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5
35화
김혁성의 집.
“아버지, 그 여검사가 사건을 종결한 모양이에요.”
김혁성의 집으로 날아온 처분통지서를 내어놓은 첫째가 김혁성의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신 변호사에게 미리 언질을 받았다. 평범한 신기 따위가 어찌 이 아비를 앞설 수 있겠느냐?”
“그런데 그때 여 검사와 함께 왔던 젊은 청년은 예사롭지가 않았어요. 마치 아무런 힘도 없는 듯 보였으나 저의 백이 요동을 할 정도였어요.”
“그는 인신의 후계니라. 평범할 리 없지. 하지만 그 아이도 아직 애송이에 불과해. 그러니 너는 걱정하지 말고 그 아이들을 잘 돌보거라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버지, 저희들이 있는데 그런 위험을 부담하시면서까지 막내를 만드시려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그때 그 아이들도 실패했잖아요.”
“태자귀라고 하여 다 같은 태자귀가 아니니라. 하나의 백을 가진 태자귀는 결국 한계가 있지. 너희들이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지 않느냐! 나는 죽기 전에 장군신을 능가하는 신력을 가진 태자귀 무당을 꼭 내 손으로 만들고 말 것이야.”
“장군신요? 진짜로 그런 신을 모시는 무당이 있어요?”
첫째가 놀란 눈으로 김혁성을 바라보자 김혁성이 조용히 차를 음미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딱 한 번 보았단다. 그 기세! 엄청났었지. 후우.. 어떻게 해서든 내 손으로 꼭 만들고야 말 것이야.”
김혁성의 눈에 혈광이 폭사 되었다.
**
평온한 며칠이 흘렀다. 아영은 다시 출근하였고 덕팔은 새로운 수험서를 읽으며 즐거운 오전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사과를 예쁘게 깎아 접시에 담은 은혜가 길게 숨을 내뱉곤 3층으로 올랐다.
“덕팔씨?”
“아, 네.”
“사과가 맛있어요.”
“잘 먹겠습니다.”
덕팔이 포크를 들어 사과 조각을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온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맛있네요.”
은혜가 덕팔이 사과를 먹는 양을 지켜보면서 우물거리고 있자 덕팔이 반대편 의자를 가리켰다.
“결심하신 것 같은데?”
“… 그게… 네.”
“집을 들어가시기로 한 건가요?”
은혜가 고개를 흔들었다.
“흐음.. 이곳에 계시면…”
“아영씨 아파트로 들어가기로 했어요.”
“…네?”
“덕팔씨와 아영씨만 한집에 살게 하는 게 탐탁지 않아서.. 그래서 아영씨와 함께 아영씨 집에서 살기로 했어요.”
“둘이서요?”
덕팔이 잠시 상상을 해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더러웠던 집에 치울 줄 모르는 아가씨가 한 명 더 추가되었을 때! 그 더러움은 덕팔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다른 말은 없나요?”
“제가 무슨 다른 말을 해야 하는 건가요?”
“아뇨, 그게 아니라.. 가지 말라든가, 다시 생각해보라던가.”
“두 분의 결정을 적극 지지합니다.”
은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
아영과 은혜의 짐은 덕팔이 직접 날라주었다. 이럴 때는 픽업트럭이 참으로 유용했다. 승용차였다면 두어 번 왕복을 했어야 할 짐이었지만 트럭은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하게 해주었다.
아영의 아파트와 덕팔의 집은 30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기에 짐을 나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아영의 아파트에 안전장치를 보강해 주다 보니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능력자가 둘이나 사는 집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과잉을 한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잘 되었어.”
덕팔은 홀로 느긋하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마당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덕팔의 손에는 천으로 잘 감싼 솔방울이 하나 들려 있었다. 그간 미뤄두었던 일을 해결할 모양이었다.
“흐음…”
100평 남짓 되는 마당에는 가마솥과 평상, 그리고 썬베드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넓은 마당이 휑하니 비워져 있었기에 무분별하게 마당을 사용한 것이었다.
“구조적으로 집 전체를 보호하려면 이쯤에는 심어야 하는데..”
덕팔이 가리킨 곳은 마당의 한가운데였다. 신령수의 자손이 소나무가 아니었다면 마당 한가운데에 심어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소나무는 그늘로 사용하기도 어려웠고 잘 자라지 않아 한동안 묘목 상태로 있어야 하기에 여러 사람이 지나치며 훼손할 가능성도 있었다.
“좀 무리를 하면 될 것 같은데…”
덕팔이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30cm 남짓 땅을 판 후, 자양분이 될 수 있는 영양토를 깔고 다시 부드러운 흙으로 그 위를 덮었다.
“잘 자라줘야 한다?”
솔방울을 통째로 넣은 후, 그 위에 흙을 덮었다. 삽으로 톡톡 땅을 내려친 후, 신투 장갑을 꼈다.
“편법이지만.. 그래도 어르신의 자손이니”
덕팔이 신투 장갑을 낀 손으로 땅을 어루만지며 힘을 집중하였다.
덕팔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덕팔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었는데 덕팔의 남방이 펄럭였다.
그때, 솔방울이 심어져 있던 땅에서 작은 가지가 올라오더니 이내 10cm 굵기의 작은 나무가 되었다.
“헉헉… 이 녀석아. 이번에 모은 신력을 모두 네가 가져갔으니 잘 자라 거라.”
덕팔은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천 주머니를 꺼내 그 입구를 열고 벼락 맞은 신령수 나뭇가지를 신령수 주변에 뿌렸다. 비도를 만들고 남은 부스러기였다.
“이걸 흡수할 수 있는지는 너한테 달렸다. 그러니 놀지 말고 열심히 힘을 모으도록!”
덕팔이 마지막으로 물뿌리개를 들고 와 물을 주었다. 뺨을 타고 목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낸 덕팔이 썬 베드와 파라솔을 접어 지하 창고에 가져다 두었다. 은혜가 썬 베드에서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여 가을이 되었음에도 이를 치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쓸 사람이 집을 떠났으니 이제 썬 베드는 내년 여름까지 빛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평상의 위치도 거실 배란다 쪽으로 가깝게 움직여졌다. 이 넓은 집에 덕팔 홀로 남게 되었으니 딱히 평상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덕팔이 애써 힘들게 만든 것이므로 버릴 생각은 없었다.
가마솥의 위치까지 조정하자 대충 마당은 정리가 된 것 같았다.
덕팔이 손을 털고 평상에 앉아 차를 음미하고 있을 때, 대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변호사님.”
“두 아가씨가 이사를 갔다며?”
“소문도 빠르네요.”
“예리가 무척 좋아하던데?”
은혜를 통해 그의 모친인 황예리에게, 황예리를 통해 향숙에게 그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제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닌데 말입니다.”
“호호호..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줘.”
향숙이 손에 들린 종이봉투를 흔들었다. 캔 맥주 몇 개가 담겨 있었다.
“편의점에서 세일을 하길래..”
덕팔 곁에 앉은 향숙이 종이봉투에서 맥주를 꺼내 덕팔에게 내밀었다.
“우아, 그렇지 않아도 시원한 게 생각이 났었는데 잘되었네요.”
덕팔이 캔 뚜껑을 열어 향숙에게 내밀고 봉투에서 캔 맥주를 하나 더 꺼내 뚜껑을 열고 들이켰다.
“카아.. 시원해라.”
“이렇게 마당에 앉아서 마시니까 좋다.”
향숙도 불편한 하이힐을 벗고 두 다리를 흔들며 가을밤 바람을 만끽했다.
“공부는 어때?”
“그럭저럭.. 이제 겨우 책이 손에 익네요.”
“은혜 말로는 자신은 엄두도 못 낼 수준이라고 하던데?”
“겸양이죠.”
“아닌 것 같은데? 이러다가 수능 만점 맞는 거 아냐?”
“그럴 리가요. 영어는 아직 자신이 없네요. 언어는 확실히.. 단기간에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어요.”
“영어만 빼면 괜찮다?”
“뭐.. 그럭저럭.. 하하”
덕팔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선물이 있는데..”
“저에게요?”
“응..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천천히 걸어가 볼까?”
향숙이 하이힐을 다시 신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덕팔이 마시다 만 캔 맥주를 미련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곤 향숙을 따라나섰다.
덕팔이 사는 부촌은 사실 걷기에 마땅한 곳이 아니었다. 산 중턱을 깎아 지은 집들이 즐비하였기에 기본적으로 출입로가 오르막이었다.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에요.”
“왜?”
“부자들이 서민들에게 평지를 양보하고 산비탈을 깎아 집을 지어놓고 사니 얼마나 좋은 나라에요?”
“호호호..”
향숙이 시원하게 웃었다.
“그 말도 맞네.”
10여 분을 내려오니 큰길이 나왔다. 큰 길이라고 해봐야 겨우 왕복 4차선 도로였고, 차량 통행도 많지 않아 한적한 느낌을 주는 대로변이었다.
“저기 저 건물.”
향숙이 가리킨 곳에 4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
“와우, 사무실이 잘 꾸며져 있네요?”
4층 건물이 통째로 비워져 있었다.
“의대 갈 거지?”
“네? 제가요?”
“통합의대에 갈 생각 아니었어?”
“통합의대는 뭐에요?”
“응?”
향숙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덕팔을 바라보았다.
“전공을 정하지 않은 거야?”
“뭐 딱히…”
“나는 덕팔씨가 한국대에 가라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길래, 한국대에서 운영하는 통합의대에 갈려고 하는 줄 알았지.”
“통합의대라는 말도 처음 들어보는 대요?”
“호호, 한국대는 의과대학 안에 통합의대라는 이름으로, 양방과 한방을 같이 가르치는 의과가 있어. 사실상은 한의대지만 한의대를 가진 다른 대학에서 한국대의 한의대 개설을 반대하니까 꼼수를 써서 만든 거야.”
“아.. 결국 한의대를 가라는 말씀이시군요.”
“아깝잖아. 선생님께 배운 게 적지 않을 텐데 자격증에 가로막혀서 써먹지 못한다는 게..”
“뭐.. 그렇긴 한데..”
덕팔은 다른 이들에게 일반 한의학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실상 웬만한 한의사보다 한의학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사실을 향숙만은 알고 있었다.
“무려 9년이나 배웠잖아. 그 아픈 몸을 끌고.. 선생님께 회초리로 맞아가며 배운 지식인데..”
“주입식 교육이 최고의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하신 분이긴 했죠.”
“덕팔씨가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어렵게 가르치신 측면도 있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몰랐죠. 하루에 1000자씩 한자를 외우라고 하실 때는 저를 쫓아내시려고 핑계를 대시는 줄 알았어요. 회초리를 안 맞으려고 미친 듯이 한자를 외우다 보면 악귀가 옆에 있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니까요. 하하하”
지난 시절, 스승과 함께했던 시간이 떠오르자 아련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1층은 나중에 덕팔씨가 개업을 하면 한방병원이 들어올 공간이고, 2층은 당연히 병실이겠지? 3층은 탐정사무실이고 4층은 재단 사무실로 쓸 거야.”
“제가 입시에 합격해도 6년 후의 일인데요?”
“호호.. 그사이에는 내가 쓸 거야. 법률사무소로..”
“법률사무소를 그렇게 옮기시면 손님 떨어지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보다 법원 다니시기가…”
“덕팔씨가 한의사가 되면 나는 본격적으로 재단 일을 해볼까 해. 그사이에 임 검사가 퇴직하면 사무실을 넘겨주고 아니면 별수 없이. 폐업하는 거고.”
“왜 그렇게까지?”
덕팔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재단 일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