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92
제신입사원 강 회장 92화화
타짜 회장님(1)
“이건 무슨 회사야?”
손충재 사장이 미간을 찌푸린 채 건성으로 서류를 훑었다.
“서류에 나와 있는 대로, 유럽 투자사입니다.”
“나도 룩셈부르크가 유럽에 있다는 것쯤은 알아. 명함 말고 얼굴 말이야. 누구 돈이야?”
이상재가 슬쩍 웃었다.
“최기석 회장입니다.”
“ST 최 회장?”
“네.”
“괜찮을까?”
“아군입니다. ST가 우리 건설을 노리지는 않습니다. 아니, 관심도 없으니까요.”
“ST랑은 우호적인 거 알아. 내가 걱정하는 건 나중에 자금 출처 때문에 우리를 세탁소로 오해하는 거야. 어차피 그 돈은 비자금이잖아.”
“괜찮습니다. 최 회장 비자금은 미국으로 들어갔고, 그 돈으로 산 주식을 담보로 빌린 돈이니까요. 그 돈은 은행 겁니다.”
손충재 사장은 긴 숨을 내쉬었다.
“좋아, 돈은 깨끗하다 치고…… 그런데 말이야…… 건설주만 매각하는 건 좀 그래. 너무 순진하잖아? 건설만 분리한다는 계획이 투명하게 드러나니까. 안 그래?”
“잡주도 좀 섞자는 거죠?”
“그래야 하지 않을까?”
“섞으면 얼마나 됩니까?”
“8천억 정도?”
“그 정도는 여유 있습니다.”
“좋아, 그럼 난 공시 준비하지. 그런데 이 전무.”
손 사장은 다시 불안한 표정을 보였다.
“우리 건설주 매각 공시했을 때 엉뚱한 놈이 가로채면 어떡하지?”
이상재가 웃었다.
“사장님, 괜한 걱정하시는 것 보니 은퇴하실 때가 다가온 것 같습니다. 늙으면 걱정만 많아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우리 건설주를 탐내는 놈은 없을 거야.”
“시장에서도 거래가 거의 없는 주식입니다. 그냥 배당주에 불과한데 누가 탐내요? 그리고 이번 매각은 시장 가격보다 좀 더 비싸게 파는 건데…… 걱정 마십시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갑니다.”
사실 이들 앞에는 건설주를 매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남아 있다.
“LK는 어떻습니까?”
“뜨뜻미지근해. 우리 제안이 나쁘지는 않은데 정리할 만큼 실적이 나쁜 것도 아니거든.”
한국에서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그룹이다.
고작 4천억 규모의 사업부 하나를 정리하는 건 그룹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대신 부정적인 이슈가 되니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꼭 성사시켜야 합니다. 그게 명분이니까요.”
“최후의 방법은 남아 있어. 돈을 더 주는 거야. 어때, 그렇게라도 해?”
손충재 사장으로서는 부담되는 조건이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주인처럼 일하는 중 아닌가? 조금이라도 책잡힐 일은 피하고 싶었다.
평가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인수한다면 분명 온갖 억측이 나올 것이고, 구설에 오른다.
“말 그대로 최후의 방법 아닙니까? LK의 최종 결론 듣고 다시 생각하시죠.”
두 사람은 갑자기 등장한 방해꾼 때문에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강동성은 손끝이 떨릴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마침 이 전무님도 계시네요. 건설 주식 매각…… 사실입니까?”
최대한 비밀을 유지했지만 LK에 의사를 타진했을 때 비밀이 새어 나간 게 틀림없다.
“일단 앉지.”
손 사장이 점잖게 말했지만 강동성은 소리를 질렀다.
“대답부터 하세요! 사실입니까?”
“사실이야. 됐나? 그러니 이제 앉지?”
강동성은 소파에 털썩 앉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금 뭐 하지는 겁니까? 이제 주식까지 손대는 겁니까?”
이번엔 손 사장이 발끈했다.
“말조심하게. 내가 주식 팔아 돈 챙기는 거야? 손대다니?”
“화학 사업부 멋대로 팔아먹는 거 참았습니다. 중공업, 엔지니어링까지 가져가는 거 참았습니다. 그런데 건설까지 팔아먹으려고요? 건설, 제 손때 묻은 회사입니다.”
강동성은 손 사장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상재를 향했다.
“검찰 이용해서 내 동생 쳐내더니 이제는 제 차례라는 겁니까? 제 손에서 건설 거둬 가고 절 그룹에서 내치려고요? 그런 겁니까?”
이상재는 아주 짧은 말로 강동성의 입을 닫아 버렸다.
“건설에서 사면 됩니다. 그럼 건설은 철옹성으로 바뀝니다.”
“뭐…… 뭐요?”
“우리가 건설주를 매각 대상으로 삼은 건 그만큼 상품 가치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솔직히 건설주가…… 예전에 비해 반 토막 나지 않았습니까? 건설 경기 별로라서 내놔도 팔릴지…… 의문입니다.”
경기 탓이라고 말했지만 경영자의 책임을 묻는 말이기도 했다.
최성건설은 강동성이 본격적으로 경영을 시작했을 때부터 계속 내리막이었다.
손 사장도 입을 열었다.
“시장에 던지면 그 반 토막 난 주가가 다시 반 토막 날까 봐 공시하고 일괄 매각하는 거야. 매각 가격은 당연히 시장가보다 비쌀 거고. 공시 가격은 7천억이야. 이 전무 말대로 이 가격에 사는 놈이 나올지 모르겠어. 나야 건설이 사 주면 땡큐고.”
강동성은 손 사장의 말이 건설주 7천억 내고 빨리 회수해 가라는 뜻으로 들렸다.
“지금 그 주식, 우리 건설이 가져가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그래 주면 제일 좋고.”
“그럼 하나 묻겠습니다. 왜 건설입니까? 화학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이 건설만 있습니까?”
화학이 그룹 지주 회사다. 당연히 대부분의 계열사 주식을 가지고 있다.
손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건설 외의 어떤 계열사 주식을 팔까? 적당한 거 있으면 말해 보게.”
다시 강동성의 말문이 막혔다.
계열사 대부분이 최성화학과 관련 있는 화학 회사다. 그리고 방산, 바이오. 증권이다.
방산이야 이제 추진력 생겼으니 팔 수 없는 상황이고, 바이오와 증권은 모두가 탐내는 캐시 카우 아닌가? 나머지 계열사 주식이야 다 팔아 봤자 몇백억 나오지도 않는다.
자금 마련을 위해서 건설주를 매각하겠다는 판단은 옳다. 하지만 과연 옳은 판단일까? 아니면 정치적 판단일까?
강동성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돈이 필요하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꼭 지분을 정리해야 하는 건 아니죠. 차라리 건설 지분 우리 회사로 넘기십시오.”
“계열사 지분 이동은 회장님도 마음대로 못 해. 그게 쉬운 일이면 그룹 지배하는 걸 누가 신경 쓰겠나? 우리나라 최대 재벌도 그게 힘들어서 온갖 편법을 다 쓰다가 감방 들락거리는 것 아닌가?”
결국 돈 주고 사라는 소리다.
결국엔 이번 일도 정치 싸움이며 권력 싸움이다.
강동성은 최근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 지금껏 아랫사람이었던 놈들이 싸우자고 덤비면 그건 진심이다.
싸움을 그만두라는,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하자는 제안은 통하지 않았다. 그 싸움은 꼭 치러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졌다.
그러나 이번엔 저들이 안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설주 21퍼센트를 7천억에? 자신이 판단해도 좀 비싸다. 이 가격이면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을 몰아내기로 작당했지만 계획이 좀 엉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강동성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돌아섰다. 하지만 안심하는 건 아니다.
건설주 매각이 연막이고 다른 계획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매각 계획이 사실이라면 매각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어떻게 책임을 지우고 탄핵할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 강동성은 후자 쪽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 * *
“강 부사장이 알아 버렸어. 그런데 가격을 듣더니 별말 없이 돌아가 버리던데…….”
이상재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하자 강 회장은 속이 터질 뻔했다.
“7천억에 주식을 팔기 어렵다고 생각하나 보죠?”
“아마도. 사실 좀 과한 가격이긴 해.”
강동성은 회사의 자산 내역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자산을 정확히 파악했다면 7천억이 마냥 비싸기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21퍼센트로 회사를 지배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설마 몰래 사 모은 주식이 더 있는 건가?
뭐가 됐든 장남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다.
“사실 더한 문제도 있어.”
이상재의 난처한 표정 때문에 생각이 끊겼다.
“LK가 미적거려. 그쪽에서 매각 안 한다고 정식 통보하면 건설주를 팔아 치울 명분도 없어져.”
이쪽이 아들보다 더 큰 문제다.
“LK에서 정확히 뭐라고 했길래 미적거린다고 판단한 겁니까?”
“제안 던졌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미적거리는 거지. 안 그래?”
급한 쪽이 손해 보기 마련이다.
느긋해도 괜찮은 LK가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저 미적거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확실한 한 방을 던져야 하는데 그 한 방이 돈이라는 게 발목을 잡는다.
전문 경영인이 급하지도 않은 물건을 괜히 비싸게 주고 산다면 분명 문제가 된다.
지금 풀어야 할 건 강동성이 아니라 LK다.
강 회장은 단번에 LK와 협상을 끝낼 묘수를 생각하다 아주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LK의 명예 회장.
그 양반이 아직도 경영에 적극 관여하던가?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건강이다.
“전무님.”
“왜? 네 눈빛 보니까 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예전에 강 회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라서요.”
“뭐, 회장님이?”
이상재가 몸을 벌떡 일으킬 정도로 놀란 모습을 보였다. 혹시나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오해하는 것 같다.
“네.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였는데…… LK 명예 회장님 아직도 정정하신가요?”
“그 영감님? 정정하지. 자식들에게 계열사 싹 쪼개 주고 나서 해외여행 다니면서 남은 여생 즐긴다고 소문났잖아.”
그 해외여행은 보통의 여행과 다를 것이다. 아주 특별한 목적이 있는 여행이다.
“야! 뭔지 말을 해야지.”
이상재가 재촉하자 강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 양반 도박 좋아하는 거 아시죠?”
“뭐?”
이상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만 깜빡였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랬던 것 같은데? 몇 번 들켰지, 아마? 원정 도박…… 하지만 현업에서 물러나고 나서부터는 그런…… 아……!”
“요즘 즐긴다던 해외여행이 바로 원정 도박 여행이죠. 사실 나이 든 노인이 음식도 안 맞고, 물도 안 맞는 외국을 뭐하러 그리 자주 나가겠습니까? 외국은 지겹도록 돌아다닌 양반인데.”
“그럼 지금도 그 버릇 못 고친 거야?”
“가장 지독한 중독이 도박이라면서요? 마약보다 더 끊기 힘들다던데…… 돈 있고 시간 넘치는 사람이 관광지 둘러보러 외국 가겠습니까?”
“지금은 마음 편히 카드 만지며 즐긴다? 외국 카지노에서?”
“그게 가장 올바른 해석 같은데요.”
“그렇다 쳐.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냐? 회장님 에피소드가 뭔데?”
“인천에 우리 호텔이 있잖습니까? 팔레스.”
강 회장도 그렇고 이상재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까맣게 잊었던 이름이다. 무려 40년도 더 된 호텔, 같은 이름의 호텔이 부산에도 하나 더 있다.
40년 전에야 돈을 쓸어 담는 황금알 낳는 오리였지만 지금은 늘 적자를 면치 못하는 골칫덩이다.
과거에 이 호텔이 잘나간 이유는 하나다. 바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돈 버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옛날에야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으니 카지노에 대한 환상이 있었지만, 지금의 도박꾼들은 언제든 마카오로,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면 된다.
외국인들도 더는 팔레스를 찾지 않는다. 40년이나 된 낡은 호텔보다 훨씬 세련된 현대식 호텔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재는 팔레스라는 이름만으로 이야기의 전후를 다 알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