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4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47화
“형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섣부르게 임의로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형이 공유해 주신 사적인 경험을 함부로…….”
“괜찮다니까.”
한 번만 더 들으면 다섯 번째다. 나는 김래빈의 사과를 약간 진절머리내며 받았다.
‘누가 보면 누명이라도 씌운 줄 알겠군.’
이놈이 한 일이라곤 ‘문대 형이 취침하다가 예전 일을 기억해 냈다고 말했다’라고 멤버들에게 알려준 것뿐이었다.
아마 그것도 겁에 질리거나 긴장해서 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걸 토대로 내 지랄발광을 어떻게든 해석해서 대응해 보려고 했던 것일 테니 말이다.
‘……나름 잘 감췄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한국 와서 썸머 패키지 촬영분을 확인해 보니, 내 분위기는 더럽게 어색하고 우중충했다.
‘나라도 뭔 일 날까 봐 취급 주의했을 몰골이었어.’
이놈들이 걱정하거나 긴장하는 기색이 간간이 카메라에까지 잡혔다.
촬영이 무사히 진행된 건 전적으로 혼자 두 배쯤 더 떠든 큰세진 덕이었다.
‘…류청우는 자제했지.’
촬영 초반부터 내가 본인에게 거북함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은 게 분명했다.
나는 침음성을 참으며, 김래빈에게 말했다.
“그러면 나야말로 사과해야지. 분위기 흐려서 미안하다.”
“예?? 절대 아닙니다! 애초에 촬영이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돌발상황을 사과하실 필요가…….”
“그래. 같은 의미로 너도 사과할 필요 없어.”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왜 사과할 필요가 없는지’ 납득을 시켜주니 드디어 김래빈이 말을 멈추고 인사 후 나갔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편안한 휴식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래. 너도.”
즉시 방이 조용해졌다. 룸메이트 하나는 스케줄로 부재중이고 남은 하나는 취미가 얌전한 덕분이었다.
‘세상이 고요하군.’
나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몸을 묻었다.
그러나 옆 침대에서 또 소리가 났다.
‘…조용하다고 한 지 3초도 안 지났다.’
배세진이었다.
“…좀, 괜찮아?”
“예? 예.”
뻔한 대답이지만, 실제로도 내 상태는 제법 안정적이었다.
막판에 술 마시고 좀 털어서 그런지, 아니면 일 터졌던 낯선 나라를 떠나 익숙한 숙소의 방으로 돌아와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 덕이든, 직전처럼 못 견디겠다는 느낌까진 아니었다.
그냥 문득 기억나면 식은땀이나 나는 정도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설명을 덧붙일 수 있었다.
“이제 촬영 방해할 일은 없을 겁니다. 걱정 마세요.”
“그, 그런 걱정은 안 했어!!”
배세진은 소리를 빽 지르더니, 자기가 놀랐는지 읽던 책을 도로 휙 치켜들었다.
“…….”
뭐 어쩌라는 거지.
어쨌든, 그래서 썸머 패키지 촬영분을 확인한 뒤 바로 오늘을 체크해 놨다. 바로 썸머 패키지가 시중에 풀리는 날 말이다.
‘혹시 모르니까.’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드디어 쭉 모니터링을 개시했다.
“……흠.”
혹시 했는데, 다행히 별문제는 없었다.
편집의 마법을 거치고 나자, 내 태도가 적당히 소극적인 정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반응도 나쁘진 않았다.
-문대 진짜 몸 안 좋았나보다 티 안 내려고 노력하는 게 보여서 더 마음 아파ㅠㅠ
-박문대 눈깔 동태 다 됐네 의욕 박살 초심 박살 으휴
└응 아냐 X나 아파 보이는데 무슨 개소리
└아파서 덥라에도 못 나온 애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미친 새끼가
-애들이 문대 챙겨주는데 진짜 마음 따뜻해짐 테스타 영원해
-썸패에서 조곤조곤 얌전 댕댕쓰 (문대 GIF)
‘역시 날카롭게 리액션하느니 리액션 자체를 줄이는 게 맞았어.’
최대한 다른 멤버나 상황에 반응과 내 감정 표출을 줄인 쪽이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물론 드문드문 ‘박문대 초심 어딨어’ 같은 류의 어그로 계정이 보이긴 했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고 두들겨 맞은 뒤 사라지는 추세였다.
단발성인 데다가 촬영 전에 W라이브까지 빠졌던 덕에, 정말 아팠다는 쪽으로 여론이 잡힌 덕이었다.
……약간, 양심에 찔리긴 했다.
‘특별히 아팠던 건 아닌데 말이지.’
아프다는 변명을 이미 한 번 써먹었으니, 앞으로 반년쯤은 몸 관리를 정말 제대로 해야겠다.
또 아프면 그때부턴 단발성이 아니게 되고, 그럼 괜한 소리가 제대로 나올 수도 있었다.
이런 썸머 패키지들은 팬들만 구매해서 보는 편이라 대충 넘어간 것 같지만, 앞으로는 알 수 없다.
‘조심해야겠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스마트폰을 껐다.
깔끔한 인터넷 상황을 보니, 당시에 좀 무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약속한 것도 지키는 중이다.
삐삐비빅.
[상담시간]마침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알람을 끄자, 또 슬그머니 배세진이 말을 걸었다.
“…가게?”
“예.”
“잘 생각했어.”
“뭐, 그렇죠.”
선아현이 상담받으러 가는 시간에, 나도 상담을 받기로 한 것 말이다.
덕분에 오늘도 스케줄에서 돌아온 선아현과 맞춰서 외출했다.
“무, 문대야. 끝나고 나올 때 연락하자…!”
“어… 그래.”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큰 소용은 없었다.
“그럼, 최근에 하신 가장 큰 걱정이 어떤 걸까요?”
“…남들 다 하는 걸 저도 하죠.”
“그래요~ 어떤 예시가 있을까요?”
“음,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있고.”
상담사에게 ‘상태이상 해결 못 하면 뒈지는데 이 새끼가 이상한 환영까지 보여줘서 PTSD 증상이 발작처럼 튀어나온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것이다.
“문대 선생님.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시거든요. 혹시, 본인한테 좀 더 너그러워도 괜찮겠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 없나요?”
“……약간은, 하죠.”
뭐, 그래도…… 전문가에게 털어놓는다는 감각 자체가 주는 안정감이 있긴 했다.
곤두선 신경이 좀 수그러들고, 내면의 침착함이 견고해지는 느낌.
여기에 국내 활동기가 아닌 덕에 그렇게까지 과하진 않은 스케줄이 바탕이 되자, 드디어 ‘그것’을 재시도해 볼 생각이 들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숙소의 화장실 안.
나는 숨을 들이켰다.
“……상태창.”
등골에 소름이 쭉 돋았지만, 때려치울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오랜만에 상태창을 확인했다.
…새 상태이상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
[‘관객이 아니면 죽음을’]: 정해진 기간 내로 20만 명 이상의 관객과 만나지 못할 시, 사망
달성 인원 : 2,219 / 200,000
남은 기간 : D-339
‘미쳤나.’
이번에도 수치가 양심이 없다.
‘이건 무조건 해외 투어를 해야 하는 숫자다.’
그나마 행사 덕에 지금 이천이 찍혀 있긴 한데,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1년 내내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계획대로라면 가을쯤에는 국내 콘서트를 시작으로 투어를 할 것 같으니 시기상의 문제는 없긴 한데… 이젠 규모의 문제였다.
아예 일찌감치 포기할 수준은 아니고, 행사 등등 합치면 얼추 도전해 볼 만한 정도다.
‘결국 앨범을 잘 내는 수밖에 없군.’
다시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래도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좀 평온이 돌아오긴 했다.
‘대상이 아닌 게 어디냐.’
나는 약간 후들거리는 손으로 상태창을 돌려보내려 하다가, 문득, 손을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가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정상이 아니군.’
상태창이 사라졌다. 나는 세면대에 또 고개를 처박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대체 뭘 바라는 거야.’
이 상태창이라는 게 왜 저러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첫 보상으로 박문대… 그러니까, 진짜 박문대의 사정이 떴을 때나, 두 번째로 청려의 사정을 구구절절 알려줬을 때는 좀 달랐다.
나는 그것들이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힌트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미국에서 본… X발, 아무튼, 그건, ……아니지 않은가.
어떤 해명도, 어떤 도움도… 아니지 않은가.
“……후.”
그만하자.
나는 심호흡을 하고, 머리를 비웠다.
어차피 더 생각해 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할 일을 하자.
그게 최고였다.
‘우선, 당면한 가장 큰 스케줄부터.’
바로 내 개인 스케줄이다. 류청우랑 술 처마시고 털었을 때부터 떠올렸던.
‘혼자 일하는 시간이 좀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사실, 한국에 오고 나서 류청우와 각 잡고 대화한 적이, 없다.
인사나 가벼운 잡담, 카메라 앞에서 대본 정도는 이제 큰 무리 없이 말하는데 그 이상은… 전적이 있다 보니 섣불리 시도하기 좀 그렇단 말이지.
‘거리두기를 이걸로 해야겠군.’
나는 기껍게 개인 스케줄 일정을 받아들였다.
-문대야, 괜찮겠어? 너무 빠르지 않아?
-괜찮습니다.
그리고 실은, 다소 기대가 되는 부분도 있다.
지난번에 찍었던 스탯이 바로 이 예능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각보다 늦게 하게 됐어.’
기분 전환으로 도전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나는 쓸데없는 찌꺼기를 머릿속에서 몰아내고, 깨끗한 사실만을 생각하며 픽 웃었다.
이건 노래 부르는 예능이다.
그리고 현재 내 가창 스탯은…… S-였다.
* * *
최근 MBS에서 크게 히트를 치고 있는 예능이다.
정체를 감춘 유명인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른 뒤, 서바이벌로 우승자를 뽑는다는 이 프로그램의 포맷은 어쩌면 다소 식상했다.
당장 MBS 당사에서도 그 포맷으로 대히트를 쳤던 종영 예능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에는 독특한 차별점이 있었다. 바로… 출연진들이 직접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홀로그램으로 스테이지에 등장했다.
그것도 자신을 그대로가 아니라, 본인들이 설정한 ‘캐릭터’로.
출연진들은 외양부터 성격, 취향, 나이까지 프로필을 만들어서, 마스코트 가수 캐릭터를 제작했다.
그러면 대기업의 지원을 받은 홀로그램 기계가 스테이지에 그 캐릭터를 구현해 줬다.
무대 아래 링크된 출연진의 모션까지 구현하는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맛에 시청자들은 신기해하면서, 익숙한 포맷 덕에 위화감 없이 빠져들었다.
그래서 여기 채널을 뒤적거리며 돌리던 고등학생도 이 예능의 익숙한 스테이지 화면을 보고 리모컨을 멈췄다.
“오~ 짭가수~”
속된 별명을 부르며 킬킬대던 남고생은 별생각 없이 화면을 주시했다.
그의 누나는 테스탄지 테스턴지 하는 놈들 본다고 자기 방에 들어갔다.
아마 한동안은 뺏길 걱정 없이 편하게 TV 앞에 누워있을 수 있을 것이었다.
마침 프로그램은 중간광고가 끝나고 막 2부를 시작한 참이었다.
[상상력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서바이벌 무대!] [! 그 다섯 번째 무대에 올라올 ‘가수’가 지금! 준비되었습니다!] [와아아아아!]야구선수부터 삼각김밥까지, 종을 가리지 않는 스펙트럼의 예측 불가 캐릭터가 뜬금없이 등장하는 신은 언제나 꽤 재밌었다.
‘이제 공룡 한 번 더 나올 때 됐지~ 아 노잼 나오지 말아라!’
지난번 우승자인 붉은 외눈박이 앞발 짧은 공룡, ‘티라노사우론’을 떠올리며 고등학생은 히죽 웃었다.
MC가 활기차게 외쳤다.
두구두구, 드럼롤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들이 어지럽게 무대를 오갔다.
그리고, 무대 위로 키 큰 인영이 스르르 구성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얀 예식용 정장을 입은 맵시 좋은 몸 위로 흰 면사포가 덮여 있었다.
그 뒤로 하얀 나비들이 스르륵 날아가는 홀로그램이 인영을 휘감고 사라졌다.
‘아 또 인간이야~’라고 고등학생이 야유하려던 찰나, 클로즈업되는 면사포 너머가 보였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대신 화려한 색색의 꽃들이 부케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헐.”
[환영해 주십시오, ‘5월의 신랑’입니다~]인위적으로 삽입한 것 같은 환호와 박수가 화면에서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