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79
178
풀숲을 뛰쳐나간 지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제네시스 길드와 비 제네시스 길드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을 향해 을 생성하는 것이었다.
우웅!
그림자의 늪이 깔리고.
스륵, 스르륵!
필드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게이머의 그림자가 하나둘 떠올랐다.
고레벨 게이머들조차 쉽게 버티는 게 불가능한 강도 높은 슬로우 효과는 덤이었다.
“뭐, 뭐야!”
“어떤 새끼야!”
“누가 트롤하냐! 누가!”
제네시스 길드든 아니든 모두가 놀라는 사이.
화륵, 화르륵!
뒤이어 가 전개되어 모든 게이머의 방어력과 항마력을 걸레짝으로 만들어놓았다.
‘장판은 깔았고.’
지크는 두 가지 디버프 필드를 모두 깔아놓았지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싸울 생각?
애초에 없었다.
미쳤다고 저 아귀다툼에 끼어들까?
‘저 상자 보이지? 저거 주워서 나한테 던져.’
지크가 그림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덥석.
그러자 지크의 명령을 받은 그림자 하나가 땅에 떨어진 성궤를 주워 들더니 다른 그림자에게 던졌다.
휙, 휙, 휙, 휙, 휙, 휙.
릴레이가 이어졌다.
게이머들이 슬로우 효과에 빠져 있는 동안 그림자들은 성궤를 차근차근 넘기는 식으로 운반했고, 히든 클래스가 든 성궤는 마침내 지크의 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알림창이 떠오르던 순간.
“저 양아치 새끼 뭐야!”
어느 게이머가 지크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이 와중에 그럴 생각이 드냐?”
“저 새끼부터 죽여!”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
싸움이 멈추고, 제네시스 길드고 비 제네시스 길드고 할 것 없이, 모든 게이머가 지크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지크는 그런 게이머들의 성토에 응답하지 않았다.
‘붙잡아.’
지크는 그림자들에게 게이머들의 발목을 잡을 것을 명령하고는, 그 길로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햄찌야! 튀자!”
“뀨!”
성궤를 획득한 지크와 햄찌가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저 새끼 잡아야 돼! 잡아! 아오! 이건 뭐야!”
“놔, 놔 이 미친 그림자 새끼들아!”
“이 질척거리는 새끼들!”
하지만 지크의 명령을 받은 그림자들은 게이머들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물론 그림자들은 지크가 없이 오래 버틸 수는 없었으므로, 이내 곧 자유를 찾은 게이머들이 지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어딜 가려고!”
그때, 승구가 나섰다.
쿵쾅쿵쾅!
무려 열한 기의 아이언 골렘들이 지축을 뒤흔들며 뛰어와 바리케이드를 형성했다.
골렘들이 모두 아이언 골렘인 이유는, 지크가 지난번 아둔야뎃 왕성 전투에서 주운 를 승구에게 선물했기 때문이었다.
메카닉 포스는 전설급 아이템이었지만 아이언 골렘 제작 스킬이 무려 일곱 개나 붙어 있고, 관련 스킬들 역시 +3이나 붙어 있는 어마어마한 물건이었다.
덕분에 승구는 자신이 가진 골렘 전부를 모조리 아이언 골렘으로 교체한 끝에 2차 전직을 이룰 수가 있었다.
•존재 구분 : 모험가
•레벨 : 178
•클래스 : 아이언 로드(전설)
•소속 : 프로아 왕국
•직위 : 노동전위대 대장
•칭호 : 현장의 지휘관 / 공사판의 마에스트로 / 유능한 행보관 / 노가다의 제왕 / 강철을 다루는 자 / 초보 파일럿
아이언 로드.
골렘 중 아이언 골렘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클래스.
그리고 그 클래스의 핵심은 골렘을 다루는 게 아니라 ‘탑승’하는 것이었다.
쿠웅!
그 어떤 골렘보다 거대한 거의 4미터에 육박하는 아이언 골렘이 나타나, 이미 바리케이드를 형성한 골렘들에게 합류했다.
– 형님! 여긴 제가 막겠습니다! 어서 튀십쇼! 얼른!
아이언 골렘, 아니 에 탑승한 승구가 지크를 향해 소리쳤다.
“고마워!”
– 별말씀을! 얼른 갈 길 가십쇼!
승구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타이탄이라 부르는 기체에 탑승하고 열한 기의 아이언 골렘들을 동원한다고 해도 고레벨 게이머들을 막아서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승구의 역할은 지크가 일정 거리 이상을 도망칠 때까지 막아서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
같은 시각.
현재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의 밤하늘에는 총 세 척의 비행선이 조용히 날고 있었다.
그 비행선들은 마법의 염료로 도색이 되어 있었기에 지상에서는 육안으로 식별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또한 비행선 특유의 소음 역시 적어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게이머들이 알아채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충 세 척 중 대장선 역할을 하는 비행선의 선실.
“밑에서 화염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프로아의 군복을 입은 병사가 지상을 살피더니 보고했다.
“흠. 화염이라. 전하께서 신호를 보내신 모양이로군요.”
미켈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전 함대, 지상을 향해 폭격을 준비해 주십시오.”
“폭격, 준비!”
미켈레의 명령이 떨어지자 비행선에 탑승해 있던 병사들이 재빨리 함포에 포탄을 장전하고,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향해 포신을 겨눴다.
“폭격, 개시합니다.”
미켈레가 명령했다.
“폭격, 개시!”
“셋, 둘, 하나! 폭격!”
“폭격!”
병사들이 일제히 함포를 격발시키고.
슈우, 슈우우!
세 대의 비행선이 발사한 포탄들이 쟁탈전을 벌이는 모험가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
지크는 처음부터 이 쟁탈전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경쟁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현재 지크의 힘만으로는 저 많은 고레벨 게이머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성궤를 차지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경쟁자들이 존재하는 한, 상황이 언제 어떻게 돌아갈지 몰랐기 때문에 99퍼센트 이상을 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떠오른 생각이….
‘잠깐. 그냥 국력을 동원하면 쉬울 것 같은데?’
프로아의 힘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비록 어딜 가나 듣보잡 취급에 무시당하는 나라라지만, 프로아는 엄연히 하나의 국가였다.
즉, 지크는 일반적인 게이머들과 비교했을 때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훨씬 다양하고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크는 미켈레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그랭구아르 사관님.] [예, 전하.] [미켈레 공에게 전해서, 직접적인 전투 없이 저 모험가들을 싹 쓸어버리고 성궤를 차지할 계략 같은 걸 떠올려 보라고 하세요.]‘알겠습니다.’
그랭구아르는 그 길로 즉시 프로아로 달려가 미켈레에게 이 소식을 전했고.
[전하께서 직접적인 전투 없이 모험가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라고 하셨습니까?] [예, 미켈레 공.] [그것도 직접적인 전투 없이요?] [예.] [간단하군요.]미켈레는 그 어려운 요구를 그리 대단히 여기지 않았다.
[때마침 전투 비행선 세 척을 구매해 두었는데 마침 잘됐습니다.] [전투 비행선 세 척을요?]그랭구아르는 놀랐다.
소형 경비행선이라면 몰라도, 전투에 동원되는 비행선이라면 값이 매우 비쌌다.
당연히 약소국인 프로아로서는 감히 구매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전략 병기였기 때문이다.
[좀 비싸긴 하지만 최근 본국의 수입이 크게 늘어난 덕분에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저번 차원의 균열 사건도 있고….]그때 전투 비행선이 있었더라면, 차원의 균열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 웨이브를 훨씬 더 쉽게 정리할 수 있었을 거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승구 경을 보내겠습니다. 전하께서 신호만 주신다면, 본국의 비행 함대가 모험가들의 머리 위에 포탄을 투하할 수 있도록.’
‘오오! 알겠습니다!’
게이머들이 제아무리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하더라도, 머리 위에서 포탄이 쏟아지는데 버텨낼 재간이 있을까?
단언컨대, 그럴 만한 초강자가 등판했더라면 성궤는 진즉에 주인을 찾아가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그 결과.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퍼엉!
전투 비행선 세 척으로부터 쏟아져 내린 포탄들은 쟁탈전을 벌이는 게이머들을 모조리 폭사시켜 버렸다.
때마침 야간에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폭격인지라 게이머들은 미처 대응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만.”
미켈레가 폭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함대, 전하께서 탑승하실 때까지 현 위치에서 대기합니다.”
“대기, 대기!”
“대기!”
미켈레의 명령을 받은 프로아의 전투 비행 함대는 조용히 밤하늘에 뜬 채로 지크의 탑승을 기다렸다.
***
“휴.”
지크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까지 폭사 당할 뻔했네.”
“뀨우! 햄찌도 죽을 뻔했다!”
한 10초만 늦게 뛰었으면 아군의 폭격에 죽었을 게 분명했다.
그 증거로, 지크와 햄찌가 있는 곳으로부터 약 7~8미터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쨌든 살았으니까….”
성궤를 확보하긴 했지만, 이대로 그냥 갈 수는 없는 노릇.
“템 줍고 가자.”
“알겠다, 뀨!”
저 폭격 속에서 살아 있을 게이머는 없었으므로, 지크는 죽은 이들이 떨어뜨렸을 랜덤 드랍 아이템을 모조리 수거하고 비행선에 탑승하기로 했다.
공짜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떨어진 승구 템도 주워다 줘야 하니까.’
승구 역시 아군의 폭격에 의해 사망했기에, 지크에게는 승구가 드랍한 랜덤 드랍 아이템을 주워줘야 할 의무가 있기도 했다.
“어디 있나….”
지크의 눈길이 폭격으로 인해 쑥대밭이 된 필드를 훑었다.
그러던 중.
“얼씨구.”
지크는 뭔가 익숙한 아이템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얘도 운이 지지리도 없네… 하필 떨궈도 주력 무기를 떨구냐….”
지크의 시선이 머문 곳은 아이언 골렘들의 잔해 속 기다란 막대기였다.
메카닉 포스.
승구의 목숨과도 같은 무기가 랜덤 드랍 아이템이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사망 시 주력 무기가 떨어질 확률은 극히 희박한, 사실상 길 가다가 똥을 밟고 뒤로 넘어졌는데 코가 깨질 확률에 근접했다.
과거 제네시스 길드에게 50번은 넘게 죽어 본 ‘사망 장인’ 지크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쯤 되면 클래스가 디버프 마스터가 아니라 ‘폐지 줍기 장인’이라고 해도 믿길 지경이었다.
어차피 대머리 독수리가 된 마당에 꺼리길 게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주워서 돌려줄 거니까 다행이야. 승구야 고맙다.”
지크는 승구의 눈물겨운 희생을 고마워하며 를 인벤토리에 주워 담는 것을 시작으로 또다시 폐지 줍기에 나섰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지크가 이란 뭔가 비열해 보이는 아이템을 주웠을 무렵.
저벅저벅-
저 멀리 온통 쑥대밭이 된 필드에서 누군가 걸어 나와 지크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생존자가 있었어?’
지크의 얼굴이 놀라움이 떠오르던 순간.
“너… 뭐 하는 새끼냐….”
유일한 생존자가 악에 받친 으르렁거림을 내뱉었다.
채형석.
그가 전투 비행단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게이머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