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뭐가 보이나요?”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여요.”
“우리 두 근로자는?”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사장님.] [암것도 없는데요? 형?]“흐음….”
덕팔이 수문 위에서 윤다혜를 잡아먹은 지점을 바라보다가 작게 인상을 썼다.
“느낌은 있는데 안 보인다…라 생각보다 신력이 강한 악귀인 모양입니다.”
“느낌이 와요?”
“예, 저를 노려보고 있는지 살이 따끔거리네요. 아마도 오늘 아침에 자신의 먹이를 낚아채 간 분노겠죠?”
덕팔이 수문을 지나 물 가까이 다가가자 수면 위에서 작은 물보라가 생겼다. 덕팔이 옅게 웃었으나 물보라는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간을 볼 줄도 알고…”
덕팔이 웃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은혜는 덕팔에게 달라붙어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덕팔의 말에 공감할 어떠한 것도 느끼지 못했다.
“신속의 힘으로는 뭐가 안 되나 봐요.”
“물의 힘을 가지고 있죠?”
“네.”
“마음속으로 물을 날카로운 비도로 형상화 시켜보세요.”
덕팔의 말에 따라 은혜가 공중에 ‘물’이라는 글자를 쓰자 공중에 물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비도의 모습이 되었다. 단지 제대로 된 비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은혜가 만들어낸 비도는 덕팔이 가지고 다녔던 이쑤시개와 다르지 않았다.
덕팔이 쓴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기 저수지 가운데가 보이나요?”
“어디요?”
덕팔이 손가락으로 여러 번 위치를 잡아 주니 은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바로 아래, 물속입니다. 물속에 있는 무엇이든 파괴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비도를 날리세요.”
은혜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도를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비도가 천천히 날아가더니 덕팔이 말한 지금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은혜가 손을 아래로 확 내리니 비도가 물속을 빠르게 사라져 갔다.
[크아아아악..]덕팔만 들을 수 있는 비명이 들려왔다.
[사장님!!] [혀엉!!]두 귀신이 흠칫 놀라며 덕팔을 불렀다. 엄청난 신력이 물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은혜가 급히 ‘방’이라는 글자를 썼다 그러자 거칠게 쏟아지던 신력들이 두 인간과 두 귀신 앞에서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흩어져 갔다.
“우와.. 은혜씨 능력이 대단한데요?”
“별말씀을.. 호호”
덕팔의 칭찬이 기분이 좋았는지 은혜가 환하게 웃었다.
“돌아가시죠.”
“제가 물귀신을 잡은 건가요?”
은혜가 들떠서 물었지만, 덕팔이 고개를 저었다.
“잡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상당한 신력을 잃었으니 오늘 밤엔 경거망동하진 못할 겁니다. 그나저나 저렇게 강한 악귀가 어떤 이유로 생긴 건지..”
덕팔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졌다. 수사원귀는 하나의 귀신이 아니었다. 저 정도로 강한 신력을 가지려면 도대체 몇 명의 귀신이 하나로 뭉쳐진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내일 아영이가 이 동네 이장님과 군수님을 만나 보겠대요. 물을 뺄 수 있으면 방류를 하고 아래쪽을 살펴보겠다고 했으니까 일단 아영이에게 맡겨 봐요.”
“그래요. 그렇게 하죠.”
덕팔과 은혜가 떠난 자리에 두 그림자가 생겼다.
“봤어?”
“보긴 했는데 뭘 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안 느껴져?”
“뭐가요?”
“저 저수지에서부터 엄청 쌘 바람이 불었는데!”
“그래요? 왜 나는 못 느꼈지?”
윤다혜가 멀리 사라져 가는 덕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윤다혜에게 끌려온 온주환은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며 중얼거렸다.
“둘이 연애하는 거 맞고만!”
온주환에게는 덕팔과 은혜의 다정한 모습만 보였다.
**
2박 3일의 연합 MT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침으로 덕팔이 끓여준 된장 누룽지탕을 한 그릇씩 먹은 21, 22, 23조원들은 그나마 다른 조들에 비해 생기가 넘쳤다.
“아.. 속이…”
조인범은 1조와 함께 술을 마셨다고 했다. 정교수들이 어제 오후에 모두 돌아가고 인솔자로 민경환 교수만이 남아 있었기에 조인범도 마음 놓고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민 교수님은 어디 갔어?”
“아침 일찍 갔어요. 어제 밤에도 혼자서 먼저 잔다고 들어가 버리더라구요.”
“그래?”
찝찝함이 남았지만 좀 더 관찰해보기로 하고 23조가 탈 버스에 올랐다. 윤다혜는 덕팔에게 같이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지만 4기로서 그런 특혜를 받을 수 없다며 거절하였다. 윤다혜는 특유의 콧방귀를 날리면서 조만간 뒷풀이를 하자고 하곤 과격하게 차를 몰고 떠나버렸다.
“쎈 누나에요. 정훈이 형이 불쌍해.”
“그래도 좋은 사람이잖아. 아껴줄 줄 알고,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는…”
“그거야 그렇죠. 그래도 정훈이 형이 불쌍해요. 부부싸움 하면 백전백패가 될 거예요.”
“그야..뭐, 그렇겠지.”
덕팔이 눈을 감았다. 저수지에서 돌아온 후, 은혜를 바래다주고 민박으로 돌아오려 하였지만 바람을 쐬러 나온 사무장에게 걸려 억지로 2층까지 끌려 올라가야 했다. 아영은 이미 취해서 버닝 상태였고, 향숙도 술을 상당히 마셨는지 말이 많아져 있었다.
한 시간여 동안 술 시중을 들던 덕팔은 이 사람, 저 사람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시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민박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민박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어제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긁어 놓았던 누룽지로 탕을 만드느라 잠을 자지 못했으니 연 이틀째 날을 세운 셈이었다.
덕팔이 한창 잠에 곯아 떨어졌을 때 덕팔을 태운 버스가 한국대 주차장에 멈춰졌다.
“자자, 잃어버리는 것 없이 잘 챙기셔서 천천히 내리세요.”
조인범이 각 버스를 돌며 귀중품을 잘 챙기라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길고 길었던 MT가 끝나고 이젠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띠리리링
“여보세요?”
[덕팔씨?]“네.”
[주차장에 차 있죠?]“네”
[그럼 같이 출근해요.]“출근요? 오늘?”
[당연하죠. 사령탐정사무소는 연중무휴랍니다. 호호호]어제 유일하게 술을 마시지 않아 컨디션 최상인 은혜가 덕팔을 잡으러 오고 있었다.
**
사령탐정사무소.
덕팔이 눈을 감은 채 쇼파에 기대어 있었다. 앞에서는 바둑 상대를 기다리고 있던 노인과 정식이 바둑을 두고 있었고 영훈은 개그수사대 시즌 14를 보고 있었다.
은혜는 놀이터에 들어오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뭔가를 꼼꼼히 정리하였다. 아마도 어젯밤, 덕팔에 의해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능력을 사용한 후, 뭔가 깨달음이 있었던 모양이었는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그림과 함께 메모하고 있었다.
다들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네!”
문이 열리고 젊은 여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덕팔 선배 있나요?”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통합의대 본과 4학년 윤다혜라고 합니다.”
“아! 반가워요.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은혜가 윤다혜에게 쇼파에 앉기를 권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저어.. 덕팔 선배에게 할 말이…”
“사랑 고백이라면 안 돼요. 여기서도, 학교에서도!”
“저 애인 있는데요?”
“오호호.. 그래요? 그렇다면 연애 상담? 그건 제가 전문인데..”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말해봐요. 제게 말을 해도 돼요.”
“저기.. 그러니까… 웃지 않는다고 약속을…”
“당연하죠.”
“귀신이 자꾸 보이는데…”
은혜가 벽을 두드렸다.
“손님 왔어요~~”
**
퀭한 얼굴을 한 덕팔이 놀이터에서 소환되어 앉아 있었다.
“그때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게 그 얘기구나.”
“미안해요. 선배, 선배를 믿지 못한 게 아니라.. 너무 황당무계한 일이라..”
“맞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정신병원에 가보라고 충고를 받지.”
윤다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훈이에게 말을 했지만, 정훈이는 저의 강박관념 때문에 헛것이 보인다고 해서…”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어? 언제? 왜?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는지?”
***
한국대 보건대 간호학과 3학년 윤다혜는 오늘 첫 병원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어릴 적 꿈은 간호사가 아닌 의사였다. 하지만 의대에 가기에는 성적이 조금 부족했기에 점수에 맞추다 보니 어느새 간호대생이 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어서 와요. 앞으로 한 달간 잘 생활해 봅시다.”
한국대 부속병원 외과 간호부장이 실습생들을 환영해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과 회식이 있는데 잘 되었네. 환영회도 함께 겸하도록 하죠.”
아침조회는 그렇게 끝났고, 모든 것이 서툰 실습생들은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바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리고 시작된 회식. 간호사들만 모인 것이 아니라 외과 전체가 모이는 회식이었다. 일부 당직 선생들은 병원에 남아 있었지만, 나머지 모든 크루들이 다 모인 자리. 일 년에 몇 번 없는 큰 회식이라고 하였다.
공부하랴, 환자들 돌보랴, 윗사람 눈치 보랴, 지치고 힘들었던 의사들은 술을 꽤 많이 마시는 편이다. 술 마실 기회가 많지 않기에 한번 마시면 폭음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외과 레지던트 4년 차 황인웅도 같은 부류의 의사였다.
늦게 의대에 입학했고, 학부 중에 군대까지 다녀오느라 나이가 많은 레지던트였다. 이미 결혼도 하였고 아이도 있었다. 부인은 지방에 있는 모 대학 부속병원 내과 팰로우. 황인웅이 전무의 자격을 취득하면 부인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갈 거라고 했다.
“이름이… 뭐라고?”
술에 혀가 꼬인 황인웅이 술잔을 들고 간호사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술을 마셨다. 윤다혜의 눈에는 그가 접대부 사이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것 같이 느껴져 모멸감이 들 정도였다. 선배들이 대충 그의 행동을 막고 있었는데 하필 이번 타겟이 자신이었다.
“10학번 윤다혜입니다.”
“오.. 우리 후배,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황인웅이 술잔을 내밀며 술잔을 받아들려고 하는 윤다혜의 손을 잡았다. 술잔 두 개에 술이 가득 따라지자 황인웅에 러브샷을 제안하였다.
서로 팔을 끼고 술을 마시는 러브샷 말고 서로 끌어안고 마시는 러브샷이었다. 윤다혜가 거절하며 몸을 일으켰다. 간호사들이 그런 황인웅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였다.
윤다혜가 자리를 피하려 하자 황인웅이 윤다혜의 손목을 잡았다.
“이런 건방진.. 간호 실습생 따위가…”
저쪽에서 의사들이 황인웅의 행동을 지켜보았지만 그러려니 하였다. 얼핏 들리는 소리로는..
“저 새끼 또 술 먹고 지X을 하네.”
“야, 놔둬. 그래도 밖에 나가서 사고 안 치는 게 어디야?”
‘밖에 나가서 사고를 안 친다고? 여기는? 여기는 안이야? 여기가 너희 집이야? 내가 네 마누라야?’
윤다혜가 황인웅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황인웅의 욕설이 들리는 듯했지만 무시하였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외투도, 가방도 모두 식당 안에 있었다. 휴대폰이라도 있었으면 동기 실습생에게 옷을 가져다 달라고 했을 텐데 엉겁결에 나온 터라 아무것도 없었다.
4월의 저녁은 꽤 쌀쌀했다. 30여 분간 밖에서 떨고 있자니 따뜻한 곳이 생각났다. 윤다혜가 식당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뒤에서 윤다혜를 밀쳤다. 윤다혜가 화장실 바닥에 넘어지자 문이 잠귀는 소리가 들렸다.
황인웅이었다. 만취한 황인웅이 눈을 번들거리며 윤다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시작된 만행.
윤다혜의 블라우스가 찢어지고 비명이 난무했다. 바지가 벗겨 질려는 찰라 밖에서 문이 열리며 식당 주인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