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52
52화
“강시 같은 것 말씀입니까?”
“그것도 일종의 제령술이라오.”
“제령술과 제혼술은 다른 것입니까?”
“뜻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소.”
“아! 제령술은 혼이 없는 육신을 지배하는 기술이군요.”
“그렇지. 큰 어르신께서 제자를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하셨겠구려. 이리 총명하니.”
“과찬이십니다. 헌데 몸은 좀 어떠십니까?”
“그럭저럭 쓸 만 하다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종종 찾아주시구려. 이 병실에 올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아. 외롭기까지 하다오.”
“기회가 되면 그리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 아이들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오. 어르신이 조금 더 인내해 주시구려. 허허허”
김혁성이 허허로운 웃음을 흘리자 덕팔이 준비한 것을 내어놓았다.
“드시겠습니까?”
“무엇이오?”
“어쩌면…. 생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는 방편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소?”
김혁성이 덕팔이 내민 보온병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 천리를 거스리고 싶지 않소.”
“명대로 살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약입니다.”
“허허허.. 이 생에서 묻은 때 역시 내 명이라오, 굳이 이 더러운 육신을 깨끗이 하는데 어르신의 귀한 재능을 낭비하지 마시구려.”
김혁성은 마음을 굳힌 듯싶었다.
“큰 어르신의 뜻 잘 알겠습니다.”
“내 집에 가면 도움이 될 만한 책 몇 권이 있을게요. 살펴보시구려. 허허”
“감사합니다. 어르신.”
김혁성은 덕팔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스승에게 듣지 못한 잡다한 세상 이야기였다. 시간이 흘러 병실 문이 열렸다. 특별면회 시간이 끝난 모양이었다. 덕팔이 일어나 김혁성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병실을 나가려 하자 김혁성이 덕팔을 불러 세웠다.
“어르신”
“네, 큰 어르신.”
“이 세상은 말이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도 좋을 만한 세상이라오. 어르신의 그런 행동은 인신 선생님이 원했던 참뜻이 아니라오.”
“큰 어르신의 가르침,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김혁성이 고개를 한번 주억이더니 침대에 누웠다. 이젠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든 모양이었다. 덕팔이 조용히 병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자 김혁성의 눈이 감겼다.
“인신 선생, 나는 능력을 키우는데 욕심을 냈거늘 선생은 사람을 키우는데 욕심을 내셨구려. 이번에도 내가 진 모양이오. 평생토록 한번을 이기지 못하니 이거 억울해서 눈을 감을 수 있을지 모르겠소.”
입으로는 신세 한탄을 하였지만 김혁성의 입꼬리가 오르고 있었다.
**
지난 일주일간 덕팔의 집에 침입하는 스토커는 없었다. 물론 악귀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벌써 12월 말이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거리에는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때 뭐해요?”
“밥을 먹습니다.”
“그냥 밥?”
“서운하시면 야식으로 치킨과 피자를 아영이가 쏠지도 모릅니다.”
한유리와 덕팔 간의 신경전이 한 시간째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자니까요? 제가 쏠게요.”
“안됩니다.”
“왜요? 이젠 스토커도 없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 그야, 뭐. 장담은 못 하죠. 하지만 덕팔씨도 있고…”
“한유리씨 혼자라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씨도, 아영이도 모두 감당하기에는 제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연말은 조용히 동거인들과 함께 보내는 것으로 하시죠.”
“쳇, 말이나 못 하면!!”
“자, 그러면 오늘의 이 소모적인 논쟁은 여기서 끝내는 것으로 하고 한유리씨는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오늘 저녁 설거지 담당은 한유리였다. 물론 덕팔은 식탁에 앉아 설거지가 깨끗하게 되고 있는지 감시를 할 것이다. 이미 은혜와 아영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기에 눈을 부라리며 관리, 감독을 해야 했다.
“내가 식모도 아니고…”
“이젠 손님도 아니지요.”
“그냥 손님하면 안 될까요?”
“이렇게 장기 숙박을 하는 경우에는 손님이라고 보기에 조금 어렵겠지요?”
“말로.. 이길 수가 없어. 말로…”
한유리가 투덜대면서도 깨끗하게 설거지를 마쳤다. 한유리는 아영이나 은혜와는 달리 설거지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 있었다.
“어디서 배운 겁니까?”
“10살 때부턴가? 설거지는 제 담당이었죠. 고등학교 3년 내내 방학 때 설거지 알바를 했어요. 요리를 잘 못 하지만 설거지는 제가 1등이죠. 호호호”
“요리마저 잘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아쉽지만, 그 정도면 쓸 만합니다.”
“저 여배우거든요? 이런 거 하면 안된다구요.”
“그래서 약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오직 대한 그룹 회장님만 드셨던 그 귀한 약이 한유리씨 입으로 들어갔습니다.”
“남이 안 먹어서 땜 빵으로 먹는 거라면서요?”
“땜 빵할 사람이 한유리씨만 있었겠습니까?”
“그럼 왜 절 준건데요?”
“몸이 상했으니 드린 겁니다. 양약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하면 회복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이 약이, 아니 보조식품이 더 효과가 좋으니 드린 겁니다. 다시 구하기 어려운 약재, 아니 식품으로 정성을 다하여 만든 약이니 군말하지 마시고 드십시오.”
“네네..”
한유리가 입을 비쭉거리면서도 덕팔이 내놓은 약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마셨다. 그릇에 약이 남자 물에 행궈 깨끗하게 들이키곤 설거지까지 해 놓았다.
덕팔이 흐뭇한 표정으로 한유리를 바라보며 손 인사를 하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쳇, 인정머리 없기는…”
한유리가 계단에 오르는 대신에 쇼파에 앉아 유리창 밖을 바라보았다. 황량한 마당이었지만 왠지 정이 느껴지는 마당이었다.
“애도 없는데 왠 미끄럼틀? 저건? 정글짐인가?”
한유리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미끄럼틀 위로 올랐다. 어릴 적 시골에 살다 보니 미끄럼틀을 탈 기회가 없었다. 학교에 미끄럼틀이 있었지만, 수업이 끝나면 불이 나게 집으로 가 집안일을 도와야 했기에 마음 놓고 미끄럼틀, 그네 같은 것들을 탈 기회가 없었다.
“휘이잉..”
자신이 입으로 소리를 내며 미끄럼틀에서 내려왔다.
“재밌네.”
한번, 두 번, 세 번, 짧은 미끄럼틀을 십 수 번 탄 한유리가 눈물을 흘렸다. 별거 아닌 행복이었거늘 한 번도 누리지 못했다. 하루하루 전쟁처럼 숨 막히는 삶을 살았다. 지금도 역시 그렇다. 이제 좀 편하고 느긋한 삶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역시나 숨이 막혔다.
“평생 안 되는 건가?”
“됩니다.”
미끄럼틀 끄트머리에서 고개를 떨구고 울고 있는 한유리 앞에 긴 그림자가 늘어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덕팔이 담요를 들고 서 있었다.
“외투도 입지 않고 그러고 놀면 감기 걸리죠.”
덕팔이 담요를 한유리에게 던져주자 한유리가 역시나 입을 비쭉이며 담요를 어깨에 걸쳤다. 가마솥에 물을 채운 덕팔이 불을 피웠다. 불이 올라오니 주변이 따뜻해졌다.
“슬프면 울어야 하고, 기쁘면 웃어야 하죠. 인간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스승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저도 아직 그러지 못하고 살고 있지만, 저분들과 살다 보니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니들이 잘해주니까 그러죠.”
“인정합니다. 저분들이 저에게 참 잘해주고 있습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죠. 한유리 씨에게는 저의 저분들 같은 분이 없습니까?”
한유리가 고개를 쳐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배정환은 자신을 동생처럼 아꼈다. 그저 매니저와 배우의 관계가 아닌 가족 같은 관계였다. 스타일리스트 이성미 역시 7년간 한결같이 자신을 살뜰하게 챙겨왔다. 그런데 자신은 그들을 업무적으로만 대해 왔다. 이미 가족보다 더 가까운 관계였음에도 한 번도 가족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스스로 그들을 밀어내고 고립이 된 것이었다.
“… 있어요.”
“그럼 한유리씨도 가능한 겁니다. 아직 한유리씨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것일 뿐..”
한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덕팔이 무덤덤한 얼굴로 한마디를 툭 내뱉곤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생각할 게 많으신 것 같으니 이 불이 꺼지면 물 한 바가지 끼워 놓고 들어오십시오. 불나면 다 한유리씨 책임입니다.”
“하여간, 인정머리라곤….”
한유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베었다.
**
크리스마스 이브.
만인들이 짝을 찾아, 가족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덕팔의 집에서 아주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다.
[아저씨, 저는 신령숩니다. 신령수에게 이런 반짝거리고 화려한 것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역시 크리스마스 트리는 소나무야.”
[저는 잣나무 아니었습니까?]“네 엄마가 소나문데 어찌 자식인 네가 잣나무겠니?”
[아… 문영훈이 제가 잣나무처럼 생겼다고 하여…]“후후..”
덕팔이 웃는 사이 소룡이 사라졌다. 왠지 지하에서 비명이 들리는 듯했지만 덕팔은 무시하였다. 덕팔의 마당은 평소와 다르게 훨씬 밝아져 있었다. 긴 테이블도 등장하였고 아영이 공수한 난로도 설치되어 있었다.
“손님들이 오실 때가 되었는데…”
덕팔이 대문을 힐끗거렸다.
띵동!
덕팔이 나가 대문을 열어주니 배정환이 보였다. 그 뒤에는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통통한 여자도 함께였다.
“어서 오세요.”
“초대 감사합니다.”
“가족분들은?”
“애 엄마랑, 아들내미는 극장에 갔습니다. 삼겹살보다 파워레인저 인형극을 더 좋아할 나이라..”
“하하, 그래요?”
덕팔이 웃으며 두 사람을 테이블로 안내하였다.
“예쁘게 잘 꾸며놓으셨네요.”
“한유리씨의 등살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뭐요? 제가 뭘 어쨌다구요.”
한유리의 날카로운 음성이 현관문을 뚫고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커다란 접시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유리야. 이런 거 들지 말라니까?”
“괜찮아. 괜찮아. 내가 요즘 힘 쎄지는 보약을 먹고 있어서 말이지.”
“어머, 얘! 안 돼. 너 한약 잘못 먹어서 고생한 거 기억 안 나?”
두 남녀의 호들갑에 덕팔이 웃으며 나머지 반찬과 그릇을 날라주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 덕팔씨는 왜 그냥 들어가? 그러고 보니 임 검사님은? 그 여자분은?”
“이건 내가 준비한 거야. 오빠랑, 언니랑 같이 먹으려고..”
“네가? 호호호, 어머 얘, 너 농담 많이 늘었다.”
“진짜거든, 이거 마늘, 편으로 쓰느라고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편 마늘 사 오라니까 직접 써는 게 더 맛있다고 부득불 통마늘을 사 와서..”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덕팔을 노려본 한유리가 잘 달궈진 솥뚜껑에 삼겹살을 올렸다.
치지지직…
고기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캔맥주가 따졌다. 세 사람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즐거워 보이네요.”
“그렇죠?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좋은 빛을 내고 있을 겁니다.”
“그런 빛은 안보이지만 그래 보여요. 호호”
은혜와 덕팔이 2층 유리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세 사람이 울고 웃으며 지난 시간을, 앞으로의 시간을 이야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