인들이나 관리들은 그 효용을 잘 몰라 시큰둥하거나 반대한다. 특히, 재경부 관리들은 예산 문제로 심하게 반대한다.
-하지만, 나중에 실제 상황에서 향의 발명품이 큰 몫을 하게 되면서 반대하던 이들의 입을 합죽이로 만든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이자 전통이었는데, 지금 이징옥이 그 반대의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살짝 오기가 생긴 향은 딴죽 아닌 딴죽을 걸었다.
“흐음… 장군이 생각한 병기는 여기 와서 생각한 것이오?”
“아니옵니다. 본지에서도 비슷한 생각은 했었사옵니다.”
“장군만 한 것이오? 그렇다면 무엇인가 장군이 오판을 한 것이 아닐까?”
“아, 아니옵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젊은 친구들이 꽤 있었사옵니다!”
“그런데 왜 개발이 안 되었을까? 짐이 알기에 51 구역에도 새로운 화차 개발에 일생을 건 장인들과 연구원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아는데?”
향의 말은 사실이었다.
향의 영향, 정확히는 향이 만든 각종 총기에 감명받아 새로운 총기를 만드는 것에 일생을 건 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 이들이 만들었던 기상천외한 총기-대표적으로 군도에 단총을 결합한다던가-를 평가하는 것도 향의 재미 가운데 하나였었다.
향의 지적에 이징옥은 살짝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것이 제국의 군사 행동 방침에 어긋나고, 역시 화차보다는 화포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기에….”
이징옥의 대답에 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의 제국의 군사적 방침이 방어 중심인 것은 맞지. 그리고, 병식 화차가 거기에 잘 어울리는 물건이기도 하고….”
* * *
제국의 군사적 대외방침은 ‘절대적인 방어 우선’이었다.
-먼저 맞기 전에는 절대 먼저 치지 않는다.
이것이 제국의 군사행동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전제조건이었다.
이런 전제조건을 가지게 된 것은 제국의 상황 때문이었다.
-제국의 북지와 주변 도서들, 그리고 신지를 생각한다면 영토 확장의 필요성이 없다.
-전쟁은 제국 재정에 큰 부담을 주는 행사다. 제국의 경세는 아직 튼튼하지 못하다.
-위의 두 제약을 만든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인구다. 제국은 아직 인구가 부족하다. 명의 1/3 정도의 인구-약 3천만-만 돼도 위의 두 제약을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약점이 있기에 제국은 철저한 방어 중심의 군사적 대외방침을 고집하게 된 것이었다.
-단단하게 축성된 방어진지에서 화포와 화차를 이용해 적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이후에 반격을 가해 적을 징치한다.
그리고, 이런 교리를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비구와 같은 정찰기구와 발광통신기를 이용한 통신망의 운영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다.
하지만, 이에 관한 반론도 적지 않았다. 물론, 반론이라고는 해도 전제조건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 대응에서 적극적인 대응으로 바꾸자는 주장이었다.
-우리 제국의 성이 단단하다 하더라도 강력한 공격에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공세적 방어’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반격을 가할 때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국군이 사용하는 화차들과 화포들은 무거워 빠르게 움직이기 힘들다.
간단한 예로 제국 육군의 가장 기본적인 화포인 병식 장군화포를 움직이려면 적어도 6마리의 말이 필요하다. 전장의 소음에 익숙하도록 말을 조련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 말들이 먹을 사료들을 수송하는 것도 문제다.
병식 화차의 경우도 마찬가지 제대로 운영하려면 화차 한 문마다 일개 오는 배치되어야 한다.
패퇴하는 적들을 추격하거나 무너진 도회에 숨은 적들을 상대로 시가전을 벌일 때, 이런 무거운 병기들은 때를 맞추기 어렵다.
이렇게 반론을 주장하며 ‘가벼운 화포, 가벼운 화차의 개발’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주류인 반대론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화차의 경우, 일개 오가 배치되어야 한다지만 필요할 때는 병사 두 명이 움직일 수 있다. 이는 충분히 가볍다고 할 수 있다.
-화포가 무거운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군마보다 확실히 효율이 우수한 견인차들을 배치하고 있다.
-화포가 무겁지만, 그 위력은 확실하다. 패퇴하는 적들을 추격하거나 시가전이 문제라면 더욱 긴 사정거리와 위력을 가진 화포들로 개량하면 된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것이었다.
“도망가는 적들을 잡는 것이 문제라고? 그럼 더 멀리 날아가는 화포들을 사용하면 되잖아?”
“시가에 숨은 적들이 문제라면 더욱 강력한 화탄을 사용하면 되잖아? 한 발 또는 두어 발이면 어지간한 석조 건물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화탄으로 시가를 정리해 버리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화포, 더욱 강력한 화포, 더욱 많은 화포’
‘화포야말로 진리다.’
제국 육군과 해군을 막론하고 강력한 화포 사랑에 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런 화포 성애자들. ‘마더 로씨아’가 아니라 ‘마더 대한제국’이냐….”
* * *
이런 배경을 알고 있었기에 향은 이징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다.
하지만, 향은 곧 짓궂은 표정으로 이징옥에게 물었다.
“반대하던 이들 가운데 가장 목청 높은 이가 장군 아니었소?”
향의 물음에 이징옥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당시에는 신의 식견이 넓지 못하여… 이런 밀림 지대에서 전쟁을 벌일 줄 몰랐사옵니다.”
“흐음….”
이징옥의 대답을 들으며 잠시 고심하던 척하던 향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어디 한번 수를 찾아봅시다. 때에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노력해 보겠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가는 이징옥을 바라보던 향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예상보다 빨리 보따리를 풀게 되는걸? 흐음… 하나만 풀자. 하나만….”
결심을 굳힌 향은 내관을 불렀다.
“52구역에 연락해 장온을 불러 오도록.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하게.”
“예, 폐하.”
닷새 뒤, 장온은 헐레벌떡 행궁에 들어와 향을 찾았다.
“폐하, 명을 받고 왔사옵니다!”
“어서 오게. 52구역에서 할 일이 있네.”
“하명하시옵소서!”
“지난번에 장영실의 금고에 봉인했던 경화차를 실제로 만들게 되었네.”
“어떤 경화차를 말씀하시는 것이온지요?”
“탄창 사용하는 거.”
“아! 아?”
잠시 멈칫하던 장온은 조심스럽게 향에게 물었다.
“하오나, 폐하. 지난번에 하교하시기를 고 장영실 소장의 금고에 봉인한 것들은 최소 30년은 묵히라 하시지 않으셨사옵니까?”
“그랬지. 하지만, 사정이 급하니 어쩔 수 없네.”
“알겠사옵니다. 그럼 바로 돌아가 시작하겠사옵니다.”
“그러게.”
그렇게 장온을 내보내고 잠시 후, 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지!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남 시키고 끝내겠다고? 절대 아니지! 내관아!”
“예, 폐하!”
“짐 챙겨라! 52구역으로 출장이다! 당분간 그곳에서 모든 업무를 볼 것이니 모두에게 알리도록 하라!”
“예, 폐하!”
명령을 받고 밖으로 나온 내관은 향의 집무실을 한번 돌아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럴 때는 진평 공작과 판박이시니…. 과연 피는 못 속이시는 건가….”
그리고, 내관을 통해 향의 명령을 들은 관리들은 뒷목을 붙잡았다.
“아오! 출장이라니! 그렇게 되면 폐하만 가시는 것이 아니잖아!”
“밑에 공문 보내! 당분간은 52 구역으로 보고서 보내라고!”
* * *
신지에서 향과 일하면서 관리들은 꾀가 늘었다.
예전 같으면 신지 행궁에서 모든 것을 정리한 다음 다시 52구역이나 다른 출장지로 보내 결재나 반려를 받았었다.
당연히 쓸 데 없이 소모되는 시간이 많았고, 관리들은 밤을 새워가며 일해야만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관리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가만? 어차피 52구역에도 철로가 깔려 있고, 거기에도 일하고 먹고 잘 공간은 충분하잖아? 보고서만 거기에서 받으면 되잖아?”
“그러네?”
그 사실을 깨달은 관리들은 향이 움직이면 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업무의 효율은 많이 높아졌다.
단, 행궁에 근무하는 관리들의 효율만.
신지의 지방 행정기관에서 근무하는 관리들은 보고서를 행궁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내라는 명령을 받을 때마다 철로 운행 시간표를 확인해야 했다.
행궁 방향은 거의 하루에 한 번 지나갔지만, 52구역은 행궁에서만 이틀에 한 번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때를 못 맞추면 최소 4일이 지체되는 참사가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고생하는 이들은 52구역의 운영을 담당하는 관리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향은 시어머니, 향과 함께 오는 행궁의 관리들은 시누이들이었다. 아니, 차라리 향은 괜찮았다. 문제는 뒤따라 온 행궁의 관리들이었다.
“이왕 온 김에 운영상황 점검 좀 해야겠군.”
이 말과 함께 행궁에서 온 관리들은 52구역의 운영상황을 이 잡듯이 살폈다.
“응? 이거 지출이 이상한데?”
“여기 입출량에 오차가 있지 않나?”
행궁에서 온 관리들이 탈탈 털어댈 때마다 52구역의 관리들은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죄, 죄송합니다! 담당자가 아직 신출내기여서….”
“신출내기면 더 살폈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죄송할 일을 만들지 말라니까? 자네들이 그러면 폐하께 혼나는 것은 우리란 말일세!”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숙소 시설에 몇 개가 고장 난 것이 있던데, 못 봤나?”
“바로 고치겠습니다!”
“지적하기 전에 살폈어야지. 출세 안 할 거야?”
“죄, 죄송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죄송하면 죄송할 일을 만들지 마! 자네, 내 두고 보겠네!”
“히익!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52구역의 관리들은 온갖 고역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고역을 감내해야만 했다. 행궁에서 온 관리들 대부분이 그들보다 상급자였다. 같은 품계라 하더라도 곧 승진을 앞두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미운 털이 박히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 * *
이런 상황에서 향의 ‘52구역 출장’은 발광통신기를 통해 신지 구석구석으로 알려졌다.
“아오! 이번에는 왜!”
“요즘은 가실 일이 없으셨는데!”
난데없는 출장 소식에 관리들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광분했다.
“찾았다!”
“누구야?”
“이징옥 장군!”
“ㅆ….”
관리들은 튀어나오려는 육두문자를 억지로 참았다.
‘정벌군 사령관’이자 ‘전 국방장관’인 이징옥이었다.
결국, 관리들은 말 대신 행동을 선택했다.
“요즘 보약들이 많이 오는군….”
사무실과 숙소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보약 보따리들을 보며 이징옥은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그 보약의 의미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네들도 좀 줄까?”
이징옥의 말에 부하 장수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우습게도 보약을 보낸 이들 가운데에는 부하 장수들도 몇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