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53
53화
“가족이라는 거참 별거 없는 것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렇게 모여 있으니 저들이 가족이네요.”
“네, 우리도 가족인가요?”
“아 참, 집에 안갑니까? 어머니께서 문자를 보내셨던데? 오늘 은혜씨를 안 보내면 암살자를 보내시겠다고?”
덕팔이 웃자 은혜가 농담 말라며 덕팔의 어깨를 쳤다가 덕팔이 보여준 메시지를 보며 얼굴이 딱딱히 굳어졌다.
“요즘 우리 엄마가 좀 과격해지기는 했어요.”
“아영이에게는 연락이 없습니까? 크리스마스 이브 날, 웬 야근을 한다고?”
“모르겠어요. 문자만 보내고 끝이네요.”
“흐음…”
덕팔이 시계를 보더니 인상을 썼다. 벌써 8시가 다 되었다. 평소 같으면 이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늘 야근을 하는 회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덕팔이 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고… 여러 웃음소리에 섞인 아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오빠?]“야근한다며?”
[누가? 회식인데? 양 계장님 집에서?]뚜뚜뚜뚜뚜…
덕팔이 전화를 끊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한 죄의 대가였다.
“밥 먹으러 가죠. 괜히 기다렸습니다.”
“호호호.. 그래요.”
은혜가 슬그머니 감춘 메시지.
아영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회식을 회식이라고 말하지 못한 참으로 매매하고 뜻을 알기 어려운 메시지였다.
**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지하 식구들에게 피자 세 판과 치킨 세 마리를 시켜주었다. 1귀신 1닭1피자 그리고 서비스로 2콜라까지 아낌없이 베풀었으니 오늘 밤 그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부엌 식탁에서 덕팔과 은혜만의 만찬이 시작되었다.
은혜가 꼭 바라던 그 자리가 되었지만 은혜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저…”
“네?”
“아무래도 제가 나쁜 여잔가 봐요.”
“무슨 말이에요?”
“아영이한테 문자가 왔었어요.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올 거라고..”
“흐음.. 야근한다는 말이네요. 근데 그게 왜요?”
“회식을 한다는 말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이해를 했거든요. 근데 덕팔씨에게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어요.”
“왜요?”
“기다리다가 전화를 했을 때, 아영씨가 회식을 한다는 사실을 알면 덕팔씨가 아영씨에게 실망을 할 것 같아서요.”
은혜가 고개를 푸욱 숙였다.
“저는 그런 거로 실망 같은 거 하지 않는데? 그리고 그게 뭐 어때서요? 잘못은 아영이가 한 거 같은데?”
“그런 게 아니라..”
“그것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있는 거예요?”
“저.. 그게…”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가 있어요. 어딘가 찾아보면 아마도 볼 수 있을 거예요. 한번 봐봐요. 진짜 질투를 하는 여자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두 사람, 참 고맙게 생각해요. 두 사람이 저에게 갖고 있는 감정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안됩니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있는 거예요.”
은혜의 고개가 들어졌다.
“왜요? 제가 부족한가요?”
“아뇨. 제가 위험해요. 제 옆에 있으면 목숨을 잃는 것으로 끝이 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누구도 곁에 둘 수 없어요.”
“뭐 때문에요? 이유라도 얘기를 해줘야죠.”
“들으시면 당장 이 집을 나가려고 할 겁니다.”
덕팔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남자의 이야기. 은혜가 조용히 이야기를 듣다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부엌을 나갔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덕팔이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이거면 된 거지. 아영이에게도 이야기를 해줘야겠네. 더 이상 헛된 감정을 가슴에 쌓아 두기 전에…”
덕팔이 남은 음식을 꼭꼭 씹어 먹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홀로 먹는 만찬이… 마치 돌을 씹는 것 같았다.
***
아영은 끝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언니 집에서 자고 오겠다는 문자만 왔을 뿐이었다. 은혜가 걱정되어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덕팔의 집은 한유리와 그의 일당들이 점거하였다. 배정환의 코 고는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한유리와 스타일리스트 이성미의 이야기 소리도 들려왔다. 방음이 되지 않는 집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작은 소리가 잘 들릴 정도로 청력이 좋아져 버린 자신의 귀 덕분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덕팔이 끓여 놓은 해장국을 맛있게 먹은 배정환과 이성미가 집을 떠났다. 한유리는 몸이 좋지 않다며 방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덕팔의 눈치를 보며 마당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저씨, 일어나셔야 합니다.]덕팔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유리창을 깨고 마당으로 튕겨져 나갔다.
**
한유리는 즐거웠다. 가족이 곁에 있었는데 멀리서 가족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들 역시 한유리와 같은 감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했다. 그렇게 꿈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언제 일어났는지 덕팔이 손수 북엇국을 끓여 놓았다. 이런저런 밑반찬도 랩에 잘 쌓인 채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세 사람이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이야.. 덕팔씨 요리 솜씨가 전문가 수준이네.”
“그러게요. 전문점에서도 이런 맛이 안 나던데?”
“요리만 잘해. 요리만..”
“너, 이상하다? 덕팔씨 얘기만 나오면 가시가 돋아?”
“유리야, 안 돼. 스캔들 나기에는 넌 아직 어려. 알지?”
“이 오빠가 뭐라고 하는 거야? 난 저 아저씨 같은 타입 딱 싫거든?”
“아저씨? 누가? 얘, 너 아프더니 눈이 이상해진 거 아냐? 오늘 나랑 안과 가자.”
이성미가 웃으며 한유리를 놀리자 한유리가 발끈하였다.
“언니 정말 이럴 거야?”
“호호호.. 농담이야. 근데 너 정말 이상하기는 해. 그 남자 얘기만 하면 발끈하잖아. 덤덤히 받아들여. 기자들이라도 알면 어떻게든 엮으려고 할 테니까..”
“맞아, 너야 괜찮겠지만 덕팔씨는 아니잖아. 일반인인데 괜히 네 스캔들에 휘말리면 생활하기 어려워져. 알았지?”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시고 식사들이나 맛나게 하세요.”
세 사람의 식사가 계속되었다. 배정환과 이성미가 각자의 볼일을 보러 떠나니 집에 휑한 느낌이 들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덕팔의 방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덕팔은 몸이 좋지 않다며 방 밖으로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쳇.. 크리스마스라고 선물 주려고 했는데..”
한유리가 손에 들린 선물을 만지작거리다가 어젯밤, 난장판으로 만든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나 치워야겠네. 또 일어나서 폭풍 잔소리를 할 테니..”
그릇들을 싱크대에 담아 놓고,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하였다. 가마솥뚜껑을 들어야 했지만, 워낙 무거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큰마음을 먹고 힘껏 들어보았지만, 뚜껑과 솥 사이에 기름이 묻은 채로 굳어져 더욱 들기 힘들어졌다.
“이건 안 되겠고… 불이나 피울까?”
남은 장작을 가져다가 쌓아 놓고 신문지에 불을 붙여 밀어 넣었다. 타다만 나무들이 숯이 되어 있어 불은 금방 붙었다. 한유리가 허리를 쭈욱 펴며 일어섰다. 이러고 있으니 어릴 적 시골이 생각났다.
시골은 나쁘지 않았다. 단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겨울왕국 같았을 뿐이었다.
“귀농도 나쁘지 않겠어.”
한유리가 마당을 한번 돌아볼 때, 1층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자신을 덮쳐갔다.
퍼억…
한유리는 자신을 덮친 물체의 무게에 못 이겨 옆으로 쓰러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덕팔의 얼굴이 보였다.
“뭐예…”
한유리가 화를 내려고 하였을 때, 방금 한유리가 서 있던 곳에서 한 남자가 한유리를 향해 무언가를 내질렀다. 덕팔이 이를 몸으로 막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분명 무언가가 찔리는 소리가 났다. 덕팔과 남자가 싸움을 시작했다. 한동안 계속된 싸움에서 남자가 밀리자 뒤를 돌아 달아나려 하였다. 그때, 멀쩡하게 있던 테이블이 넘어지면서 남자와 함께 나뒹굴어졌다.
덕팔이 달려가 남자를 제압하였다. 남자가 바닥에 얼굴을 박은 채 덕팔에 의해 팔이 꺾였다.
“전화…. 112에..”
덕팔의 목소리가 불안정했다. 한유리가 정신을 버뜩 차리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신고를 하였다. 채 3분도 되지 않아 경찰이 출동하였다.
남자의 양손에 수갑이 채워지자 그제야 덕팔이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피를 많이 흘리시는데? 김 경장. 119에 연락해. 어서!”
덕팔이 쓰러졌다.
**
한성병원 수술실 불이 꺼졌다.
무려 6시간에 걸친 수술이었다. 아영과 한유리가 초췌한 얼굴로 수술실 앞을 서성이다가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오자 의사에게 매달렸다.
“선생님, 우리 오빠 괜찮은 거죠? 그런 거죠?”
“위험했습니다. 허리와 등에 깊은 자상이 있었고, 칼이 뒤틀리면서 근육과 일부 장기가 찢어졌습니다. 다행히 봉합했지만 오염이 심해 앞으로 일주일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고 아영을 지나쳤다.
한유리가 오열을 터트렸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칼을 맞은 덕팔이 사경을 헤매야 한다고 하니 눈물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환자분께서는 회복실에 계시다가 병실로 옮겨질 거예요.”
의사의 뒤를 따르던 간호사가 설명하자 아영이 한유리를 데리고 덕팔의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
“이게 무슨 일이죠?”
뒤늦게 연락을 받은 향숙이 사색이 된 얼굴로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의 뒤에는 민수의 얼굴도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진학의 모습도 보였다.
“다.. 저 때문이에요.”
한유리가 울며 허리를 숙여 사죄하였다. 그러자 아영이 자초지정을 설명하였다. 향숙이 긴 숨을 내쉬며 덕팔의 상태를 물었다.
“덕팔씨 상태는 어떻죠?”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해요. 단지 장기 손상이 있어서 감염증이 우려된다고..”
“… 그나마 다행이군. 큰일 날 뻔했어.”
최진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덕팔을 바라보았다.
“은혜 언니는…”
“일이 좀 있어 내일쯤 올 수 있을 걸세.”
“…네.”
가장 먼저 달려올 줄 알았던 은혜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아영이 의아한 얼굴이 되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최진학의 표정에서 곤혹스러움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덕팔의 병실은 4인실이었다. 그런데 다른 환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덕팔 만이 이 큰 병실을 독차지 하고 있는 것이었다.
“특실로 옮기도록 하지.”
“일부러 이 병실로 잡았어요. 이 병원에서 가장 넓은 병실이라고 하여…”
아영이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최진학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덕팔이 누워있는 침대 옆은 비어있었지만 ‘한유리’라는 환자의 진료표가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대 병원으로 옮기는 건 어때요?”
민수가 나섰다. 아무래도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이라면 민수가 덕팔을 돌보기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일단 지켜봐야 한다고 하니.. 이 병원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염증관리와 치료는 결국 의료진의 관심 문제였다. 민수도 항시 덕팔의 곁에 있어 주지는 못할 것이니 오히려 대학병원보다는 준종합병원이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