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66
제266화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니라고 했다.
꽤 예전부터 도명준의 아버지는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있었으며, 최근에는 급기야 각혈을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안 그래도 각오하고 있던 참이라고.
도명준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는 예전부터 자주 웃었다.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서 웃었고, 상황이 난처해지면 무마하려고 웃었다.
슬플 때는 우는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성유다와 이세화는 그런 도명준의 성격을 잘 알았다.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할 때 그가 지었던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도.
둘은 도명준의 아버지 장례식에 가려고 했다. 그러나 도명준은 두 사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너희는 적응하기 어려울 거야. 분위기 맞추는 것도 힘들 거고.”
그것이 두 사람을 못 오게 막은 이유였다.
부두교의 장례식은 길었다. 부두교 초대 교주의 죽음은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성유다와 이세화는 화면 너머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도명준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의 모습을 결코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뻔하고 진부한 위로의 말조차 직접 건넬 수 없었다.
“명준 선배는 아직도 연락이 안 돼요?”
“그래.”
도명준, 성유다, 이세화는 늘 셋이서 만났지만, 장례 이후로는 둘만 만났다.
더는 도명준과 연락을 할 방법이 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난 뒤, 그가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부두교 초대 교주의 죽음을 다루던 기자들은 이제 부두교 2대 교주의 즉위를 다루었다.
2대 교주는 다른 누구도 아닌 도명준이었다. 화면 너머, 수많은 교인들을 거느리고 연설하는 도명준의 모습은 성유다에게 너무나 낯설었다.
천진난만하고, 사고 치기 좋아하던 도명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어엿한 부두교의 교주가 되어 있었다.
“……로마니카교도인 우리랑은 더 이상 만나면 안 되는 거겠지. 교주가 됐으니까.”
성유다는 도명준과 왜 친해졌는지 떠올려 보았다. 생각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그와 친했는지 떠올려 보았다.
아마,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아주 어릴 적부터. 그로부터 셀 수도 없이 긴 시간을 절친한 친구로 지냈다.
그러나 남이나 다름없는 소원한 사이가 되는 것은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도명준과 연락이 닿지 않게 된 이후, 성유다는 이세화와 단둘이 만나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둘은 만나면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성유다는 이미 중앙성기사단의 주축이 되어, 이단 심문관으로의 승진을 꿈꾸고 있었다. 이세화는 지방사제단에서 중앙사제단으로 이직을 노리고 있었다.
“저도 중앙으로 가면, 선배랑 협업도 가끔 할 수 있겠네요. 중앙사제단이랑 중앙성기사단은 협업을 자주 하잖아요.”
“얼른 오기나 해. 기다리고 있으니까.”
성유다는 내심 이세화와 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서 좋다고 생각했다.
도명준과 사이가 멀어지고 난 뒤, 정화의 일족에서는 성유다에게 결혼을 보채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세화를 향한 성유다의 마음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기 때문에 마음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명준 선배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여전히 도명준을 잊지 못하고 이따금 언급하는 이세화 때문이었다.
이세화는 성유다와 단둘이 만나고 있을 때에도 종종 도명준의 이야기를 했다.
그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예전처럼 셋이 만나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세화를 보며, 성유다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조금은 슬프기도 했다.
그 슬픔이 도명준의 탓인지, 아니면 이세화의 탓인지 알 수 없었다.
“그놈은 우리를 잊었어.”
성유다가 말했다. 이세화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성유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슬퍼하는 기색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도명준 때문에 슬퍼하고 있었다. 성유다가 이를 악물었다.
“도명준은 우리와 달라.”
성유다는 그렇게 말하고 창밖을 보았다. 카페 바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친한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사람도 있고, 혼자 다니는 사람도 있다.
저들 중에는 로마니카교를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부두교를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다른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성유다는 확신했다.
“우리가 그놈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놈도 우리를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성유다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세화가 성유다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는 그녀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도명준은 처음부터 부두교의 차기 교주였다. 잠깐은 친하게 지낼 수 있었겠지만, 언제까지나 친하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태생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정화의 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세화를 향한 마음을 수없이 포기해야 했던 성유다와, 어떤 면에서는 같았다.
첫눈이 올 무렵에, 이세화는 중앙사제단으로 입단 시험을 보러 갔다.
성유다도 이단 심문관이 되기 위해서 여러 번의 시험과 면접을 치렀지만, 끝내는 실패하고 좌절하고 있었다.
그때, 도명준은 문득 성유다를 찾아왔다.
“오랜만.”
“…….”
그것이 도명준의 첫마디였다. 연락도 없이 찾아와 뻔뻔하기 그지없게 인사를 건네는 꼴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었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났다. 할 말이 많았다. 왜 그렇게 갑자기 연락을 두절하고 떠나 버렸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성유다는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도명준이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와 똑같은 웃음을 입에 머금고 있었다.
“……뭐 하고 지냈어? 그동안.”
성유다가 물었다. 도명준은 대답하지 않고 싱긋 웃어 보였다. 못 본 사이 그의 얼굴은 피로에 절어 초췌하게 변해 있었다.
안 그래도 마른 체형이었던 그 몸에는 얼마 없던 살집마저 사라져버린 듯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에 담긴 찬란하고도 깊은 빛은 조금도 마모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눈동자의 광채는 더욱 밝아진 것 같았다.
둘은 걷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 걷자고 말을 꺼낸 건 아니었다. 그저 예전처럼 둘은 걸었다.
도명준은 바닥에 닿자마자 녹아버리는 진눈깨비를 묵묵히 바라보며 걸었고, 성유다는 그런 그를 보면서 걸었다.
성유다는 뒤늦게 그의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반지 뭐냐? 너 여자 친구 생겼어?”
“아니? 아빠 유골 반지.”
“……뭐, 뭔. 아빠, 아니 아버님 유골로 왜 반지를 만들어.”
“부두교는 이렇게 해.”
도명준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성유다도 덩달아 고개를 들었다.
달빛이 찬란하고, 바람은 서늘했다. 한숨을 쉬자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도명준은 달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제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죽음 자체를 하나의 물건으로 보관하는 거야.”
“그럼 그 반지에 너희 아버님 영혼이 들어 있다, 그렇게 보는 거야?”
“아니지. 아빠 영혼은 지금 ‘보이지 않는 세상’을 여행하는 중이지.”
“……뭐라는 거야? 부두교는 진짜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할 생각도 없지만.”
“나중에 자식 낳으면 물려줘야 돼, 이거.”
“자식은 무슨. 결혼은 할 수 있고?”
“결혼…… 글쎄다.”
도명준이 왼쪽 새끼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중앙에 박힌 유골 보석이 달빛에 반짝였다. 도명준은 그렇게 한참이나 반지를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반지에 박힌 유골 보석을 쳐다보았다. 마치 보석 너머로 누군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먹먹하고 쓸쓸한 눈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뭐.”
도명준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 성유다를 보았다. 그러고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세화랑은 요즘 어때?”
“어떻긴, 뭐가?”
“너 세화 좋아하잖아.”
갑작스러운 도명준의 말에 성유다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속내를 들켰다는 생각에 성유다는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잘해 봐.”
“…….”
“세화, 개는 은근 정신력이 약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옆에서 멘탈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줘야지. 네가 우리 중에서 가장 멘탈이 세니까.”
성유다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단 심문관이 되기 위한 시험을 몇 번이나 떨어지고 좌절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성유다의 정신은 많이 유약해진 상태였다.
그는 누군가의 버팀목이 될 만큼 강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이세화가 아닌 다른 사람과 혼인이 약조되어 있었다.
“……나보다는 네가 낫지 않을까. 아무래도.”
성유다는 생각했다. 이세화에게 어울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도명준이라고. 그러나 도명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안 되지. 난 부두교니까.”
“…….”
“교주라는 게 생각보다 힘들더라. 아버지가 대단하게 보일 지경이야. 그리 좋아하지도 않던 아버지였는데…….”
도명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성유다는 대답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도명준이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도명준은 언제나 강한 사람이었다. 신성력을 쓰지 못해서 피렌체에서 무시를 당했을 때도, 벌점이 쌓여 퇴학을 당했을 때도 그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성유다는 도명준이 강하기 때문에, 힘든 와중에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사는 세상이 달랐을 뿐이었다. 도명준은 피렌체에서 겪는 수모 따위는 수모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부두교였기 때문에, 로마니카교도들이 자신을 아무리 무시하고 경멸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는 그 나름의 세상이 있었고, 그 세상 속에서 도명준은 강하지 않았다. 이세화나 성유다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만 갈게. 지금도 사실 밀린 일이 많은데, 그냥 도망쳐 나온 거라서.”
“…….”
“너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떠난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아무튼, 간다!”
도명준은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성유다는 그를 붙잡으려다 말았다.
분명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성유다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도명준을 보냈다.
그날, 이세화는 성유다를 만나서 중앙사제단에 입단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렸다. 성유다는 이세화에게 도명준을 만난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
이세화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듯, 한참 말없이 성유다를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에서 약간의 배신감이 엿보였다.
성유다는 도명준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뭐라고 더 말을 건네려고 했다.
중앙사제단에 입단하게 된 일을 축하하면서, 그녀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밝히고 싶었다.
그러나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도명준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의 표정이 굳는 걸 보았기 때문에.
그녀의 눈동자에 도명준을 향한 배신감이 차오르는 걸 보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보러 가요.”
이세화가 성유다를 노려보며 말했다. 성유다는 고개를 저었다.
“……연락이 안 되는데 어떻게 찾아가.”
“연락이 안 돼도, 찾아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잖아요.”
“갑자기 찾아가면…….”
“그 자식도 갑자기 찾아왔는데, 우리라고 갑자기 찾아가면 안 된다는 법 있어요?”
듣고 보면 맞는 말이었다. 도명준은 성유다를 갑자기 찾아왔다. 성유다라고 도명준을 갑자기 찾아가면 안 된다는 법은 없었다.
부두교의 교주로서의 일이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고작 몇 분 시간을 내는 것조차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솔직히, 이세화를 데리고 도명준을 만나러 간다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도명준을 보고 반가운 기색을 보일 이세화를 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이세화의 눈동자는 배신감으로, 그리고 왠지 모를 열정과 정의감 같은 것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성유다가 가지 않겠다고 하면 혼자서라도 도명준을 만나러 갈 기세였다.
“……그래, 가자.”
성유다는 두 사람만 만나게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따라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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