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6
제신입사원 강 회장 6화화
럭셔리 라이프(2)
“저놈 저거, 완전히 이상해졌어. 완전 딴사람이야.”
박 팀장은 팀원들을 모아 놓고 조금 전 있었던 사건을 말했다.
“정말요? 황 인턴이 그렇게 했다고요?”
“정말이라니까. 늘 주눅 들어 있던 그놈이 보안 요원을 호통치는데…… 진짜 딴사람 같더라니까.”
“이건 뭐…… 사고로 뇌를 다쳐 천재가 되거나 초능력자가 되는 영화는 봤어도 머리는 더 나빠진 대신 성격이 변한 건 처음 보네.”
조혜영 대리는 팀장과 팀원들 말을 가만히 듣다 아주 기특한 생각을 떠올렸다.
“저기, 팀장님.”
“응. 조 대리, 왜?”
“드디어 인턴을 써먹을 방법이 생각났어요.”
“그래? 어디다? 이젠 타자도 독수리 타법으로 치던데?”
“그러니까요. 문서 빼고 다른 거 시켜야죠.”
“우리가 문서 빼고 뭐 할 게 있어?”
“싸움이요. 성격 완전 변했다면서요? 들어 보니까, 완전히 쌈닭으로 변한 것 같은데.”
“싸움? 누구랑 싸워?”
“협조 안 하는 영업본부, 어때요?”
박 팀장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그리 썩 내키지는 않았다.
조금 전 보안실에서 싸우던 모습을 정확히 묘사하지 못했다. 싸워서 이길지도 모르지만, 더 큰 문제를 만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팀에서 가장 고생하는 조 대리를 보니 안 된다는 소리를 못 하겠다.
“그럼 그렇게 해. 단, 조 대리가 확실하게 컨트롤하고. 그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야. 회장님을 들이박은 놈이니까.”
박 팀장은 진심이었는데 모두가 웃는다. 느낌이 쎄하다.
* * *
“이해했어요?”
이 애가 누굴 바보로 아나?
“그러니까, 영업부가 굴리는 외주 업체, 그 외주 업체에 이미 결제한 원부자재 재고 현황을 정리해야 한다는 거지?”
조 대리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이 인간은 사고 뒤부터 이상하게 말이 짧다. 따끔하게 말버릇을 고쳐 주고 싶지만, 어쩌면 이런 시건방진 모습이 더 잘 먹힐지도 몰라 당분간은 참기로 했다.
“그렇지. 그런데 영업부가 워낙 바쁘다 보니 그 현황을 우리 쪽으로 빨리 트랜스를 안 해. 협조 잘하는 곳도 있지만.”
이 애가 지금 빚쟁이처럼 독촉하는 일을 맡기는 건가?
“그런데 원래는 재깍재깍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영업부도 외주 업체에 쌓아 둔 재고의 현황 파악을 빠뜨리지 않을 텐데? 안 그래요?”
“거래하는 업체별로 다 정리해서 넘겨야 하니까 귀찮은 일이긴 하지. 자체 양식이 아니라 우리 내부 양식에 맞춰 넘겨야 하니까. 아무튼 이제부터 황 인턴이 그것 좀 받아 줘. 이번엔 분기 결산이라 좀 급해. 모레까지 끝내야 해.”
“뭐, 그럽시다.”
그럽시다? 이건 뭐 선심 쓰듯 일 좀 해 준다는 거야, 뭐야?
조 대리는 ‘참을 인’ 자 세 번을 가슴에 새기며 리스트를 내밀었다.
“나머지는 내가 맡을 테니, 여기 여섯 개만 받으면 끝. 어때요, 괜찮지?”
강 회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조 대리가 내민 리스트를 받았다.
부서명, 담당자, 부서 전화번호 그리고 담당자 핸드폰 번호까지.
“말 안 통하면 직접 찾아가서 드러누워 버려. 그 인간들 그래도 줄까 말까야.”
참 힘들게들 산다.
줘야 할 놈은 주고, 받아야 할 놈은 받으면 되는 간단한 일을 주니 마니 하며 드잡이질까지 하다니.
“거, 내가 알아서 할게요.”
강 회장은 의자를 돌려 책상 앞에 앉았다.
수화기를 들어 리스트의 첫 번째 부서로 전화를 걸었다.
-네, 부품 3팀 김철호 대리입니다.
“여보세요. 여기 자재 2팀입니다.”
-아…… 거참, 준다고 했죠? 지금 바빠 죽겠는데…… 그만 좀 쪼아요.
용건을 꺼내기도 전에 짜증이 가득 묻어난 목소리를 들으니 이놈도 참 안쓰럽다.
“쪼는 건 아니고, 모레까지 자료 안 주면 부품 3팀 자료는 빵꾸 냅니다.”
-뭐? 야!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반말하지 말고. 그럼 어떡해, 자료 안 준다는데? 그냥 빈칸으로 보고서 만들어야지, 내가 그냥 대충 채워 넣어? 그럴 수는 없잖아. 아무튼 우리는 모레 마감 칠 거니까, 그 뒤에는 당신이 알아서 해. 그럼 됐지? 이만 끊는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조 대리의 앙칼진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 황준현!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팀장의 목소리에 바로 묻혔다.
“야! 너 미쳤어? 빵꾸 내기는 뭘 빵꾸 내? 그럼 빈칸 결산 자료라도 만들자는 거냐? 저거, 저거…… 개념이 없어요. 아니, 결산이 뭔지도 모르는 것 아냐?”
강 회장은 화내는 사람을 보자 조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무역 회사는 당연히 영업부서 위주로 돌아간다. 그러니 타 부서를 싹 묶어 지원부서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원부서가 영업부서의 시다바리는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아직 모르는 더 막강한 힘을 가진 부서다.
“흥분하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요.”
모두 소리치던 입을 닫았다. 인턴 사원의 굳은 표정과 눈빛이 뭔지 모를 위압감을 준다.
“사람 사는 데 힘든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나보다 못난 놈이 내 앞에 서는 거야.”
강 회장은 ST 그룹 최 회장을 떠올렸다.
같은 나이, 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
지지리도 공부를 못하고, 아니 안 하고 놀기만 한 놈인데 기부 입학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그놈이 그룹을 맡을 때, 이제 ST 그룹도 망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대통령의 공공 기관 민영화 정책이 나오자마자 그놈이 알짜배기 공기업을 두 개나 먹어 버렸다. 이건 정책이 아니라 ST 그룹 밀어주기였을 뿐이다. 혜택을 얻은 건 ST 단 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 공기업 인수 때문에 ST는 재계 서열 10위권으로 도약했고, 여전히 굳건히 순위를 지킨다. 뉴스에 ST라는 이름만 나와도 소화가 안 된다.
“여기 계신 분들이 영업부서 놈들보다 학벌이 달려, 스펙이 달려, 실력이 달려? 그냥 같이 입사했는데 회사에서 가라는 부서로 왔을 뿐이잖아. 왜 영업부서에 질질 끌려가는데?”
팀장까지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공감하기 때문이다.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연말 인센티브는 항상 영업부서 사람들이 몇 배는 더 가져간다. 일이 다를 뿐이지, 고생하는 건 다 똑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보다 못난 놈이 내 앞에 서는 것도 열 받는데, 마치 내 위에 있는 것 같아. 앞과 위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거든?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영업부서와 지원부서는 앞뒤도 아니고, 위아래도 아니야. 그냥 평등하다고. 적어도 사장님이나 회장님은 그렇게 볼걸? 그냥 똑같은 사원?”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거냐? 지금 네가 사고 친 거랑 무슨 상관인데?”
조 대리는 당장 눈앞의 불똥부터 꺼야 하는데, 인턴 놈은 무슨 초빙 강사 같은 소리만 지껄인다.
“끝까지 가는 거지.”
“뭐?”
“벼랑 끝에 가 봐야 알아. 어떤 새끼가 떨어지는지, 어떤 새끼가 매달리는지…….”
“도대체 무슨 소리야?”
강 회장은 더 이상 설명하기 싫었다. 아니, 설명할 수 없었다.
제대로 싸운 적이 없는 놈들에게 어떻게 싸움의 기술을 말하나 싶었다.
영업부가 지원부서 위에서 노는 건 바로 영업부 놈들은 매일같이 싸워 대기 때문이다.
실적 하나로 경쟁사, 경쟁 부서, 같은 부서 동기 놈, 선배, 후배 심지어 하청 기업 담당자까지.
그놈들은 출근과 동시에 주변 모두와 싸운다. 그러니 이미 지원부서는 기 싸움에서 밀려 늘 저자세로 일하는 거다.
강 회장은 팀원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외면하며 일어섰다.
“팀장님, 단둘이 회의실에서 이야기 좀 하죠.”
* * *
“뭐, 상무님까지?”
“그래야 사장 귀에 들어가니까.”
“사장님?!”
박 팀장은 놀라기도 했지만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고작 외주 업체 재고 현황 정도로 사장님까지 끌어들여?
“그럼 벼랑 끝이 고작 팀장 선이었겠어요? 임원 선이었겠어요? 사장 정도는 돼야 영업부도 벼랑 끝이라는 걸 알겠죠?”
“그러다 우리가 떨어지면? 영업부가 매달려 살아남으면? 우린 아주 좆 되는 거야.”
“그런 계산도 없이 벼랑으로 가? 계산 끝내고 벼랑으로 가는 거요.”
“무슨 계산?”
강 회장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요즘 우리 회사 인력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업무 영역과 범위의 계산인데, 명색이 팀장이라는 사람이 그 정도도 못해?
“회사는 효율이 최고요. 이렇게 매달 티격태격하느니 유통의 중간 단계를 생략하는 게 나아. 안 그래요?”
“뭔 소리야?”
“그냥 영업부 빼고 자재부가 외주 업체에 직접 재고 현황 받으면 돼요. 이 건으로 시끄러워지면 그냥 자재부가 직접 한다고 해요. 바쁜 영업부 일 덜어 주니 나쁠 것 없지.”
“야! 너 제정신이냐? 아, 그렇지, 지금 제정신이 아니지. 내가 제정신도 아닌 놈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니…… 나도 미쳤지.”
박 팀장은 인턴의 뒤통수라도 한 대 갈기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영업부서 외주 업체가 몇 개인 줄은 알아? 팀당 최소 열 개 이상. 그런 영업 팀이 수십 개야. 적게 잡아도 500, 어쩌면 천 개도 넘어. 그 많은 업체를 어떻게 관리해?”
“말 안 듣는 말년 병장 수십 명 줄 세우는 것과 말 잘 듣는 신병 천 명 줄 세우는 것, 어떤 게 더 쉬울까요?”
“응?”
“최성물산 외주 업체가 아무리 많아도 우리 양식 툭 던져 주고 채워 오라고 하면 하루면 끝날 일입니다. 게다가 자재부는 지원본부 아래고, 지원본부는 자금 집행 관리까지 해요. 원하는 자료 제때 제출 안 하면 자금 집행 정지. 칼자루를 쥐고 흔들 수 있는데, 천 개든 2천 개든 무슨 상관입니까?”
듣고 보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자재부는 이걸 손에 쥐고 벼랑 끝으로 가는 겁니다. 여차하면 우리가 다 하겠다는데 벼랑에 떨어질 리 있겠습니까?”
“좋은 생각이긴 한데, 그래도 천 개나 되는 업체가 보내 준 목록을 정리해야 하는 거잖아. 우리 회사 양식이라고 해도 취합하는 데…….”
“충원하세요.”
“충원이 말처럼 쉬워? 그것도 매일 하는 일이 아니고 결산 때만 하는 건데?”
“그럼 그때만 임시직 몇 명 고용하면 되죠. 천 개의 외주 업체 관리에 영업부 일손까지 덜어 주는데, 매달 이삼 일 단순 임시직 쓰겠다는 걸 반대할 사장님은 아닐걸?”
타당하다 생각하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박 팀장에게 강 회장은 덥석 물 미끼를 하나 던졌다.
“일이 많아야 팀이 커지고, 팀이 커져야 아무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승진도 빨리하고. 기본입니다.”
박 팀장의 표정이 긍정적으로 변했을 때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리며 젊은 놈 하나가 등장했다.
“야! 조금 전 나랑 통화한 놈이 너냐? 너 인턴이라면서? 어디서 인턴 주제에 싹퉁머리 없이 전화를 그따위로 해?”
강 회장은 삿대질하며 소리치는 놈에게 말했다.
“너 나 아냐?”
“뭐?”
“초면인 사람에게 대뜸 반말하는 건 어디서 배워 먹은 버릇이냐? 니가 먼저 반말한 거 까먹었지?”
“이 새끼가 진짜…….”
영업부서 젊은 대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박재우 팀장의 고함이 터졌기 때문이다.
“야! 이 새끼가 미쳤나……! 지금 우리 회의 중인 거 안 보여? 어디 감히 대리 주재에 팀장님 회의하시는데 뛰어 들어와서 지랄이야, 지랄이! 싹퉁머리 얻다가 잘라 먹었어!”
됐다.
강 회장은 박 팀장이 결심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애들 가르치기가 쉬운 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