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86
“시레나! 전익현한테 선물 줄래! 제일 좋아하는 조약돌 줄래!”
시레나가 부서진 어항 바닥에서 조약돌 하나를 주워다 나에게 건넸다. 아까의 못생긴 조약돌이었다.
이거. 진짜로 제일 좋아하는 조약돌이었구나. 나는 조약돌을 바라봤다. 못생기고 울퉁불퉁해서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이 조약돌을 왜 좋아하는 거야?”
“이 조약돌! 전익현이랑 똑같이 생겼어! 그래서 좋아!”
손에 있는 조약돌로 시레나의 머리를 내리쳐야 될 지 말아야 될 지 잠시간 고민했다. 그래도 마지막인데 좋은 인상으로 남고 싶었기에 나는 혼신의 힘으로 바들거리는 손으로 주먹도끼를 내렸다.
“시레나 갈게! 전익현 나중에 봐!”
“그래. 건강하고. 밥 많이 먹지 말고.”
“전익현도 건강해야 돼!”
시레나는 거품으로 변해 사라졌다. 방에 남은 것은 나 뿐이었다. 해태는 풀무불꽃에게 맡기기로 했다. 해태가 얼마나 사는지는 몰라도 유령인 풀무불꽃이라면 오랫동안 해태를 잘 돌봐줄 것이다.
풀무불꽃은 데려오면 용광로에 넣어버리겠다고 투덜거려댔지만 해태를 데려가니 의외로 쉽게 받아줬다. 오래 혼자서 작업하고 있는 게 아무래도 적적했던 모양이다.
“좋아. 죄다 나갔네.”
그리 넓지도 않은 집에서 처음으로 혼자가 됐다. 왜인지 집이 너무 넓어진 느낌이다.
뭐. 혼자라도 소울 커맨더스를 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다. 오히려 시끌벅적해서 집중을 방해하던 이전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다.
나는 휴대폰으로 소울 커맨더스를 켰다. 웬일인지 매칭도 빨리 잡히고, 패도 잘 들어오고, 플레이도 내 생각대로 굴러가는 날이었다. 그런데도 크게 재미가 없었다.
나는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를 고작 13시간만 하고 꺼버렸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도 더 감성적인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종강 (2)
아카데미의 학기 마지막 수업은 보통 기말고사로 끝난다. 한 학기동안 얼마나 성장하고 배웠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일 년의 마지막 시험.
하지만 현재 아카데미의 수업들은 게이트가 열린 이후 비대면으로 전환된 상태. 시험 또한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치뤄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극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아카데미에 거의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평소라면 대여하기 힘든 거대 경기장도 전세내고 쓸 수 있다.
“그런 고로, 오늘의 듀얼은 종강 듀얼이다.”
“다른 색다른 뭔가를 즐겨보겠다는 생각은 없나요? 완전 텅텅 비어서 구경할 데도 엄청 많은데.”
“평소에 안 하던 커다란 경기장에서 듀얼을 즐길 수 있으면 색다른 뭔가로 충분하지 않나?”
네 명 모두가 ‘그래. 이 정도면 네 입장에서는 색다른 뭔가겠지.’ 정도로 해석되는 포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듀얼을 하겠다는 내 입장에는 변화가 없지만.
“오늘의 종강 듀얼의 평가 기준은 어떻게 되지?”
“평가 기준은… 없어. 그냥, 즐기는 걸로 충분해.”
“그럼 그 지긋지긋한 피드백과 복기지도도 안 하는 건가?”
“뭐래. 듀얼하면 피드백은 당연히 해야지.”
여한설의 눈이 가늘어진다. 뭘 그렇게 봐. 피드백은 평가가 아니라고. 피드백이랑 복기도 듀얼에 당연히 포함되는 거잖아.
“그리고, 이번 듀얼은 매우 개인적인 피드백들이 포함되어 있을 예정이니… 제각각 다른 데서 대기하도록.”
“그냥 평소에 못 써본 경기장 여기저기 써 보고 싶은 거 아니죠?”
조용히 해.
* * *
신하연은 자신의 덱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채 듀얼 아레나 구역에서 전익현을 기다렸다.
‘그러고 보면, 1년동안 참 많이 변했네.’
올해 봄만 하더라도 자신은 퇴학 직전의 낙제생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장학금도 받을 수 있을 테고, 이런 성적이 계속된다면 어디건 취업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이 모든 것이 전익현을 만난 이 경기장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근데 왜 굳이 여기를 고른 거냐? 큰 장소들 많은데.”
“강사님이 처음 여기서 제 덱 튜닝해 준 곳인데. 기억나요?”
“그랬나? 듀얼 내용은 기억나는데. 어디서 했는지는 잘 기억을 못 하는 편이라서.”
“여기서 강사님이 덱 짜 준 뒤로부터, 전 참 많이 변했어요. 듀얼 실력도 늘어났고.”
“실력이 해파리에서 가오리정도로는 변했지.”
“특이성도 생겼고. 되고 싶은 것도 생겼어요. 그리고 좋아하는 것도.”
“좋아하는 카드가 있단 건 좋은 거지.”
이 인간은 뭘 해도 결국 이야기가 죄다 듀얼로 간다. 그러니만큼, 제대로 이야기해야 된다.
“저. 고백할 게 있어요.”
“나돈데.”
“뭔데요. 중요한 거에요?”
“중요한 건 아니고, 정말 개인적인 거야. 개인적인 거.”
“듀얼 관계된 거에요?”
“아니.”
“카드랑 관계있는 거에요?”
“아니.”
“전혀 관계 없다고 맹세할 수 있어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카드 관계된 이야기만 하는 줄 아냐?”
평소의 언행을 녹음을 해 놨다면 전익현의 언행의 99.99%가 듀얼과 관계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련만. 아쉬운 일이었다.
“뭘 고백할 건데요?”
전익현은 잠시간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표정과 행동.
‘나한테 고백하려는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
이미 경험할 데로 경험한 일. 뭔가 달달한 이야기일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저런 태도라면. 아마 전익현 자신이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리라.
“나. 다른 세상에서 왔어.”
역시나. 뻔한 이야기다.
“…알아요. 강사님 수호자잖아요.”
“수호자 아닌데.”
“강사님 스핑크스… 아니에요?”
“스핑크스는 스핑크스가 스핑크스고.”
“스핑크스가 왜 스핑크스에요. 강사님이 스핑크스고 스핑크스는 스핑크스가 아니지.”
“아니, 스핑크스가 스핑크스라니까? 나는 스핑크스가…. 아니, 됐다.”
쯧. 하고 혀를 차는 전익현. 신하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전익현이 수호자가 아니었다니.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요?”
“그래.”
사실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전익현의 행동거지와 언행을 보고도 그가 이 세상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그가 수호자가 아니고, 다른 세상에서 왔다면….
“…이 세상보다 훨씬 듀얼에 미친 세상에서, 이 세상을 구하러 오신 거군요.”
타당하고 논리적이기 그지없는 결론. 그런데도 전익현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 반대야. 듀얼을 아무리 해도 상대방에게 물리적인 상처를 못 주는 세상에서 왔어.”
“그럼 거기 사람들은 왜 듀얼을 하는데요?”
“재밌으니까.”
“아무것도 안 걸려 있는데, 그냥 재미로만 듀얼을 한다고요?”
“그래.”
신하연은 전익현이 말한 세계를 상상했다. 듀얼을 하는 모든 사람이 단지 재미로만 듀얼을 하는 세계.
듀얼 쾌락마가 가득한 세상이라니. 멀쩡하지 않은 세상인 것은 확실했다.
그제서야 신하연은 전익현의 행실을 이해했다. 저쪽 세상에서는 전익현의 인성이 평균적인 것이리라.
도덕과 인간성이 붕괴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희미해져버린 디스토피아가 바로 전익현이 온 세계인 것이다.
신하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이상한 세상은 아냐. 오히려 굉장히 잘 굴러가는 세상이라고.”
“뻔한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할게요. 근데 그 이야기를 저한테 하는 이유가 뭐에요?”
“그건… 듀얼로 설명하도록 할까.”
[듀얼이 시작됩니다!]신하연은 바짝 긴장했다. 전익현은 상대의 덱을 카운터하는 덱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듀얼리스트다. 이번에도 아마 다르지 않을 거다. 아마 상대가 카드를 쓸 때마다 스택을 적립하는 「도서관」이나 아예 템포로 몰아치는 어그로 덱이겠지.
[전익현의 턴입니다.]“나는 「물보라」를 사용.”
+
【물보라】
【1 mana】
【소환수 하나를 발견합니다.】
+
물보라를 쓰는 것을 본 신하연의 고개가 잠시 삐딱하게 돌아갔다. 물보라는 대응력이 좋은 카드이기는 하지만 효율이 그리 좋은 카드는 아니다.
전익현이 허구한 날 신하연의 덱에서 빼라고 태클을 거는 카드이기도 했다. 전익현이 쓰던 어떤 덱의 덱 리스트에도 들어가 있지 않은 카드.
그런데도 저 카드가 전익현의 덱에 들어가 있다는 건….
“제 덱이랑 덱 리스트가 같은… 미러 덱이네요.”
“눈치가 조금은 늘었네. 완전 미러 덱은 아니야. 「자르카날」이 들어가 있으니까. 뭐, 이 정도는 핸디캡이라고 해 두지.”
“미러전으로는 절 못 이기실 건데요. 저한테는 특이성이 있다고요.”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와 실전 듀얼은 다르다.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였다면 전익현도 신하연의 특이성들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실전 듀얼.
“아무리 강사님이라고 해도 제가 가지고 있는 「타임 워커」와 「마나 해일 토템」이 없는 한….”
[플레이어 전익현의 특이성 「마나 해일 토템」이 발동합니다.]“아. 그거. 당연히 나도 쓸 수 있지.”
“…어떻게?”
“내 특이성 덕분에.”
산더미처럼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전익현이 대답해 줄 리가 없다.
대답을 듣고 싶다면 이기는 수밖에 없다.
“져 줄 생각은 없어요.”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와 실제 듀얼은 커다란 차이점들이 있었다. 듀얼혼이야 무슨 덱을 쓰건 전익현이 우세라고 쳐도 이 덱 자체의 숙련도는 신하연 자신이 위였다.
‘단순히 비슷한 미라클 덱이라고 생각하고 굴리면 의외로 잘 안 굴러간다고요.’
신하연은 차근차근 게임을 뒤로 미뤄나갔다. 미라클 덱은 선택의 가짓수가 무수히 많은 고난이도의 덱이다. 특히나 미라클의 난이도를 올리는 것은 역시나 덱의 미소조정에 따라 격변하는 카드간의 가치 차이.
전익현을 무작정 따라하지 않게 된 이후부터 그녀는 자신만의 덱을 만들었다. 전익현이 쓰는 미라클 덱보다 조금 더 템포가 느리고, 더 유연하고, 의외성이 더 많은.
‘이를테면 미러전에서 「용오름」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금방 털어 버려도 쓸모가 없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죠.’
“역시 덱 리스트가 달라서 그런가. 생각할 게 좀 더 많네. 역시 「용오름」은 버려도 되겠지?”
“앗!”
「용오름」을 그냥 털어버리는 전익현의 플레이.
“왜. 그 정도도 내가 생각 못 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저는 며칠동안 생각해서 얻은 결론이라고요.”
“그래도 나랑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다니. 헛배운 건 아니네.”
“강사님이 제 결론이랑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신 거죠.”
미라클 미러전은 필연적으로 핸드의 수가 많아진다. 상대보다 느리게 움직일수록 카드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상대의 핸드에 무엇이 있는지를 추론하는 능력과 카드 카운팅이 승패를 가른다. 다행인 점이라면 전익현이 플레이를 꼬지 않고 정도적인 수만 두어 나가고 있다는 점일까.
정직한 플레이는 그만큼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읽히기 쉽다. 신하연은 전익현의 패를 손에 놓듯이 읽을 수 있었다.
‘강사님이 「타임 워커」까지 갈 만큼 템포를 허용해주진 않을 테고. 8장 가운데 7장은 거의 확실하고… 나머지 1장.’
패에서 처음부터 쓰고 있지 않은 카드 한 장. 쓰지 않은 카드라면 역시나 전익현의 덱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자르카날」일 것이다.
‘그러면 아직까지는 킬각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이번 턴은 넘겨도 괜찮아.’
“턴 엔드.”
[전익현의 턴입니다.]“또 속냐.”
전익현이 흔들어보이는 핸드의 카드는… 「빙결핵」이었다. 핸드에서 즉각적으로 이어지는 콤보.
“…졌습니다.”
[패배하셨습니다.]신하연은 입술을 비죽 내밀고 항복 선언을 했다.
다음 판도, 그 다음 판도. 본체에 데미지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심리전에서 패배했다.
“슬슬 깨달은 건 있냐?”
“뭘 깨달아야 되는 거죠? 평소처럼 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 1년간 지긋지긋하게 당했겠지만… 나는 강해. 이 세상에서나, 내가 원래 있던 세상에서나.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독보적으로 강하지.”
“자기 입으로 그런 말하면 부끄럽지 않나요?”
“냉철하기 그지없는 평가를 왜 부끄러워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