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60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0화
방청객들은 무대 위 참가자들의 어두운 실루엣 위로, 근현대적인 전투복의 몇 가지 특징을 얼핏 보았다.
방탄조끼나 하네스 따위의 윤곽이었다.
‘허억.’
흥분한 방청객들이 내적 비명을 지르는 순간, 갑작스러운 전자음이 공연장을 다시 울렸다.
변조된 중성적인 사람의 목소리였다.
[매칭 상대를 찾는 중입니다……] [성공적 탐색.] [위치 확인.] [열세 번째 라운드. 돌입합니다…….]그 목소리에 맞춰서 온갖 고전 게임 버튼 소리가 새롭게 멜로디를 구성했다.
BBi BBi- Ding dong! BBibibibibi
BBi, BBi, BBi—-!
무대 위 참가자들은 그 소리에 맞춰서 몸을 움직였다.
팝이 부자연스럽게 들어간 동작은, 일종의 인형이나 로봇 따위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프리즈.
툭.
짧은 동작을 끝으로 멈춘 그들의 위로, 조명이 켜졌다.
-네 손에 쥐고 있지 VICTORY
실현시키는 건 나야
깨끗한 사람의 목소리가 변조된 반주를 가르고 꽂혔다.
조명 아래 전형적인 샷 포즈를 한 선아현이, 소절 끝에서 씩 웃었다.
“아아악!!”
순간 터질 듯한 함성이 공연장을 채웠다.
참가자들은 마치 그 함성에 응답하듯이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테이지는 언제나 짜릿해
심장이 터질 듯해
바닥을 쓸며 등장한 큰세진의 소절을 받아서 권희승이 불렀다.
-손에 쥐고 있는 나의 WEAPON
절대 놓치지 않지 넌 알지
센터로 보컬이 치고 나올 때마다, 사이사이 복잡한 동작이 추가되며 고전 게임 캐릭터 같은 딱딱한 움직임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그것은 의상과의 시너지로 인해 흡사 최근 게임의 캐릭터창에서 플레이할 캐릭터를 선택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넘치는 아드레날린
솟구치는 POWER가 날린
마지막 SHOT!
-들이켜 네 흥분을
몸서리쳐 감각이 남긴
마지막 ROUND!
드물게도 보컬을 맡은 김래빈의 목소리가 마이크 위로 튀어 올랐다.
대형을 갖추고 팔을 당겨서 약간 독특하게 쏘는 안무는 대놓고 따라 추라고 만든 것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후렴구.
상승하는 음계를 타고 박문대가 고음을 찍어 올렸다.
-쏘고 날려 마지막 Match-!
하이라이트에 웃는 건 나니까
네가 쥔 그 VICTORY-!
내가 준 거야 너도 좋을 거야
그리고 후렴 뒤로 미친 듯이 상승했던 비트가 일시 드랍됐다.
쿵!
묵직하게 울리는 베이스 속에서 다시 테마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무대 위 그들은 삼각 대형을 갖추고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네 손에 쥐고 있지 VICTORY
실현시키는 건 나야
-네가 골라 선택할 CHALLENGER
지금 여깄어 바로 나야
힘을 주어 신체를 움직이며, 무거운 비트에 어울리는 안무가 무대 위에 깔렸다.
몸을 튕기는 동작마다 이상한 위압감이 느껴질 만큼 강약이 구분되었다.
머리를 털고 각을 잡는 동작 때마다, 방청객들은 입을 벌리고 무대를 지켜보았다.
그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댓글 창은 무대가 시작하자 잠시 멈췄다가, 이윽고 ‘미친’, ‘ㅓㅓ’, ‘와’, 따위의 짧은 단어들로 도배 되었다.
끔찍한 카메라 워킹에도 무대의 질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2절로 들어가며, 새로운 대형이 등장했다.
-네 기대는 언제나 황홀해
심장이 멈출 듯해
무대 위 인영들은 자신의 파트에 먼저 움직여서, 홀로 대형을 맞춰가며 다른 팀원을 거느리는 듯이 움직였다.
라이브와 동시에 하기엔 잔인할 만큼 어려웠지만, 보기에는 더없이 근사했다.
브릿지에서 김래빈이 이세진의 보컬에 짧지만 정교한 랩을 주고받고 나자, 다시 후렴이 등장했다.
탕!
여기서는 다시 아이코닉한 쏘는 안무가 등장해서 혹시 모를 피로감을 방지했다.
그리고 다시, 시청자들이 방송으로 매번 들어봤을 데모 버전의 멜로디와 어감을 살린 드랍.
-네 손에 쥐고 있지 VICTORY
실현시키는 건 나야
-네가 골라 선택할 CHALLENGER
지금 여깄어 바로 나야
이번에는 선아현이 앞으로 나와서 안무를 잡았다. 무거운 비트 위에서 현란한 발놀림이 오갔다.
전체적으로 아주 치밀하게 구성된 이 무대는 보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을 둘 다 챙겨서 집중도를 높였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무대가 끝났을 때 순식간에 끝났다며 물음표를 도배했다.
[Take this crown.] [You’re welcome!]무대의 마지막. 초반의 전자음과 유사한 내레이션이 깔리는 가운데, 기지개를 피고 목을 꺾은 참가자들이 손을 흔들며 쓱 무대 뒤로 걸어서 사라졌다.
8비트 멜로디가 끊어질 듯이 울렸다.
BBi- BBi- BBibibibibi
BBi, BBi—-!
무대 뒤에서 조명이 터져 나오며, 그들의 실루엣은 서서히 사라졌다.
보통 안무는 포즈와 함께 끝나는 것이 정석이었다. 이건 모험수에 가까운 구성이었다.
하지만 이런 특이한 엔딩 고른 덕분에, 무대 위 그들은 마치 재밌게 게임 한 판하고 사라지는 캐릭터들 같았다.
“와아아악!!”
시청자들은 잔뜩 흥분했다.
단어만 난무하는 시간이 조금 지나간 뒤, 삽입된 중간 광고가 끝날 때 즈음에야 소통이 가능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 잔인한 놈들 이러려고 첫 빠따 들었군
-이걸 오프닝에 때리냐?
-토끼 탈 때 생각나네 근데 그때는 방송에서 뒤로 미루기라도 했지ㅋㅋ
-농담이 아니라 이거 이기기 힘들겠는데
-와 근데 X발 진짜 멋있다 턱 떨어질 뻔
-나 쪼개느라 잇몸이 다 마름
-컨셉 게임이었구나ㅋㅋ 박문대 선아현 머리 좋네
-솔직히 지금까지 아주사 무대 중에 제일 좋았다 인정?
-눈물이 줄줄 흐른다 선아현은 이미 아이돌이며 이에 대한 반박은 받지 않는다 다들 늦지 말고 주식을 사라
└팬사이트로 가세여~
└마지막인데 봐주자 어차피 선아현 데뷔할 것 같다ㅋㅋㅋ
-일단 이 팀에서 넷은 데뷔할 것 같은데; 다음 팀 어쩌냐 어이구..
그리고 시청자들의 예상대로, 다음 팀의 무대는 밋밋했다.
비교적 낮은 순위로 구성된 이 팀은 메인 포지션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고 팀워크를 다지는 분량을 받았다.
그리고 앞 팀처럼, 이 팀도 이라는 키워드를 살려보려 했다.
그러나 노력, 열정, 절박함에 초점을 맞춘 가사와 안무는 세련미가 없어서 도리어 부담스러워졌다.
앞 팀에서 유머와 판타지를 섞어서 무대를 구성한 탓에 이 비교는 더 두드러졌다.
-열심히 하네
-쟤 눈에 들어온다 한 주 사줘야지
-지루함
-다들 귀엽고 착한 것 같아요~
다소 무미건조한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두 번째 팀의 무대는 끝났다.
그리고 이 루즈한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팀의 무대가 공개되었다.
준비 과정은 똑같이 별것 없었지만, 류청우의 슬럼프 극복에 약간의 분량을 더 얹어줬다.
실제로 그가 슬럼프를 극복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방송에서는 계속 사양하던 리더 역할을 중간에 받아서 훌륭히 수행한 것처럼 나오긴 했다.
-응 알았어 류청우 찍어달라고?
-그래 군면제 놓치기 싫지ㅋㅋ
-류청우 괜찮은데 좀 빈정 상하긴 함
-머글들 표 쓸어가겠지 뭐~
골수 시청자들의 반응은 다소 시큰둥했다. 류청우의 좋은 분량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류청우가 전 국대가 아니었다면 무슨 욕을 먹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선을 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무대.
-차유진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무대의 지배자! 화신!
-ㅋㅋㅋㅋ드립 밖에 안 나오네
-개 잘하긴 함
-흠 1등 하려나
차유진은 또 무대를 찢었다.
사실 다른 사람과의 합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인 탓에, 그가 있다고 다른 사람들의 파트가 괜찮아 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냥 차유진이 빛나서 무대가 멋져 보일 뿐이었다.
솔로나 경연 프로그램에 최적화된 인재라고 볼 수 있었다.
시청자들은 즐겁게 떠들었다.
-아 재밌었다.
-첫타 막타가 괜찮으니까 재밌긴 하네
-이제 뭐 남음?
다시 진행을 맡은 영린의 중대 발표가 남아 있었다.
“참가자들이 준비한 팀전 무대는 어떠셨나요? 예. 즐겁게 관람하신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중대 발표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영린이 손으로 스크린을 가리켰다.
“바로, 데뷔 인원수 발표입니다!”
* * *
무대를 모두 마친 참가자들은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스테이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오랜만에 성공적 무대가 어쩌고 하는 팝업이 떴지만, 내가 그걸 들여다볼 상황은 당연히 아니었다.
언제 생방송으로 얼굴이 송출될지 모르니까.
혹시 무대 위에서 무슨 발표라도 하면 리액션을 잡으려는 카메라가 참가자 팀마다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위에서는 인원수를 발표하는 중이다.
“몇 명 보냐?”
“넌?”
“난… 열 명?”
큰세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약간 희망 사항이 섞인 답변 같았다. 옆에서 메이크업 수정을 받다가 막 끝난 김래빈이 진지하게 끼어들었다.
“제 생각에는 홀수일 것 같습니다. 보통 아이돌 그룹의 대형을 생각해서 홀수를 많이 선호하시니까요.”
“말 되네.”
그게… 그런 식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속으로만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기도를 막 마친 선아현과 눈이 마주쳤다.
“넌 몇 명일 것 같아?”
“그, 글쎄……. 아, 아마… 7명?”
“7명?”
“너무 적지 않냐?”
주변에서 주워들었는지 이놈 저놈 끼어들어서 핀잔을 줬다. 다들 아닌 척하지만, 바짝 긴장한 탓인 것 같았다.
선아현은 몸을 움츠렸지만,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진 않았다.
‘역시 성격이 변했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7명 찍은 사람이 제일 많을 것 같은데. 그 이상 찍은 사람이 더 많으면 좋겠지만.”
“으, 응!”
선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차유진이 ‘난 짝수 좋아요.’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있자니, 위에서 방청객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밑까지 울렸다.
“뭐야?”
거의 진동에 가까운 울림이었다. 참가자들이 당황하는 사이, 영린의 마이크 목소리가 아래까지 쩌렁쩌렁 들렸다.
“이번 의 주주님들께서 선택하신 데뷔 희망 인원 평균은… 6.47명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이 다 굳었다.
“반올림을 통해 숫자를 자연수로 보정한 결과… 최종 데뷔 인원은, 6명입니다!”
그리고 다시 비명과 욕으로 위가 시끄러워졌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6.4…, 뭐?”
참가자들의 당혹스러운 목소리 뒤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게 마지막 화 어그로지.’
사람들이 고른 데뷔 희망 인원을 아예 평균 내버린 것이다.
데뷔 희망 인원은 한 번만 투표할 수 있었고 수정이 불가능했다.
덕분에 사람들이 흥행 초반에 아무 생각 없이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이돌 그룹 숫자’에 투표했던 게 그대로 들어갔다.
근소한 차이로, 5명을 선택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시리즈는 대흥행했고, 제작진이 그나마 인원을 늘려보겠다고 눈물의 편법 쇼를 벌인 결과가 이거였다.
규모는 큰데 공격적인 성향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장난삼아 1명에 테러한 것까지 표본에 들어가다 보니, 겨우 한 명 늘어난 것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이딴 병신 같은 방법으로 할 거면 진작 말을 하지 개자식들아ㅋㅋㅋㅋ
-6.47이라 6명? 6명? 돌았나 미친놈들 ㅋㅋㅋ
벌써 예상 가능한 인터넷 반응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의 준비나 하자.’
이제 마지막 무대만 끝나면, 최종 순위 발표식이었다.