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
손가락 하나면 목을 잘라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약한 사람인데, 왠지 지금 이 순간은 절대고수를 눈앞에 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천경완은 스스로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검을 쥔 이후로 자신이 이렇게나 위축된 적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백면서생조차 안 되는 병자에게 말이다.
벽태산은 그런 천경완을 보며 눈을 살짝 빛냈다.
“제법인데?”
원래는 저런 말을 들으면 더 불쾌해야 한다. 하지만 천경완은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벽태산은 자신의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앞으로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잘 생각하고 말해.”
벽태산은 다시 휙 뒤돌아 성큼성큼 걸어갔다.
천경완은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벽태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 * *
향화루의 진법가들은 진법에 이상이 있는지 매일 확인해야만 했다.
하지만 진법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오직 벽태산이 그 방에서 묵을 때만 진법에 이상이 발생했다.
향화루주는 이 상황을 제법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자, 그래서 결론은?”
향화루주의 질문에 향화루 소속 진법가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서로 눈치만 살폈다.
향화루주의 차가운 시선이 그 중 한 명에게 닿았다.
“에······ 제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진법에 손댄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진법에 손도 안 대고 효과를 주물렀다는 건가요? 금벽상단 둘째 공자의 능력이 그 정도로 대단한 줄 처음 알았네요.”
“아니, 그게······.”
눈치만 살피던 진법가 하나가 얼른 말했다.
“기존 진법을 건드리지 않고 진법의 효과를 왜곡시킬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향화루주가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봤다.
“그런 방법이 있었다고요? 제가 왜 그런 걸 몰랐을까요?”
“그걸 쓸 수 있는 사람이 천괴서생뿐이라서 그렇습니다.”
“천괴서생?”
향화루주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천괴서생이 누군가. 진법과 기관에 대한 능력이 하늘에 닿았다고 알려진 사람이었다.
진법가가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천괴서생이 몇 가지 특별한 물건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특별한 물건?”
“기의 흐름을 왜곡해 진법의 효능을 일시적으로 중화시키거나 망가뜨리는 장치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금벽상단 둘째 공자가 가지고 있다?”
“일단 제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가 한계입니다.”
향화루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천괴서생이 여기에 얽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확인은 해봐야 한다. 안 그러면 향화루의 향후 행보에 지장이 생길 테니까.
“일단 물러가세요. 진법 다시 점검하고.”
진법가들이 후다닥 물러갔다.
향화루주는 아무도 없는 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늘도 오겠지?”
그러자 천장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럴 거라 예상합니다.”
향화루주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감시해.”
“낙화루주를 감시하는 임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쪽은 보류하고 이쪽을 우선해.”
“알겠습니다.”
향화루주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천괴서생이 끼어있을 가능성은 없겠지?”
“없습니다.”
“천괴서생이 만들었다는 물건은?”
“금벽상단에서 우연히 구했을 수도 있습니다. 조사해 볼까요?”
향화루주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오늘 감시만 제대로 하면 다 알아낼 수 있는 일이야. 괜히 들쑤시지 마. 금벽상단을 우습게보면 안 돼.”
“알겠습니다.”
향화루주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죽을 날을 받았다던 사람이 난데없이 기루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놀라운데, 그 시작이 우리 향화루라고? 이걸 우연이라고 믿을 수는 없지.”
향화루주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 * *
집으로 돌아온 벽태산은 소소의 환대를 받았다.
“공자님! 오늘 연 소저 만나셨다면서요?”
벽태산이 황당한 눈으로 소소를 쳐다봤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그것도 자신이 연하린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말이다.
소소는 턱을 한껏 올리고 손을 허리춤에 턱 얹은 거만한 자세로 말했다.
“이 무한 땅에서 제 눈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답니다. 에헴.”
벽태산은 그걸 보고는 피식 웃었다.
처음엔 목을 날릴 뻔했는데, 이제 계속 보다보니 적응이 되어서 그냥 봐줄 만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적응을 제법 잘 하고 있긴 한 모양이네.’
자신을 연민의 시선으로 보는 것 말고는 전부 그럭저럭 참아줄 만했으니까.
“그런데 저기 천 무사님 표정은 왜 저래요?”
소소의 말에 벽태산이 뒤를 힐끗 쳐다봤다. 천경완이 아직 가지 않고 좀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표정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굉장히 억울하신 것 같은데?”
벽태산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소소와 천경완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게 다 보인다고?”
“에이, 저렇게 표정이 확 달라졌는데 어떻게 몰라요?”
벽태산은 저것도 재주라는 생각을 하며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든가.”
* * *
잠시 후, 소소의 말을 들은 벽태산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러니까······ 그놈이 연하린의 호위무사를 좋아하고 있다고?”
“모르셨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일편단심이었는데.”
벽태산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그래서 그렇게 발끈한 모양이다. 자신이 딴 여자를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넘겨짚은 셈이었으니까.
어쨌든 버릇은 없었고, 자신은 적당히 충고했으니 됐다고 여겼다.
“그런데 내가 기루에 가든 말든 지가 왜 난리야?”
“연 소저가 공자님을 걱정하면 유 무사님이 걱정하니까요.”
유 무사라는 건, 천경완이 좋아한다는 연하란의 호위무사, 유서연을 말한다.
벽태산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허. 이거 참. 재미난 꼴을 다 보네.”
확실히 이런 건 천마신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게 묘하게 거슬리면서도 또 흥미와 호기심을 자아내는 구석이 있었다.
“재밌네.”
벽태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아, 공자님.”
벽태산이 상념을 접고 소소를 쳐다봤다.
“천추신의가 이번 달 중으로 도착하신대요.”
벽태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딴 돌팔이 의원 필요 없다고 전해라.”
“그럼 그냥 돈을 날리는 셈이라 안 될 걸요? 제가 알기로 천추신의를 모시는 데 금을 백 냥 정도 쓰신 것 같던데.”
벽태산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천 냥짜리 몸을 들여다보려고 백 냥이나 쓴다고? 그걸로 끝도 아닐 텐데?”
소소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리고 그 커다란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공자님 몸을 꼭 고칠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울지 마라. 짜증나려고 하니까.”
벽태산은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렸다.
어쨌든 천추신의인지 하는 돌팔이 의원은 어쩔 수 없이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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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밤이 되자, 벽태산은 어김없이 기루로 향했다.
낮보다는 표정이 훨씬 풀어진 천경완이 그 뒤를 바짝 따라갔다.
물론 벽태산은 천경완의 표정이 풀어졌는지 어떤지 모른다. 그저 소소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할 뿐이었다.
왠지 천경완의 기질이 더욱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러니까 좀 더 제대로 된 호위무사 같았다.
“오늘도 향화루로 가십니까?”
천경완의 질문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이제 슬슬 도전해도 되지 않을까······ 해서.”
도전이라는 말에 천경완의 눈에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
이내 두 사람은 향화루에 도착했다.
벽태산은 향화루 안으로 슥 들어갔다.
그를 발견한 기녀가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공자님 오셨다!”
그러자 안쪽에서 기녀들이 말 그대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지금 손님을 받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 기녀도 섞여 있었다.
기녀들이 복도 양쪽으로 쭉 늘어섰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정을 담은 눈빛을 벽태산에게 열심히 보냈다.
다들 눈으로 말하는 중이었다. 오늘은 제발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열흘 만에 벽태산이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벽태산은 마침 잘 됐다고 여기며 기녀들을 슥 훑어봤다.
그런데 찾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없네?”
그의 말을 가장 가까이 있던 기녀, 화령이 들었다.
“혹여······ 찾으시는 아이가 있으십니까?”
화령은 자신을 한 번만 더 선택해 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추가로 보내며 그렇게 물었다.
벽태산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령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향화루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여기 있습니다. 여기 없다면 공자님 눈에 들 가치도 없는 아이일 텐데······.”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내 눈에 들 가치를 감히 누가 정한다고?”
“아······!”
순간,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의 박력에 화령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지금까지는 그저 밤의 절륜함 때문에 벽태산을 바라봤는데, 방금 그것이 좀 흔들렸다.
벽태산은 일단 보면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잘 생긴 미남이었다,
하지만 선이 고와서 사내다움은 약간 모자랐다. 그렇다고 여성스럽다는 건 아니었다.
굉장히 절묘한 아름다움을 가진 사내였다.
한데 방금 화령의 눈에 벽태산의 사내다움이 확 들어왔다.
“가서 나머지도 싹 데려와.”
화령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기녀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녀들 역시 화령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사방으로 흩어져 이 자리에 오지 않은 기녀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세 명의 기녀가 추가로 나타났다.
벽태산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맺혔다.
‘찾았다.’
첫 날 지나가면서 본 기녀였다.
처음부터 찾지 않은 이유는 역량을 쌓기 위함이었다.
벽태산은 세 명 중 가장 왼쪽에 서 있는 기녀에게 다가갔다.
“이름이 뭐지?”
“단영입니다.”
단영이라는 기녀를 보는 벽태산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그걸 지켜본 기녀들의 눈에 똑같은 감정이 떠올랐다.
의아함이었다.
누가 봐도 단영이라는 아이는 예쁘지 않았으니까.
아니, 예쁘고 안 예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표정이 어두워서 그런지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문제는 저 표정조차 어떻게든 밝게 보이려 애쓴 결과라는 점이었다.
‘우리 공자님 취향도 독특하시지.’
그것이 기녀들의 머릿속에 한결같이 떠오른 생각이었다.
“오늘은 너만 있으면 될 것 같구나.”
하나만 상대하기에도 벅찰 테니까.
벽태산이 본 단영은 어둠의 결정체 같은 아이였다.
대체 이 나이까지 무슨 일을 얼마나 겪었는지 혼백에 혼탁한 어둠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리고 몸이 혼백을 따라가듯 온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나 외모도 어둡기 그지없었다.
아마 첫날 이 아이의 혼백을 건드렸다면 벽태산이 아무리 증혼마공의 성취가 높았어도 위험했을 것이다.
일단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은 한 번 도전해 볼 만했다.
지난 열흘 동안 중요한 세맥들을 이었다.
이제 진짜 제대로 된 대맥을 건드려 볼 차례였다.
여러모로 중요한 도전이었다.
‘이 녀석 한 명이 지난 열 명을 합한 것보다 더해.’
벽태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성큼성큼 위로 올라갔다.
벽태산은 방을 은은히 감싸는 진법의 기운을 헤치고 들어갔다.
그 순간, 묘한 이질감을 감지했다.
‘하, 이놈들 봐라?’
아무리 천마이던 시절의 무공을 잃었다고 해도, 그래서 감각이 많이 닫혔다고 해도, 그래도 명색이 천마였다.
그런 천마의 감각을 속이고 몰래 접근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려면 최소한 무림맹에서 실력 순으로 줄을 세워 백 번째 안에는 들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벽태산은 천장에서 호흡을 거의 멈추다시피 한 채 숨어 있는 기척을 잡아냈다.
은신 실력은 제법이지만, 무공은 은신에 비해 좀 떨어졌다. 물론 감각이 아직 완벽하지 않기에 약간의 오차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저놈의 실력이 아무리 별로라 해도 지금의 벽태산보다는 강할 거라는 점이었다.
벽태산이 아무리 기세를 이용한다고 해도 저놈이 눈 딱 감고 칼 한 번 훅 하고 내지르면 모든 게 끝난다.
단영을 데리고 나가 버릴까도 했지만, 그 방법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서 일단은 보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