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12
청풍표국 최강식객 112화
112화. 영주로 가는 길(2)
“하하하하! 혹을 떼고 오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구만.”
경공을 펼쳐 임요성 일행과 이미 한참 거리를 벌린 황보혁이 한 야산의 나무 그늘 아래서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진즉에 이럴 걸 그랬습니다.”
옆에서 동의를 하는 사람은 진주언가의 언태룡이었다.
그는 자신이 선을 대고 있던 단목란의 오라비인 단목룡이 묵룡이라는 자에게 목숨을 잃자 바로 선을 옮겼다. 바로 눈앞의 황보혁으로.
어차피 단목란은 단목룡, 그리고 그 너머 단목세가까지 바라본 포석이었을 뿐, 그 성질 더러운 년한테 마음이 있을 리 만무했다.
비록 우승을 못 했다고는 해도 황보혁은 어디까지나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 그리고 그의 가문 역시 무림 팔가의 하나. 그와 연을 만들어두어 나쁠 것이 없었다.
아비인 언충호는 우내십존에 머물렀지만, 자신은 기필코 상천십좌에 오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조사단에도 참여한 것이다.
‘제대로 된 권갑이나 호신갑 하나 정도만 구할 수 있다면….’
언태룡이 바닥에 걸터앉아 무릎에 팔을 걸치고 있는 황보혁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귀문권갑. 강호십대신병으로 그 자체로 호신강기를 찢어발기거나 강기류의 공격을 내기를 두르지 않고도 막아낼 수 있었다.
애당초 강호십대신병이라는 게 강기에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어야 그리 불릴 수 있었다.
황보세가와 같이 권법을 주로 하는 진주언가. 별칭으로 강시공이라 불릴 정도로 외공을 단련하는 문파다.
하지만 외공에는 한계가 있었다. 절정의 벽까지는 내공의 문파보다 빨리 도달하지만 초절정, 그리고 그 이후 화경에 오르기는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진주언가에 화경을 벽을 돌파한 가주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신병만 얻을 수 있다면 그 단점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는 것이다.
“왜? 탐이 나나?”
자신의 손을 쳐다보는 언태룡을 보며 황보혁이 씩 웃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하하. 강호인이라면 응당 좋은 무기를 보면 탐이 나는 게 정상이지. 걱정 마 이번에 비고에서 좋은 보갑이나 무기가 나오면, 나는 여기 있는 이들에게 모두 나눠줄 테니까.”
“예? 정말이십니까?”
“하하. 그럼. 나는 이 권갑이 있는데 무에 부러울 게 있겠는가. 난 좋은 영약이 아니라면 오히려 금은보화가 탐이 나는군.”
이미 상천십좌에 오른 아버지에 진천구성에 오른 황보혁이었다.
무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세력을 넓힐 수 있는 재력이 더 탐이 났고, 황보혁은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의 발언에 오히려 그를 따르던 이들의 눈에 빛이 났다.
뭐라도 작은 거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리되면 욕심이 안 생길 수가 없다.
황보혁의 말에 분위기가 급속도로 풀어져서 여기저기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쓰윽 둘러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후후. 여기 있는 놈들이 향후 나의 세력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그깟 무기들쯤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영약은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켜 줄 최고의 수단이었기에 양보는 힘들었지만, 귀문권갑이 있는 자신에게 다른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런데 그때 황보혁의 눈이 깊어졌다.
“뭐지? 간 보지 말고 나와.”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제법이군.”
하지만 핏빛 무복을 입은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표홀히 내려서자 모두 무기를 꺼내며 황보혁의 주위에 섰다.
“얼굴도 가리지 않고. 우릴 모두 죽일 생각이로군.”
“하하하. 어린놈이 제법이군. 역시 진천구성이라 이건가.”
핏빛 무복의 사내는 바로 혈위였다. 조상연의 명에 임요성이 이끄는 표행단을 멀리서 뒤따르던 그는 황보혁이 따로 움직이자 곧바로 그를 따라온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황보혁의 귀문권갑. 조상연은 너무 눈에 띄게 억지로 귀문권갑을 뺏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회수를 명했고, 하늘이 돕는지 그가 본단과 떨어져 이동하자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다.
임요성을 따라가는 중에도 그의 눈치가 너무 빨라 처음에 두었던 거리를 거의 세 배로 늘릴 정도였다.
죽이고자 마음먹고 암습을 한다면 달랐겠지만, 수하들을 이끌고 뒤를 밟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황보혁이 기회를 만들어주자 옳다구나 싶어 그의 뒤를 밟은 것이다.
“누,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풋. 애송이는 찌그러져 있고.”
“뭐, 뭣이!”
언태룡이 나섰으나 혈위는 코웃음을 쳤다.
짝!
혈위가 손뼉을 치자 수십 명의 복면인이 그들을 둘러쌌다.
인원으로만 보자면 거의 비슷한 수준. 하지만 황보혁의 관자놀이에 땀이 맺혔다.
‘상당한 수준의 실력자.’
자신의 기감으로는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의 존재를 눈치챈 것도 그가 은밀히 자신에게 기파를 쏘아 보냈기 때문이다.
오히려 놀림을 받는 듯한 느낌.
“무슨 일이지? 우리가 예전에 본 일이 있었나?”
“음음. 아니야. 그냥 네가 갖고 있는 권갑을 가져가야 해서 말이지. 뭐 혹시 그냥 넘겨준다면 다른 놈들은 다 죽이더라도 넌 두 눈알만 파내고 살려는 주마.”
으득.
소름 끼치는 발언이었지만 황보혁에게는 수치심이 더했다.
“상당한 자신감이군.”
“크큭. 이건 자신감이 아니라 그냥 경고? 아, 강호의 후배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 정도라고 해두면 되겠군.”
“흥. 공자님. 더 볼 것도 없습니다. 저 붉은 옷을 입은 자만 공자님께서 맡아주시면 다른 이들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언태룡의 말에 복면인들은 음습한 웃음을 흘렸다.
“크큭. 정말 애송이들이군. 자신과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지도 못하다니.”
우득. 우드득.
고개를 꺾으며 뒷골목 파락호처럼 몸을 풀던 혈위가 퍽! 하며 사라졌다.
콰앙!
어느새 나타난 그의 검을 황보혁이 손바닥으로 막자 북 터지는 소리가 났다.
“호오. 제법인데?”
슈슉!
그대로 뻗은 다리가 곧장 황보혁의 턱을 스쳤다.
퓩!
어느새 턱에 핏물이 흘렀다.
“볼 것 없다. 다 죽여라!”
언태룡의 고함에 약속이나 한 듯 두 무리가 어우러졌다.
채재쟁!
“크악!”
하지만 넘친 건 의욕이었다. 복면인들의 검은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신성들과 그들의 호위들의 목을 그어갔다.
실로 힘의 손실이 없는 깔끔한 검격에 실전 경험이 적은 신성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누구지? 강호인이 아닌 것 같은데?”
혈위의 검을 쳐내며 거리를 벌린 황보혁이 묻자 들려오는 건 웃음소리뿐이었다.
“크하핫!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이제 너희는 다 죽을 텐데 말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해라.”
“흥!”
황보혁은 어릴 적부터 뛰어난 기재로 산동제일 후기지수로 떠받들어져 왔다.
비록 주위 사람들에게 안하무인이긴 했지만, 그만큼 자존심도 강했고 스스로에게 자부심도 있었다.
“어림없다!”
황보혁이 두 주먹에 권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혈위의 눈에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귀문권갑에 권기를 덧씌운다면 화경의 고수라도 정통으로 맞으면 위험할 정도다.
하지만 혈위가 눈여겨본 건 그의 무공실력이 아니라 귀문권갑이었다.
“죽어라!”
황보혁이 가문의 절기를 시전하며 주먹을 뻗어갔다.
* * *
그들을 추종하는 신성들이 빠지자 표행단이 삼 분의 이로 줄었다.
하지만 사사건건 툴툴거리던 황보혁이 빠지자 오히려 분위기는 더 좋아졌다.
한참을 더 이동한 끝에 객잔이 딸린 작은 마을에 도착하자 모두 환호하며 제대로 된 음식에 달라붙었다.
그때 옆에서 두 사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그 말 들었나?”
“음?”
“강호십대병기의 소유자였던 녹림채주와 수로채주, 그리고 대야막주까지 죽은 데다가 그들이 가진 신병까지 모두 뺏겼다는 것 말일세.”
“응? 정말인가? 잠깐만. 그럼 그 황보가주가 가지고 있던 귀문권갑은?”
“뭐, 황보가주까지 쉽게 죽겠나. 당연히 별일 없겠지.”
아직 그들은 황보혁이 비무제에 가지고 왔다는 사실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대화에 황보익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설마?”
황보혁의 성격에 아마 이런 작은 마을은 경공으로 빠르게 돌파했을 것이다.
표행이 너무 느리다고 불평을 하던 그였으니, 최대한 경공을 펼치다가 제법 큰 도시가 나오면 멈출 것이 분명했다.
황보익의 생각을 읽은 임요성이 팽원호를 쳐다봤다.
“음. 거참 난처하게 되었군.”
팽원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조사단 전체를 이끄는 그로서 쉽게 모두를 이끌고 가는 것도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고민을 파악한 임요성이 나섰다.
“내가 익과 함께 먼저 가보지.”
팽원호의 얼굴이 환해졌다. 임요성이라면 믿을만했다.
“고맙네. 헌데 괜히 위험한 일에는 나서지 말게. 자네 역시 표행단을 이끄는 단주의 신분이니. 어찌 됐든 잘 부탁함세. 나도 여기가 마무리되는 대로 바로 출발하겠네.”
팽원호의 동의에 임요성은 황보익과 함께 먼저 출발했다. 황보익이 임요성에게 고마움을 느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화경의 경지에 오른 임요성에게 위험할 일이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을 정도로 희소한 일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경공을 펼쳐 앞으로 신형을 쏘아가던 두 사람이 진동하는 피비린내에 발을 멈췄다.
“이, 이건….”
황보익의 눈이 흔들렸다. 먼저 출발한 신성들과 그 호위들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음.”
임요성이 먼저 앞으로 나섰고, 갈수록 시체가 많아졌다. 모두 일격에 목이 잘린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전력이 심하게 차이가 났다는 뜻이다.
“혀, 형님!”
그때 뒤에서 걸어오던 황보익이 임요성을 제치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가 도착한 곳에는 막 숨을 거둘 것 같은 황보혁이 누워 있었다.
“형님! 정신 차리세요. 형님!”
“크륵! 이. 익아더냐…?”
황보혁은 눈이 이미 보이지 않는 듯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덥석 형의 손을 잡은 황보익의 얼굴이 푸들거렸다.
“도대체 누가! 누가 이런 짓을 한 겁니까!”
황보혁은 그에게는 어렵고, 피하고 싶은 형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패도적인 성향과 안하무인적인 태도때문이었지, 형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적어도 동생, 아니 가족에게만큼은 잘하는 그였다.
그런데 그런 형이 이런 처참한 모습이라니…!
“보, 복수 같은 건… 꿈도 꾸지 말거라. 너도… 아버지께도 그리 전해다오. 그리고… 황보세가를 잘 부탁한…다….”
그 말과 함께 황보혁의 손이 동생의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마지막엔 가문과 동생을 걱정하는 형의 모습에 황보익의 절규가 산을 뒤흔들었다.
“형님―!!!”
황보익이 옆에서 오열을 했지만, 임요성은 그 모습보다도 시체들의 모습을 더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일격에 당했다. 솜씨가 깔끔해.’
사문의 특성이 고스란히 남는 강호의 무공이 아니다.
‘이건 황실에서 쓰는 형태와 비슷하다.’
임요성의 눈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