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culus of Joseon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기시감
간밤에 군졸들은 쇠고기와 돼지고기, 취계(치킨)를 나눠 먹으며 회식자리를 가졌다. 그들은 되도록 소란스럽지 않게 삼삼오오 모여앉아 두런두런 웃고 떠들었다.
엄연히 작전 수행 중이었다. 그런 만큼 누구도 술을 마실 수 없도록 음주를 엄금했다. 분명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술에 취한 듯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자자! 이걸 보시라! 이것이 바로 ‘비투(琵透)’라는 것이외다!”
술을 마시지 않고도 취한 듯이 보이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최윤이었다. 최윤이 어찌나 큰 소리로 외치는지, 음식을 먹던 군졸들의 시선이 단번에 최윤에게로 향했다.
“두구두구 두, 두구두구 두, 두, 두, 두”
최윤은 현대에서 들었던 ‘비트(beat)’를 표현한답시고 입 안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소리를 내는가 하면, 손뼉을 치기도 했으며,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두드리기도 했다. 얼핏 들어보니 대충 드럼 소리와 엇비슷한 것도 같았다. 저 녀석이 언제 저런 재주를 익혔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회식 자리에서 가장 신난 사람은 아무리 봐도 최윤이었다.
의외로 군졸들이 최윤의 ‘비투’에 관심을 보였다. 처음 들어보는 빠른 박자에 꽤나 놀랍고 신기한 모양이었다. 군졸들이 연신 반응을 보이자 최윤은 더욱 흥이 났는지, 병졸들 몇 명에게 ‘비투’를 가르쳤다.
“자! 너는 이렇게 손뼉을 치고, 너는 이 놋그릇을 치고…….”
최윤은 마치 전문가라도 된 것 마냥, 병졸들에게 한명씩 임무를 내려주기까지 했다.
“이제 한꺼번에 들어간다! 하나, 둘, 셋!”
최윤이 구령을 넣자, 임무를 받은 병졸들이 ‘비투’를 넣기 시작했다. 최윤은 확실히 여러 가지 재주를 많이 가졌다. 분명 급조하여 만든 박자와 리듬일 텐데, 제법 괜찮은 소리를 만들어냈다.
“최윤은 원래 음악을 하고자 했었답니다. 관심은 그쪽인데 소질이 이과라 율근 과학고에 진학했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래? 몰랐구나.”
노함의 말에 깜짝 놀랐다. 최윤, 이전 세계에서의 나경현이 음악을 하려 했었다니…….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아니…… 잠시만……. 지금과 비슷한 상황, 비슷한 대사를 어디에서 보고 들은 것만 같았다. 언제였지? 어디서였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뚜렷하지 않게 가물가물한 기억.
어렴풋하고도 희뿌연 기억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다 말다를 반복했다. 분명히 똑같은 상황이었고 그때도 최윤과 노함……, 아니, 나경현과 위상현, 두 사람과 함께였다.
“오―!”
“이야―!”
“우오오―!”
군졸들의 함성과 환호성에 눈을 돌려보니, 최윤이 이번에는 흘러나오는 비트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정말이지 입이 딱 벌어졌다. 바닥에 손을 짚고 몇 바퀴 회전하지 않나, 현란하게 발을 구르지 않나. 이전 세계에서도 누구나 혀를 내두를 만큼 한 가닥 하는 솜씨였다.
“아 맞다. 최윤이 그런 말도 했었어요. 자기는 비보이가 되고 싶기도 했었데요. 한때 비보이가 유행했었잖아요.”
“비보이라고? 아, 그래. 한때 유행했던 것도 같다. 최윤 저 녀석이 비보이라……. 허참. 별 놈의 재주를 다 가진 녀석이로구나.”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 녀석이 복이란 복은 다 타고 난 것 같아요. 가끔은 부럽기까지 한다니까요?”
“그렇군…….”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려오기 시작했다. 벌레가 뒤통수를 갉아먹으며 후벼 파는 느낌이랄까? 떠오를 말 듯 한 기억…….
“함이야…….”
“네, 형님.”
“우리가 이전에 이런 비슷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나? 최윤이 노래 부르고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아니요. 형님과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학교 다닐 때도 뭐……. 공부만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럴 기회가 있었나요? 저도 최윤이 춤추는 건 기숙사에서 두어 번 본 일 밖에 없습니다.”
“정말? 왜 난 어디서 본 것 같지…….”
미칠 듯이 더욱 머리가 아파왔다.
그 순간 한명련과 김덕령이 우리 쪽으로 왔다. 그 바람에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노함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질문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다음에는 노함과 최윤을 모두 불러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기억력만큼은 은근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건만……. 뭔가 이상했다.
그와 별개로 최윤과 단둘이 있는 시간이 오면, 녀석의 예전 꿈이 무엇이었는지 들어봐야겠다. 비록 조선시대로 와버렸지만, 녀석의 잊었던 꿈을 이곳에서 실현시킬 기회를 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 같은 진성공돌이에게는 최윤의 음악과 춤 실력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 분간할 눈과 귀가 없었지만. 뭐, 어쨌든…….
김덕령과 한명련은 내게 가볍게 묵례했다.
“분부하신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어찌 되었는가?”
“모든 경로를 확인했고, 지나는 각 길목마다 보초를 세워뒀습니다. 도원수님이 실행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김덕령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고생했네. 피곤했을 텐데, 쉬지도 못하게 하고 임무를 맡겨서 미안하네.”
“별 말씀을요.”
“자네들도 가서 요기라도 하게나.”
김덕령과 한명련은 내게 인사하고 곧장 최윤 쪽으로 갔다.
“함이야. 희춘이를 불러라. 슬슬 움직일 때가 왔다.”
“네, 형님.”
노함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잡아들인 포로가 너무 많았다. 아군의 손에 잡힌 포로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이중에는 스스로 투항한 자들도 적지 않았다. 일본군은 어지간히도 놀랐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화학전을 처음 보았으니, 무조건 항복을 외친 일이 어찌 보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집계는 잘 되십니까?”
“하고는 있습니다만, 생각보다 많아서 고충이 많습니다. 게다가 도원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포로들을 분류하려니, 하나하나 파악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정인홍에게 지시한 일은 끝까지 저항한 자와 스스로 투항한 자를 구별하는 일이었다. 그와 더불어 장수와 병졸을 구분해내고, 그 직책과 계급까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포로가 한두 명이 아닌지라 꽤나 애먹고 있었는지, 정인홍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의 얼굴에는 피곤하다거나 힘든 기색이 없었다.
강골의 선비 정인홍. 그는 의지력과 정신력이 상당히 강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여 수하들에게 다소 인망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헌데…… 계속 궁금했었는데, 왜 포로를 분류하시는 겁니까?”
정인홍이 특유의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는 다소 경직된 어투를 사용했는데, 누구나 처음에는 거북함을 드러냈다. 또 말을 할 때마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보여 어쩐지 더욱 딱딱한 이미지를 자아냈다. 하지만 그와 몇 번 대화하다보면 실제 그의 속이 그리 딱딱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스로 투항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분류하여 다르게 대우하려고 합니다.”
“대우요? 무슨 대우를 말씀하시는지요?”
“저는 전쟁이 끝난 뒤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산과 들은 물론 강이나 바다까지도 죄다 피해를 입었습니다. 더군다나 사람도 많이 죽어나갔지요. 다시 복구하려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하겠습니까. 저는 저들을 이용해 노동력을 보충하고자 합니다.”
“왜놈들이 조선에 귀화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렇습니다. 스스로 투항한 자들을 대우해 주면, 다른 왜놈들도 알아서 마음을 열게 될 겁니다. 그렇지 않고 끝까지 저항한다면 별 수 없이 관노(官奴)로 삼아 국가 재건 사업 전반에 투입해야지요. 벌목이라든지, 토건 사업이라든지. 힘들고 고역스러운 일은 죄다 떠맡길 생각입니다. 물론 보수 따위는 일절 없이 말이지요.”
“아……. 도원수님의 뜻 이해했습니다. 조금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저것들이 해먹은 짓이 있는데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원수님은 꽤나 멀리 바라보고 계시는군요. 전쟁이 끝난 후라……. 도원수님께서 전쟁이 곧 끝날 것처럼 말씀해주시니 은근히 감동스럽습니다, 그려.”
“그러니 의병우장님도 힘내십시오.”
이럴 때보면 정인홍은 은근히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다. 한 번 뭐에 꽂히면 사정없이 파고들어서 문제지만……. 어쨌든 해맑게 웃는 정인홍을 보면, 역사 속에서처럼 철인정치를 했던 사람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손 군관은 어디 있습니까?”
“손인갑은 도원수님의 명에 따라 왜군 정보를 얻어 보려고 왜놈 장수들을 초치고 있습니다. 손인갑의 손이 꽤나 매서울 텐데도, 워낙 놈들이 완강하여 예상 외로 고전하고 있나 봅니다.”
정인홍은 그렇게 말하며 어느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보도록 하지요.”
난 이희춘과 노함을 데리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포로가 워낙 많아 임시로 들판에 수용소를 만들고 포로들을 가두었다. 그리고 어느 큰 기와집의 창고를 왜놈 장수들의 취조 장소로 빌렸다. 우리는 그 기와집 창고로 가는 중이다.
***
“희춘아, 함이야.”
“네.”
둘은 동시에 대답했다.
“만약 너희 둘이 최윤과 함께 클럽에 갔다고 하자. 그럼 목적이 뭘까?”
“별 거 있겠습니까? 술 마시거나, 춤추거나……, 여자 꼬시러 갔겠지요. 아, 잠깐! 최윤 같은 춤꾼이 있으면 우린 그냥 들러리잖아요. 뭔가 전제가 이상한데요?”
노함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여자 꼬시러 갔다고 하자. 너희 셋의 목표는 각자 한명씩 짝을 지어 클럽에서 나오는 거야.”
“그래서요?”
“저쪽에 여자 셋이 보여. 딱 봐도 너희랑 목적이 같은 것 같다고 하자. 그런데 문제는 한 명이 미친 듯이 미인이고, 나머지는 평범해. 그럼 너희들은 어떤 식으로 접근할래?”
“형님이 뭔가…… 외모 지상주의 식으로 발언하신 것 같지만……. 인생은 경쟁 아니겠습니까? 제일 능력 좋은 사람이 제일 예쁜 사람을 얻어야지요. 저라면 무조건 제일 먼저 가장 예쁜 여자한테 대쉬합니다.”
그 말에 난 쓱 웃는다.
“그런데…… 아마 네가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게야.”
“왜요?”
“그 여자가 너무 예뻐서 너 말고도 들이대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거든. 경쟁자는 희춘이와 윤이 말고도 클럽 안의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어. 경쟁자가 늘어날수록 그 여자에게는 선택지가 많아지고, 그리되면 네가 탈락할 확률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게 되지.”
그때 나와 노함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희춘이 나섰다.
“탈락할 확률도 높은데, 탈락한 뒤에도 문제잖아요.”
“그래, 맞다. 너희들이 가장 예쁜 여자한테 차인 후에, 나머지 두 여자 중 한 사람에게 들이댔다고 하자. 남자가 아무리 빼어난 외모를 지녔다한들 나머지 여자들이 좋게 받아들이겠어? 다른 사람한테 차이고 온 남자를? 거의 백 퍼센트 차이게 되겠지.”
“가장 예쁜 여자를 공략하려 하면, 그 여자에게 차일 확률도 높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도 꼬실 수 없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결국 여자를 꼬시려던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는 말씀이시잖아요?”
“오! 바로 그거야. 잘 아네?”
“저도 한 번 읽었습니다. 형님이 하고 싶은 말씀은 그거잖아요.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내쉬 평균 이론’. 맞죠?”
“그래. 잘 아는구나. 그럼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알고 있겠지?”
“‘죄수의 딜레마’ 말입니까? 여기에 적용해 보시려고요?”
“밑져야 본전 아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