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culus of Joseon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나비 효과
일본의 자세한 역사를 모르더라도, 임진왜란 전반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희춘은 잘 모르는 정보만 적장수에게서 뽑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조선과 일본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 있었다.
“왜국은 수십 년이나 전토가 지역별로 나뉘어 서로 싸웠다고 합니다. 그러니 전투에 이골 난 놈들뿐입니다. 반면 조선은 대부분의 군사가 지나칠 정도로 경험이 부족합니다. 이 간극을 메우려 지리산에서 죽어라 연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희에게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많습니다. 아직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노함은 억지로 웃어가며 김면과 손인갑을 안심시키려 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조선의 기술자들과 현대인의 지식이 결합하여 몇 백 년에 걸쳐 이룰 기술의 발전을 두어 달 만에 이뤘다. 이번에 시도한 화학전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니 분명 자신감을 가져도 좋았다.
“의병좌장(곽재우)에게 연락해 군세를 전부 낙동강에서 함안으로 전진 배치하고, 진주목사 김시민과 함안군수 유숭인에게도 함안의 왜성을 포위할 준비를 하라고 하십시오. 성을 대포로 깨기는 힘듭니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물자의 소모가 심각할 정도일 테니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화차와 투석기를 길목에 배치하여 왜놈들이 북쪽으로 기어 올라오지만 못하게 막으라고 하십시오. 총 지휘는 진주목사에게 맡기고, 중군장에는 의병좌장을, 선봉장은 유숭인에게 맡기겠습니다.”
“네, 곧바로 명을 전달하겠습니다.”
김면이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렸다. 그리고 노함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리산에 남은 비거가 있는가?”
“그건……, 자세한 건 확인을 해봐야 알겠지만, 평구가 워낙 부지런한 성격이라 남겨둔 물건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목수들에게 비거를 계속 생산하라 지시를 내리고 성주로 떠났을 모릅니다.”
“그러면 노 교위 자네가 지리산에 남은 물건을 전부 수거하여 진주목사 김시민과 합류하라.”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아, 그리고 진주목사에게 가벼운 접전만 하되, 전면전으로 성을 공격하지는 말라고 해라.”
“예? 왜요? 조선 백성들을 착취해 부역을 시키는데 바로 가서 대갈통을 날려줘야죠!”
“아니다. 왜국의 왕이 일부러 보낸 자들이다. 무슨 복안을 가지고 여기에 왔는지 알 수 없는 일 아니겠느냐. 그리고 타국을 침략했으면 으레 공격을 해야 마땅할 텐데, 왜 성을 쌓고 눌러앉아 수비를 하는 것이겠느냐?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렇죠.”
“전면전을 펼치지 않으면서 잡혀간 백성들을 구출할 방도를 연구해 봐라. 자칫 백성들이 위험해 처해지지 않도록 말이다.”
“네, 진주목사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
모두를 내보내고 이희춘과 단둘이 남았다. 이희춘에게 물어볼 일이 많지만, 단 둘만 있는 자리를 만들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에서 오슈에서 오는 놈은…… 임진년 후반에 다른 다이묘들보다 훨씬 뒤늦게 전쟁에 합류한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
“아니요. 임진년이 아니라 다음 해인 1593년 계사년에 조선 땅을 밟습니다. 그 뒤에 진주성전투에도 참가하긴 하지만, 별 다른 행동 없이 거의 구경만 하다가 돌아가요. 애초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충성한 것도 아니거든요.”
“흠……. 그러면 놈이 지금 시기에 들어온 이유가 뭐지?”
“글쎄요…….”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일을 이희춘이라고 보이겠냐만. 그래도 물어볼 사람은 이희춘 밖에 없다. 하지만 이희춘도 도통 알 수 없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허나…… 짚이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뭔가?”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보병 위주의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다테 마사무네는 기병을 이용한 전술을 많이 사용했거든요. 아마도 저희의 기병을 의식해 출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흠……. 기병 전술이라……”
독안룡(獨眼龍) 다테 마사무네.
그는 어릴 적에 크게 병을 앓아 한쪽 눈을 잃은,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었다. 그렇지만 워낙 실력이 뛰어나 세간에서는 그를 독안룡이라 불렀다. 다테 마사무네는 초승달 모양의 투구를 쓰고 다녔는데, 이런 강렬한 캐릭터성은 먼 훗날까지도 크게 부각된다.
일본에서는 기병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효율적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 다테 마사무네는 기병을 활용한 전술을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그가 창안한 ‘기마 철포대’는 기마와 조총을 적절히 섞어놓은 형태의 부대였다. 이는 지난 추풍령 전투에서 내가 감사군에게 조총을 사용하게 한 일과 비슷할지 모르겠다. 가끔씩 느끼지만, 그러고 보면 사람의 창의성이란 다 거기서 거기구나 싶다.
하지만 내가 운용한 총기병과 다테 마사무네의 기마 철포대는 사뭇 다르다.
난 감사군에게 사격의 정확성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기동성을 이용해 적에게 근접한 후, 마구잡이로 총을 쏘는 방식을 취했다.
반면 다테 마사무네의 기마 철포대는 빠르게 적에게 접근한 후, 말에서 내려 총을 쏘는 방식이었다. 이후에 기병을 이용해 적 전열을 휘저어 교란시킨 후, 보병을 투입하여 전장을 정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켰는데, 오사카의 전투에서 그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오사카에서 벌인 전투에서 다테 마사무네의 군세는 고토 모토츠구의 병력을 몰아붙인다. 그러다 사나다 유키무라가 지원군으로 달려온다. 이때 카타쿠라 코쥬로의 아들 카타쿠라 시게나가가 기마 철포대로 역습을 하려 했다. 하지만 카타쿠라 시나나가는 사나다 유키무라에게 측방을 내주었다. 기병의 특성상 방향 전환이 어렵다는 점을 크게 이용한 것이다. 사나다 유키무라는 창병을 이끌고 상대측 기병의 말을 찔러가며 기마 철포대를 하나하나 쓰러뜨렸다고 한다. 기병의 장점인 기동성을 저하시키고, 돌진력을 감소시킬 목적이었다. 어쨌든 그날의 전투는 사나다 유키무라의 승으로 끝났다.
총을 들고 다녔던 기병과 창병의 대결. 이후에 이렇게 다른 병종이 맞붙은 전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훗날 이 단 한 번의 전투가 크게 회자되어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
헌데 그 오사카 전투의 주역인 오슈의 다테 마사무네와 시나노의 사나다 유키무라가 한꺼번에 조선 땅에 들어왔다.
“원래의 역사에서 사나다 유키무라가 임진왜란에 참전하나?”
“아니요. 출진 준비만 하고 실제 출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나고야에서 계속 대기만 탔는걸요.”
“그럼…… 혹시 그 두 녀석은 우리의 기병 전술을 연구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흠…… 그러니까 형님 말씀은 지금까지 일본군이 대규모 병력을 움직이지 않던 이유가 감사군 기병의 전술을 분석하려고 시간을 끌었다는 건가요?”
“가능성 있지 않겠나?”
“음…….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김태허와 약속한 시간은 명일 저녁이다. 그때까지 아군이 약속된 장소로 집결하여 적군을 사면에서 한꺼번에 치기로 했다.
먼저 여대세, 정범례, 김사종이 운수현과 성주성 사이의 들판까지 적군을 몰아가기로 했고, 김태허가 이끄는 군세가 성주성에서 나와 적군을 고착시키려 했다. 그런 다음 이유의와 김종례, 이용순이 이끄는 군사가 김천에서부터 내려와 아군을 지원하기로 했고, 내가 감사군을 이끌고 달려가 적의 후방을 치기로 했다.
하지만 포로로 잡힌 적장수들에게 적군 상황을 듣자, 작전이 계획대로 성공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지는 것만 같아 불안해졌다. 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모든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런 만큼 자력으로 이 상황을 극복해야만 한다. 그런 중압감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앞으로 쉽지 않겠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저희들이 지리산에 틀어박혀 연구만 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들은 가지지 못한 무기가 많습니다. 아직 다 선보이지도 않았고요. 잘 될 겁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이희춘은 연신 나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총지휘관이자 조금 더 오래 살아본 내가 불안해하는 수하 장수를 안심시키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여서 뭔가 어색했다.
뭔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 이희춘의 인상이 여전히 틀어박혀 있었나 보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도 나이를 먹어 훌쩍 성인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희춘아.”
“네, 형님.”
“고맙다.”
“네?”
갑작스럽게 고맙다는 말을 하자, 이희춘은 멋쩍은지 턱을 살살 긁어댔다. 이것도 녀석의 버릇인 듯도 싶었다. 이전에도 자주 보았…….
어? 잠깐……? 내가 이희춘, 그러니까 이전 세계에서의 김병진과 만난 적이 있었나? 이상하게 김병진에 대한 기억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 갑자기 또 한 번 머리가 아파온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김병진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딱 두 가지 뿐이었다.
하나는 수업 시간에 “고려가 먼저입니까? 아니면 조선이 먼저입니까?”라고 질문한 기억과, 다른 하나는 김병진이 나이를 먹고 나를 찾아와 “선생님. 저 기억하시죠?”라고 했던 기억. 딱 두 가지 뿐이다. 다른 기억이 하나도 없다. 왜지?
머리가 콕콕 바늘로 쑤시듯 아프다. 창으로 머리를 찌르면 이런 느낌이려나? 정수리에서부터 목 뒤까지 찌르르 울리며 아파온다. 그러면서 이희춘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또렷해지기를 반복했다.
“형님. 괜찮으세요?”
내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는지 이희춘이 재빨리 나를 부축했다. 술에 너무 취한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다. 어제 최윤을 보면서도 그랬는데, 이런 일이 또 일어났다.
내 몸에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아니면 단 한 번도 휴식을 가지지 않고 계속 전쟁을 지휘하다 보니 신경이 예민해진 걸까? 무엇 때문인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 머리와 몸이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 한 가지 뿐이었다.
가만…….
“희춘아.”
“형님! 안색이 창백해지셨어요.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괜찮…….”
“잠시만 기다리세요, 형님! 제가 빨리 달려가서 윤업을 데려올게요.”
이희춘은 그렇게 말하고, 곧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소리 지르며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이희춘이 방금 밖으로 나가려 하는 장면이 잔상처럼 남아 있다. 속에서 스멀스멀 구역질이 올라왔고, 점차 시야가 흐릿해졌다. 난 조그마한 목소리로 조용하게 읊조렸다.
“여대세, 김세빈, 윤업, 노함, 최윤, 이희춘…… 아니, 황인규, 이명준, 정중덕, 위상현, 나경현, 그리고…… 김병진……. 너희들…… 내 제자들 맞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