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14)
“승도흥 갖다 줘라.”
“예? 아, 그리하겠습니다.”
철궤에는 약간 녹이 슬어 있었고, 뚜껑은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다.
물기가 살짝 있는 걸로 봐서 물속에서 보관하던 철궤인 모양이었다.
승도흥에게 가져다주라는 걸 보면 진법과 관계된 물건이 분명했다.
하오문도 두 명이 얼른 달려와 철궤를 들고 어딘가로 갔다.
마차가 도착하면 거기에 실을 것이다.
잠시 후, 여러 대의 마차가 빠르게 객잔 앞에 도착했다.
벽태산은 그 중 한 대에 올라타며 말했다.
“느긋하게 가자.”
다들 의아해 했지만, 느긋하게 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내 마차가 전부 출발했다.
벽태산의 지시대로 느긋하게 달린 마차는 어느새 남창을 벗어나 장사를 향해 천천히 달렸다.
* * *
오대세가에 속하는 다섯 가문은 대등한 동맹 관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각 가문이 모두 동등한 힘을 가진 건 아니었다.
가문의 힘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니 그 순위가 일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궁세가나 제갈세가는 대체적으로 높은 쪽에 속해왔고, 나머지 세 세가는 굉장히 역동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그리고 현 시대에는 하후세가가 다섯 가문 중 가장 강력했다.
하후세가의 가주인 하후관천은 방금 자신에게 전해진 서찰을 읽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회합을 하자고? 이 와중에?”
오대세가는 얼마 전, 은밀하게 세가를 흔들려던 세력이 있다는 걸 감지했다.
그들을 파악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번에 그 정체가 밝혀졌다.
무명이라는 조직이었는데, 최근에는 그들과 한바탕 크게 싸워야 했다.
그들이 자신들의 세력권 내에 지저분한 뿌리를 박고 있으니. 그걸 정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제법 많은 근거지를 정리할 수 있었지만, 그게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명은 생각보다 질기고, 강하고, 은밀하고, 오래된 조직이었다.
그들을 제대로 청소하려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무명은 결코 어설픈 조직이 아니었다.
한데 무명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회합이라니.
오대세가의 회합은 마지막으로 치러진 지 오 년이 넘었다. 그 뒤로는 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흐지부지 되고 있었다.
“황보세가라······.”
이번 회합의 주체는 황보세가였다.
일단 황보세가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는 것이 먼저였다.
하후세가에도 비각이 있었다.
오대세가 중 선두에 선 가문답게 비각의 수준도 다른 곳보다 월등했다.
하후관천은 비각에 연락을 해서 황보세가에 대한 최신정보를 구하라고 지시했다.
안 그래도 비각에서 그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알아서 조사를 한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굉장히 심각했다.
“황보세가의 비각이 쓸려 나갔다고?”
그뿐 아니라 세가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황보엽도 여러모로 망가져 버렸다.
황보세가에서는 그 모든 일의 배후가 무명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가능성은 충분했다. 무명은 이번에 제법 큰 타격을 받았는데, 황보세가가 있는 남창에서의 피해가 가장 컸다.
“보복이로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후관천은 이번 회합에 응하기로 결정했다.
이건 쉽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또한 오대세가끼리 알아서 할 사안도 아니었다.
무림맹과 흑련도 참여 시켜야 한다.
하후관천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머지 오대세가에서도 같은 과정을 통해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오대세가의 회합이 오 년 만에 결정되었다.
끝
남창에서 장사로 돌아가는 길은 굉장히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여러 대의 마차를 이용해 이동하니 편하기까지 했다.
마차는 전부 돈 주고 구하기도 어려운 좋은 마차였다.
보통의 마차와 달리 오랫동안 타고 다녀도 엉덩이도 배기지 않고 힘들지도 않았다.
마차 내부에 푹신한 이불을 두툼하게 깔아서 아차하는 순간 스르륵 잠이 들 정도였다.
천추신의는 마차에 탄 이후부터 끊임없이 감탄했다.
“대체 이런 마차는 어디서 구하는 걸까?”
“하오문 애들이 어디 보통 녀석들이냐? 다 알아서 구하는 방법이 있겠지.”
“아무튼 이렇게 가니 진짜 편하고 좋네. 이런 식이면 공자님이랑 같이 다니는 것도 괜찮은 거 아니오?”
“난 그래도 집에서 편히 쉬는 게 낫다. 차라리 약을 만들 때가 마음이 더 편했어.”
천추신의가 머리에 손을 괴고 비스듬히 누운 채로 낄낄 웃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집이 최고지.”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소청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우리끼리만 마차에 타도 괜찮은 겁니까? 보아하니 다른 마차에는 더 많이 탄 것 같던데······.”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왜? 예쁜 애들 보니까 심장이 두근두근 해? 뭐 어떻게 좀 해보고 싶어?”
소청명이 기겁해서 맹렬히 손사래를 쳤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전 그저······.”
“그저 뭐?”
“그저 그분들이 불편하실까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겁니다.”
천추신의가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 괜히 마음 주고 그러지 마라. 걔들 다 우리 공자님만 바라보고 사는 애들이니까.”
“예?”
소청명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공자님께서는 정혼하신 분이 있지 않습니까?”
소청명은 그렇게 말하며 연하린의 자태가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연하린의 미모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감히 연심조차 가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벽태산의 정혼녀라는 말을 들고서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고개를 끄덕였었다.
“뭐, 알아서들 하겠지. 아무튼 그러니까 헛물켜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란 말이야. 알아들어?”
소청명이 소심하게 투덜거렸다.
“애초에 딴 생각을 한 적도 없습니다.”
천추신의가 낄낄 웃으며 소청명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크힉!”
소청명이 기괴한 신음을 뱉으며 몸을 뒤틀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은. 그래서, 누구냐?”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네놈이 마음에 두고 있는 아이가 누구냐고.”
“무, 무슨! 아닙니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에이, 아니긴 무슨. 애들 보는 눈이 심상치 않던데. 너, 눈빛 조심해라. 아주 망측해.”
“망측하다니,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그러니까, 누구냐고. 설마!”
천추신의가 큰 소리로 말하자, 소청명이 흠칫 놀라 그를 바라봤다.
“설마 하린이냐? 하긴, 하린이 미모가 보통은 아니지. 내가 보기에 천하에서 견줄 사람이 없을 거다. 거기다 무공은 또 어떻고.”
천추신의의 말에 소청명이 기겁했다.
“무, 무슨! 아닙니다! 그럴 리 있습니까!”
하지만 천추신의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확실히 하린이 정도면 임자가 있어도 욕심이 날 만하긴 하지. 그래서, 우리 공자님이랑은 언제 한 판 붙을 거냐?”
“아니라니까요! 제가 마음에 둔 사람은 그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천추신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일침괴도 얼른 몸을 일으키더니 소청명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소청명은 아차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하, 이놈 진짜. 얌전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부뚜막에는 이미 올라가 있었어.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렇게 생긴 놈들은 겉과 속이 다른 법이거든.”
소청명이 어이가 없어 입을 쩍 벌렸다.
천추신의는 일침괴를 보며 말했다.
“형님도 저놈 잘 봐두쇼. 얼굴 특징 확실히 기억하고. 그래야 어디 가서 뒤통수 맞는 일 없을 거 아뇨.”
일침괴가 소청명과 천추신의를 번갈아 바라봤다.
“왠지······ 너랑 닮은 거 같은데?”
천추신의가 정색하고 소청명을 바라봤다.
“너 표정 잘 선택해라. 왠지 기분 나쁜 표정인데? 내가 지어야 할 표정을 왜 네놈이 지어?”
일침괴가 상황을 대충 정리했다.
“그만 해라, 울겠다. 그나저나 너무 편하니까 불안하지 않냐?”
“형님. 제발 그 입 좀 조심하쇼. 형님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단 말이오.”
“좀 이상하지 않느냔 말이야.”
일침괴의 말에 천추신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좀 이상하긴 하오.”
소청명도 마찬가지 표정으로 대답했다.
“꼭······ 우리를 아무도 못 보는 것 같은 기분인데, 그렇지 않으십니까?”
그 말에 두 사람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그거였다.
애초에 이동할 때, 관도에서 약간 벗어난 채로 움직였기에 정면에서 마주칠 일은 없었다.
사실 그것도 이상했다. 마차를 굳이 왜 관도에서 벗어난 채로 움직인단 말인가.
하지만 벽태산의 지시였으니 거기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간다고 해도 오가는 사람들은 충분히 이쪽에 신경을 써야만 한다.
한데 그 누구도 벽태산 일행의 마차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치 이쪽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지나쳐갔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것이 반복되니 수상하지 않겠는가.
“전 어젯밤이 더 이상했습니다.”
“어젯밤?”
어젯밤은 노숙을 했다. 노숙도 하오문도들이 있기에 굉장히 쾌적하게 할 수 있었다.
모닥불도 제법 많이 피웠고, 벽태산의 시비들이 우르르 나서서 제대로 요리를 했기에 식사도 아주 훌륭했다.
“그 정도로 인원이 모여 있고, 모닥불이 많으면 지나가다가 합류해서 불을 나눠달라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아무도 없지 않았습니까.”
“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소청명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분명히 이쪽을 쳐다봤습니다. 한데 눈빛이······ 마치 그냥 허공을 지나치는 듯했습니다.”
“잘못 본 건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소청명이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번갈아 바라봤다.
두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좀 이상했으니까.
“아무래도······ 공자님이 또 뭔가를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거 같지?”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공자님이라는 말이 나온 뒤로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신경을 꺼 버렸다.
소청명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거······ 이렇게 그냥 넘어가도 되는 일인가?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아무래도 여기서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했다.
* * *
마차들이 장사에 도착했다.
제법 긴 여정이었다.
벽태산의 지시를 충실히 지키느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정말 느긋하게 왔기에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장사에 들어선 마차가 대로로 접어들었다.
한데 마차를 피해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차를 몰던 하오문도들이 당황해서 마차를 멈췄다.
사람들은 마차에 부딪히고 나서도 마차를 발견하지 못해 놀라고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걸 본 하오문도들도 똑같이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이상한 광경을 몇 번 보긴 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확인한 건 처음이었다.
그때 마차 안에서 벽태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자.”
하오문도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다시 마차를 출발시켰다.
사람들이 이 마차를 보지 못하니 분명히 사고가 날 것 같았다.
한데 마차를 출발시키기 무섭게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마차를 피해가기 시작했다.
마차가 보이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마차가 지척에 오기 전까지는 마차가 있는 줄도 몰랐다.
사람들은 마차가 가까이 다가오면 그냥 피했다.
뭘 알고 그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옮겨 마차가 가는 길에서 벗어났다.
마차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이 신비로운 광경을 계속 눈에 담으며 하오문도들은 여전히 느긋한 속도로 마차를 몰았다.
그들은 그렇게 각월객잔에 도착했다.
* * *
벽태산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앞에 서 있는 자들을 슥 둘러봤다.
지금 기분이 제법 괜찮았다.
벽태산 앞에 선 자들은 나충길과 나헌탁, 그리고 제위룡이었다.
제위룡은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벽태산의 시선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나헌탁과 나충길은 아주 담담했다.
벽태산은 나충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칼 좀 썼구나.”
나충길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알아봐 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이었다.
“교, 아니, 공자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몸이 부서지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벽태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위룡을 쳐다봤다.
“저기······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이제 거의 다 되었습니다. 요만큼, 진짜 요만큼 남았습니다.”
제위룡이 엄지와 검지가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이 하며 애절한 표정을 지었다.
벽태산은 제위룡에게 뭐라고 하지 않고 나헌탁을 쳐다봤다.
나헌탁은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금월상단의 자금 흐름을 다양한 방법으로 막아서 움직임을 둔화시켰습니다. 그렇게 한 다음, 새로 만든 상단을 이용해 요소요소를 찔렀습니다.”
“결론만.”
저런 복잡한 얘기를 자신이 들어서 뭐 하겠는가. 그런 건 다 알아서 하고, 결론만 가져오면 된다.
“금월상단 본단과 지부 간의 자금 흐름을 끊어버렸습니다. 이제 각개격파만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