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92
제 192화
66장. 성동격서의 계책 – 3화
“기쁜 일이네.”
창밖.
가볍고 신난 발걸음으로 곧 부인이 될 메리에게로 향하는 라키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라키스다운 이야기였다.
더 좋은 여자를 찾아 떠나라며 라키스의 마음을 떨쳐 내려 했던 메리의 말이 무색하게.
라키스는 줄곧 직진이었다고 했다.
그녀 앞에 검을 한 자루 내려놓고, 이 검으로 자신의 목을 치든지 아니면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라키스의 일편단심은 통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다만 결혼식은 하객 없이 대신전에서 조용히 사제의 진행 아래 치르겠다는 것을 내가 말렸다.
둘만의 오붓한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것을 굳이 말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 자리에 내가 빠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돌아오는 8월 10일에 내가 직접 주례를 봐 주기로 했다.
참석자는 신랑 신부인 라키스와 메리, 그리고 미아가 전부였다.
“결혼이라……. 이것 참, 괜히 생각이 많아지는군.”
나는 어느덧 하나의 점으로 변해 버린 라키스의 뒷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왕후 문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얘기가 나오고 있다. 어전 회의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고.
다음에도 또 얘기가 나오면, 내가 직접 언급할 때까지 재론(再論)하지 말라고 할 생각이다.
결혼을 무슨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서둘러 하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었으니까.
또각또각. 따각따각.
그때, 다음 방문자인 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바로 아그레시오 기사단장 엘라와 디미오스 마법사단장 나오미였다.
최근 두 사람은 내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나오미는 7클래스 마법사가 되었다.
그녀가 서신으로 전한 말에 따르면, 크리비아 왕국에 온 이후로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깨달음도 쉽게 얻어지고, 골머리를 썩게 했던 난제도 돌파구를 찾곤 했다는 것이다.
나는 몇 가지 가능성 중에 네프리아의 가호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가호 3 : 가호의 대상에게 충성심, 호감도 최대치를 찍고 있는 사람은 기존에 비해 성장 속도가 2배 증진됩니다.]엘라와 나오미 모두 나에게 확실히 충성도 최대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라도 이제는 오러 블레이드를 능숙하게 다루는 경지까지 올랐다.
물론 렌투스 제국의 기사단장인 갈라딘을 생각하면 아직 모자란 점이 많지만, 그녀의 강점은 ‘어리다’는 것이었다.
올해로 서른넷.
환갑을 일찌감치 넘긴 갈라딘의 나이를 생각하면, 엘라의 발전은 오히려 눈부신 것이었다.
“폐하.”
“인사 올립니다.”
이윽고 나를 마주한 두 여인이 인사를 건넸다.
전쟁에 앞서 점검할 부분이 많기에, 라키스에 이어 새벽 회의로 접어들게 된 엘라하고 나오미와의 대화는 꽤 길어질 듯싶었다.
* * *
“파우페르 왕국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파우페르 마법사단을 이끄는 단장 레이진입니다. 7클래스 마법사입니다.”
“생각보다 클래스가 낮더군.”
“그것이 작금의 파우페르 왕국의 가장 큰 허점입니다. 다만 전투 마법사의 수가 적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파우페르 왕국에서 제정신인 집단이기도 합니다.”
“그들을 상대할 방법은 이미 구상이 끝났소. 핵심은 나와 우리 마법사단, 주술단이 얼마나 손발이 잘 맞느냐의 문제지.”
“어떤 명령이든 내려 주십시오. 디미오스 마법사단은 폐하를 위해 언제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오미의 든든한 한마디를 들은 자레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녀에게 전권을 위임한 자신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디미오스 마법사단을 극한의 훈련과 확실한 보상을 통해, 최정예 군단으로 바꿔 놓았다.
훈련에는 ‘살짝’ 소질이 부족한 자레드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워 준 것이다.
“보누스 왕국의 대마법사 이즈만은 오늘내일한다지?”
“예, 폐하. 8클래스 마법사지만 오랜 지병으로 자리에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말루스 왕국의 대표 마법사는 베루한이라고 들었는데, 그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소?”
“올해로 예순둘의 8클래스 마법사입니다. 다들 쉬쉬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치명적 약점이 하나 있지요.”
“오호?”
자레드는 귀가 솔깃했다.
“과거에 마나 심법을 연성하던 도중에 내상을 크게 입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마법을 사용할 때, 소모되는 마나양이 일반 마법사의 최소 3배 이상입니다.”
“자체 패널티다, 그 말이군.”
“예, 폐하.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 약점은 아니나, 장기전으로 갈수록 불리한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로 내게 이로운 사항들이 많군.”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를 상대하든 간에,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라 단장, 훈련 상황은?”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마법사단과의 통합 훈련을 매주 진행 중이며, 왕국군과의 연계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울 따름이지요.”
“당장 전쟁을 치르더라도, 전혀 문제없을 정도로 말이오?”
“제 이름과 명예를 걸고, 폐하를 위해 키우는 기사단이 아닙니까? 빈틈은 있을 수 없지요.”
엘라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녀의 품격에 걸맞게 자레드는 두둑한 보상을 늘 해 주고 있었다.
아마 대륙 전역의 기사단장 중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을 터였다.
자신을 판단하는 가치 – 돈 – 를 중요하게 여기는 엘라의 성격을 잘 알기에 자레드가 선택한 방식이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이렇게 모이기 쉽지 않은데, 별궁의 지하 훈련실에서 간만에 대련이나 해 봅시다. 실전 대비 겸?”
“예?”
자레드의 제안에 두 사람이 동시에 깜짝 놀랐다.
누가 봐도 일 대 이의 대련을 제안하는 듯했는데, 그 말을 한 자레드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자신 있으십니까?”
“홀로 둘을 상대하시는 것은 어려우실 것입니다만.”
엘라와 나오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자레드가 과거의 자레드가 아니듯, 그녀들도 과거의 자신이 아니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다루는 검사와 7클래스의 경지에 오른 하이클래스의 마법사.
높은 경지의 둘을 상대로 6클래스 마법사인 자레드가 과연 얼마나 힘을 쓸 수 있을까 싶었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법. 내 스스로 증명해 보일 테니, 그대들도 내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도록 하시오.”
자레드의 호기로운 도발에 엘라와 나오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련은 환영이었다.
심지어 상대가 지난 3년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온 자레드라면 더더욱.
한 나라의 국왕을 합법적으로 찜질(?)해 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자주 오는 것이 아니었기에.
* * *
대련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엘라와 나오미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제법 그럴 듯한 계획을 세웠다.
그간 통합 훈련을 진행하면서, 이 두 사람도 호흡을 제법 맞춰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련 시작과 동시에 1분도 채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무너졌다.
‘7클래스의 타이틀을 달고, 이렇게 무기력하게 6클래스 마법사에게 압도당할 수 있는 걸까?’
이것이 대련 내내 나오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이었고.
‘평생 뒤꽁무니만 쫓다가 검기 한 번 제대로 명중시키지도 못하고 끝나겠네.’
엘라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하의 대형 훈련장에서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시작한 대련은 시종일관 자레드의 우세였다.
엘라는 자레드의 움직임을 끝끝내 쫓지 못했고, 나오미는 자레드의 동선을 통제하지 못했다.
자레드는 전략적으로 엘라와의 정면 승부를 피하고, 나오미를 악독하고 집요하게 노렸다.
트랜센던스를 기반으로 한 자레드의 마법 공격에 나오미는 고전을 거듭했다.
애초에 자레드가 펼치는 마법의 화력이 자신의 계산과 맞지 않았다.
그것은 첫 만남에서도 경험했던 것이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격차가 심해졌다.
심지어 본인마저도 누가 6클래스고, 7클래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런 폐하를 적으로 돌리게 될 그들은…… 지옥을 보게 되겠지.’
자레드에 대한 경외(敬畏)의 감정이 더욱 커지며, 나오미는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마법사로서 자레드에게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긴 하지만, 굴욕스럽진 않았다.
자레드와 처음 마주쳤던 그 순간부터, 항상 그는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압도적인 우위를 다시금 증명해 줬을 뿐이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오미 본인도 강해지긴 했지만, 자레드는 전에도 강했고 지금은 훨씬 더 강해졌다. 그뿐이었다.
‘폐하와 적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적이었으면 끝까지 유린당하다가 죽었겠지?’
엘라의 생각도 같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련 도중에 두 사람이 무릎을 꿇었다.
항복의 뜻이자, 동시에 자레드를 향한 존경의 표현이기도 했다.
나오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제가 폐하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은 감히 신이 폐하의 실력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어서 엘라도 말을 덧붙였다.
“아그레시오 기사단이 오늘 제 모습을 보았다면, 정말 통쾌해했을 것입니다. 폐하,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신 것입니까?”
“여전히 나는 6클래스의 마법사일 뿐이오.”
엘라가 단언하듯 말했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7클래스인 신이 방어할 수 없는 위력적인 마법이 있음을 생각하면, 8클래스라고 해도 무방할 경지이십니다.”
나오미가 확신에 찬 의견을 냈다. 자레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뱉은 말이 아니라, 마법사로서 부러움이 섞인 진심 어린 말이었다.
두 사람이 자레드에게 보내는 경외의 시선이 또렷이 꽂혔다.
자레드 본인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직 상대할 적들은 많아. 이제 시작이야. 겨우 실력자들의 세계에 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대륙에는 여전히 많은 적들이 있고, 그중에는 정면 승부를 벌였을 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적도 많았다.
이를테면 데스먼드 제국의 마탑주 이카젤라나 소드 마스터 갈라딘 공작 같은 사람.
아울러 일곱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렌-세븐도 감히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적들이었다.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나가자. 가장 가까운 적부터 확실하게, 완벽하게 끝을 내는 거다.’
자레드가 재차 의지를 다졌다.
첫 번째 목표, 파우페르 왕국.
돈만 있으면 살인도 무죄가 되고, 돈이 없으면 무고한 사람도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되는 나라.
부정부패의 극치를 달려 국왕마저도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린, 타락한 국가의 전형.
수준 미달의 국가가 난립하고 있는 춘추전국시대의 끝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곧!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준비해 온 도화선에 이제 곧 거센 불길이 옮겨붙을 예정이었다.
* * *
시간은 어느덧 흐르고 흘러, 8월을 앞둔 7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다.
자레드가 파우페르 왕국을 공격하기로 결정한 디데이는 9월 1일.
아직 한 달 하고도 며칠간의 여유가 더 있었다.
그동안 자레드는 대규모 공방의 공사 현장을 지켜봐 왔다.
먼저 모이즐이 즉시 아티팩트 제작에 매달릴 수 있도록, 그를 위한 작은 공방부터 만들었다.
거창한 시설은 필요 없고, 세공 장비와 간이 대장간만 있으면 된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지의 한옆에 작은 공방을 만들었고, 모이즐은 바로 아티팩트 제작에 들어갔다.
자레드는 그에게 필요한 아티팩트의 구성 요소를 말해 주었고, 제작 방식과 과정은 그에게 모두 일임했다.
그 어떤 것도 터치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잘한 잔소리도 절대 하지 않았다.
모이즐은 ‘모이즐처럼’ 움직여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용법을 잘 아는 자레드였기에 그의 열정을 방해할 수 있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