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덕팔의 어깨가 추욱 처진 채로 이은성 교수의 수업이 예정된 강의실로 향했다. 연구실 문이 닫히자 김정학 교수가 흐뭇한 얼굴로 작게 속삭였다.
“그래,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걸세. 지난 10년간 잃어버린 삶을 보충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나? 허허허”
아들을 보는 아비의 눈을 한 김정학 교수가 덕팔이 끓여놓은 녹차를 따라 마시며 작게 미소지었다.
***
강의실 앞에서 노은지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노은지가 덕팔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오후 6시. 사학과 대강당요.”
“뭐?”
“약속했잖아요. 사진도 찍어주고 사인회도 열어준다고!!”
“아. 그거.. 오늘이구나. 알았어. 근데 왜 대강당이야?”
“거기밖에 없었어요.”
“그랬어? 알았어. 그때 봐.”
덕팔이 강의실로 들어가자 노은지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얼른 자신의 강의실로 뛰기 시작했다.
**
글루미 먼데이라고 한다. 휴식을 취한 월요일은 우울한 하루가 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서 나온 단어였다. 하지만 덕팔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글루미한 먼데이였다.
도시락은 김정학 교수에게 빼앗겼고 1교시부터 10교시까지 쉼 없이 수업을 들어야 했다. 중간중간 한의학 과목이 없었다면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찰 정도였다. 모든 수업을 마친 덕팔이 김정학 교수에게 하교 인사를 하고 사학관 대강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봐, 덕팔이. 왜 이렇게 힘이 없나?]“하루가 1년 같아서..”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 모양이군.]“그러게. 너무 즐거워서 토가 나올 지경이야.”
[점심을 먹으로 오지 않아서 걱정했다네.]“점심은 교수님께 빼앗겼고, 내일부터는 교수님 옆에서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으니 기다리지 말게. 아, 그리고.. 내일은 내가 맛있는 김치전과 막걸리를 가져올 테니 학교 끝나고 여기서 보세.”
[나는 먹지 못하는데?]“방법이 있으니 나를 믿고 기다리게. 내일 보세.”
덕팔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곤 대강당으로 뛰었다.
**
“여긴가?”
사학관은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었다. 강당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온통 어둠뿐이었다.
“여기가 아닌가?”
덕팔이 몸을 돌리려 할 때 강당불이 켜지면서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 더 파르 오빠!!!”
교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도 있었고, 직장인으로 보이는 여성들도 있었다. 그리고 한켠에는 남자들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100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대강당에 빈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덕팔이 멍하니 서 있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배정환이 덕팔을 끌고 연단에 올려세웠다. 그리고 매우 유명한 한 배우가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김민석입니다.”
열화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국민배우 김민석의 힘이었다.
“제 동생의 첫 번째 팬 미팅에서 사회를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
경상도 억양이 살짝 남아있는 김민석의 인사에 다시 한번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저놈이 좀 바보라 깜짝 속은 모양인데 일단 가운데로 끌고 오겠습니다.”
김민석이 무대 끝에 서 있는 덕팔을 끌고 중앙에 세웠다.
“놀랐냐?”
“네, 조금.. 아니 엄청!”
덕팔이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을 하자 김민석이 덕팔의 뒷통수를 때려주었다.
“정신 차리고 인사해야지.”
“아.. 안녕하세요. 오덕팔입니다.”
덕팔이 90도로 인사를 하자 팬들이 까르르 웃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순진한 놈입니다. 이 김민석의 동생이 될 자격이 있는 놈이죠.”
어느새 배정환이 덕팔에게 마이크를 쥐어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덕팔만 몰랐던 팬미팅.
주로 대화가 이어졌다. 팬들이 질문하고 덕팔이 대답을 하였다. 중간중간에 김민석과 덕팔의 연기도 보여졌다. 이번 김민석의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쏟아지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민석은 1000명을 앞에 두고 영화 홍보를 하였다.
“여러분들이야 덕팔이를 보러 당연히 오시겠죠? 혼자 오지 마시고 부모님, 친구, 남자친구, 헤어진 남자친구, 앞으로 만나 남자친구까지 모두 손에 손을 잡고 극장으로 오십시오. 오늘 보여주지 못한 명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자 김민석이 웃는 표정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덕팔이를 알게 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까메오로 출연한 드라마에서였죠. 좋지 않은 일이 있어 화제가 되긴 했습니다만, 함께 연기한 한유리 배우는 정말 배우다운 배우였습니다. 그녀를 기억해주세요.”
분위기가 가라앉자 김민석이 웃으며 분위기를 쇄신하였다.
“그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고, 사실 한유리 배우가 제가 이번에 출연하는 영화에 출연을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죠. 그랬는데 덕팔이가 나서서 까메오로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덕팔이는 한유리 배우가 출연한 CF, 영화에 노 게런티로 출연을 해주었습니다. 정말 의리를 아는 친구죠. 그래서 제가 동생으로 삼았습니다. 연기도 잘하고 성실하고 마음이 따뜻한 친굽니다. 여러분과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멋진 배우이니 그를 사랑해 주세요.“
큰 박수가 강당을 가득 메웠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영화 홍보를 해야겠습니다.”
야유가 들려오자 김민석이 양손을 들어 벌을 서는 흉내를 내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자 김민석이 다시금 마이크를 잡았다.
“말로만 홍보하면 돌이 날아올 것 같으니까 직접 보여 드리죠. 영화 속의 명장면!”
김민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대 양쪽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조폭같이 생긴 액션배우들이 손에 각목을 들고 나타났다. 덕팔의 눈이 크게 떠졌다.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는 무대 구석에서 무술감독 박 감독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했던 대로 해!”
화려한 액션이 무대에서 재연되었다. 소수의 남자 팬들이 환호하였다. 이들은 덕팔의 액션을 사랑하는 덕후들이었던 모양이었다.
마샬아츠 트릭킹이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남자들의 거침 호흡 소리만이 대강당에 작게 들려올 뿐, 팬들조차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때, 무대 양쪽에서 커다란 사다리 두 개가 나오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액션 배우들이 무대 밖으로 나가자 덕팔이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양 사다리를 타고 번개같이 꼭대기로 올라서더니 뒤로 넘어지듯 고꾸라졌다.
팬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덕팔은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더니 두 다리와 무릎으로 무사히 착지하며 엄지척을 해 보였다.
다시 한번 대강당에 환호가 터져 나왔다. 여성팬들의 목소리를 뚫고 남성팬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덕팔이 남성팬들을 향해 쌍 엄지척을 해보이자 여성팬들의 환호성이 더 커졌다. 덕팔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덤블링을 하며 무릎을 꿇은 채로 착지를 하더니 양손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어 객석에 날려 주었다.
미친듯한 환호와 박수로 2시간여의 팬미팅이 끝이 났다. 덕팔이 손을 흔들어주며 무대 아래로 내려가면서 무대 밑에 붙여 놓은 벽보를 읽고 쓴웃음을 지었다.
[노래 요청 절대 금지!!]***
배정환이 준비한 싸인이 담긴 덕팔의 사진과 작은 굿즈가 선물로 제공되었다. 팬미팅도 공짜였는데 조공 하나 없이 선물까지 받아 가니 팬클럽 수뇌부들이 ‘이래서는 안 된다’며 긴급 회동을 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랜만에 배정환이 운전하는 축제 차량에 몸을 실은 덕팔이 배정환을 흘겨보았다.
“형, 말이라도 해줬어야죠.”
“말했으면 네가 했을까?”
“물론 안 했겠죠.”
“그래서 말을 안 했어. 잘했지?”
“네, 잘하셨네요. 근데 민석이 형은 어디 갔어요?”
“오늘 기자들 대상으로 하는 영화 시사회 있잖아. 늦었다고 미친 듯이 뛰어가던데?”
“아니 시사회가 있는데 여길 온 거예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안 왔을 거래. 너니까 온 거라고.. 꼭 전해달라고 하더라.”
“그 양반도 참..”
고마웠다. 2년 만에 컴백한 영화 시사회를 두고 당사자도 모르는 깜짝 팬미팅의 사회를 보기 위해 직접 찾아와준 김민석의 마음이 고마웠다.
“우리는 안 가도 되요?”
“어, 우리는 안 가도 돼. 그런 자리에 조연으로 널 올리는 것은 네가 아깝데. 나중에 공동주연으로 무대에 같이 오르자고 하더라.”
“그 양반 참.. 사람 울컥하게 하는 재주가 있네.”
덕팔이 쓰윽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았다.
“밤 풍경이 좋네요.”
“그렇지?”
축제 차량이 도착한 곳은 인신재단 건물이었다.
“오늘은 사무소 쉬는데?”
“어… 그게, 우리 사무실에 온 거야?”
“우리 사무실요?”
“주식회사 H 엔터테인먼트. 2층에 자리 잡았지.”
“네?”
배정환이 시동을 끄고 덕팔을 끌고 내렸다. 2층에 올라가 보니 작은 사무실과 여러 방이 아주 복잡하게 되어 있었다.
“언제 이런 사무실을 만든 거예요?”
“내가 만든 게 아니고 김 변호사님이 법률사무소로 쓰실려고 만들었다가 나한테 양보하신 거야. 지하에 연습실도 만들고 있어.”
“연습실? 왜요? 연기 연습하는 게 연습실도 필요한가?”
“걸그룹을 키워볼까 싶어서..”
“아니, 배우 매니저였던 분이 웬 걸그룹?”
“나나 성미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 네가 쭉 연예계 생활을 해주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으니까.. 그래서 다른 연예인을 키워 보려고 김 변호사님하고 상의했어. 그랬더니 김 변호사님께서 뜻밖의 제안을 하시더라고..”
**
“저희 건물을 무상으로 빌려 드릴께요. 엔터 회사를 세우시죠.”
“네?”
“걸그룹과 보이그룹을 키워내세요.”
“저는 연기자 전문 매니전데요?”
“언제까지 영역을 나눠서 일하실 건가요?”
“하지만, 걸그룹은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다른 회사 연습생이나 데뷔를 했다가 실패한 걸그룹이 있을 거예요. 그들을 중심으로 추려보세요.”
“그 사람들은 상품 가치가 없어서 폐기된…”
“배 대표님? 제가 헛소리하는 거 본 적이 있나요?”
“아뇨. 그렇지 않지만..”
“자본금도 덕팔군이 투자를 할 거예요. 그러니 설립하세요. 단, 주식지분은 대표님 30%, 이성미씨 19%, 우리 재단이 49%, 덕팔군이 2%를 갖게 될 거예요.”
“이..이퍼센트요? 덕팔이가 투자하는데요?”
“덕팔군은 저희 재단과 대표님 사이에서 캐스팅 보드가 될 거예요. 아주 의미가 있는 2%죠.”
“하지만 돈이 안 되지 않습니까?”
“덕팔군이 돈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재단의 초기 출자 재산이 1000억이었어요. 그중 덕팔 군이 출현한 돈이 얼마일까요?”
“그..글쎄요? 1억? 2억?”
“후후.. 990억 원이에요. 덕팔군은 그 외에도 서초동에 5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죠. 물론 이 건물도 저희 재단에서 관리해요. 덕팔군에게는 매달 생활비가 지급되는 조건이죠. 알겠나요? 덕팔군은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
“그래도 앞으로 결혼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