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97
195. 미궁 최종 계층 (2)
아리아.
어둠의 신이 보냈다는 검은 로브를 쓴 사도는 흥분에 휩싸인 눈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본래 다른 진영 소속 도전자는 적으로 인식하는 게 상식인데…….
“부디 부담감 가지지 마시고 제게 분부를 내려주십시오.”
아무래도 이 여자에게는 그런 개념이 아예 없는지 완전히 무방비했다.
이 자리에서 내가 작정하고 검을 휘두르면 몇 초 안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
그에 나는 눈을 찌푸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대체 목적이 뭐지……?’
상식 외의 행동에 이제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물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도야 알 것 같다.
아마도 어둠의 신이 신탁이니 어쩌느니 하는 식으로 이 여자에게 명령을 내렸겠지.
그 내용은 추측하건대 나를 보좌하라는 것 따위의 분부일 터이고.
하지만 그래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 거목 미궁 최심부에 다다르면 얻을 수 있는 보상을 고작 신의 명령으로 포기하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관이다.
‘이게 정말 수작 같은 게 없는 진짜 호의가 맞는 건가?’
그에 잠시 고민하고 있자니 이내 담천우에게서 말이 들려왔다.
―……이럴 때는 네놈이 진짜로 40층 이전 대의 도전자라는 게 실감되는군. 걱정할 것 없느니라. 너에게 해가 될 일은 없을 터이니.
‘그게 무슨…….’
―사도(使徒)라는 건 역할 놀이 같은 게 아니다. 신을 향한 광적인 믿음 없이는 사도는커녕 예비 사도로 선정되는 것도 불가능하지.
‘…….’
―이 정도의 신성을 가진 것을 보니 정식 사도일 터인데, 저쯤 되면 광신도를 넘어서는 신앙을 가지느니라.
‘한마디로 말해서 어둠의 신이 죽으라고 해도 죽을 수 있는 광신도군요.’
―그렇다. 그러니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다. 정말 어둠의 신이 너를 보좌하라고 했다면 이 사도는 너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다.
그나마 괜찮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이 해제된 여파로 기절한 캐서린 베넷에 다른 팀원들까지 생각하면 이 자리에서 느긋하게 싸울 순 없으니까.
그러므로 달갑지 않은 호의라도 일단은 받아들이는 게 나을 터이다.
그게 옳은 판단이다.
“아리아 씨라고 했었죠.”
하지만…….
“정말로 제 명령을 따르실 생각이라면, 저도 거부하지는 않겠습니다.”
적어도 최소한의 대비책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아리아에게 나는 바로 스킬을 지정해서 발동했다.
「스킬 ‘주종 계약’이 활성화됩니다.」
「4급 사도 ‘아리아’를 주종 계약 대상으로 지정합니다.」
“주종 계약을 받아들이시면 정말로 당신을 신뢰하겠습니다.”
지배의 신을 섬기는 예비 사도에게서 습득한 주종 계약의 스킬이었다.
―……전에는 도덕의식이니 어쩌느니 떠들더니, 이건 양심에 찔리지도 않는 것이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격언이 있듯이…….
‘그럼요. 원래도 쓸 일 없는 스킬인데 이렇게라도 사용해야죠. 그리고 어차피 잠재적으로는 적이잖습니까.’
나중에 위험을 불러올 수 있는 싹은 미리 제거해 두는 게 옳았다.
―미친놈…….
그게 후환이 없는 길이니까.
***
의외로 아리아는 주종 계약을 거부하지 않았다.
척.
“……그게 진정 한성윤 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는 아예 부복까지 하더니 곧장 주종 계약을 받아들인 것이다.
「상호 동의 아래에 주종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4급 사도 ‘아리아’의 모든 능력치가 +14 상승합니다.」
「4급 사도 ‘아리아’는 절대로 주종 관계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쓸모없는 능력이어도 명색이 A+급 스킬이라고…….
‘……이걸 능력치를 14씩이나 올려 준다고?’
주종 계약 스킬은 미친 것 같은 능력치 상승폭을 보여 줬다.
절대 적지 않은 능력치 상승에 나는 침음했다.
주종 계약 스킬 설명에 수하로 지정된 이의 능력치 상승률은 10%로 정해져 있었다.
즉…….
이 아리아라는 사도는 모든 종류의 능력치가 140을 넘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미궁에 들어와서 능력치가 낮아졌을 터인데도.
‘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물론 나도 이 정도 수치는 여러 능력을 발동시키면 얼마든지 맞출 수 있겠지만…….
그래도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에 내가 조용히 감탄하고 있으니 이내 아리아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로브를 벗었다.
“설마 처음 본 제게 이런 은총을 내려주시다니……! 과연, 어둠의 신님이 생각날 정도로 엄청난 아량이십니다……!”
그제야 흐릿했던 생김새가 눈에 확 들어왔다.
회색빛 머리칼, 미열을 앓는 것처럼 홍조를 띤 얼굴, 절대적인 신앙심이 느껴지는 반짝이는 눈동자까지…….
확실히 신의 사도로 선정될 정도의 광기가 느껴졌다.
대체 어둠의 신에게서 나에 관해서 뭐라고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마는…….
기본적으로 내게 적잖은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그에 나는 어느 정도는 안심한 채 아리아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일단은 제 동료들을 회복시키고 보호해 주십시오.”
캐서린 베넷이 에 의해서 후유증을 겪고 있고, 나머지 팀원들은 생사마저 불분명한 상황이니…….
동료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아리아는 캐서린 베넷을 한 번 보더니 입을 우물거리며 내 눈치를 크게 보았다.
“……한성윤 님. 죄송하지만, 이 예비 사도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제 능력 외의 일입니다.”
마치 곤란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능력 외라는 건 치료 능력이 아예 없다는 겁니까?”
“그, 그런 것은 아닙니다! 치료 능력이 없기는 해도, 제게는 어둠의 신께서 내려 주신……!”
“됐으니, 본론만.”
“……이 예비 사도는 으로 인한 후유증 그리고 신열까지 같이 앓고 있습니다. 이건 치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신열?”
처음 듣는 말에 눈을 찌푸리니 혈천마검의 칼날이 부르르 떨리며 머릿속에 말이 울려 퍼졌다.
―신열이라는 건 신성력을 주입받는 과정에서 앓게 되는 성장통 같은 것이니라.
성장통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예전에 11층 스테이지에서 나는 예비 사도를 살해하고 신성력을 획득했다.
그때 나도 신성을 처음으로 습득했지만, 신열 같은 것은 앓은 적이 없었다.
‘제 경우에는 신성력을 얻어도 성장통 같은 건 없었습니다마는.’
―……척 보기에도 일반적인 신성 습득 경로를 거치지도 않았을 거 같은 놈이 아는 척은. 그거야 네놈이 특이한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그리되지 않느니라.
‘그럼 통상적으로는 다르다는 겁니까.’
―그렇지. 신체 능력이 낮은 이들은 신에게서 주입되는 신성을 견디지 못하고 고열을 앓는다. 주어진 힘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신열을 앓는 기간은 얼마나 됩니까?’
―보통은 하루 정도지. 하지만 주입되는 신성 수준에 따라서 그 기간은 또 달라지니……. 예비 사도 급 신성력이라면 일주일은 무조건 눈을 뜨지 못할 터다.
‘……그게 진짜라면 상황이 좋지는 않군요.’
7층 성지에서는 서로 다른 진영 간의 전투 및 성배 조각 쟁탈을 메인으로 시련이 진행된다.
물론 나는 8층 진입 조건인 [성배 조각]을 둘 이상 모았지만, 그래서 더 문제인 상황이다.
‘[성배 조각]을 다른 진영보다도 많이 가지고 있으니 표적이 되기 쉽겠지.’
그러니 이제 다른 진영에서 나를 노릴 것도 어느 정도는 예상해야 한다는 것일 터인데…….
이렇게 쓰러진 동료를 데리고 돌아다니기엔 크게 무리가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직 7층에 을 쓸 수 있는 신격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신격들에게 비호를 받는 이들과의 전투를 진행하기엔 매우 껄끄러웠다.
하지만 아예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건 아니었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럼 저 대신에 캐서린 씨를 보호해 주십시오.”
어둠의 신이 보내 준 사도인 아리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분부를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절도 있는 자세를 취하더니 즉각 캐서린 베넷을 등에 업었다.
주종 관계 탓에 명령을 거부할 수 없으므로 배신할 염려도 없으니 이걸로 한시름 놓은 셈.
그러나 완전히 안도할 수는 없었다.
이 또한 팀원들 탓이다.
‘결계가 사라졌으니 김승훈이랑 오춘석도 어찌 됐을지 모르지.’
신성을 가지지 않은 이들이니 신성 권능의 여파로 치명상을 입었을 가능성도 적진 않다.
그에 나는 재빠르게 아리아를 데리고 수호자 스킬로 결계를 쳐 뒀던 지점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
이내 나타난 광경에 나는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
―……흠.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군. 이건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니라.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리지 않는다는 것일까?
본래는 결계로 감싸 둔 구덩이 주위에 김승훈과 오춘석이 피를 흘린 채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도 피부가 검게 물든 채로.
“신성 중독 증세군요.”
그에 내가 눈을 찌푸리며 그들에게 다가가니 아리아가 설명하듯 말했다.
“아마도 신성 권능에 노출되어 영혼의 본질에 타격을 입은 것 같습니다.”
“본질 타격……?”
“그렇습니다. 종종 있는 경우입니다. 영격이 낮은 이가 신격의 힘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이렇게 본질에 타격을 받습니다.”
“…….”
이건 나도 알 수 있는 증세였다.
11층에서 증명의 신에게 시선을 받자마자 곧바로 사선을 넘나들었으니…….
신격들이 예비 사도들에게 을 한 상태에서 결계까지 사라지면 그야 이렇게 되겠지.
―크게 걱정할 것은 없느니라. 이 중독 증세는 몇 달 정도 정양하면 완치할 수 있을 터이니.
담천우는 몇 달 동안 안정을 취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미궁을 내려가면서 몇 달씩이나 안정을 취하는 게 가능할 리 없잖습니까.’
그건 곧 미궁을 내려가기엔 매우 부적합한 상태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마도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죽을 테지.
그러니.
“어쩔 수 없나…….”
최대한 합리적인 결단을 내려야 할 타이밍이었다.
‘[HP]를 전부 소모시켜서 지구로 귀환시키자.’
미궁 전용 시스템 법칙상 [HP]를 전부 소모할 시, 미궁 외부로 퇴출된다.
그 법칙은 아직도 착실히 적용되고 있었다.
미궁을 내려오며 얻은 [생명의 상자] 덕분에 나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팀원들은 그렇지 않으니 확실히 미궁 외부로 퇴출시킬 수 있었다.
단지, 문제는 그렇게 퇴출시키게 된다면 문제가 없느냐는 것인데.
“미궁 외부로 퇴출되어도 문제는 크게 없을 겁니다.”
그 부분은 내 설명을 들은 아리아가 바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미궁 외부로 퇴출되어도 조금의 능력치 혹은 스킬이 몇 개 사라질 뿐이니까요.”
“스펙 다운…….”
목숨을 살리는 대가로 생기는 페널티치고는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았다.
스킬이든 능력치든 결국에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으니까.
“천천히 [HP]를 깎는다면 안전하게 동료분들을 미궁에서 내보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주종 계약 탓에 거짓말도 할 수 없게 됐으니 정보 자체는 확실했다.
―불행 중 다행이군. 힘을 조금 잃는 정도로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다니. 저들에게는 기적이나 다름없느니라.
담천우도 미궁 외부로 내보내는 게 옳은 선택이라고 조언했고.
―자격이 안 되는 자들이 이 자리에 있어 봤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을 가지고 갈 뿐이지. 본래 있어야 할 장소로 돌려보내거라.
그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HP]를 소모시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지속적 출혈을 일으키는 자상(刺傷)을 내는 것으로 둘은 금세 모든 [HP]를 소진했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결계가 사라진 후에는 을 사용한 여러 신격 간의 전투에 노출됐을 터이니.
그 점을 감안하면 영혼에 타격을 입은 걸 제하더라도 충분히 데미지가 쌓여 있을 법도 했다.
출혈 자체는 도전자에게 죽음을 선사할 정도로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미궁 전용 시스템인 [HP]의 소모를 일으키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도전자 ‘김승훈’이 HP를 전부 소모하여 본래의 세계로 추방됩니다.」
「도전자 ‘오춘석’이 HP를 전부 소모하여 본래의 세계로 추방됩니다.」
빛에 휩싸여 사라지는 팀원들을 보며 입가에 씁쓸함이 감도는 것도 잠시였다.
안타까운 감정을 깊게 느낄 새는 주어지지 않았다.
「총 20개의 신격 진영 중 11개의 진영이 [성배 조각]을 잃었습니다.」
벌써 신격 진영 중 절반 가까이가 탈락 조건을 만족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더니…….
「조건 만족.」
이어서 상정한 적도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성전이 점점 가속되기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며 남은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갑니다.」
「영격(靈格)이 매우 낮은 일부 신격에게는 일시적으로 ‘신격화’ 및 ‘화신체’의 권능이 주어집니다.」
「[성배 조각]을 10개 이상 수집한 신격 진영에는 [성배]가 주어집니다.」
……과연, 성지(聖地)에 성전(聖戰)이라는 컨셉을 잡은 스테이지라 해야 하나?
「 진영 소속 신격은 매우 격이 낮은 존재이므로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 진영 소속 신격인 도전자 한성윤에게 신격 전용 특전이 주어집니다.」
정말이지…….
「기본 신성 권능 ‘신격화’가 7층 스테이지 한정으로 봉인에서 해제됩니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이제야 좀 밸런스가 맞춰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