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925)
925화 제국행진곡 (The Imperial March)2 – 돌격귀선, 지상을 달리다. (13)
“증기압이 너무 세지면 그 단단한 증기기관도 결국은 터지는 법 아니겠소?”
향의 말에 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터지면 괜찮지만, 애먼 우리에게까지 화가 미칠 수 있으니 미리 김을 좀 뺍시다.”
“그게 맞다고 보옵니다.”
-명과 일본이 괜스레 위험한 생각하기 전에 김을 빼놓는다.
향의 말에 동의한 현은 조정을 설득해 명과 일본에 지도를 넘기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정도 이런 둘의 결정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미 챙길 것은 다 챙겼으니까.
신지 남부 서쪽에서는 구아노 광산이 있는 해안지역을 이미 챙긴 제국이었다. 그보다 남쪽의 해안지역과 밀림이 울창한 내륙에는 관심을 쏟을 필요도 없었고, 여력도 없었다.
그리고 메시카 지역을 이미 장악한 덕에 남쪽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길도 막을 수 있었다. 이는 엄청난 이득이었다.
남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길을 막아버리면서 루이지애나로 상징되는 북미 최대의 곡창지대 예정지-향만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제국인들도 그 가치를 서서히 알게 된-가 그대로 제국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말 그대로 ‘챙길 것은 이미 다 챙긴’ 상황이 되면서 향과 현, 조정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도를 뿌릴 결정을 한 것이었다.
서쪽에서는 명과 일본이, 동쪽에서는 유럽이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었다. 명과 일본끼리 싸우는 일이 발생하거나 아니면 신지 남부 내륙에서 명, 일본, 유럽이 서로 물고 뜯는 일이 발생해도 제국에게는 남의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제국만 건들지 않는다면.
그렇기에 누구보다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간절한 향과 현이었다.
제국의 진짜 군사력을 보게 된다면 건들기 전에 한참 고민하게 될 테니까.
“그렇다고 너무 지출이 커지면 제국에게도 좋지 않사옵니다.”
한명회의 주장에 현과 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때문에, 유럽에는 그냥 흘리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상대를 골라 흘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옵니다.”
“누가 최선이라 생각하오?”
현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한명회는 곧 둘을 꼽았다.
“포르투갈과 피렌체이옵니다.”
“이유는?”
“포르투갈은 강하지만 끝까지 지킬 힘이 부족하고, 피렌체 역시 강하지만 입이 가볍지요.”
한명회의 말에 현과 향은 동시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포르투갈의 해군력은 강력했다.
아니, 해군력만 강력했다. 절대적으로 작은 국토와 인구로 인해 육군전력은 프랑스와 에스파냐에 열세였다.
피렌체의 경우, 고인이 된 코시모 데 메디치는 ‘침묵이 주는 이익’을 잘 아는 자였다. 하지만, 로렌초 데 메디치는 그런 면에서는 모자람이 있었다.
나름 호탕하고, 진퇴의 때와 무릎을 굽혀야 할 때를 잘 알았다. 하지만, 입은 좀 가벼웠다.
아니, 이탈리아인 특유의 수다가 문제였다.
덕분에, 대사들도 필요 이상의 기밀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응? 겨우 까딱? 겨우?’
향과 현이 공감하는 그 강도가 약하다고 느낀 한명회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포르투갈과 피렌체의 강함은 우리 제국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사옵니다. 포르투갈은 그 해군력을 이용할 수 있고, 피렌체는 육군과 정치적인 명분이옵니다.”
한명회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현은 향을 돌아봤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정의 결정은 폐하의 권한이오. 나는 그저 조언자에 불과하오.”
향의 말에 현은 한명회에게 명했다.
“그럼, 총리의 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소. 총리는 명령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하시오.”
“명을 받드옵니다.”
이렇게 해서 향이 피렌체에서 일을 벌인 것이었다.
포르투갈이라면 이 지도의 가치를 바로 알아볼 것이고, 기꺼이 제국과 손을 잡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시국에도 프랑스와 합스부르크를 오가며 장사하는 피렌체라면 자신도 모르게 이 소문을 퍼뜨릴 것이었다.
* * *
다음 날 정오가 지났을 무렵, 향의 초청을 받은 포르투갈 사절단이 대사관을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태상황 폐하께서 기다리십니다.”
사절단을 맞이한 신숙주는 사절단을 이끌고 회의실로 향했다. 신숙주의 뒤를 따르며 아폰수 왕세자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갑자기 왜? 왜 우리만? 중요한 일이라는데, 무엇이지? 아바마마는 경거망동하지 말라 하셨는데….’
아직 경륜이 얕기에 사절단의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지만, 국왕 주앙 2세의 뒤를 이어 포르투갈의 지배자가 될 이였다.
“들어가시지요.”
“고맙소.”
두 시간 후, 포르투갈의 사절단은 대사관을 빠져나왔다.
“최대한 빨리 귀환한다!”
다급함이 가득한 명령에 따라 사절단을 태운 마차들과 호위대는 전력으로 피렌체 시가지를 달렸다.
그리고 그날 밤이 새도록 포르투갈 사절들이 묵는 숙소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숙소에서 두문불출하는 포르투갈 사절단의 행동은 다른 사절단들의 눈과 귀에도 들어갔다.
“포르투갈이 왜?”
“제국 대사관에 갔다 온 다음부터 저러고 있는데,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열강의 사절들은 의문을 풀기 위해 사람을 풀었다. 그리고, 바로 온갖 소문이 들어왔다.
허풍과 그럴듯한 거짓이 뒤섞인 소문들이었지만, 사절들은 그 안에서 공통된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제국이 포르투갈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 무엇일까?”
“다음 회의에서 알 수 있을까?”
열강의 사절들은 다음 회의의 개최를 간절히 기다렸다.
* * *
그리고, 닷새의 휴회가 끝나고 다시 열린 회의에서 사절들의 의혹은 더욱 강해졌다.
회의가 열리자마자 아폰수 왕세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선언했다.
“포르투갈 왕국을 대표해 본 왕자는 제국의 제안이 지극히 합당하다고 판단했소. 이에 따라, 본 왕국은 제국과 피렌체에 전적으로 협력할 것을 선언하오!”
아폰수 왕세자의 선언에 회의장은 순식간에 소란해졌다.
회의에 참석한 사절들은 다급한 얼굴로 보좌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보좌관들은 또 보좌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숙! 정숙하시오!”
회의를 주재하는 신숙주의 외침에 회의장의 소란은 가라앉았다. 소란을 가라앉힌 신숙주는 아폰수에게 물었다.
“피렌체와 본 제국을 지지함에 매우 감사하오. 하지만, 확인이 필요하오. 방금의 선언은 포르투갈의 뜻이 확실한 것이오?”
질문을 던지는 신숙주의 시선은 아폰수 왕세자 뒤에 자리한 포르투갈의 관리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신숙주의 시선을 받은 포르투갈의 관리들 가운데 부사(副使)가 입을 열었다.
“그렇소, 왕세자께서 하신 선언은 포르투갈 왕국의 뜻이오.”
사실상 사절단의 최고 책임자가 긍정하자, 다른 사절들의 얼굴은 더욱 심각해졌다.
‘제국은 포르투갈에게 무엇을 약속한 것인가!’
‘포르투갈이 전쟁을 감수할 정도의 제안이라고?’
포르투갈의 돌발 행동으로 복잡해진 상황으로 인해 루이와 막시밀리안 1세는 강력하게 휴회를 요청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 * *
급하게 회의를 멈추고 나온 열강의 사절들은 다시 한 번 사람을 풀었다.
“그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무엇인지 당장 알아 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 와!”높으신 분들의 명령을 받은 아랫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다져온 인맥과 묵직한 돈주머니가 효과를 보였고, 정보를 확보한 이들은 바로 높으신 분들에게 보고했다.
“지도 한 장? 겨우?”
“그게 ‘꽃의 나라’에서 신지라 불리는 곳의 지도라 합니다.”
“신지? 좀 더 자세하게 알아 와! 돈은 신경 쓰지 말고!”
“옛!”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자세한 정보가 들어왔다.
-‘꽃의 나라’가 주기로 약속한 지도에는 신지 남부 지역의 동쪽 해안선이 상당 부분 기록되어 있다.
-해안선만이 아니다. 지도에는 ‘꽃의 나라’의 영토가 표시되어 있다.
-‘꽃의 나라’는 그 영토 밖의 지역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확약했다더라!
-문제는 그 지역이 ‘미지의 남방대륙’만한 크기라더라!
“이거 사실이야?”
“제게 이야기해준 피렌체 상인의 말로는 로렌초 데 메디치도 그 지도를 보고 경악했다고 합니다.”
“알았네, 나가 봐.”
근소한 차이로 정보들을 입수한 프랑스, 에스파냐, 합스부르크의 사절들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이거 상황이 복잡하게 되었군.”
* * *
열강의 사절들은 다시 한 번 지금의 상황과 제국과의 관계를 정리해 따져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가장 복잡한 상황이 된 것은 프랑스였다.
-수에즈만 보면 제국과는 이익 공동체.
-하지만, 이탈리아에 걸린 이권을 놓고 보자면 제국은 가장 강력한 경쟁자.
-프랑스의 미래를 생각하자면 식민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식민지 경쟁에서는 이미 크게 뒤처진 상황.
-제국이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한 지역을 포르투갈보다 먼저 장악한다면?
“여기까지만 보면 지금이라도 이탈리아에서 손을 떼고 제국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옳겠지.”
루이의 말에 동석한 프랑스 관리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문제가 무엇인지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우리 위대한 프랑스의 체면이 손상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신지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지, 또, 얼마나 획득할 수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관해서는 그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특히, 제국이 진실로 선의에서 양보한 것인지, 아니면 무익한 지역이라 방치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관리의 지적에 루이가 의문을 표했다.
“포르투갈이 당장에 제국에 붙은 것을 보자면 방치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포르투갈의 왕자는 애송이지 않습니까?”
“같이 온 이들까지 애송이는 아니지.”
“포르투갈은 작은 나라입니다. 그들에게는 큰 이익이지만, 우리에게는 아닐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럼 신지는 버리고 이탈리아에 집중하자?”
루이의 물음에 그 자리에 참석한 관리들 대부분이 비슷하게 대답했다.
“그게 더 합리적이라 생각됩니다.”
“신지 관련해서는 포르투갈의 움직임을 보고 움직여도 늦지 않습니다.”
관리들의 대답은 ‘이탈리아 우선’이었다. 하지만, 루이의 얼굴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그것도 괜찮지만, 이미 제국의 군대가 이탈리아에 들어왔다는 것이 신경 쓰여. 그리고, 에스파냐도 신경이 쓰이고. 에스파냐라면 나폴리를 지키는 선에서 만족하고 대신 포르투갈을 칠 가능성이 있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사이는 애매모호했다. 서로 상대를 자신이 병합하기 위해 공작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처음부터 두 나라의 왕실이 친척관계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두 나라의 군주들은 상대국의 왕좌가 공석이 되면 자신에게 후계자의 권리가 있음을 주장했다.
그런데, 신지의 지도가 포르투갈에게 전해진다? 해군력을 뺀다면 모든 면에서 우세한 에스파냐가 이탈리아 대신에 포르투갈을 침공할 수도 있었다.
루이는 이 부분을 걱정하는 것이었다.같은 시각, 에스파냐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라면 이탈리아를 포기하고 포르투갈을 칠 가능성도 있어.”
한편,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 1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거 상황이 재미있어지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