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55
55화
한성병원 특실.
아영이 김혁성을 만나고 있었다.
“어르신께서 부상을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맞아요. 이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상태가 위중하다고 하던데 몸은 괜찮은 거요?”
“위기는 넘겼고 지금 안정 중이에요.”
아영은 김혁성이 덕팔에게 호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혁성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살인마이지만 인성이 삐뚤어진 이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덕팔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여, 김혁성이 변호사를 통해 면담을 요청해오자 쉽게 승낙을 하였던 것이었다.
“다행이구려, 하지만 위험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요. 검사 아가씨도 잘 알고 있지 않소?”
“그래서 경찰 병력을 동원하…”
“검사 아가씨, 그들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오.”
“그래서요? 당신을 풀어달라는 말인가요?”
아영의 뾰족한 목소리에 김혁성이 허허롭게 웃었다.
“내가 어르신을 핑계로 다 죽어가는 몸의 안위를 바라겠소? 그저 내가 어르신을 한번 볼 수 있게 해주면 족하오.”
“불가능해요.”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오직 어르신뿐이오. 나는 어르신을 좀 더 빨리 회복시키려 하는 것뿐이오.”
“회복.. 시킨다구요?”
“내 능력 중 하나가 바로 그런 것이오.”
아영이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다시 물었다.
“은혜 언니도 같은 능력이 있잖아요. 그럼 은혜 언니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 아가씨의 이름이 은혜인 모양이군. 허허, 어르신께서 그녀를 보호하느라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 나의 마지막 신딸의 이름도 모를 뻔했소.”
이름을 알게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덕팔이 그토록 비밀로 하고자 했던 일을 자신이 망쳤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아영의 안색이 변하자 김혁성이 다시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이 일은 검사 아가씨와 나만의 비밀로 남겨둡시다. 어차피.. 이름을 안다고 하여 무언가를 하기에는 내가 너무 쇠약해 버렸으니 말이오. 허허허”
“… 협박하는 건가요?”
“그게 무슨 협박이 되겠소? 수천 번, 수만 번 불렸을 이름인데 내가 그 이름을 아는 게 무에 대수라고, 아니 그렇소?”
“오빠를 어떻게 치료할 생각이죠?”
“곁에서 지켜보시구려. 그리고 내가 하는 양을 잘 보아두었다가 그 은혜라는 아가씨에게 전해주시오. 어르신의 곁에 있고 싶다면 내 힘을 찾아 얻으라고 말이오.”
김혁성이 한동안 앉아 있으니 힘이 들었는지 몸을 침대에 뉘였다.
“잠깐 앉아 있었는데도 힘이 드는구려. 허허허”
아영이 그런 김혁성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밤 12시부터 딱 30분이에요.”
“허허.. 고맙소.”
김혁성이 눈을 감은 채 감사를 전했다.
**
한성병원 덕팔의 병실.
덕팔의 병실에 덕팔 외에는 모두 자리를 비웠다. 한유리마저도 오늘 밤은 특실에 머물기로 했다. 밤 12시가 되니 환자복을 입고 수갑을 찬 김혁성이 휠체어에 몸을 맡기며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신터에서 보았던 첫째가 김혁성의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아영의 부름을 받은 김 형사가 그 첫째를 제지하려고 하자 김혁성이 입을 열었다.
“이 아이가 필요하다오.”
김 형사가 아영을 돌아보자 아영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김혁성이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켜 한 발, 한 발 걸어 덕팔의 침대로 다가갔다.
“어르신, 어쩌다 이리 되었소. 허허, 몸을 잘 살피지 않으시면 천수를 누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구려. 이번에는 이 늙은이가 도와 드리겠지만 다음에는 그 아가씨에게 도움을 받으셔야 할 거요.”
김혁성이 눈치를 하니 첫째가 덕팔의 환자복 상의를 벗겼다. 그리곤 덕팔의 팔에 꽂힌 주사바늘을 빼내더니 이내 김혁성에게 내밀었다. 김혁성이 날카로운 주사바늘로 자신의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찌르더니 피를 내었다.
알 수 없는 그림과 글씨가 덕팔의 몸 곳곳에 그려졌다. 앞면이 다 그려지자 첫째가 덕팔의 몸을 돌려주었다. 김혁성이 덕팔의 등에도 그림과 글씨를 새겨 넣었다.
마지막으로 바지가 벗겨졌다. 김혁성의 낙서는 거의 한 시간에 이르도록 계속되었다. 애초에 약속한 시간은 30분이었지만 아영은 김혁성을 말릴 수가 없었다. 피를 흘리는 김혁성의 안색이 퍼렇게 죽어가고 있음에도 그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는데 약속시간을 운운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다 되었소.”
김혁성의 목소리는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다. 첫째가 얼른 달려와 김혁성의 손가락을 지혈하였다. 김혁성이 웃으며 첫째의 하는 양을 지켜보다가 웃었다.
“다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러는구나.”
“아버지, 여기서 끝을 내셔야 해요.”
“허허.. 이런 몸으로 하루를 더 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큰 어르신을 보아 저 아이에게 나의 힘을 전하려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인연이 이러하니…”
“안 돼요. 아버지.”
“첫째야. 저 아이는 나보다 훨씬 크고 넓은 존재란다. 그를 믿어도 좋을 것이야.”
김혁성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덕팔의 침대로 가더니 덕팔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시작된 이적!
김혁성의 환자복이 펄럭였다. 마치 거센 바람이 부는 것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김 형사는 이 모습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오늘 자신의 상식이 넓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김혁성이 덕팔의 몸에 그려놓은 그림과 글씨가 붉게 달아오르더니 마치 피가 흐르는 것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길 5분여.. 김혁성이 모로 쓰러졌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첫째가 김혁성의 몸을 받아 들자 김혁성이 작게 속삭였다.
김 형사가 첫째를 도와 김혁성을 다시 휠체어에 태우며 슬쩍 동맥을 집어보았다. 첫째가 눈물을 흘리며 김혁성을 데리고 나가려 하자 아영이 수갑을 채우려 하였다. 그러나 김 형사가 그런 아영을 제지하였다.
“사망했습니다.”
“… 그렇군요.”
첫째가 병실을 나가다 말고 뒤를 돌아 아영을 노려보았다.
“아버지께서 그에게 모든 것을 남기셨어요. 그 여우 같은 인신 때문에… 그러니 그를 그냥 두세요.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면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아무도 그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지켜요.”
“이봐요, 병원에서 어떻게…”
“아버지의 마지막을 헛되이 만든다면 당신들! 죽어서도 귀천을 떠돌게 만들 거예요. 내가 반드시 그렇게 하겠어요.”
김 형사가 몸에서 한기를 느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의 옥죄는 것 같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영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첫째가 병실을 나갔다.
“후우… 김혁성씨에 대한 공소는 ‘공소권 없음’ 처리하시고 수행하던 남자는 ‘증거불충분’으로, 그 의사는 의료법 위반으로 약식기소하겠어요. 그러니 김 형사님께서 수고를 좀 해주세요.”
“하지만 검사님, 그들은…”
“김혁성씨가 죽었어요. 증거가 없는 이 사건에서 그들의 살인죄를 입증할 방법이 없죠.”
“… 알겠습니다.”
김 형사가 밖으로 나갔다. 아영이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
전화가 끊어지자 아영이 병실 문을 닫고 잠가 버렸다. 앞으로 3일간 이 병실은 누구도 들어와서는 안 될 공간이 되었다.
**
한유리가 병실 밖에서 애원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특실에 있는 게 좋겠어요.”
[저 무서워요. 그 사람 곁에 있게 해주세요.]아침이 되어도 아영에게 연락이 없어 슬그머니 병실을 찾았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었고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한유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간호사실로 달려가 보니 그 병실은 앞으로 3일간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이야기만 듣게 되었다.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되었지만 아영은 문을 열지 않았다. 이젠 하루종일 굶고 있을 아영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결국 한유리도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병실만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다.
드르륵…
병실문이 열리자 한유리가 병실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그러자 다시 병실문이 잠겼다.
“언니, 무슨 일이에요.”
“어제 밤에 오빠가 치료를 받았어요. 3일간은 절대 몸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주의도 받았구요. 그러니 유리씨는 돌아가요. 이 병실은 제가 지킬 테니..”
“같이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할게요. 그냥 지켜만 볼게요. 그리고.. 이거..”
한유리가 아영에게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햄버거집 로고가 새겨진 봉투였다. 아영이 고개를 흔들자 한유리가 아영의 손을 잡고 봉투를 쥐어주었다.
“먹어요. 3일이라면서요. 침대도 많으니 음식만 공수하면 그만이에요. 그러니 이거 먹고 좀 쉬어요. 언니가 일어날 때까지 제가 잠시 지키고 있을게요.”
아영은 침대에 앉게 하더니 침대에 딸린 테이블을 펴준 한유리가 덕팔의 옆 침대에 앉아 덕팔을 바라보다 화들짝 놀랐다.
“이 아저씨, 왜 나체로 있는 거예요?”
“치료를 한 사람이 그렇게 해 놓고 갔어요.”
“중요 부위라도 수건으로 어떻게…”
“안 돼요.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했어요.”
아영이 달려오려는 기색을 하자 한유리가 진정을 시켰다.
“아무것도 안 할게요. 진짜로.. 휴우.. 덕분에 남자의 나체를 원 없이 보게 생겼네요.”
한유리가 덕팔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
2일째
덕팔의 몸에서 작은 변화가 생겼다. 김혁성의 피로 그려진 그림과 글씨들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피가 굳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치 그 그림과 글씨들이 덕팔의 몸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신기하네요. 근데 아무것도 못 먹고 있는데 이대로 두어도 될까요? 링거라도 맞게 하는 게..”
“그냥 두는 게 맞을 거예요. 그 사람이 헛소리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 사람이 누군데요?”
“유리씨, 제 말 잘 들어요. 유리씨가 우리 집에 온 그날부터 유리씨가 보고, 들었던 모든 것은 스토커 문제가 해결되는 그 시점에 모두 잊어야 해요. 알았죠?”
“왜요?”
“그래야 하니까요. 누구에게 발설해서는.. 아니 아예 머릿속에서 저 오빠의 존재를 지워요. 그럼 해요.”
“저에게는 은인인데 어떻게 그래요.”
“그게 은혜를 갚는 길이에요.”
아영의 단호한 말에 한유리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깊게 알면 유리씨도 힘들어져요. 유리씨는 행복해야 하잖아요.”
“언니는요?”
“나요? 나는…”
아영이 잠시 덕팔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저 사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그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감이 들었어요. 제가 진짜 저 오빠를 좋아하나 봐요.”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반쯤은 장난이었죠. 자꾸 밀어내니까 오기도 생겼고, 오빠를 노리는 다른 여자가 나타나니 경쟁심도 좀 있었구요. 대충 그런 감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아니더라구요.”
한유리가 부러운 얼굴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