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culus of Joseon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차도살인
전투는 아침에 끝났다. 하지만 병졸들은 오히려 전투 때보다 더욱 분주하게 움직였다.
최윤의 의견대로 화학탄을 쏜 자리에 불을 질렀다. 불이 타오른 자리에 희고 검은 연기가 서로 엉켜가며 피어올랐다. 그 속에서 불쾌할 정도로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군사들에게 코와 입을 무명천으로 가리게 했고, 장갑을 지급해 착용하도록 했다.
황간 전투 이후로 아낙들도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며 나섰다. 그 속에는 양반집 규수였던 신연우의 어미 김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난 그들에게 자원자에 한해 밥을 짓게 하고 옷을 만들게 했다. 또 고아를 돌보는 일과 간호 일까지 도맡도록 지시했다.
그때 혹시 모른다며 최윤이 아낙들을 시켜 장갑을 만들게 했었는데, 여기에서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지 정말 몰랐다. 모든 병졸들은 마스크에 장갑까지 착용하고 열심히 작업 중이다.
병졸들을 시켜 산 아래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게 했다. 그 구덩이 안으로 적군의 시체를 옮겨 깡그리 던져 넣었다. 시체는 대부분 심하게 부식되어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알아보기 힘든 시체에 다시 불을 질러 더욱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혹여 아군 병졸들이나 백성들이 화학 물질에 중독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긴…… 불을 질러도 유황 등이 연소되면서 유해물질이 발생하게 된다. 이 유해물질이 공기 중에 유입되어 호흡기에 들어가면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직접적인 접촉보다야 낫지 않은가.
우선 백성들을 아주 멀리 이동시키고, 접근을 허용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껏 적군이 포로로 잡아두었던 백성들을 구했다. 백성들 말로는 구하지 못한 일부 백성들 중에 전투에 휘말려 죽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수습한 시신은 누가 조선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알아볼 수 없었고, 설령 조선 사람을 찾아낸들 누군지 알 방도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시신을 전부 구덩이에 던져 넣으라고 지시했다.
일본군 포로들에게 곡(哭)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들은 불타는 시체 앞에서 땅에 머리를 찧어가며 통곡했다. 이들에게도 무명천을 지급해 코와 입을 가리게 했지만, 그들은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만큼은 무명천을 턱까지 내렸다.
탄환과 조총, 창칼 등을 모두 수거하고, 임시로 수용소를 만들어 포로들을 가두게 했다. 그리고 멀리 용담천 상류의 물을 길러오게 했다. 그 물로 아군 병졸들과 포로들을 씻겼다. 그렇게 전장 정리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끝났다.
***
“어떻게 생각하느냐?”
“흐음…….”
이희춘, 노함, 최윤은 수거한 조총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그들의 미간 사이가 좁혀졌다 펴지기를 반복했고, 가끔씩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나도 여러 차례 총구 안을 살펴보기도 했고, 총신을 관찰해보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달라진 바가 전혀 없습니다. 화약을 집어넣고 불 땡기는 방식도 여전하고요. 화승식(火繩式)을 개선하고자 했다면, 원숭이들이 화약통을 들고 다녔을 리가 없습니다.”
최윤이 제일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장전 시간을 줄이고 싶었으면 전장식(前裝式)에서 후장식(後裝式)으로 바꾸려고 했어야 합니다. 헌데 이것들은 여전히 삭장(槊杖, 나무 꽂을대)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기존 방식에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희춘이 조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희춘은 더는 볼 것도 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저희처럼 강선(鋼線)이라도 있는지 살펴봤는데, 전혀 없습니다. 이대로는 잘 해봐야 60미터에서 70미터 정도밖에 못 날아가요. 그리고…… 탄환은 곡사로 나갈 텐데, 거기까지 고려해서 총의 구조를 결정하든가, 아니면 개조해야할 텐데……. 이게 뭡니까, 이게! 허접하네요. 탄도를 고려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거면 뇌가 없는 새끼인데요?”
노함도 비슷하게 말하며 조총을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어제 하루 종일 적군과 신경전을 벌이고, 밤새 전투를 해서인지 노함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노함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형님이 걱정하시는 그런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희춘은 내가 무슨 이유로 조총을 살펴보라고 했는지 아는가 보다. 이희춘 뿐만이 아니었다. 노함이나 최윤도 내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확실하다. 쿠리야마 토시야스, 이전 세계의 율근 과학고에서 수학을 가르쳤던 민현준은 이곳 조선에 혼자 온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놈은 여전히 응용력이 부족하고, 뭐부터 해야 될지 전혀 모르는 놈이다. 조선은 철장(鐵匠)과 목수(木手)의 기술력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만약 놈이 일본군 편에 서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조선의 야장과 철장, 목수를 전부 잡아들여 무기부터 개조했을 것이다. 헌데 달라진 바가 전혀 없다.
또 제자들과 함께 이 시대로 왔다면 그들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흔적이 전혀 없다. 뭐…… 정말로 함께 온 제자들이 있었다면, 당연하겠지만 알아서 조선으로 넘어왔을 것이다. 내가 아는 제자들은 다 그럴 녀석들이었다.
민현준이니까 일본군에서 저리 이상하게 기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쿠리야마 토시야스가 민현준이 확실하다는 가정 아래서 생각해볼만한 문제였다.
“모은 조총을 다 어쩌시렵니까?”
안 그래도 잔뜩 쌓여있는 조총을 보며 이희춘이 물었다.
“저 총을 저대로 쓸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어디 있겠는가. 그냥 전부 지리산으로 보내자. 다 녹여서 너희들이 개발한 총포를 만드는데 보태면 되지 않겠나?”
“그렇죠! 그게 제일 낫겠네요.”
이희춘은 재빨리 하급 군관들을 집합시켜 임무를 지시했다.
“노함!”
“네.”
“지리산이라고 하니까 이제야 생각나는구나. 정평구는 어찌 되었느냐?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겐가?”
“정평구는 형님의 지시대로 사천에 비거(飛車)를 보급하고 곧장 성주로 간다고 했었습니다. 평구가 사천으로 오면서 지리산에서 성주로 비거 부품을 잔뜩 보내놨다니까, 아마 지금쯤 성주에서 열심히 비거를 조립하고 있을 걸요?”
“잘 됐군.”
뛰어난 인재 정평구. 다소 경망스러워서 그렇지 지식 흡수력과 이해력이 좋고, 지적 호기심도 상당한 사람이다. 게다가 일처리 하나만큼은 깔끔하고 꼼꼼하게 했다. 그렇다보니 정평구에게 맡긴 임무가 상당히 많았다. 무기의 생산 관리, 공정 관리, 보급 관리, 수리 관리 등등.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가하고 병졸들을 지휘해야 하는 이희춘, 노함, 최윤을 대신하여 지리산에서 생산하는 모든 무기 관리를 정평구가 온통 도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명련, 김덕령. 전투는 할 만한가?”
아까부터 한명련과 김덕령은 조총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미 상주에서 조총을 본 일이 있다. 그런데도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을 했다.
“세상에는 신기한 일들도 많고, 신기한 사람도 많고, 신기한 물건도 많군요. 여기 있는 이희춘, 노함, 최윤 교위도 신기하지만, 누구보다 신기한 사람은 역시 도원수님입니다. 딱 봐도 왜놈들 무기가 허접해 보이는데, 성능 좋은 무기를 만들 방법은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혹시 미래에서 오기라고 했나요?”
김덕령이 실실 웃으면서 말하는 바람에 순간 뜨끔했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바라 그렇다네.”
난 짐짓 모른 체하며 어영부영 대답했다. 대충 얼버무린 난 한명련에게 눈을 돌렸다.
“아무래도 저는 싸움이 체질인가 봅니다. 말을 타고 돌격하는 순간이 제 삶에서 가장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수급을 벤 사람은 자네 아니던가?”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원수님. 가장 많은 수급을 벤 분은 도원수님이죠.”
순박하고 수더분한 한명련은 헤벌쭉 웃으며 대답했다. 이런 사람이 역사 속에서 반란을 일으켜 한양까지 진격했었다니……, 지금의 한명련이라면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정개룡을 미리 운수현으로 보냈다.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아군 지휘부와의 연락을 위해서였다. 머릿속으로 성주와 고령 사이에서 적군을 어떻게 맞아들이고 어떻게 전투를 벌일지 구상을 마치고 세부 계획까지 세워두긴 했다. 그렇더라도 정확한 보고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확단은 위험하다.
잠시 생각하고 있는 사이, 김면이 정인홍, 손인갑, 최강, 전현룡, 서예원을 데리고 보고하러 왔다.
“도원수님. 전장 정리는 끝났습니다.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더는 왜놈들에게 잡힌 백성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실종된 사람이 없는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면이 뒷말을 삼키며 머뭇거렸다.
“말해보십시오.”
“만대산을 포위하며 왜놈들을 몰아쳤습니다. 투항한 왜놈들이 꽤 많습니다만……. 그놈들이 말하길 도원수님이 찾으시는 쿠리야마 토시야스란 놈이 전투 초반부터 도주했었다고 합니다.”
“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번에도 놓친 건가……. 곽재우나 김시민, 유숭인이 놈을 잡아들이길 기도해야 된다.
“이제부터는 어찌해야 할지요?”
김면은 조심스럽게 내게 다음 지시를 물었다. 그에 난 뒤의 서예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서 부사. 어찌 장독은 다 나았소?”
“장을 얻어맞고 한참이나 지났습니다. 장독에서 벗어난지 오래입니다.”
서예원은 최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직도 김해에서 도망친 일로 주눅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반면 최윤은 별 상관없다는 투로 심드렁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서예원은 최고 지휘관에서는 다소 밀렸지만, 나름 여러모로 전투를 도와주고 있었다. 어쨌든 서예원은 삼봉계의 일원이었기도 했던 만큼 앞으로 나와 쭉 함께 할 사람이다.
“김응성 의병장께는 만대산의 포위를 풀지 말라고 해주십시오. 서 부사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병졸들을 부려 사방에 경계를 배치하십시오. 나머지 모든 병졸들에게는 오늘 밤만큼은 쉬게 해주십시오.”
나는 모두를 둘러보며 그렇게 명을 내렸다. 그리고 전현룡을 불렀다.
“전 군수님.”
“네, 하명하십시오.”
“가용한 소와 돼지를 잡아 병졸들과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십시오. 아, 최윤과 함께 취계도 만들어 보급해 주셨으면 합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도원수님이 일전에 말씀하셔서 준비해놓고 있었습니다. 사람 수를 헤아려 보고 모두 배급 가능한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어떻게든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봐야지요.”
“다만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십시오. 술이 들어가면 군기가 헤이해지거든요. 절대 금주를 명해주시고, 적발되면 엄하게 벌을 내리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난 모두에게 하나하나 명령을 내렸다. 주요 골자는 병졸들에게 휴식을 주라는 내용이었다.
“아참! 전 군수님!”
“네. 말씀하십시오.”
“붙잡힌 포로들에게도 고기를 나눠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가능하다면 오늘밤만큼은 왜놈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줍시다.”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전현룡의 물음에 난 크게 웃었다.
“명일 아침에 구로다 나가마사가 탈출할 예정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