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104
제신입사원 강 회장 104화화
처갓집 불 지르기(4)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뭐지? 핵심만 말해 봐.”
조재필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강 회장은 살짝 웃었다. 이놈, 드디어 관심이 생겼나?
“지금 회사에 이런 말이 떠돌고 있어요. 유성 그룹이 딸을 앞세워 사돈댁을 넘본다. 최성 그룹을 차지하려고 염탐꾼도 보냈다.”
물론 이런 말이 떠돌지는 않는다.
“그 염탐꾼이 나라는 거냐?”
“네.”
“그래서?”
“그룹 사정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니 마음에 담아 둘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역으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요?”
역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조재필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잘 몰랐다.
대답 없는 조카를 보며 강 회장이 말했다.
“최성 그룹을 이용해서 유성 그룹을 확실하게 둘로 쪼개는 것 말입니다.”
조재필은 그 둘이 누군지는 확실히 안다. 바로 조병모 회장과 부친인 조병수다.
“왜 우리 집안일에 최성 그룹이 관심을 두는 거지?”
“큰 변화가 있는 곳으로 큰돈이 움직이니까요. 특히 계열사를 여러 개 둔 그룹은 대부분 지분이 얽혀 있습니다. 전 그런 걸 이용해서 최성에 도움 될 만한 일을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고요.”
“어떻게?”
“그건 함께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특히 조 팀장님께서 동의해야 이 일을 진행할 수 있으니 먼저 생각하시고 결론을 내려 주셔야 합니다.”
조재필은 원론적인 말만 들어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나 확실한 건 있더군요. 우리 최성과 유성 그룹은 연결될 만한 사업이 없어요. 그러니 최성이 얻을 수 있는 건 돈뿐입니다. 어떤 지점에서 차익을 만들어 내는가? 그게 핵심이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 다 끝났나?”
굳은 표정의 조재필을 보며 강 회장이 웃었다.
“그다지 마음에 드는 내용이 아닌가 봅니다?”
“남이 우리 집안 거론하는데 기분 좋을 리 있겠어?”
“뭐…… 천천히 생각하십시오. 안 하셔도 됩니다. 말씀하셨다시피 남의 집안일이니까요.”
강 회장은 서류 한 묶음을 건넸다.
“이건 유성 그룹 지분 현황입니다. 나름대로 조사한 건데, 참고하십시오.”
얌전한 놈이라 그런지 영 미적지근한 반응이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놈은 중간 다리 역할일 뿐이다. 이놈이 지금 회장실을 차지한 조선희에게 달려가 그녀의 심지에 불을 붙여야 한다.
* * *
조재필은 유성 그룹 지분 현황을 뚫어져라 살폈다.
사실 그도 정확한 현황은 모른다. 심지어 이런 디테일한 현황을 보는 건 처음이다.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지분 현황을 놓고 고민하는 건 아버지와 형의 일이었고 막내는 끼워 주지 않았다.
그는 현황을 보며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누가 보더라도 유성철강은 이미 아버지의 손을 떠났다는 걸 알 것이다. 아직 큰아버지가 가만히 있는 것뿐이다.
이제 곧 3세 경영 체제가 될 텐데, 사촌의 관계가 형제의 관계보다 끈끈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어른이 되고 난 뒤에 만난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이니 남이나 다름없다.
당장 회장의 장남이 유성철강 대표이사로 발령 난다고 해도 조재필의 아버지는 그냥 물러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전략실 막내, 황준현이라고 했던가? 그놈이 한 말 중에 딱 하나가 뇌리에 박혔다.
유성 그룹을 확실하게 둘로 쪼갠다.
이 말은 유성철강만큼은 절대 뺏기지 않는다는 소리다.
욕심은 참 이상한 놈이다.
욕심 하나가 꿈틀대면 그 욕심이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또 다른 욕심까지 더해져 덩치를 키우고 더 강력해진다.
지금 조재필은 자신의 가족이 유성철강을 지켜야 한다는 욕심 위에 그 회사를 자신이 차지해야겠다는 욕심까지 더해졌다. 이 일을 잘해 내기만 한다면 아버지의 인정을 독차지한다.
문제는 방법이다. 쓸 수 있는 든든한 도구도 생겼다. 바로 최성 그룹.
규모가 훨씬 큰 최성 그룹이 도와주기만 한다면 큰아버지와 한번 부딪쳐 볼 만하다.
조재필이 생각과 상상과 공상을 뒤섞어 가며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이상재는 조선희를 만나고 있었다.
* * *
갑자기 찾아온 이상재 때문에 조선희는 당황했지만 그가 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논의한다는 점에서는 기뻤다.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먼저 한 가지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상재는 조금은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유성 그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응? 유성? 내 친정을 말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별생각 없는데? 그냥 가족이니까 서로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좋겠다 정도? 하지만 기업 색깔이 너무 달라서 딱히 할 만한 게 없지 않아?”
조선희의 눈에 경계의 빛이 어렸다. 이상재가 왜 갑자기 유성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까?
흔들리는 조선희의 눈빛을 놓치지 않은 이상재가 웃으며 말했다.
“이미 유성 그룹 조병모 회장이 차명으로 우리 최성화학 주식을 은밀히 사 모은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 그래요? 난 금시초문인데…….”
“이사장님.”
회장이 아닌 이사장이라는 호칭에 조금 전까지 당황했던 조선희의 표정이 변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께서 살아 계시고, 이사장님은 회장 대리 역할이십니다. 차마 제가 이사장님을 회장님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호칭 때문에 발끈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속 좁은 여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조선희는 깊게 숨을 내쉬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뭐, 이 전무의 충정이야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니…… 편한 대로 해요. 그깟 호칭이 뭐가 중요하다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사장님께서도 유성 그룹이 우리 주식을 모으는 데 동조하신 것으로 압니다. 혹시 모를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 전무!”
“그거 탓하려고 말씀드리는 것 아닙니다. 이제 다 정리됐으니 유성 그룹과의 동조는 그만두시고…… 오히려 반대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떨까 싶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조선희는 눈을 크게 떴다.
“반대?”
“덩치 큰 쪽이 덩치 작은 쪽을 쥐고 흔드는 겁니다. 우리가 유성보다 두 배는 큽니다. 이제 이사장님께서 최성의 수장이 되셨으니 유성 그룹을 한번 흔들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마침 조카도 와 있으니 메신저로 쓰기에 안성맞춤 아닙니까?”
유성을 흔든다는 소리가 천둥처럼 조선희의 머릿속을 흔들었다.
오빠들의 무시, 집안에서의 소외, 딸이라고 회사 근처에도 오지 말라던 선친의 모습까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정확히 이상재의 뜻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통쾌한 복수의 시간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회장 자리가 좋긴 좋다.
“흔든다는 게 무슨 의미지?”
“흔드는 건 과정입니다. 우린 기업이니 최종 목표가 나와야 합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유성 그룹에서 원하는 게 있으십니까?”
오빠들, 특히 회장 자리에 앉아 여동생을 평생 무시했던 큰오빠를 무릎 꿇리고 싶다.
이게 가장 원하는 것이지만, 너무 저속하고 개인적이다.
조선희는 짐짓 머리를 갸우뚱했다.
“글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네. 아마도 사업 분야가 너무 달라서 그런 게 아닐까?”
“만약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면 탄약이 있습니다.”
“탄약?”
“네. 유성 그룹의 유일한 방산 업체죠. 비철금속을 다루다 보니 황(黃)도 다룹니다. 그걸 발판으로 국내 최대의 탄약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죠. 억지로 연결하자면 딱 그 회사 하나 있습니다.”
“정말 억지군요.”
“그렇죠. 하지만 억지가 아니면서 꼭 필요하고 관련 있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돈이죠. 기업은 돈의 결정체 아닙니까?”
“돈?”
“네. 유성 그룹의 현황을 살펴보니까 큰 균열이 있습니다. 그 균열을 이용해서 돈을 좀 벌어 볼까 궁리 중입니다.”
조선희도 이상재가 말한 균열이 뭔지 어렴풋이 짐작은 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대를 이어 가면 자식이 많아지고, 그 자식들이 서로 더 갖겠다고 싸움질이다.
그녀의 오빠들은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작은오빠가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방법이 있나? 아…… 오해는 말고…… 돈 버는 거 말이야.”
“허락하신다면 방법을 찾겠습니다. 아무래도 이사장님 가족이라…… 지금까지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거든요.”
“시작하세요.”
즉시 답이 나왔다.
이상재는 웃으며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아, 그런데 혹시라도 조카가 이 이야기를 꺼내면 금시초문인 척하십시오.”
“조카? 재필이?”
“네. 그 친구 옆구리도 슬쩍 찔러 놨습니다.”
벌써 시작했다는 소리다. 조선희는 이상재의 추진력과 결단에 다시 한번 놀랐다.
* * *
며칠을 고민하던 조재필은 아버지가 아닌 고모를 선택했다.
아직 방법도 나오지 않았는데 아버지에게 말했다가는 성급한 대답만 듣게 될지 몰라서였다.
“그래, 일은 할 만해?”
친절히 말하는 고모를 보며 조재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상재 전무는 아예 절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룹 현황이라도 말해 줄 줄 알았는데 그냥 방치하고 있어요.”
“그래?”
발끈할 줄 알았던 고모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뭔가 잘못 흘러간다는 걸 알았다.
자신을 최성 그룹으로 데리고 올 때 고모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이상재가 쥐고 있는 비자금, 인맥 등등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한 고모가 아닌가?
“조급해하지 말고 이 전무의 신임을 얻어 봐. 내가 이 전무 불러서 조카 잘 돌봐 달라고 말하는 건 좀 그렇잖아? 네가 애도 아닌데. 안 그래?”
“아…… 네, 당연하죠. 그런데 고모님,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은 그게 아니고…….”
조선희의 눈이 반짝했다.
“응. 말해 봐. 뭔데?”
“저도 이 전무가 일 가르쳐 주기만을 기다리는 애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 하나를 생각했는데…… 말씀드려 볼까요?”
“그래, 우리 조카, 얼마나 괜찮은 사업 마인드가 있는지 한번 들어 보자.”
조재필은 고모의 기대 가득한 눈을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고모도 아시겠지만, 유성 그룹은 두 회사가 기둥입니다.”
“유성 그룹? 갑자기 왜? 넌 최성 그룹에서 일하는 거야. 뭔가 착각한 거 아냐?”
“아닙니다. 최성 그룹과 관련 있습니다.”
조선희는 상냥한 웃음을 보였다.
“이거, 우리 조카가 아주 큰 그림을 그리고 있구나. 그룹 간의 비즈니스라니…… 그래, 계속해 봐.”
“네. 그러니까 (주)유성과 유성철강…… 이게 중심인데…….”
“재필아, 나도 알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복잡한 지분 구조 개선하라고 압박해서 계열사 일곱 개의 순환 출자 구조 싹 정리했잖아. 지금이야 유성이 지주 회사지. 아는 거 말고 핵심만, 간단히.”
조선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네가 이런 식이면 이상재 전무는 영원히 널 가까이 두지 않을 거다. 그 사람은…… 아니 우리 전략본부 사람들은 전부 핵심만 짧고 명료하게 보고해. 이런 것부터 배워야겠어.”
“아……! 죄송합니다. 그럼 짧게 말하겠습니다. 최성 그룹 자본력으로 유성철강 주식을 매집해 주십시오.”
이상재가 말한 게 바로 이것이었다.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자 짜릿한 기분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옆구리 한번 푹 찔렀다고 이렇게 조르르 달려오다니. 조카의 그릇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
조선희는 잡생각을 지우고 말했다.
“왜? 왜 우리 최성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유성철강 주식을 사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