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18
제 318화
99장. 해결되지 않은 문제 – 4화
-예전부터 계속 인지하고 있었지만, 성마 대전으로 인해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와 이제는 마주해야 할 듯합니다.
“나스카디아해의 결계를 다녀온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어떻더냐? 근방을 지키는 바다 괴수가 있었을 테고, 결계에는 가까이 가기 무척 꺼려졌을 텐데.”
-바다 괴수 하나를 처치하고, 특이한 원석을 하나 얻었습니다. 아울러 결계를 넘어온 지네 형태의 몬스터와 혈마귀도 처리했습니다.
“뭐라고? 바다 괴수 하나를 죽이고, 결계를 넘어온 녀석들과도 마주쳤다고?”
-네, 그렇습니다.
“보통 일이 아니군…….”
베르하드가 턱 끝을 쓸어내렸다.
자레드와 마스터 스톤을 통해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원래 이야기의 포문은 베르하드가 존댓말로 열었는데, 자레드가 편한 대로 말해 달라고 해서 다시 원상복구가 된 상태였다.
예전부터 늘 그래 왔지만.
자레드는 본인이 황제라는 사실보다 베르하드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에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어쨌든 자레드에게 들은 두 가지 소식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우선 베르하드도 좀처럼 상대하기 어려워 몇 번이나 고배를 마신 바다 괴수를 잡아낸 것하며.
결계를 넘어온 존재와 맞닥뜨렸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소식이었다.
-언제 뵐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몇 가지 실험을 하는 중이라 이 결과를 보고 난 후에 움직일 수 있을 듯한데.”
-기간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이틀. 이틀 뒤에 가겠다. 그리고 결계 쪽은 너무 걱정할 것 없다. 한 달 중 결계가 유독 약해지는 시점이 바로 오늘이었으니까.”
-결계가 항상 같은 위력과 형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군요?
“그 부분은 만나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하도록 하지. 일단 내게 시간을 좀 줘야 할 듯하다.”
-네. 그럼 언제든 이 마스터 스톤을 통해서 연락을 남겨 주십시오. 저는 잠을 안 자니까요.
“알았다.”
그렇게 베르하드와 자레드의 대화가 끝났다.
“후우우우.”
동시에 베르하드는 참았던 숨을 토해 내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연구실의 한쪽 내벽을 쾅 후려치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게. 이 쳐 죽일 도마뱀 새끼들은 왜 말도 안 되는 힘을 끌어다가 써 가지고!”
차원의 고리가 뒤틀려 버린 악연의 시작점은 마왕 부르고사였다.
즉, 천 년 전 용마 대전이 발발한 시점에서 이미 차원의 균열이 발생한 상태였다.
당시 상당히 높은 지적 수준을 자랑했던 드래곤은 시공간을 활용하는 차원적 지식에 해박했다.
그래서 용마 대전을 대비하기 위해서, 차원 역학이라는 금단의 학문에 손을 댔다.
이것은 드래곤이 힘을 얻는 만큼, 차원의 불균형을 가속화하는 양날의 검이었지만.
한낱 마족 ‘따위’에게 드래곤의 터전을 잃고 싶지 않았던 그들은 아낌없이 차원의 힘을 가져다 썼다.
그 과정에서 일부 드래곤은 필요 이상의 욕심을 냈고, 결국 약속한 균형의 선을 훌쩍 넘는 활용이 이뤄졌다.
마왕과의 전투에 대비한다는 공동의 목적이 있는 와중에도, 개별적으로 힘을 더 얻길 바랐던 드래곤의 탐욕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차원의 고리가 뒤틀리며 또 다른 차원 하나가 나스 대륙과 엮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하나의 작은 접점 정도가 생겼을 뿐이었고,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일단 지금 대충 덮어 두더라도 향후 천 년까지는 문제가 안 될 사항으로 여겼다.
그 이후, 용마 대전은 마왕군과 드래곤 모두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당한 채 끝이 났다.
심지어 마왕 부르고사의 심장을 꿰뚫은 것은 드래곤이 아닌 인간 용사였다.
어쨌든 그 후.
드래곤의 개체수가 멸종에 가깝게 줄어들면서 드래곤의 위세는 크게 약해졌다.
문제는 제 앞가림도 못 할 처지까지 드래곤의 위상이 떨어지며, 차원의 문제가 묻혀 버렸다는 것이다.
일부의 드래곤은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기는 하지만,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드래곤 종족이 망해 버린 마당에 자신들이 싸질러 놓은 ‘똥’까지 치울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 년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 버렸고, 이제는 그 문제가 수면 위로 불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그 독박을 성마 대전의 대비에 전력을 다했고 목숨을 바쳤던 자레드가 또다시 뒤집어쓸 판이었다.
“아니, 이미 뒤집어썼다고 봐야겠지. 나스 대륙 전체를 통치하는 대제국의 황제로서 이 문제를 절대 좌시할 수는 없을 테니.”
내색은 안 했지만, 베르하드는 자레드가 그저 딱할 뿐이었다.
산 넘어 산이라고, 이제는 천 년 전의 사건이 만들어 낸 후폭풍까지 감당해야 할 상황.
“하지만 자레드이기에 믿을 수 있을지도. 녀석의 마법이라면, 이 늙어 빠진 노인네의 수작질보다 백배, 천배는 나을 테니까.”
베르하드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것이 그동안 동방 대륙과 연결된 결계와 그 세계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자레드라면 뭔가 유의미한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믿음으로 지속해 온 연구이기도 했고 말이다.
특히 요 근래 몇 년간은 수많은 시뮬레이션에 늘 자레드의 존재가 상수(常數)로 들어가 있었다.
“하, 도마뱀 새끼들 진짜…… 도움이 안 돼.”
베르하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먼지 가득한 지하실로 향했다.
아직 결과를 지켜봐야 할 실험의 흔적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 * *
이튿날 아침.
미리 잡아 둔 약속에 따라 점심때 즈음하여 나를 찾아온 것은 바로 라키스 부부였다.
이런 자리는 오랜만이었다.
내가 1개월 전에 격리된 차원에서 돌아온 직후,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
나를 비롯한 모두가 대륙 전역의 복구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각자 도움이 필요한 지역으로 파견되어 일을 했기에 대화를 나눌 기회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결혼식 직후에는 나와 헤이즈가 신혼여행을 떠났던 만큼, 실로 오랜만에 이렇게 대화의 자리를 가지는 셈이었다.
응애-. 응애-.
라키스, 메리, 미아.
이렇게 세 사람의 등장과 더불어 하늘의 축복이 내린, 기분 좋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키리.
바로 얼마 전에 라키스와 메리 사이에서 생긴 둘째 딸이자, 미아의 여동생이었다.
내가 나스 대륙으로 돌아오기 전에 메리가 출산을 했다고 했다.
얼추 시기를 역산해 보면, 내가 격리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키리를 가졌다는 뜻인데…….
그만큼 라키스, 메리 부부의 금슬이 좋았던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었다.
‘음, 나도 그렇게 되겠지?’
나는 환한 미소로 라키스 가족을 맞이하고 있는 헤이즈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한참 앞서 나간 몇 가지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나와 헤이즈도 이제 부부다.
당연히 2세 생각도 하고 있는 만큼, 그런 상상을 한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쨌든 라키스의 ‘키’, 메리의 ‘리’를 따서 지은 키리는 엄마를 닮아서 정말 예뻤다.
“짐이 그리 말렸거늘, 황후가 라키스 경과 메리 요리장에게 직접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겠소?”
“호호, 부디 먹고 뱉지만 말아 주세요. 정성 들여 만들었답니다!”
“하하하! 황후마마께서 직접 이리 요리를 하여 대접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황실 전속 요리장인 제게 맡기시지 않고요? 제가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면목 없습니다.”
라키스와 메리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메리는 출산 이후, 라키스의 엄격한 관리 아래 산후조리를 한 덕분에 컨디션이 무척 좋아 보였다.
라키스는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도 가정적인 남편이자 다정한 아빠였다.
전장에서는 한 줌의 피도 눈물도 없는 냉철한 무인이 되지만, 가정에서는 아니었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어허, 미아! 언니라니! 황후마마라고 공손하게 인사를 드려야 한다!”
“아앗! 죄송해요. 황후마마, 오랜만에 뵙사옵사와요.”
“그건 또 무슨 해괴한 말투냐, 미아야…….”
라키스가 이마를 탁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제나 유쾌한 라키스 가족의 모습이었다. 나도 헤이즈도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바라볼 만큼 기분 좋은 광경이기도 했다.
“자, 다들 앉읍시다. 오늘은 나눌 이야기가 좀 많을 것 같소. 그동안 쌓였던 회포를 풉시다.”
내가 먼저 상석에 앉으며, 헤이즈와 라키스 가족도 어서 앉을 것을 제안했다.
이윽고 각자 정해진 자리에 앉자, 하녀와 시종이 와인 잔에 적절히 와인을 채웠다.
미아에게만 양질의 과일을 착즙해 만든 생과일주스가 제공됐다.
“자, 일단 맛을 좀 보는 게 어떻겠소? 일단 기분 좋게 와인 한 잔을 나눈 후에…….”
“예, 폐하.”
“감사합니다, 폐하.”
짠!
건배와 함께.
라키스 가족과의 단란한 점심 식사가 시작됐다.
식감도 좋고, 풍미도 제법인 헤이즈의 특제 요리를 먹으면서 우리의 식사 자리는 무척 유쾌했다.
우리는 방긋 웃는 키리의 미소와 재롱 잔치에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고.
중간에 잠시 자리를 비운 메리가 만들어 온 또 다른 특제 요리에 감탄하기도 했다.
잠시 시간의 흐름조차 잊을 만큼 즐겁게 보낸 시간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주제는 내가 없었던 지난 1년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됐다.
격리됐던 차원에서 나스 대륙으로 복귀한 직후.
바로 전후 복구 작업에 나부터 먼저 뛰어들었던 탓에 이런 대화를 나눌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라키스나 메리 입장에서는 사실 1년 1개월 만에 나와 진득하게 나눠 보는 대화이기도 했다.
“라키스 경, 얘기를 좀 들어 보고 싶소. 짐이 부재했던 지난 1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소?”
내 물음에 라키스는 몇 차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꽤 이야기가 길어질 모양이었다.
“폐하,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마왕군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폐하께서 마왕 레크나트를 제거한 직후, 마왕군의 군세는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전투력이 급강하하더군요.”
“그랬을 것이오. 마왕 레크나트의 영향력이 상당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이 곧 놈들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패퇴하는 마왕군의 무리가 늘어났고, 그 잔당이 대륙 전역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오히려 대규모 전면전보다 껄끄러운 상황이 되었겠군.”
“예. 집요한 도주와 저항에 꽤 고전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제게는 결과적으로는 실력을 가다듬을 계기도 되었습니다.”
“음…….”
“마왕군의 잔당을 전부 격멸하기까지 반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분명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지만, 전투에 참여한 모두가 유의미한 성장을 경험했을 겁니다.”
“이를테면 레나나 엘라, 그리고 여기 있는 미아를 포함한 모두의 성장을 말하는 것이겠군.”
“그렇습니다. 폐하가 없는 시간 동안에도 저희는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했습니다. 언젠가 폐하께서 돌아오시리라고 믿었고…….”
“결국 돌아왔지.”
“예, 폐하. 폐하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모두 이를 악물고 투혼을 발휘했다고 자신합니다.”
“고생 많았소.”
“아닙니다, 폐하. 폐하만큼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으신 분은 없을 겁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키스가 갑자기 일어서서는 대뜸 내게 절을 올렸다.
존경과 경외의 감정이 동시에 묻어나는 라키스 특유의 직설적인 감정 표현법이었다.
애매한 미사여구나 수식어 대신 이렇게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의 오래된 습관이자 버릇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나는 라키스의 왼쪽 손가락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특이한 반지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것은 내가 그에게 하사한 적도, 또한 던전에서 얻은 적도 없는 전혀 새로운 아티팩트였다.
[카스트로 링] [블랙 드래곤 카스트로가 직접 세공한 근력 강화 반지입니다.]‘카스트로?’
모이즐의 스승이었던 드래곤으로, 내게는 익숙하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이름.
블랙 드래곤 카스트로.
그의 존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