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59
제 259화
83장. 악마를 죽여라 – 2화
문제는 나탈리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일전에 데스먼드 제국을 한 번 들렀을 때, 나탈리의 스탯을 봤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의 나탈리는 제법 실력을 키워 가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껏해야 이룡과 비슷한 소드 프랙티션급이었던 검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나탈리 – Lv. 877] [근력 : 1,611][체력 : 909] [마력 : 397][지혜 : 77] [민첩 : 122][매력 : 254] [물방 : 1,221][마방 : 1,809] [특수 성향 : 오러 블레이드 EX / 항마 대응 SSS / 광폭화 SS / 순간 이동 A] [일반 성향 : 없음]단순 비교로만 보면, 일전에 내가 싸웠던 갈라딘 공작보다도 더 경지가 높았다.
아무리 급성장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급성장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나도 동료들과 함께 전력으로 나스 대미궁을 공략하면서 레벨을 올렸다.
그렇게 겨우 올린 것이 지금의 레벨인데, 나탈리는 그것을 훌쩍 뛰어넘은 상태였다.
‘암흑 제단의 힘을 부여받은 건가? 그렇다면 지금의 초월적인 강화 현상이 어느 정도 설명은 돼.’
암흑 제단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괴한 장치다.
지금의 전장도 마찬가지다.
10만 명에 가까운 인원을 수천km가 족히 넘는 위치로 이동시킨다는 건, 일반적으로는 설명이 힘들다.
-폐하, 적군을 지휘하는 나탈리 공주는 제가 맡겠습니다!
-저도 합류할게요!
-제가 힘을 보태겠습니다.
라키스의 말을 필두로 레나, 엘라의 말이 연이어 들려왔다.
단거리 통신석이었다.
제작에 만만찮은 비용이 지출되긴 했지만, 전기의 역할을 대신할 마력만 꾸준히 공급되면 현생의 ‘무전기’ 역할을 하는 장치였다.
일단 적군에 나탈리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녀가 총지휘관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핵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실력으로 본다면, 생각보다 전투에서 시간을 끌 가능성이 컸다.
나는 나탈리를 우선하기보다 다른 병사들이나 혹은 백성들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은.
데스먼드 제국군 소속의 병사와 암흑 교단의 단원들을 먼저 노리기로 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내 마법 공격으로 얼마든지 제압이 가능한 존재라는 뜻이다.
나는 창공으로 좀 더 높이 날아올랐다.
이곳은 아군과 적군이 뒤섞인 곳이라, 마음 놓고 초월 마법을 쏟아붓기가 어렵다.
최대치로 이동 속도를 증가시킨 뒤, 빠르게 전장을 훑었다.
아울러 타넥스들은 다수의 백성들이 피신해 있는 대피소를 중점적으로 지키도록 했다.
여차하면 자폭까지 가능하도록 명령해 두었으니, 어설프게 덤벼들지는 못할 것이다.
‘보인다.’
나는 황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점에서 다수의 적군이 뭉쳐 있는 것을 확인했다.
몇십에서 몇백 정도의 텔레포트라면, 보통 넓지 않은 반경에서 겹치지 않도록 이동이 끝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십만.
그렇다 보니 황도가 목적지로 설정되기는 했지만, 광범위하게 범위 지정이 된 듯했다.
그래서 모든 병력이 한 점에 집중되어 배치되지 않았다.
내가 도착한 곳은 적군의 군세 일부가 막 이동을 끝내고 주변 탐색을 시작하고 있는 위치였다.
바로 그때.
“적이다! 크리비아 제국의 마법사다!”
“저격해!”
눈치 빠른 병사 몇몇이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원활한 탐색을 위해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야에 충분히 들어올 법했다.
“…….”
나는 시뮬라크럼을 이용해 나를 대신할 분신을 제자리에 만들어 뒀다.
그리고 조금 더 위로 날아오른 뒤, 할루시네이션 마법을 이용해 배경을 위장했다.
병사들에게는 그저 밤하늘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 뒤에서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전에 갈라딘을 상대로도 먹혔던 전술.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일반 병사들이 이를 간파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쿼드러플 트랜센던스 쇼크 웨이브.’
나는 8클래스 마법, 쇼크 웨이브를 4단계로 강화시켰다.
데큐플까지 갈 필요가 없는 것은 그만큼 녀석들이 ‘잔챙이’이기 때문이다.
아마 6클래스 이상의 마법사가 있었다면, 저격이 아니라 공격을 하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마법사를 원거리에서 활로 견제하는 것보다야 마법사들이 붙어서 접근전을 벌이는 것이 나으니까.
푸푹! 푹! 푹!
“크하하하! 마법사 놈, 꼴 보기 좋다!”
“내가 바로 데스먼드 제국의 신궁이다, 이 자식아! 크하하하!”
“어서 크리비아 제국의 쓰레기 같은 놈들을 모두 죽여 버리자! 곧 폐하께서 남쪽부터 밀고 올라오실 테니 게릴라전으로 시간을 끌면 된다!”
‘그런 속셈이었군.’
나는 쇼크 웨이브의 타격 범위를 미세하게 조정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데스먼드 제국군의 믿는 구석은 알았다.
황도에서 대혼란을 유발하면, 남쪽에서 아군이 밀고 올라온다는 계산이었다.
좋은 유추이기는 했다.
나라의 근간, 기둥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와르르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지금쯤 남부에서도 바로 소식이 왔어야 했다.
무슨 전쟁이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단숨에 남쪽에서부터 중북부에 위치한 황도까지 진군할 수가 있는가?
즉…… 버린 것이다.
헛된 희망을 던져 주고, 병사들을 사지에 내몬 것이다.
다만 이것이 데스먼드 제국의 황제 디그론 4세의 뜻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내가 아는 디그론 4세는 나만큼이나 병사들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물론 서로의 신념과 뜻은 달랐지만, 적어도 병사를 아끼는 마음은 같았다.
그런 황제가 10만에 달하는 대군을 사지로 보낸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사지에 아끼는 딸인 나탈리를 보냈다는 사실도 충격의 연속이고.
‘일단 그건 나중에.’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눈앞의 적이다.
다음 순간!
나는 범위 조정까지 끝난 쇼크 웨이브 마법을 그대로 지상에 내리꽂듯 강하시켰다.
콰아아아!
굉음과 함께 지면으로 한 줄기의 파장이 수직 낙하했다.
쇼크 웨이브의 무서운 점은 충격파가 터지기 전까지는 작은 공 같은 구체로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면에 부딪히는 순간.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거대하면서도 강렬한 충격파를 사방으로 분출시킨다.
소형 중성자탄 같은 개념이라고 하면 비슷한 비유가 될까?
건물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생체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것이 쇼크 웨이브였다.
“끄어……?”
“억…….”
비명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할 바람 빠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혹시나 기세 좋게 상공으로 올라와 나를 노리려는 마법사가 있는지 살폈지만 없었다.
즉, 일반 병력이었다.
퍼엉! 퍼엉! 퍼엉!
“아, 아니……?”
“사, 살려 줘! 살려 줘!”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을 알지 못하는 데스먼드 제국군은 시간차를 두고 ‘터져 나가는’ 동료의 모습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운명이 바뀌진 않았다.
단지 운명이 정해지는 시간만 달랐을 뿐. 이윽고 살려 달라고 외치던 병사들도 풍선처럼 펑펑 터지며 죽어 갔다.
“…….”
나는 학살의 광경을 지켜봤다.
8클래스의 마법.
그리고 4단계의 강화.
3만 2천의 마력을 활용한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2천 명의 병사를 제거했다.
황도 남서쪽에 위치한 두 개의 대로와 건물을 장악했던 존재들을 모두 불귀의 객으로 만든 것이다.
조용했다.
하다못해 부상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병사도 없었다. 모두에게 동일한 죽음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크리비아의 저주받은 족속들을 찾아라!”
“보이는 대로 모두 학살해도 좋다는 폐하의 명이시……. 어?”
그때.
시간차를 두고 다른 쪽 거리에서 이쪽으로 진입하던 병사들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들의 공포를 읽을 수 있었다.
용기백배, 사기충천했을 그들.
모르긴 몰라도 황제와 이카젤라의 아낌없는 환송을 받으며, 사명감을 갖고 이곳으로 왔을 터였다.
하지만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목격했으니, 흔들리지 않을 리 만무했다.
“터져 죽었어.”
“이런 참혹한……. 자레드에게 당한 건가?”
“자레드는 나탈리 님이 상대한다고 하셨는데! 게다가 다수의 마법사단도 포함되었잖아?”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병사들이 서로 수군거렸다.
적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저마다의 역할 분담을 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나탈리와의 전투를 피한 것이다.
바로 눈앞에 있는 자들.
이런 병사부터 하나하나 제거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살아남아 ‘잔당’이 되면,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된다.
나탈리를 위시한 실력자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내 동료들과 친위대에게 맡기고.
황도에 세균처럼 숨어든 제국군을 박멸하겠다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후.”
짧게 숨을 토해 낸 뒤.
콰아아아!
나는 망설임 없이 새로운 병력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선택지는 오직 죽음뿐.
녀석들에게 자비는 필요 없다.
* * *
그 시각.
황도 중심부에서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크윽……!”
“레나, 괜찮아?”
“괜찮아요. 그것보다 도발이 먹히지 않아요! 미세한 변화조차 없는 것을 보면 완전 면역 같아요!”
레나는 자신의 도발이 하나도 먹히지 않아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자신의 도발이 통하지 않았던 것은 자레드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나탈리에게 악신의 가호가 내린 덕분이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레나로서는 물음표가 찍힐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쇄애애액!
무미건조한 말투로 검을 휘두르는 나탈리의 공격은 매서웠다.
공격 하나하나가 오러 블레이드와 연계되는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즉,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경지에 올라 있는 공격이었다.
까앙! 타앙!
“크윽, 제길.”
“위력이 상당해요.”
라키스와 엘라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조금만 집중을 게을리 해도,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파괴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레나도 그렇고, 라키스와 엘라도 사실상 공격 10%, 방어 90%의 배분으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일 대 삼의 우위였지만, 체감하는 전투의 위력은 오히려 반대였다.
게다가 한두 차례 잘 들어간 공격이 있었지만, 나탈리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엘라 단장, 우리가 나탈리 공주를 묶어 놔야 폐하께서 적의 군세를 무너뜨리실 수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탈리의 전방을 맡을 테니, 라키스 님께서 후방을.”
“가소로운 놈들……!”
엘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탈리의 맹공이 이어졌다.
공격 하나하나에서 계속 오러 블레이드가 뻗어져 나왔기 때문에 매우 파괴적이었다.
이것이 추가적인 피해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오러를 막아 내야 했다.
그렇지 않고 하나라도 옆이나 뒤로 흘리게 되면…….
“커헉!”
바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마나의 힘이 짙게 실린 오러는 먼 거리를 날아가도 소멸되지 않고, 기존의 파괴력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악마가 따로 없구먼.”
라키스가 인상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