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2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4화
휴가가 끝난 후.
“왔어?”
“그래.”
숙소에 복귀하자마자 김래빈의 재택근무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사실 김래빈에게는 너 혼자 힘든 일이라고 했다만, 김래빈의 유무를 조건으로 두 가지 버전의 활동 준비를 하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다.
‘사실 중노동이지.’
컴백 일정이 그대로라는 가정하에 이 짓을 하려면 뻔하지 않은가.
임의로 셋이서 결론 낸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항의해도 할 말 없는 상황이란 뜻이다.
물론 이놈들이 항의할 것 같진 않았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그래서, 래빈이가 재택으로 곡 작업하면서 원격으로 앨범 준비 함께하는 방향으로 이야기 마무리했습니다.”
“오오.”
“잘했어, 후우.”
거실에 모여서 간단히 브리핑하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휴가 동안 대놓고 묻진 못하고 돌려서 안부를 묻더니, 각자 나름대로 머리 깨지게 고민했던 모양이다.
“그, 그러면 래빈이는 할머님 곁에서… 계속 있을 수 있구나.”
“그러게. 다행이다~ 그럼 래빈이 작업물은 월, 목 밤 9시에 피드백하는 걸로?”
“맞아. 그리고 중간 연락은 되도록 실시간으로.”
김래빈의 마음이 편안한 것에 집중하던 놈도 만족했고, 김래빈의 부재를 신경 쓰던 놈도 만족할 타협안이었으니까.
“방법만 좀 다르지, 하는 일은 바뀐 게 없어. 이번 앨범도 다 같이 잘 만들어보자.”
“화이팅합시다~”
“화, 화이팅…!”
그 과정에서 노동량 증가 정도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 버린 것이다.
거기서 직감했다.
‘실무진들 반응도 비슷하겠군….’
유인책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회사가 추가 근무 수당이라도 잘 챙겨주는지나 확인해 봐야겠다.
다만, 예외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멤버 한 놈은 얼굴이 허옇게 떴으니까.
“…잘됐네, 김래빈.”
당연하지만 배세진이다. 심지어 화제 다 지나가고 한발 늦게 반응이 나왔다.
‘말 자체는 진심 같긴 하다만.’
단지 안무 동선 두 가지를 따로 익히는 미래를 상상하니 눈앞이 깜깜해진 게 분명했을 뿐이지.
그래도 놀라울 만큼 회복이 빠르긴 했다.
당장 직후에 안무 대형 논의에 배세진이 무슨 발언을 했는지 보자.
“그럼 우선 안무부터 이야기할까?”
“오~ 인원이 다르니 아예 대형을 따로따로 구상해달라고 말씀드리는 건 어때요?”
“음… 그래도 보컬 멤버들은 최대한 동선 변화 적은 방향으로 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류청우가 대충 뭉뚱그렸지만 누굴 배려해 주려는 건지 모를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당사자의 반응은 이랬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똑같이 해.”
“그, 그럴까?”
“…그래!”
“오우! 멋져요!”
“크흠.”
배세진이 차유진의 호응에 은근히 기분 좋아하는 게 보인다.
‘…대충 알겠군.’
저놈에게 쥐꼬리만 한 자신감이 붙은 이유를 말이다.
아마 최신 평판 덕분일 것이다.
나는 휴가 직전, 거실 구석에서 놈이 ‘배세진 구멍 탈출기’라는 제목의 위튜브 영상을 몰래 보고 있던 것을 회상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꼈어도, 그런 동영상은 워낙 자막이 큼지막해서 그냥 보이더라고.
댓글도 대부분 놀라울 만큼 호의적이었던 것 같다.
-배세진 진짜 놀랐음 예능 보니까 귀엽고 열심히 하던데 응원하고 싶어졌어요ㅋㅋ
음, 이런 댓글에 슬쩍 ‘좋아요’를 누르며 입꼬리를 주체못하던 배세진의 얼굴도 생각나는군.
어쨌든, 데뷔 이후 호떡 굽는 리얼리티를 거치며 대중 평판이 상승세니 본인도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받은 것 같단 뜻이다.
아마… 이번에 제대로 1인분을 해서 재평가에 마침표 찍을 결심이겠지.
‘그래도 쓸데없이 무리하면 내가 곤란하다.’
활동기에 번아웃 와서 투어에 지장 가면 안 되니, 어깨에 넣은 힘 좀 빼게 해줘야겠군.
“그럼 특별히 코멘트 없이 안무 동선 의뢰는 진행하는 걸로….”
“전 좋은데요.”
“어어?”
“전 동선 변화 적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배려 좋죠.”
나는 일부러 빤히 배세진과 류청우를 번갈아 봤다.
왜, 뭐. 나도 보컬 멤버 아니냐.
류청우가 살짝 웃음을 참는 얼굴로, 정리하는 척 고개를 숙였다.
“음… 그래. 그럼 세진아, 약간 간단하게 부탁드리는 정도로 괜찮겠어? 문대가 저렇게 말하니까.”
“…그, 그러던가.”
“네넵~ 그럼 그렇게 정합시다~”
큰세진이 눈이 마주치자 슬쩍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놔두지 왜 챙겨주냔 식 같은데, 저것도 어지간히 한결같은 놈이다.
“회사에는 연락했어?”
“예. 촬영 일정 이중으로 부탁드렸고….”
나는 턱을 문질렀다.
“이제… 앨범 컨셉 구체화부터 얼른 진행하면 됩니다.”
“……그게 아마 기간이,”
“넉넉잡아 일주일일까요.”
“그래.”
거실에 비장감이 감돌았다.
경험이 붙을수록 엑셀 작업을 더 기가 막히게 하던 김래빈의 빈자리가 갑자기 느껴지긴 한다.
게다가 이번 컨셉은 전체 활동 흐름에서 유독 튈 예정이어서 말이다.
명료한 정리가 필수였다.
“오늘은 빨리 관계자들 연락부터 확인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걸로 할까.”
“좋습니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앨범 최종 작업이 시작되었다.
* * *
바쁜 프리랜서의 스케줄을 짠다는 것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고려할 게 많은 작업이다.
각종 관계자의 일정을 다 알맞게 짜 맞추면서 프리랜서 본인이 너무 무리해서도 안 되니까.
심지어 그 프리랜서가 아이돌 그룹이라면?
고려할 건 몇 배로 늘어난다.
그래서 필요한 게 매니지먼트실인데….
‘영 일 처리가 성에 안 차는 놈들이라.’
그냥 내가 감시하는 게 속 편했다.
가령 김래빈과 연락 같은 것도 말이다.
[타이틀 작업_2절 Verse_(1)] [타이틀 작업_2절 Verse_(2)] [김래빈 : 오늘은 2절 벌스의 랩 파트를 작업해 보았습니다. 들어보시고 더 많은 투표수를 획득한 버전으로 응답 부탁드립니다.] [김래빈 : 언제나 감사합니다.]김래빈은 칼같이 시간에 맞춰서 작업물을 보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고생했다. 빠르게 피드백 보낼게]그러면 이걸 받아서 보통 다음날 오전 중까지 멤버들의 의견을 추합하고 AR팀의 리뷰를 받는다.
그리고 그걸 저녁에 도로 김래빈에게 보내면, 다음 연락 날짜에 또 작업물이 오는 식이다.
원래라면 김래빈이 직접 AR팀과 소통하도록 만들었겠으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말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문자를 덧붙였다.
[거기 있으면서 특별히 힘들거나 고민되는 일 있으면 말해]이런 문제 때문에, 어느 정도 일 외의 융통성 조절이 필요하니까.
다행히 이번에도 고민하는 망설임 없이 빠르게 답이 왔다.
[김래빈 : 특별한 예외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할머님의 수술 이후 악화나 급격한 회복 증상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안 되는데.’
답을 고민하던 찰나, 빠르게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
[김래빈: 언제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래빈 : (이미지)]첨부된 이미지는… 장미 그림에 ‘오늘을 살아가는 힘, 웃는 얼굴과 용기에서^^’라는 문구가 무지개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김래빈 : 할아버지가 보내주셨는데 문구가 정말 좋아서 공유해 봅니다. 기운찬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나는 피식 웃었다.
‘오늘도 얼마 안 남았다, 이놈아.’
벌써 밤 10시다.
그래도 남은 두 시간이라도 좋은 하루 보내라는 뜻으로 알겠다.
[그래. 너도 잘 자라.]나는 김래빈이 보내는 깍듯한 답장을 확인한 뒤,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앞에서는 신발 밑창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다시 한번 가자.”
“넵!”
김래빈이 파일을 올린 게 단체 메시지 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실시간으로 답장하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
김래빈을 제외한 6인 안무 동선을 익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반응 안 할 수는 없으니 내가 잠깐 빠진 거지.
“문대문대, 래빈이 곡 잘 확인했나~ 어느 부분이야?”
“2절 도입.”
“오케이~ 끝이지?”
얼른 연습에 다시 합류하라는 뜻이다. 나는 후렴 반복구에 들어가기 전에 놈의 옆에 섰다.
“문대만 한번 보자.”
“네.”
곡의 전체 구성은 다 나왔고, 편곡과 일부 레코딩 관련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라 가편집된 데모곡이 스피커에서 나오고 있었다.
참고로 내가 녹음했다.
…각 파트 녹음할 때 안 헷갈리게 해준답시고 창법을 비슷하게 해줬더니, 폭소한 새끼들이 생각나는군.
-으하하하! 그거 나야? 문대 제법인데??
-저 또 해봐요! 저 해요!
-문대야, 성대모사 개인기로 해보는 게 어때?
이번에 어디 예능 나가면 일화랍시고 떠들어 댈 것 같다.
…음, 또 열받는군. 그만 생각하자.
나는 안무 동작에 집중했다.
“하나, 둘….”
안무가가 내 동작과 동선을 한번 점검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잘 추네. 특히 고개 드는 거 좋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 좀 그런데, 내가 듣기에도 곡 좋아. 잘 빠졌네.”
앨범 발매를 앞둔 아이돌이라면 누구든 기꺼워할 칭찬이었다.
여기저기서 밝은 응답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재밌네.’
참고로, 이 안무가가 바로 에서 만났던 그 안무 트레이너다.
자연스러운 척은 한다만, 독설 뱉던 태도는 어디 가고 훨씬 조심스럽고 친절해졌다.
배세진이 가끔 느리게 반응하거나 실수할 때도 신경질은커녕 무시도 못 하는 모습을 봐라.
‘이게 사회지.’
특히 오디션 당시엔 마음껏 폭언을 퍼붓던 선아현한테는 거의 정중하기까지 하다.
이게 썩 좋은 방식이라고 할 순 없겠다만, 역시 일할 때는 사회적 위치만큼 잘 먹히는 예절 주입기가 없다.
“…아현아, 거기 뒤로 한 번만 돌아보자.”
“네, 네!”
‘선아현 본인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지만.’
뭐, 안무가도 쇼비즈니스 때문에 더 고압적으로 나왔던 것이니, 이 바닥에서 특출나게 인성이 나쁜 놈 취급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제일 중요한 안무가 잘 나왔다.
굳이 이 안무가의 시안을 메인으로 채택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거의 처음인데.’
“1절 끝.”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저기 엎어지는 놈들은 힘들어 보였으나, 그리 불안해 보이진 않았다.
바쁜 것과는 별개로 차근차근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안정감 덕분이다.
‘좋아.’
“무, 문대야. 물.”
“고마워.”
나는 남은 스케줄을 머릿속에서 도식화하며 물을 마셨다.
어느 쪽이든 문제는 없다.
‘그래도 김래빈이 합류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로 가면 좋겠군.’
이 앨범 이미지가 김래빈과 워낙 잘 어울리기도 하니까.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짧은 휴식 시간을 알차게 쉬었다.
“10분 끝.”
“넵~”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하나 계산에 넣지 못한 점이 있었다.
내가 몇 주간 인터넷을 깊이 모니터링하고 있지 않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물밑에서는 이미 알음알음 글이 퍼져 있었다.
[김래빈 이번 활동 빠질 듯]물론, 내가 뒤늦게야 확인하고 땅을 치게 됐다는 건 아니고.
“아현아.”
“으응?”
이날 룸메이트 설득에 성공했거든.
그러니까… 위튜브에서 털복숭이만 보던 시즌은 끝났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